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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울고 있던 소희가 눈물 흐르는 거 닦지도 않은 채 문 앞 조등 밑에 있는 승재의 눈과 마주친다.
승재도 꼼작 못하고 소희를 본다.
소희도 승재를 본다.
그러다가 승재…….
시선을 피한다는 것이 하늘로 고개를 든다.
소희 따라서 하늘을 본다.
그리고 둘은 하늘을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소희가 고개를 내려 다시 승재를 본다.
승재도 소희를 본다.
눈물이 조금 말랐나…….
하늘에서 시선을 내린 소희가 승재를 보며…….
연하게 웃는다.
입술미소……. 그것을 바라본 승재…….
도…….
웃는다.
타이틀…….
화성으로 간 사나이
씬 3. 소희네 집.
안방 씬.
승재 부와 소희 할머니의 대화.
승재부: 대강 맘 정리 되시면 짐 꾸리셔요. 가재도구니 뭐니는 그냥 두시고 옷가지나 좀 챙기시고…….
할머니: 어째? 둬……. 아서. 손발 성한데 뭘 부쳐 먹을라고 거기로 가…….
승재부: 세끼 밥 차림도 둘 있으시면 소홀해 지는 거요. 밥 한 덩이 남았으면 새로 안 짓고 라면 끓이게 되고 소희 없는 점심 한 때도 입맛 없음 예사로 거르게 되고……. 고집 부리지 말고 ……. 와서 같이 계셔요. 소희 아버지 뜨기 전에 내 약속 한거요……. 소희하고 어머니 하고 내 돌보기로…….
할머니: 싫여……. 자네 집에서 텃밭 멀어 싫어…….
승재부: 5분이요…….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같이 사셔요.
할머니: 자네 집은 북향이라 금방 피 막혀. 집을 어떻게 그렇게 지었데……. 자네도 조심해……. 풍 와.
승재부: 허이구……. 미치겄네……. 북향집이라 풍 걸리면 ……. 젠장……. 청와대도 북향이랍디다. 대통령들 죄다 풍맞겄소…….
할머니: 당채가 싫여. 가 봐…….
마루 앞 씬.
소희와 승재가 앉아 있다.
소희: 근데 갔다가 못 오는 곳이면……. 어쩌나……. 내가 가거나 해야겠네.
승재: (자신이 없는 말투로) 그리 쉬우면 죄다 갔겠지.
소희: 과수원 아줌마도 저번에 갔잖아.
승재: 그 아줌마는……. 나이가 되잖아. 넌 어려서 안 된다.
소희: 근데 그 아줌마는 왜 저수지로 해서 갔나. 몰라. 더 빠른가?
승재: (할 말이 없다) …….
소희: 화성은……. 커?
승재: 크지…….
소희: 해 보다 더 커?
승재: 해보단 작지……. 한~ 달 정도 되나?
소희: 아……. 오빠 어찌 그리 잘 알아?
승재: 4학년 되면 배운다.
둘 멍하니…….
앞뜰을 바라본다.
소희: 아빠는 그럼 엄마랑 같이 있겠네…….
승재: 우리 할아버지도 거기 있어. 나 모르는 내 동생 있는데……. 그 아인 두 살 때 그리로 갔다더라.
소희: 두 살인데도 갈수 있어?
승재: 할아버지랑 같이 갔잖아. 보호자랑 가면 된다.
둘……. 아주 복잡한 사안을 맞이하여…….
별 할 말 없는 정적이 흐른다.
씬 4. 승재 집으로 가는 도랑 길.
아버지와 승재…….
해가 넘어가는 도랑 둑길을 걸어간다.
승재: 할머니 안 오시겠데요?
승재부: 응……. 우리 집에선 텃밭이 멀어 힘들단다.
승재: 아부지도 죽죠?
승재부: 뭐……. 사람은 다 죽는 거니까……. 왜?
승재: 아니요……. 그냥 혹시 해서요.
승재부: 자식이……. 불안하냐 안 죽고 계속 살까봐?
승재: 아니요. (한숨 쉬며) 오래 사세요.
승재부: 근데 이놈의 자식이……. 오래 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일없어 인마……. 적당히 살다 갈테니……. 알아서 엄마하고 호걸이 하고 잘 살아봐 인마.
사이.
승재부: 오늘 이상하네……. 거, 노인네는 젊은 놈한테 풍 맞을 거라 하지 않나……. 자식새끼는 얼른 죽으라고 성화고……. 에고……. 친구 따라 가는 건데……. 허허 참…….
승재: …….
승재, 아버지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씨익 하고 미소 짓는다.
그리곤 아버지의 굵은 팔뚝에 손을 얹는다.
승재부……. 아들의 손이 자신의 팔뚝을 잡은걸 느낀 뒤 어색하다…….
휘파람을 불며 두 부자가 둑길을 걷는다.
아버지의 휘파람을 따라 승재의 입술이 움직여 보지만 소리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씬 5. 강가.
고기 잡는 아이들…….
승재와 친구 경수…….
승재의 동생인 호걸이가 고기를 잡고 있는데…….
그 옆 바위 위엔 소희가 앉아서 워터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고기 잡는 게 쉽지가 않다.
호걸…….
심통이 끝까지 난다.
호걸: 안 된다. 저쪽 위부터 몰아가지고……. 구석 쪽에서도 누구 하나가 같이 몰아야지…….
승재: …….
경수: …….
호걸: (소희를 보고) 야……. 넌 뭔데 돌바닥 위에 앉아서 가만히 있냐? 인어공주냐?
소희, 무표정한 얼굴로…….
호걸을 좀 바라보다간…….
물속으로 들어온다.
소희: 내가 저쪽에서 몰아?
남자 아이들 뭐라 말을 못한다.
소희: 몰아 올 게 그물에다가 넣어.
소희 첨벙첨벙 간다.
소희가 앉아 있던 바위위의 워터볼…….
