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본관) [경기도 제공]
◈ 경기도지사의 대권도전 ◈
경기도 인구 1,390만명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청은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초대형 도라서 도청이 두 군데에 나누어져 있어요
본청은 수원시에 있고 , 경기북부 지역을 책임지는 북부청사(구 제2청사)는 의정부시에 있지요
본청은 팔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므로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요
그런데 경기도청은 원래 서울특별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겸 정부서울청사
주차장(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6-2) 터에 있었지요
대한제국 말기 시절인 1907년부터 조선시대의 의정부 청사를 헐고 새로운 청사를 건축했는데
1910년 8월에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총독부 산하 경기도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이곳에는 경기도청의 경찰부(警察部)도 동시에 입주했지요
당시 빨간색 벽돌 스타일의 서양식 건물이었어요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면서 도청은 수원으로 임시 이전했고
그 사이 서울이 황폐화되어 도청 건물이 반쯤 무너지기도 했지요
1953년 휴전 뒤 복귀하긴 했으나 엉뚱하게도 서울은 경기도가 아닌데
도청이 외로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어 문제가 되었지요
그러자 1953년 4월 15일 인천에서 먼저 '경기도청 유치위원회'가 발족되자
1주일 뒤 수원에서도 '경기도청 수원 존치위원회'가 구성되었어요
존치란 표현을 쓴 이유는 조선시대때부터 수원에 경기감영이 있었고
6.25전쟁 당시에도 임시도청이 설치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6.25 전쟁의 후유증과 4.19 등 정치적 격변기를 맞으면서
도청 이전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5.16 혁명이 일어 났어요
그러자 1962년에 수원의 지역 유지 김구배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1963년에 박창원 경기도지사는 청사를 시흥군 안양읍에 이전하자고 보고했지요
그러자 이병희 수원유치위원장이 도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며 삭발까지 감행하고
박정희 의장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수원으로 도청을 이전해줄것을 간청하였어요
그 결과 1963년 법률 제1538호에 따라 수원으로 신청사 부지가 결정되어
이듬해부터 공사에 들어가 1967년부터 수원시대를 열고 서울시대를 마감했지요
반면 구 서울 도청사는 1967년 이후 내무부의 치안국이 청사로 쓰며
오랫동안 치안본부 청사로 쓰였으나 1986년에 치안본부가 서대문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서울특별시청의 경찰국이 별관으로 쓰다가 건물의 노후화와 기존 정부서울청사
주차장 협소를 이유로 1990년 4월에 철거되어 지금은 정부청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당시 경기도청을 경기도 제1의 도시인 인천이 아니라 수원으로 옮긴데다
도청 출장소(현 경기도청 북부청사)마저 인천이 아닌 의정부에 설치했기 때문에
인천시에서는 도청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지요
더구나 인천에서 수원에 있는 도청을 왕래하려면 서울을 경유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인선 협궤열차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이로인한 불만은 더욱 깊어 갔어요
그래서 수원-인천간 도로를 개설했는데 수인로 개통은 도청 이전 10년 후(1977년)의 일이었지요
이로인해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어요
또한 경기도청의 전신인 경기감영도 한성부 내에 있었지요
당시 경기감영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64번지에 위치해 있었어요
1886년부터 수원으로 이전된 뒤 해당 청사는 군영(軍營), 한성부 청사, 일본인 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 등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그 자리에 "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 있지요
그런데 천만 서울시 보다도 더 많은 인구수((2021.9월)1,390만명)를 자랑하는 경기도는
초대형 도로 탈바꿈 하면서 민선시대가 도래하자
경기도지사 들은 앞 다투어 대권을 향한 꿈을 꾸기 시작 하였지요
그럼 여기서 역대 경기도지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대지사 모두는 대권의 꿈을 꾸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대선후보 경선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본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말았어요
이로인해 ‘경기도지사는 대권의 무덤’이라는 징크스가 생겨 났지요
민선 1기 이인제 전 지사는 15대 대선(1997년)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낙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어요
이후 16대 대선(2002년) 때 새천년민주당 경선에 나섰지만 노무현 돌풍에 무릎을 꿇어야 했지요
이인제 전 지사는 17대(2007년), 19대 대선(2017년)에도 출마표를 던졌지만
각각 본선과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했어요
민선2기 임창열 전 지사는 김영삼정부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로 있다가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를 누루고 당선되었지요
