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불원(勞而不怨)
수고스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효자(孝子)는 부모(父母)를 위(爲)해 어떤 고생(苦生)을 하더라도 결코 부모(父母)를 원망(怨望)하지 않음.
[출전] 《논어(論語) 이인(里仁)18》
[내용] 이 성어는 논어(論語) 이인(里仁)18장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부모를 모시되 (부모의 허물)가만히 간곡하게 권고하고, (부모의) 뜻이 (자식의 간함) 따라 주시지 않아도 여전히 존경하면서 거스르지 않으며, 비록 괴롭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이하 <家苑 註>
<家苑 註>
공자가 논어 학이편 위정편에서 孝를 말하고 나서 里仁편 18장에서 21장까지 다시 효에 대해 종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유학에서는 서구철학이나 다른 학파와는 달리 유달리 孝를 강조하고 있다. 유학이 周易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이다.
易은 천지자연의 운행이치를 다루고 있는데 주역 계사전에서는 ‘生生之謂易(낳고 또 낳는 것을 일러 역이라 한다)’이라 하였다. 즉 낳고 낳는 천지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외경심을 받고 우러르고 있듯이, 나를 나아준 부모와 조상에 대하여도 공경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공경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효이다. 이에 따라 자신의 근본인 부모와 조상에 대해 효로 섬기고, 제사를 통해 追遠報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이다. 孝를 百行之本이라고 한 이유이다.
① 朱子
此章은 與內則之言으로 相表裏라 幾는 微也라 微諫은 所謂父母有過어든 下氣怡色하야 柔聲以諫也오. 見志不從하고 又敬不違는 所謂諫若不入이어든 起敬起孝하야 悅則復諫也오 勞而不怨은 所謂與其得罪於鄕黨州閭론 寧孰諫이니 父母怒不悅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야 起敬起孝也니라 怡 기뻐할 이, 온화할 이 撻 매질할 달
이 장은 (예기) 내칙의 말과 더불어 서로 겉과 속이 되니라. 기(幾)는 미미함이라. 미간(微諫)은 이른바 부모가 허물이 있거든 기운을 내리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여 부드러운 소리로써 간하고, 뜻이 따르지 아니함을 보고 또한 공경하여 어기지 아니함은 이른바 간해서 받아들이지 아니하거든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하여 기뻐하시면 다시 간하는 것이며,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그 죄를 향당(작은 마을)과 주려(향당보다 큰 마을)에 더불어 얻을지라도 차라리 익어지면 간하니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아니해서 회초리로 쳐서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고 원망하지 아니하여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함이라.
家苑 이윤숙의 한자와 유학경전 강의(경연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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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유교신문 <四字論語> ‘勞而不怨’ 수고스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기되 조심스럽게 간언해야 하는 것이니, 부모의 마음이 내 말을 받아주지 않음을 보고서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않으며 수고스럽더라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子曰 事父母하되 幾諫이니 見志不從하고 又敬不違하며 勞而不怨이니라. 「이인」18)”
부모와 자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사랑을 베풀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로 보답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며, 아침에는 문안을 드리고 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펴드리는 것이 혼정신성(昏定晨省)의 효도였다. 오륜(五倫) 가운데 부자유친(父子有親)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것이 전통적인 우리민족의 삶이요 사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자녀의 입으로 먼저 간다. 부모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침저녁 문안은 부모가 자녀에게 한다. 이부자리를 깔고 방을 청소하는 일도 모두 부모의 몫이다. 거꾸로 된 혼정신성이다. 심지어 부모의 재산이나 보험금을 노리고 나쁜 짓을 하는 자녀도 많아지고 있다. 금수의 세계에서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한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교육계와 정치인, 어른과 스승이 모두 반성해야 한다.
‘노이불원(勞而不怨)’은 부모가 화가 나서 매를 들어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야 하고,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 체벌은 물론 자녀에 대한 체벌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교육은 가정에서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한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것은 옳지만 사랑한다고 모두 자녀의 뜻대로 따르거나 무례한 자녀를 양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남을 배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모가 전부 옳은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잘못된 길로 가면 자녀라 할지라도 부모에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모습으로 간언을 해야 한다. 부모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자녀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길도 어렵고 자식이 되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부모에 대한 효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모의 몸을 편안하게 봉양하는 것이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봉양보다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부모는 존경받지 못하고 심지어 자녀의 재정적 후원자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아직도 효도하는 자녀가 훨씬 많다. 그래서 희망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