조금씩 구르다가…….
물위로 흘러간다.
그리곤 금방 잠긴다.
그물위의 물고기들…….
한 마리 두 마리…….
아이들 좋아한다.
승재 웃으면서 소희를 본다.
소희…….
머리 주위의 물기를 털며 바위로 간다.
근데…….
바위에 없다…….
워터볼…….
금방 얼굴에 울음기가 돈다.
그리곤 소리 내서 운다…….
영화 시작하고 처음이다…….
사내아이들…….
놀라나다.
소희와 호걸, 경수가 물가에 서서 있다.
물속에 잠겼던 승재가 나온다.
워터볼을 아직 못 찾았나 보다.
그리고…….
다시 물속에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는 아이들…….
경수 승재는 물속에서 눈을 뜨나보다.
호걸: 눈 못 뜨는데……. 왜 저런데? 야, 그거 문방구에서 안파냐?
소희: 아빠가 화성가기 전에 나한테 준거야.
호걸: 어이구……. 너네 아빠 죽었다니까……. 또 화성 타령이네……. 바보야……. 화성은 아무나 가냐?
소희: …….
호걸: 대통령 우주비행사……. 그리고……. 사장님……. 경수형 그치?
경수: (한심하단 얼굴로 호걸을 보며) 이그……. 병신……. 사장님은 아니지……. 우체부……. 편지 배달해야 되니까 우체부는 다 간다.
호걸: 거봐……. 아무나 화성에 가냐? 니네 아빠 죽은 거라니까……. 우리가 달구질 하는 것도 다보고 무덤에 떼까지 심었구만…….
소희…….
호걸을 노려보다간…….
휙 돌아간다.
물속 씬.
비사실적 몽환 장면…….
승재…….
물속에서 거품 질을 하다간…….
감은 눈을 뜬다.
근데…….
그 물속 저편에서 누군가가 승재에게 다가온다.
소희: 아빠다.
소희 아빠가 웃으면서 승재를 맞이한다.
승재…….
꾸벅 인사를 한다.
소희 아빠는 손에 들고 있는 소희의 워터볼을 승재에게 건넨다.
둘의 손이 스친다.
씬 6. 승재의 집.
승재 방 씬.
밤…….
승재 워터볼을 손에 쥐고 살펴본다.
신기하다.
그러다간 창문 밖을 본다.
창밖에 둥근 달…….
화성은 아니다.
승재, 약간 한숨…….
씬 7. 학교 앞.
아이들의 하굣길.
교문 앞에서 경수와 호걸…….
승재가 소희를 기다린다.
호걸: 에이씨……. 안 오잖아. 그냥 가.
승재: 아부지가 꼭 같이 다니랬잖아.
호걸 투덜대며 서 있는다.
호걸: 청소 줄 애들도 진작 끝나서 나오잖아.
씬 8. 빈 교실.
소희,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무엇인가 적고 있다.
편지지에 뭔가를 써 내려 가고 있는 소희.
씬 9. 소 도로 우마차길.
경수와 승재, 호걸이 소도로를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다.
신발을 끌며 터벅터벅 가는 호걸의 걸음 덕분에 마른 먼지가 피어오른다.
승재: 먼지 나.
호걸: 씨팔…….
승재, 호걸의 머리통을 한대 쥐어박는다.
호걸: 왜 때려?
경수: 렙? 퍽 소리 났는데.
승재: 호걸이 머리는 원래 때릴 때마다 그런 소리나.
호걸: 뭐가 그런 소리가 나. 세게 때리니까 그렇지……. 소희가 동생이냐 내가 동생이지. 근데 만날……. 소희만 잘 해주냐?
경수: 원래 그런 소리가 나냐? 머리 돌인가부다.
호걸: 형까지 왜 그래? 세게 때려서 그렇다니까…….
승재의 시선……. 먼 뒷길에 머문다.
뒤쪽에서 소희가 뛰어 오는 게 보인다.
승재 웃음이 핀다.
경수: 어, 소희네…….
호걸인 인상을 찌푸린다.
소희가 그들 앞에 당도했다.
경수: 우리 너 기다렸었어. 왜 이리 늦게 와?
승재: 청소했어?
소희: (숨찬 소리로) 아니……. 편지 붙이고 왔어.
경수: 편지?
소희: 아빠 있는 화성에다가……. 막 편지 붙이고 왔어.
호걸: 야, 바보야……. 편지가 가냐?
소희: 간댔어.
승재 얼굴에 당황과 불안이 엄습한다.
소희: 오빠 편지 가지?
승재: 어? 어……. 우표는 붙였어?
소희: 응…….
승재: 어……. 우편번호도 쓰고?
소희: 어?
승재: 우편번호도 써야 되는데……. 어쩌면 안 갈지도 모르겠다…….
소희: 아……. 그걸 몰랐네……. 다시 보낼까?
승재: 나중에 안가면…….
셋 걷는다.
재 얼굴에 온통 초조 불안이다.
몇 걸음 안가서…….
승재 자연스레 돈다.
승재: 니네 먼저 가라……. 난 뭐 두고 온 게 있어서 학교에 다시 갔다 올게…….
승재 다시 뒤로돌아 간다.
이상하게 보는 아이들.
씬 10. 길.
길에 있는 빨간 우체통…….
슬글슬금 우체통으로 다가오는 승재.
우체통 안을 들여다 보다 손을 집어넣는다.
얼핏 보니 거의 닿을 듯하다.
손을 있는 힘껏 밀어 넣는데…….
걸려버린 채 빠지지 않는다.
팔이 걸려 꼼짝도 못하는 승재…….
난감하다.
시간경과.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우체부.
승재, 필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하는데, 맘대로 되지 않고.
김씨: (끽. 자전거를 세운다.) 너 이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승재: 아저씨,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김씨, 우체통에 낀 승재의 손을 빼준다.