그러나 1999년, 지방선거 직전에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어요
민선 3기 손학규 전 지사는 세번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모두 후보 경선에서 탈락해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지요
손 전 지사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어요
이후 18대(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는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으며
19대(2017년) 대선 당시에는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패배
경선 문턱에서 좌절해야만 했지요
유일하게 경기도지사 재선(4ㆍ5기)을 한 김문수 전 지사는
18대 대선에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당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선에서 밀려 낙마했어요
새누리당 소속으로 민선 6기 도지사의 자리에 오른 남경필 전 지사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이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지요
이후 19대 대선 당시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유승민 후보에게 패배하며 대권을 향한 꿈을 접었어요
이런 가운데 경기도지사로는 최초로 집권여당의 후보로 이재명 지사가 선출되어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경기도지사 무덤론’을 잠재우고
‘경기도지사 대망론’을 현실화시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요
그런데 ‘경기도지사 무덤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는데
이는 경기지사 관사터가 풍수지리상 매우 좋지 않은 흉터라는 설이 있어요
낮은 구릉형의 팔달산 서쪽 끝에 자리잡은 관사는
1967년 6월 23일 경기도청사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9225㎡ 부지에
지상 2층 규모의 철근콘트리트 단독주택 건물로 건축됐지요
해방 이후 간결하고 단순한 모더니즘 특성이 잘 반영돼 있는 아름다운 건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8월에는 도청사 구관과 함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이런 아름다운 관사 건물과 달리 터는 늘 풍수지리가의 입 방아에 오르내렸지요
팔달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터가 "산 사람을 위한 공간(양택)이 아니라 양기를 빼앗는
죽은 자의 자리(음택)"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어요
여기에다 18세기 후반 수원화성을 축조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시신을 묻은곳이 바로 이곳이며 이때부터 나병환자를 비롯하여 각종 행여병 환자 등
수많은 죽은자를 모두 이곳에 묻었다는 것이지요
특히 일제강점기 때도 조선인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며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자들의 한이 서린곳이란 풍문이 전해오던 곳이라는 것이지요
또 관사 인근에 자리잡은 경기도청사 터 또한 구릉형으로 낮지만
불의 기가 강한 팔달산에 눌리는 풍수지역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경기도청사는 1967년 건축 당시(지금의 구관) 팔달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물을 상징하는 ㅁ자 형태의 3층 건물에, 가장 위쪽인 옥상 일부을 배 모양으로 형상화해 지었지요
하지만 김문수 전 지사 재임 당시는 도청 구관은 정면의 3층 건물 위에
1개층이 더 가설 건축물로 올려진 4층이었어요
4층은 전임 지사 시절 모자라는 사무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증축됐던 것이지요
김문수 전 지사는 취임후 얼마되지 않아 이 가건물 철거를 지시해 원래의 3층 모습으로 되돌렸어요
표면상으로는 화재와 안전사고 방지를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관사 터에 대한 풍수도 안 좋은 데다 해당 가건물이 화기를 누르기 위해 지어진
배 모양의 선미를 가려 역대 지사들과 같은 정치행보가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그러나 김문수 전 지사가 대권에 이어 서울 시장 도전에 실패하면서
결국 관사 터의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세간에 회자(膾炙)됐어요
회자된 이야기는 남경필 전 지사가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피하면서 더 무게가 실렸지요
남 지사는 관사를 도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며 '굿모닝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변경
본관을 게스트하우스로 일반인들이 머물게 했어요
그리고 관사 맞은 편에는 까페 설치를 유도했지요
이를 놓고 남 전 지사가 관사 입주 자체를 꺼려 고안한 '이부 회피방안'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남 전 지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재명 지사는 취임과 함께 관사를 정상화했지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없애고 1층은 소통 공간과 내외빈 연회장소로
2층은 집무실 또는 각종 재난 및 안전사고 발생시 긴급상황실 기능으로 활용하는
업무공간으로 바꾸었지요
아무튼 전설같은 ‘경기도지사 무덤론’의 징크스를 깨고
‘경기도지사 대망론’을 현실화시킬지
대선을 보름남긴 시점에서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궁굼하기도 하네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일송) *-
▲경기도지사 관사 [경기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