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원, 영월 장릉과 청령포 문화답사를 끝내면서 느끼는 공통 소감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우리 대구행정동우회 회원 82명은 지난 2026년 6월 25일, 뜻깊은 문화답사 길에 올랐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다 함께 만나는 대형 행사는 1년 중 손에 꼽을 만큼 귀합니다. 상반기의 신년교례회와 문화탐방을 겸한 정기 이사회, 하반기의 대구 구·군 현장 탐방과 정기총회 등이 그것입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수십 명의 회원이 뜻을 모아 정기 급식봉사, 농촌 일손돕기, 대구마라톤대회 거리응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왔습니다.
이번 영월 문화탐방은 버스 2대로 인원이 제한된 탓에, 미처 신청하지 못해 아쉬움을 삼킨 회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혹여 다음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때는 주저하지 마시고 서로의 손을 잡고 서둘러 동행의 기쁨을 나누시길 권합니다.
왕복 6시간이 넘는 먼 길이었기에 영월 장릉지구의 배식단, 정자각, 단종비각 등을 온전히 마음에 담기에는 시간이 못내 야속했습니다. 청령포 망향탑을 카메라 렌즈에 직접 담지 못한 아쉬움도 남습니다. 십여 년 전에도 와보았던 곳이지만 세세한 손길을 다 주지 못했으니, 우리 나이에 다음을 기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서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릉 재실에 자유롭게 앉아 이사회를 개최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고, 이갑순 문화해설사님의 깊이 있는 설명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전해준 여운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가슴 가득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답사를 끝내며, 카페 운영자로서 회원들과 함께 나눈 보람과 가슴 벅찬 소회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단종왕릉을 향해 올린 '국궁사배(鞠躬四拜)'의 묵직한 울림입니다.
산 중턱에 고즈넉이 모셔진 단종왕릉을 향해 회원 전원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구령에 맞춰 70~80대 노구를 이끌고 엄숙하게 사배를 올리던 순간, 사방은 적막하리만치 고요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17세 꽃다운 나이에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어린 임금 앞에 예를 갖추며, 우리는 그 시절 충절을 지킨 수많은 충신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그 엄숙한 의례 속에서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던 작은 부채의식마저 눈 녹듯 녹아내리는 도리와 속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천년의 세월을 품은 자연과 역사의 현장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릉지구에 새겨진 수많은 역사의 상흔들, 그리고 청령포의 우람찬 천년의 숲과 충절의 엄흥도 소나무를 보았습니다. 동강의 지류인 서강의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무심히 굽이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동·남·북 삼면이 서슬 푸른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가로막아, 나룻배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외로운 섬 청령포. 이 비장하리만치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온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이 가치 있는 역사의 현장 앞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대자연과 역사를 지켜낸 선조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셋째, 성숙해진 우리의 역사 인식과 '의(義)'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장을 퇴직한 직후인 17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보다, 지금의 영월은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넓어진 주차장과 세련된 편의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관람객을 보며 우리 국민들의 역사 인식과 문화적 자부심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실감했습니다.
특히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우리 '살아남은 자'들에게 역사적 책임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평범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보여준 조건 없는 인간 존엄성과 목숨을 건 '의(義)'의 가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립니다. 아울러 지역 문화를 이토록 아름답게 가꾸어낸 영화계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시민들의 성숙한 자아의식에 깊은 존경을 보내고 싶습니다.
넷째, 삶의 황혼에서 더욱 빛나는 '동우애(同友愛)'를 기약해 봅니다.
안타깝게도 올해 상반기에도 우리와 함께 걷던 소중한 회원들이 멀리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서로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라는 축복의 시간일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자주 만나 눈을 맞추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봉사와 취미를 공유하는 것. 그리하여 남아 있는 세월을 가치 있게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후회 없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 오르기 전 함께 나눈 찻자리에서 우리 회원들의 얼굴에는 마치 소풍을 온 아이 같은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모처럼 마음껏 웃고 즐거움을 나누던 회원 한 분 한 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이런 따뜻한 날들이, 그리고 가슴 시리도록 소중한 이 정(情)이, 우리 대구행정동우회 회원들의 남은 삶 속에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