편지들을 가방에 챙겨 넣은 김씨.
승재, 도망가려 하자 얼른 승재의 팔을 잡아챈다.
승재, 아-아 하고 신음소리 낸다.
팔목에 상처가 심하다.
김씨: (귀를 당기며) 너 이놈, 어디서 대낮에 도둑질이야? 너 성적표 꺼내려고 그러지? (머리 쥐어박으며) 욘석아 공부를, 안 했으면, 혼이, 나야지.
승재: (요리조리 피하며) 아야 그런 거 아니예요.
김씨: 한 번만 봐 준다. 가서 엄마한테 된장 발라 달라구 하고! 다음에 한 번 더 걸리면 진짜로 잡아 갈 거야.
우체부 김씨, 자전거 타고 출발한다.
그런데 승재가 졸졸 따라온다.
우체부, 속력을 내자 힘들게 뛰어오는 승재…….
우체부: (자전거를 멈춘다.) 너, 원하는 게 뭐냐?
씬 11. 승재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승재.
소희의 편지를 뜯어서 본다.
어두워진 날씨에 잘 안 보인다.
전봇대 아래 촉수 낮은 가로등 아래로 가서 글을 읽는 승재.
승재: 화성에 계신 아빠……. (한숨…….) 후…….
승재, 몇 줄을 읽어 내려오더니…….
화들짝 놀란다.
승재: 다음 주에 아빠 있는 곳에 갈 꺼 에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승재, 어쩔 줄을 모른다.
씬 12. 승재 집/저녁.
승재 아버지, 씻고 들어오면.
텔레비전에선 연속극이 나오고 있고 어머니 기계적으로 감자를 깎고 있다.
승재모: (싱글거리며 혼자 웃는) 내 참.
승재부: 뭐?
승재모: 아니 아까 승재가, 나한테 옥편을 달라지 뭐유.
승재부: (피식 웃는) 지가 뭐 볼 줄 안다구……. (그러면서도 기분은 좋다.) 서울 형님도 말야. 승재만 할 때 사자소학 띄셔갖구, 동네 어른들이 개천에서 용났다. 그랬는데.
승재모: 우리 승재도 시숙님처럼 한문 선생 될래나?
승재부: 선생이 뭐야, 선생이……. 한의사람 몰라두.
승재모: (입이 벌어져서) 한의사?
씬 13. 승재 방.
승재,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다.
승재부: (조심조심 문을 연다.)
승재, 쓰던 것을 몸으로 휙 가리는.
승재부: 아부지가 뭐 도와줄까?
승재: 아뇨.
승재부: 먹고 싶은 건 없냐?
승재: 없는데요.
승재부: 천천히 해라. 무리하면 코피난다.
승재부, 흐뭇해서 나가는.
승재, 몸을 들면 소희가 쓴 편지를 펼쳐놓고 답장 쓰고 있다.
또박또박 옥편에서 찾은 한자를 옮겨 적는 승재.
책상 앞에 놓인 워터볼에 승재의 진지한 얼굴이 비친다.
씬 14. 우체국, 낮.
우체국의 받침대에 가만히 올려지는 편지 하나.
쑥 내밀어진다.
우체부: 이거냐?
승재: 네.
우체부: 나더러 여기 직접 갖다 달라구?
승재: (겸연쩍은 듯 머리만 긁적이는)
우체부: (겉봉에 쓰인 이름을 보며) 윤소희?
승재: (바짝 긴장해서) 저 걔 안 좋아해요.
아저씨, 빙긋이 웃는다.
우체부: 안되겠다.
승재: (울상이 되서) 아저씨이 아저씨이.
우체부: 이놈아, 우표는 붙여서 와야지.
승재: (환하게 웃는다.)
씬 15. 인서트.
우표와 소인이 찍힌 편지를 소희에게 건네는 우체부.
소희,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연필에 침을 묻혀서 한자를 옮겨 적는 승재.
승재에게 고구마와 밤을 한 가득 가다 주는 승재모.
승재, 우체부에게 편지 건네면 우체부, 소희에게 편지 전하고.
소희, 편지를 우체부에게 건네면 우체부, 승재에게 편지 건네고, 고구마와 밤을 우체부에게 건네는 승재, 그런 몽타주가 보여지면서 편지의 구절이 소희 아버지의 소리와 승재의 소리로 번갈아 가며 읽혀지고 있다.
화성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외롭거나 쓸쓸한 곳은 아니란다. 이곳엔 엄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또 유관순 누나도 있지.
거기서는 화성을 볼 수 없지만 화성에선 소희가 사는 곳을 훤히 볼 수 있단다.
화면은 천천히 둘이 누워 있는 산구릉 언덕으로 돌아온다.
씬 16. 언덕.
승재와 소희가 엎드려 편지를 읽고 있다.
그리고 소희가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 맘은 알겠지만 아직은 안 된단다.
이곳에 오려면 읍내에 가서 서류도 띠어야 되고 선생님 추천서도 필요하지…….
또 이곳 대통령 허락도 받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소희가 어른이 되서 시집까지 다 가야 허락해 주신단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오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끝으로 승재 오빠는 착하고 좋은 오빠야.
그리고 널 무척 사랑하는 오빠니까…….
승재 오빠 말 잘 듣고…….
사이좋게 천생연분 해라.
소희(소리): 천생연분은?
승재(소리): 어? 어, 하늘이 시킨 대로 사이좋게 지내란 뜻이지…….
씬 17. 비닐하우스.
흐린 하늘…….
비가 억수로 내린다.
비닐하우스를 정비하는 승재부, 승재모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있지만 내리는 폭우에는 속수무책이다.
승재모: (하늘을 보며) 갑자기 웬 비래…….
승재부: 우산 절루 치우고 여기나 좀 잡아봐.
바람이 너무 거세어 말뚝을 지탱하기가 힘들다.
끙끙거리는 두 부부…….
