♣ 국밥 한 그릇
이 이야기는 시장 안 어느 국밥집에서 할머니가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좀 전에 혼자 식사하시던 그 할머니 핸드폰 같은데..?." "다시 오시겠죠"
주인 부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국밥만 바라보다 나간 할머니를 떠올리는 시간이 한 달이 넘어가도
그 휴대전화기는 여전히 국밥집 금고 속에 있었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을 못 하시나 해서
연락처라도 찾으려 핸드폰을 열어 본 순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찍힌 사진을 본 남편이 "여보..
여기 이 사진에 할아버지 말이야 우리 집에 매일 들러 국밥을 사가시던 그분 아냐?" “어디 봐요”
"당신도 기억나지 그 할아버지?" "나죠! 그럼.."
그렇게 귀퉁이가 헤어지고 액정마저 금이 간 핸드폰에 들어 있는 사진들마다 숨어있는 지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요. ㅡ 6530원 ㅡ
먼지 한 톨 안을 수 없는 깡마른 얼굴 사이로 땡볕에 금 간 주름을 매달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 다니며
주운 박스를 고물상에 주고받은 그 돈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국밥을 사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날이 비 오는 날이라며 애꿎은 하늘을 쳐다보더니
"미안해 할멈...오늘도 국밥 한 그릇밖에 못 사 왔어" "한 그릇이면 되죠 하루 종일 거리를 쏘다니느라
배고플 텐데 영감 먼저 얼른 들어요" 국밥 한 그릇에 담겨있는 두 개의 숟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진 아픈 할머니가 많이 먹을 수 있게 국물만 퍼 입에 담고는 “임자 팍팍 좀 떠먹어”
"영감이나 많이 드슈"
아내의 숟가락에 깍두기를 얹어주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아내가 다 건져 먹고
남은 국물조차도 양보하려 합니다. "낮에 먹은 국수가 체했나 봐 영 소화가 안 되네그려"
국물까지 다 마신 아내가 트림을 할 수 있게 등을 두드리며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영감 오늘 아들 따라 병원은 다녀왔슈?" "우리 영식이가 태우러 와서 다녀왔어 이젠 거뜬 혀"
아들이 요즘 장사가 안 돼 기름값을 아껴야 한다는 말에 혼자서 버스 타고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단
말과 의사가 많이 걷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아들이 손주와 며느리를 태우러
차를 몰고 바람같이 달려갔다는 말은 봤어도 말할 줄 모르는 저 달님에게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임자, 내가 웃긴 이야기 하나 해줄까? “뭔지 해보슈“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반만 주면 쫄려죽고, 안 주면 맞아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디야..."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할머니는 죽어서도 자식을 허물을 탓하지 않는 게 부모라는 듯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홀쭉해진 달만 올려다봅니다.
그렇게 핸드폰 속에 숨은 다음 페이지를 조심히 넘겨보던 부부의 눈에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는데요.
살갑던 우리 영감이 하늘나라로 간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라며 “아무도 당신이 떠난 날을 기억해
주질 않아 나라도 이렇게 나왔다우" 국밥 한 그릇에 숟가락 두 개를 나란히 넣어 두고는
" 국물까지 다 드슈"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있는 자신에게 거리를 돌며 벌은 돈으로 매일 국밥 한 그릇을
사 와서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같이 나누어 먹던 그때를 떠올리며 앉았다 간 시간을 끝으로
곱게 그려진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 저기 혹시..” 시간 여행을 마친 국밥집 부부 앞에 내리는 봄비를 어깨에 올리고 데쳐진 콩나물처럼
들어선 젊은 남자는 한눈에 봐도 그 노부부의 아들임을 알겠다는 듯 인사를 건넵니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여기 자주 오셔서 병원에 있는 어머니께 드릴 국밥을 자주 사가지곤 하셨거든요"
"아. 네. 몰랐습니다" (우리 할멈이 입맛이 없어 통 먹지를 못해 근데 이 집 국밥만 사 가면 한 그릇 뚝딱 이야..)며
우리 할멈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야 오늘 피로가 다 날아간 것 같다며 휑한 걸음으로 걸어 나가시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국밥집 부부에게
“어머니가 핸드폰을 놓고 간 날이 아버지 기일이셨나 보네요"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한 번도 사드리지 못한 게 맘에 걸리셨는지
국밥 한 그릇에 숟가락 두 개를 넣고 바라만 보다 가시든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는 핸드폰을 건네받은 아들이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리더니 "아빠.! 엄마가 빨리 오래 백화점 세일 끝난다고.."
이 국밥집을 다녀오던 그날 밤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는 아들이 남겨준 구겨진 하늘만
올려다 본 노란 달 속에서 방아 찧는 토끼의 모습이 꼭 국밥 한 그릇 속 두 개의 숟가락 같아 보이는 모습에
“여보 ..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도 나란히 국밥을 들고 계신 것 같아요“
“당신 눈에도 그렇게 보여?” 국밥집 부부는 노란 달 속에 그려진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세요. 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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