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안 좋아했던 시절, 이 책은 소설에 대한 나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해 준 책이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에세이에 관련된 책을 좋아했는데,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2를 읽고 소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2 모두 나의 베스트셀러 안에 속할 만큼 큰 유익을 주었던 책이다. 제목 그대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1 초반에는 취업 준비생인 페니가 등장하는데, 꿈 백화점에 취직하며 일어난 여러 일을 볼 수 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잠에 들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있는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2에서도 똑같은 배경을 유지하게 된다. 읽으면서 ‘진짜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수 없이 들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2에서는 페니가 꿈 백화점 손님들에게 더욱더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보는데, 손님들의 이야기도 너무나 다양하고 정말 풍성한 소설이다.
오늘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 2에 나온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아까 언급했듯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 2에서부터는 꿈 백화점에 오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페니는 민원을 넣은 손님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손님들은 꿈에서 나와 현실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 민원을 넣은 손님들도 있지만, 민원도 넣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끊은 단골손님들이 있었는데, 페니는 이 손님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파자마 파티 초대장을 전하기 위해 달러구트와 페니는 발길을 끊은 손님들을 찾아가는데, 그 손님들은 동굴에 있는 녹틸루카 세탁소에 있었다. 녹틸루카 세탁소는 세탁소 역할도 하면서 사람들과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이었다. 동굴 속, 녹틸루카 세탁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피곤하지 않은데도 잠을 청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떤 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세상과 잠깐 단절된 시간을 원할 뿐. 그런 손님들은 꿈의 세계에서 정처 없이 길을 걷거나, 아무 가게도 들어가지 않고 떡하니 서 있는다. 녹틸루카들은 그들을 세탁소로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녹틸루카 세탁소에서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쉬어가곤 했다.
집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는 열심히 살아야지, 애들 전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힘내야지, 막내가 장가갈 때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지 하고 목표 지점을 정확히 조준하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던 날들이 그립기까지 했다. 이제 뭘 위해, 어떤 날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남자는 자타공인 열심히 사는 청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루를 알뜰하게 쓸 수 있냐고 묻는 친구들도 많았고, 후배들은 그를 닮고 싶은 선배로 꼽았다. 남자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만이 잡생각에 빠지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많은 경우에 남자의 생각은 옳은 듯했다. …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부분의 일이 그의 마음 같지 않았다. 노력만으로는 경쟁률이 50:1이 넘어가는 시험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고, 기다려고 도통 자리가 나지 않는 일자리를 뚝딱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한 번의 기회를 떠나보낼 때마다, 그리던 모든 미래의 일들을 한꺼번에 뒤로 미루고 또 미루길 반복해야 했다. … 남자는 빠르게 의욕을 잃어갔다. 혼자 마음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손쉽게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장 나버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248, 251~252p.)
무기력. 잠시 다가오는 무기력은 우리에게 쉼이 될지 몰라도, 파도 같은 무기력에 삼켜지면 끝도 없이 힘이 빠지게 된다. 위에 내용은 무기력에 빠진 60대 중반 할머니와, 남자 청년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열심을 쏟아붓다가 무기력에 삼켜지고 말았다. 이들을 보며 내가 무기력할 때를 생각해보곤 했다.
얼마 전이었다. 이런 무기력에 삼켜진 나의 모습은. 학교를 그만두고 중, 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와중에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열심을 다했고, 어쩌면 스스로 심하게 채찍질하기도 했다. 학교 밖 학생인 입장이라서,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이번 연도 중순쯤, 점점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세웠던 계획표도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중간에 안 좋은 일도 많이 생기면서 더욱 축 쳐졌다. 삶을 회복하려 해도 회복되지 않았고, 복잡한 상황에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나에겐 녹틸루카 세탁소와 같이 쉬어갈 곳이 필요했다. 어쩌면 40일간의 유럽 여행이 녹틸루카 세탁소와 같이 쉬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놀 수 있는 대로, 잘 수 있는 대로, 먹을 수 있는 대로 펑펑 놀았다. 한국을 다시 오기 하루 전, 언니와 자기 전에 나의 상황과 마음을 토로하고 결국 ‘번아웃’이라는 결론을 냈다. 열심히 달려온 만큼, 긴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게으름 피우는 나 자신을 더욱 깎아내렸다. 그런데, 그걸 알고 나니 눈물만 나더라.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열심을 쏟아붓다가 무기력에 삼켜지고만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녹틸루카 세탁소와 같은 쉼이 있는가? 한 곳에만 너무 열심을 붓고 있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목표를 이루며 잘 살아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중간엔 항상 충분한 쉼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요즘 사회는 더욱 그런 쉼을 비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쉼을 비판하는 그들을 비판하고 싶다. 운동을 할 때도 쉬어가는 시간이 있고,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이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지 않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어갈 때가 있다. 쉼 없이 살아가는 삶은, 결국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치게 된다. 마치 고장 난 시계와 같이 건전지를 갈아주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는 쉼이 필요하다.
무기력과 쉼에 대해서 글을 적은 것은, 무기력에 삼켜진 삶을 회복해 가는 과정 중인 나에게 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위함이고, 바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삶을 살아가는 중에 녹틸루카 세탁소와 같이 쉬어가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쉬어가도 된다. 힘들고 지칠 땐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