우비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김씨…….
자전거를 제쳐두고 달려와서 승재부를 돕는다.
씬 18. 언덕.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승재와 소희.
소희, 훌쩍훌쩍 거리더니 앙하고 울기 시작한다.
승재, 옷을 벗어 소희의 머리 위로 덮어준다.
쾅.
하고 번개가 내리치자, 승재의 품에 파고드는 소희…….
승재, 자기도 무섭지만 애써 의연한 척 소희를 토닥인다.
꼭 붙어있는 두 아이…….
씬 19. 비닐하우스.
대충 상황을 정리한 승재부, 김 씨에게 연거푸 고맙다고 절을 한다.
멀리 달려오는 소희 할머니와 호걸의 모습…….
그 모습을 보는 승재부와 김씨, 승재모…….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씬 20. 언덕/밤.
작은 구덩이 안에 들어가 비를 피하는 승재와 소희.
소희: (울면서) 무서워…….
승재: (소희의 손을 꼭 잡는다.) 소희야……. 너 구구단 알아?
소희: (절레절레)
승재: 큰 소리로 따라 해. 그럼 안 무서울 거야. (큰 소리로 외치는) 이이는 사…….
소희: 이이는 사.
승재: 이사 팔.
소희: 이사 팔.
큰 소리로 구구단을 외는 승재.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열심히 따라 외치는 소희.
승재, 소희의 손을 더욱 꼭 잡는다.
씬 21. 밤, 산 어귀.
후레쉬를 들고 승재와 소희를 찾는 동네 사람들.
승재부: 승재야!
승재모: 승재야!
개울물이 불어나 급류가 되었다.
승재부: 득삼아, 할매 뫼시고 내려가라. 어서.
득삼: 예.
큰 덩치의 득삼, 할머니를 번쩍 업고 돌아간다.
나머지 어른들, 조심스럽게 급류를 건넌다.
승재모, 거의 울 지경이다.
승재모: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아이구, 어떡해…….
승재부: (버럭) 못 그쳐? 재수 없게…….
김씨: 자자, 몇몇은 저쪽 위로 올라가 봅시다.
김씨, 사람들을 데리고 반대쪽으로 간다.
승재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씬 22. 언덕.
승재: 사팔에 삼십이!
소희: 사팔에 삼십이!
승재: 사구 삼십육!
소희: 사구 삼십육!
승재: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이이는 사.
소희: (승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승재: (더욱 강하게) 이이는 사!
소희: 이이는 사…….
승재: 이사 팔…….
하는데, 멀리서 '승재야'하는 소리가 들린다.
승재, 뛰어나가 소리 지른다.
승재: 아빠.
승재, 소희를 보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저쪽에서 달려오는 아버지와 사람들.
주민1: 여기요, 찾았어요.
김 씨와 다른 일행들도 소리를 듣고 달려온다.
승재, 갑자기 엄마 아빠를 보니 설움이 북받친다.
울먹울먹하면서 안기려는데…….
다짜고짜 승재의 따귀를 때리는 승재부.
승재, 놀란 눈을 꿈뻑한다.
뒤늦게 달려온 김씨…….
승재와 소희를 보고 '저 아이들이었구나'하는.
승재부, 연거푸 승재를 패기 시작한다.
동네사람들, 한 팔씩 매달려서 승재부를 말린다.
승재모 뒤에 숨는 승재…….
시간경과.
얼추 비가 그쳤다…….
소희는 어른 등에 업혀 있고, 승재는 승재모의 손을 붙잡고 가고 있다.
승재부, 착잡한 지 담배를 꺼내 문다.
어느 틈에 승재부 옆에 와 서는 김씨.
김씨: 나도 한 대만 얻읍시다.
승재부: (담배에 불까지 붙여서 김 씨에게 준다.)
김씨: 녀석이……. 꽤 의젓합디다.
승재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
김씨: 나랑 안면이 좀 있소.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는 승재부와 김씨…….
칠흑 같은 밤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별이 총총하다.
씬 23. 소희 집 앞.
승재가 소희의 집 앞에 나타난다.
소희 집 앞에 웬 승용차가 서있다.
승재 고개만 갸우뚱.
방안 씬.
고모: 오빠 있을 때야……. 별걱정 안했지만……. 지금은 달라 엄마……. 우리애도 말동무 하고 좋잖수. 그러니 걱정 말아요.
고모부: 장모님……. 사실 서울에서 애하나 가르치려면 뭐 만만찮은 건 맞아요. 그래도 우리가 남이 아니잖아요. 소희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장모님 건강이나 신경 쓰시면서 연락 자주 주세요.
고모: 그리고 엄마가 무슨 오해 할까봐 얘기 하는데……. 오빠 명의로 된 과수원 뒷산이랑 염천교 양쪽 밭들은……. 그냥 둘 거야. 그냥 오빠 적금 부은 거랑……. 보험금만……. 우리가 재택 하는 거지. 돈이란 게 두면 썩히는 거유.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다 알아서 불려 놓을 테니까……. 꼬박꼬박 보내드리는 생활비 가지고 맛난 거 좋은 거나 먹고 입어요.
할머니는 그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소희 머리만…….
매만져 주고 있다.
그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
승재(소리만): 소희야……. 학교가자.
집 앞 씬.
문이 빠끔히 열리면서 소희가 나온다.
문틈 사이로 보여지는 소희의 할머니와 소희 고모로 보이는 여자와 고모부……. 할머니와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
소희: 오빠 오늘……. 먼저가. 우리 고모 와서 난 이따가 고모가 나랑 학교 가야한데.
승재: …….
씬 24. 학교 승재의 교실.
수업 중.
승재, 수업에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따르릉 쉬는 시간 벨소리.
씬 25. 소희네 교실 앞.
승재 슬쩍 유리창으로 소희의 교실을 보고 있다.
아이들 몇 명의 교실…….
소희의 자리에 누군가 온 흔적이 없다.
승재, 뭔일이지.
씬 26. 우체국.
예쁜 원피스 차림의 소희.
빠끔히 우체국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우체부1: (예뻐 죽겠다는 듯) 아가, 이리 온.
소희: (경계하는 듯 하다가 조심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체부1: 아가, 무슨 일로 왔니?
소희: 화성 아저씨 계세요?
우체부1: 누구?
소희: 화성 가는 우체부 아저씨요.
우체부1: 누구 화성 쪽에서 일하던 사람 있어?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씨.
소희를 보고 깜짝 놀라는.
소희: (반갑게) 아저씨.
김씨: (소희를 급하게 데리고 나가며)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우체부1: (off) 어이, 마누라 몰래 화성군에다 딴 살림 차렸나?
우체부들 껄껄거리며 웃는.
씬 27. 우체국 앞 빵집.
우유와 빵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김 씨와 소희.
소희, 편지를 내민다.
소희: 저, 서울 고모 댁에 가거든요. 이거 아빠한테 전해주시구요. 앞으로 아빠 편지는 고모 집으로 갖다 주세요. 거기 주소도 썼어요.
김씨: (얼떨떨하게 편지를 받으며) 그래. 걔도 아니?
소희: 네?
김씨: 아니다. 그런데, 아가, 아저씨가 말이야. 일이 많아서 서울까지는 못 갈 거 같은데.
소희: (실망하는 눈초리)
김씨: 자, 그러면 여기 우체국으로 편지를 보내라. 그러면, 아저씨가 아빠한테 전해 줄게.
소희: (다시 화색이 돋는) 그러면 되겠구나.
김씨: (빵을 뜯어 먹여주며) 그러면 되지……. 서울엔 언제 가니?
소희: (웃으며) 내일요.
씬 28. 승재네 집 저녁시간.
저녁을 먹고 있는 네 식구.
반찬을 올려놓자마자 호걸 날름 먹어댄다.
엄마: 아빠 숟가락 안 드셨는데……. 또 먼저 오지?
호걸: (눈치 보다간) 아빤 튀김 잘 안 먹잖아.
승재, 호걸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호걸: 아……. 이 씨 정말…….
승재부: 조용히 해라. 밥상머리 앞에 두고 얘들이……. 승재 넌 동생 머리통을 왜 그리 때리니? 가뜩이나 머리 나쁜 애를…….
호걸: 내가 머리가 왜 나빠?
승재부: 인마……. 좋은 머리통에서 그런 수박 때리는 소리가 나냐?
호걸: 형이 세게 때린 거라니까…….
엄마: 조용히들 하고 어서 밥 먹어.
밥 먹는 사이…….
승재부: 낼부터는 소희 할머니 끼니때도 들러봐. 혼자 거르는 참이 더 많을 테니……. 뭐라도 하면 불러 같이 자시자고 하고…….
엄마: 알았어요. 안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내 들를라고 해요. 경수 엄마랑 순녀네 랑도 얘기했구요……. 돌아가며 한 번씩 얼굴 소리 비추자고……. 근데……. 소희는 낼 당장에 간대요?
승재부: 응…….
그러다간…….
승재부, 아차 싶은지 승재의 얼굴을 본다.
아니나 다를까, 승재의 얼굴…….
뭔가 얻어맞은 듯 상기되어져 간다.
승재: 소희 어디 가요?
엄마: 서울 간단다. 고모네…….
승재: 완전히요?
엄마: 전학 간다니까……. 며칠 잠깐 갔다 오는 건 아니겠지……. 가만, 승재 몰랐나?
호걸: 소희는 좋겠다……. 서울은 학교에 학생이 천명에 선생님이 백명이래……. 우리도 서울 가지…….
승재 얼굴이 굳어 가고 밥상 앞에서 다른 식구들의 소리는 점점 작게만 들어온다.
씬 29. 소희네로 가는 길.
뛰어간다.
승재…….
손엔 워터볼을 쥐고…….
워터볼 속의 마을 물과 함께 출렁인다.
숨이 차오르고…….
승재 옆으로는 큰 달이 그를 따라온다.
당도한 소희네 집…….
소희 방…….
불이 꺼진다.
소희 자나보다.
소희네 집 마당의 승용차…….
그 차를 노려보는 승재.
씬 30. 동네 전경이 바라보이는 언덕.
해가 떠오르는 인서트…….
씬 31. 소희네 집 앞 길.
할머니와 승재 그리고 승재부가 소희를 마중 한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고 …….
소희 승재에게 다가간다.
소희: 오빠 잘 있어. 그리고 아빠 편지 오면 나한테 보내줘…….
승재: (고개만 끄덕)
소희 차에 오른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보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곤…….
입술을 깨물고 차에 오른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무릎을 세워 뒷 유리창으로 승재와 승재부, 할머니를 보는 소희…….
승재, 어깨가 살짝 떨려온다.
승재부, 그런 승재의 어깨를 꾹 누른다.
소희, 다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희: (눈물을 흘리며) 오빠!!
승재, 손을 흔든다. 웃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입술이 파르르 떨려온다.
승재부: (나직하게) 그래……. 잘 하고 있다.
승재, 세차게 손을 흔든다.
소희를 태운 차 점점 멀어짐에 따라, 소희의 모습도 점점 작아진다.
승재부: 조금만 참아. 거진 다 갔다…….
차도 소희의 모습도 먼지와 함께 뿌옇게 멀어지고 이젠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고 없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승재 어깨를 잡고 있던 승재부도 손을 내린다.
그제서야……. 승재,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승재부, 승재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꼭 파묻는다.
씬 32. 저녁, 언덕.
소희의 편지 꾸러미를 땅 속에 파묻는 승재……. 흙을 꾹꾹 누른다.
손을 탁탁 터는.
붉게 물들어 가는 시골의 저녁 하늘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하늘 아래, 작은 점처럼 무릎을 옹송그리고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은 약간……. 쓸쓸해 보인다.
휘-휘 바람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승재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가만히 눈을 감는다.
15년 후
씬 33. 낮, 언덕.
파란 여름하늘……. 하늘에서 본 언덕의 전경.
혼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카메라, 그 사람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우체국 제복, 검게 그을린 팔뚝……. 짧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번쩍 눈을 뜨는 스물넷의 승재.
승재, 시계를 보고 아차 싶다.
얼른 편지를 땅 속에 도로 넣는다. 이미 빛이 바랜 소희의 편지…….
흙으로 덮고 손으로 꾹꾹 누르는 승재…….
우체가방을 어깨에 메고, 언덕을 뛰어 내려온다.
씬 34. 동네
15년이 지난 동네 길을 승재의 자전거가 달리고 있다.
카메라는 승재의 자전거와 승재의 모습을 담아낸다.
승재……. 오가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 모습이 동네의 포근함과 친근함을 보여준다.
씬 35. 약국 앞.
승재가 자전거에서 내린다.
약국 안에서 선미가 반갑게 뛰어 나온다.
선미: 오셨어요?
승재: 네……. (우편물을 준다) 잡지 하고요……. 어디보자……. 은행 용지……. 후, 선미씨도 월말이라 세금 용지가 많네요…….
선미: 저기 이거……. (강장 음료를 내민다) 시원해요. 괜히 탄산음료 드시지 말고……. 이 약이랑 같이 드세요.
승재: 저 튼튼해요. 이런 거 안 먹어도 쌩쌩한데…….
선미: 오르막 오를 때 보니까……. 바퀴가 잘 안 구르던데요…….
승재: 후후……. 그래요? (약을 받아먹는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매일 이렇게…….
승재, 자전거에 다시 올라 가려한다.
선미: 근데……. 때르릉은 안 달아요?
승재: 때르릉이요?
선미, 손으로 자전거 벨소리를 흉내 낸다.
승재: 아하……. 하하……. 제가 뭐 그런 게 필요한가요?
선미: 하나 달으세요. 그래서 다니실 때 때르릉 때르릉 소리 내며 다녀요. 그럼 다 알잖아요. 승재 씨가 지나가고 있구나……. 승재씨가 저기서부터 오는구나…….
선미가 승재를 좋아하는 느낌을 받는다.
승재, 어색한 미소를 잠깐 지으며 출발한다.
선미 쑥스러운 시선으로 가는 승재를 바라본다.
그리곤 애정스런 미소…….
씬 36. 우체국 안.
짐을 풀어 놓고 퇴근 정리를 하고 있는 승재.
이윽고 우체부 제복을 입고 들어오는 나이 든 김씨. 커다란 우편 가방을 내려놓는다.
직원들 일어나 인사하는.
인사를 받는 김씨, 한쪽 어깨를 주물럭거리고 있다.
직원1: 또 결리세요? 그러게 몸 생각하셔서라도, 세대교체 좀 하세요.
김씨: (땀을 닦으며) 저 놈의 자전거가 말썽이야. 핸들이 자꾸 지맘대로 꺾여서 말야. 가서 손 좀 봐봐.
직원1: 멀쩡한 자전거가 무슨.
김씨: (눈치를 주면)
직원1: 네 네. (공구 상자를 들고 나가는)
김씨: (승재를 향해) 어이.
승재: 네, 국장님.
김씨, 턱짓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씬 37. 국장실.
작고 아담한 국장실 오래된 선풍기가 팽팽 돌아간다.
웃통을 벗은 김 씨 구부정한 김 씨의 어깨 위로 파스를 붙이는 승재.
김씨: 어이구, 시원하다.
승재: (파스 붙인 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아저씨 수거 나가지 마세요. 국장님 가우가 있지.
김씨: 너까지 그러기냐? 폼 잡고 가만- 앉아 있으면, 없는 가우가 생긴다던? 자전거고 몸뚱이고 간에, 자꾸 굴려야 잔고장이 없는 법이야. 지금도 나가면, 너보다 열 군데는 더 뛴다, 그나저나……. 저 놈의 댐공사 발표난 다음엔 뭔놈의 우편물이 곱절로 느나 모르겠네……. 물에 잠길 마을에 무슨 답장을 바란다고……. 후후……. 집은 슬 정리 들어가나?
승재: 아직 멀었는데요……. 뭘? 그리고 아직 확실히 결정 난 것도 아닌데요……. 뭐…….
사이
김씨: 아버진 좀 어떠셔?
승재, 그냥 웃는다.
김씨: 뭘 그렇게 웃냐?
승재: 좋으세요……. 고집도 여전 하시고 성질도 그대로시구…….
김씨: 후후……. 좋으시구나. 언제 한번 들르마. (파스를 또 붙이려 하자) 됐다. 이제……. 퇴근해.
승재: 네…….
김씨: 집으로 곧장 안 갈 꺼지?
승재: 네?
김씨: 자식이……. 뭘 그리 놀래? ……. 소희 할머니한테 들를 꺼잖아. 이상한 편지 갖다주러……. 너 그러다가 소설가 된다고 그러겠다. 후후후……. 저기 양갱 몇 개랑 알사탕 몇 봉 사뒀다. 갖다 드려라.
승재 웃는다.
씬 38. 소희네 집.
마당에 채 썬 무를 말리고 있는 소희 할머니.
멀리서부터 때릉 때릉 하는 승재 자전거 소리가 들린다.
힘들게 몸을 일으키는 할머니. 거동이 불편하다.
승재,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놓고 달려 들어오는.
승재: (할머니를 부축하며) 할머니! 더운데 방에 들어가 계시지.
할머니: (겨우 내뱉는 말) 방도 더워.
승재: (할머니를 마루로 앉힌다.) 이리 와봐요. 할머니……. 짠! 소희 편지 왔어요.
할머니: (소리 없이 웃는다.)
승재: (편지를 뜯으며) 읽어 드릴게요.
편지를 펴면, 승재의 글씨…….
승재: 와……. 얘는 어릴 때부터 어쩜 이렇게 글씨도 예쁜지 몰라…….
승재,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로 편지를 읽어댄다.
승재: 할머니, 지난 일주일 동안 잘 계셨어요? 소희도 건강히 잘 있습니다. 서울은 여름이 되어도 시원해서 견딜 만 합니다. 할머니……. 저는 이번에 서울, 신사동에 있는 젤 큰 기업……. 거기서 치르는 시험에서 당당히 1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모두 할머니가 걱정해주시는 덕분입니다. 지금은 일이 바빠서 못 가지만, 조만간 할머니 뵈러 내려 갈 테니, 그때까지 건강하시고요. 절대로 힘든 일 하지 마세요. 시키실 일 있으면 뭐든, 승재 오빠 시키세요. 만약에 승재 오빠가 말 안 들으면요, 되-게 때려 주세요.
할머니: (소리 없이 웃는)
승재: 전 여기서 직장 생활 열심히 하고 공부도 틈틈이 계속 할 꺼에요. 물론 남자 친구 같은 건 사귈 생각도 안하고 있으니 맘 놓으세요. 다른 건 몰라도……. 남자 친구는 할머니가 골라 주는 남자를 만나야죠. 그럼, 할머니 다음 주에 또 편지 보낼게요.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손녀 소희 올림.
할머니: 후후후…….
승재: 할머니? 소희, 장하죠?
할머니: 그러게……. 우리 강아지…….
할머니, 승재에게서 편지를 받아서 곱게 접어 대바구니 안에 넣는다.
바구니 안에 그득한 가짜 편지들.
승재: 와, 많이 모였네. 소희가 효녀다. 그죠?
할머니: (고개를 끄덕끄덕)
승재: 할머니, 진짜 말 안 들으면 나 때릴 거예요?
할머니: (마당에 널린 무채를 가리키며) 저거나 널고 가.
승재: 와. 할머니 막 부리네……. 이제 소희 편지 전해주지 말까부다.
하면서 벌써 팔을 걷어 부치는 승재.
채 썬 무를 정성스럽게 펴서 말린다.
승재: (무를 말리며) 할머니 있잖아요……. 소희 신랑감을……. 할머니가 골라 달라는데……. 어떤 남자가 좋아요?
할머니: 없어.
승재: 에이,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도 소희가 이런 신랑 만나면 좋겠다하는 사람 있잖아요.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할머니: 지 좋으면 되지, 뭐…….
승재: 에이, 말 해 봐요.
할머니: 몰라…….
승재: 전엔 누구누구! 라고 말씀하셔놓군…….
할머니: (껄껄 웃는다.)
승재: 그러지 말고, 할머니……. 솔직하게 말해 봐요.
할머니: 허허……. 이놈의 자식이……. 네 놈 오래 살 수 있으면 해라 네가. 소희 보다 오래 살아 옆에서 오순도순 놀아 줄양 이면 니놈이 데리고 가.
승재: 에이……. 내가 뭐……. 장난감인가…….
할머니, 껄껄대며 됐다고 손사레 치는.
승재,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 낸다.
씬 39. 인서트.
집으로 가는 길…….
승재의 자전거.
승재의 표정……. 밝고 신난다.
그런 승재의 모습이 보여 지면서 화면은 자연스럽게 서울의 소희에게로 옮겨져 간다.
씬 40. 서울 영어 학원.
복도 씬
수강생들의 움직임…….
그 속에 소희……. 눈빛이 빛나는 것이 당차 보이는 아가씨로 변해 있다.
강의실 씬
능숙하게……. 회화를 따라하면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씬 42. 학원 앞.
수업이 끝났는지 학생들 우르르 나온다.
그 속에 소희도 있다.
소희 이어폰을 귀에 꼽고 뭔가 들으며 나오는데…….
어떤 학원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희를 훔쳐보며 따라온다.
씬 43. 버스 정류장.
소희가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 소희 옆으로 다가와선 그녀의 어깨를 톡톡 친다.
소희는 이어폰을 귀에서 뽑는다.
소희: 뭐죠?
남자: (더듬거리는 말투로) 저……. 고급반이시죠?
소희: ?
남자: 저 학원……. 저도……. 고급반……. 같은 클라스에 있는데…….
소희: 아……. 그런데요?
남자: 오랫동안 봤었어요.
소희: 저를요? 왜요?
남자: 어 같은 반이니까…….
소희: 아.
남자: 근데……. 어…….
소희: 어제도 절 봤구요?
남자: 어……. 그렇죠.
소희: 오늘도 봤었겠네요?
남자: 그게……. 그쵸.
소희: 음…….
남자: 그래서……. 쭉 뵜었는데요…….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소희: 고급반에서요?
남자: 네……. 고급반이……. 아뇨……. 그게 아니고……. 어……. 밖에서 따로…….
소희: 강의실 밖에서요?
남자: 네……. 강의실 밖……. 또……. 건물 밖인데요…….
소희: 아…….
남자: 그래서 괜찮으시면…….
소희: 뭐가요?
남자: 네?……. 아 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소희: 제 시간이요?
남자: (생각한다)……. 어……. 아마……. 둘……. 다겠죠. 그쪽하고 저하고……. 우리 모두가 괜찮다면……. 어……. (할 말이 들어가진다) ……. 안 괜찮으신가요?
소희: ……. (멀뚱히 남자만 본다)
남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남자……. 그냥 뒤를 돌아간다.
소희 한번 흥……. 웃고는 갈 길을 간다.
씬 43. 서울 고모네 집.
저녁……. 식사…….
고모랑, 조카……. 소희가 식사를 하고 있다.
소희: 고모부는?
고모: 늦는데…….
소희, 고모의 눈치를 살핀다.
소희: 고모부……. 그거 아직 안 풀렸데?
고모: 후…….
소희: 저번에 말한 거 어학연수……. 이번 주까지……. 등록해야 되는데…….
고모: (답답한 듯) 야……. 나도 답답하니까……. 제발……. 돈 얘기 좀 꺼내지 마라.
소희: …….
고모: 그리고……. 대학까지 나왔으면……. 이제 어떻게 해서든 니 힘으로 살아 갈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손 벌리고 밥숟가락 떠달라고……. 입 벌리고 있을래?
소희: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고모……. 내가 지금 손 벌리는 거야? 말해주지. 몰랐잖아.
소희, 휙 하고 일어서서 나간다.
씬 44. 소희 방.
방으로 들어온 소희……. 심기가 안 좋다.
담배를 꺼내 문다.
창문을 조금 열어 공기를 마신다.
씬 45. 밤, 승재네 집, 방.
tv 드라마에 넋을 빼고 있는 승재모. 세월이 지나도 기계적으로 감자를 깎고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아랫목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승재부.
승재,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들어온다.
승재: 호걸인?
승재모: (말하기도 싫다는 듯) 몰라.
승재: 아버지는 왜 저러셔?
승재모: 술병 뺏었다고 삐졌지, 뭐…….
승재: (승재모 옆에 바짝 붙어서 tv를 보며) 재밌어? 무슨 내용이야?
승재모: ……. 쟤가 여주인공이고, 저기 쟤는 남자 주인공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둘이 이복 남매야.
승재: 치, 맨날 똑같애.
승재모: 난 그래도, 저거 보는 맛에 살어.
승재부, 우우 거리며 몸을 돌리면 왼쪽으로 돌아간 입에서 침이 줄줄 센다.
우우우 거리며 소리를 내는 승재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왼쪽이 완전히 마비 된 상태다.
승재, 벌떡 일어나 수건을 가지고 온다.
승재모, 수건으로 승재부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낸다.
승재모: (애정 가득한 핀잔) 밑 빠진 뭣 마냥 줄줄 세고 그래요. 세수한 지 얼마나 됐다구 ……. 아예 턱받이 할까부다.
승재부: (신경질 내는) 요요요……. 우우…….
승재모: 농담이우…….
승재부: (승재에게 뭐라 뭐라 하는) 김가……. 하……. 부.
승재: 뭐요……. 아부지?
승재부: 김……. 저……. 하부……. 노러…….
승재모: (태연히) 국장님 한 번 놀러 안 오시냐잖어.
승재부: (고개를 끄덕끄덕)
승재: 와. 엄만 어떻게 다 알아들어?
그때, 때르릉 전화벨 울리자 덜컥 놀라는 승재모.
승재모: (잔뜩 긴장해서) 받아 봐.
전화를 받는 승재.
승재: 여보세요. 어, 경수야……. 그래. 내일. 그러자.
승재모,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승재,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는다.
승재모: 호걸이 자식 때문에, 그냥,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 한다 야.
승재: 지도 그만하면 정신 차렸겠지.
승재모: (시계를 보며) 촌구석에서 이 시간까지 뭘 할 게 있다고. 으휴.
다시 때르르릉 전화벨 울리는.
승재모와 승재부, 동시에 승재를 본다.
승재, 설마 하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드는.
씬 47. 파출소.
시끄러운 파출소 내부.
만신창이가 된 남자와 눈두덩 이에 멍이 든 채 씩씩거리고 있는 호걸.
순경, 승재 네에 전화를 걸고 있다.
순경: 여보세요. 이호걸씨 댁이죠?
씬 48. 승재네, 방.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승재를 바라보는 승재모.
승재,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승재모,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승재부의 얼굴을 닦아주는.
승재,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속삭인다.
승재: 네……. 맞는데요.
씬 49. 파출소 앞.
파출소에서 호걸을 데리고 나오는 승재.
승재, 나오면서 순경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한다.
못마땅한 호걸, 캭-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는다.
승재, 호걸의 뒤통수를 툭 치더니, 다시 순경을 향해 '죄송합니다.'하며 읍소한다.
씬 50. 약국.
우체국 옆의 작은 약국.
차분한 외모의 약국집 딸 선미가 호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다.
승재: (걱정스럽게 보며) 엄마한텐 뭐랄 할래?
호걸: 넘어졌다고 하지, 뭐.
승재: (한심한 듯 바라보는) 그냥, 어디서 까불다가 몇 대 맞았다고 해라.
호걸: 쪽팔리게 씨.
선미, 피식 웃는.
선미: (무척 다정하게) 세수할 때 조심하구, (소독약을 주며) 이거 탈지면에 묻혀서 탁탁 찍어내.
호걸: 누님, 약사 다됐는데…….
선미: 내가 서당 개였음, 책방을 차려도 열 개는 차렸겠다.
선미, 승재를 의식하고, 더욱 정성스럽게 호걸을 간호한다.
치료를 다 마친 선미.
승재: 고마워요. 얼마를…….
선미: 됐어요.
승재: (지갑을 꺼내며) 아녜요, 그래두…….
선미: 어머, 넣어 둬요.
선미, 호들갑을 떨며 사양하는.
그 바람에 소독약이 쏟아지고 만다.
얼른, 걸레로 닦는 선미. 승재, 어쩔 줄 몰라 한다.
선미: 널린 게 약인데요…….
승재, 호걸을 데리고 나가려는데.
선미: 저기! 정 그럼……. 나중에 저녁이나 사……. 세요.
승재: 예, 그럴게요. 맛있는 거 살게요.
호걸: 이야, 누님 내 덕에 땡잡네.
승재: (호걸의 머리를 탁 친다.)
호걸: 아……. 정말……. 몇 년 째 이 머리만…….
선미, 얼굴이 빨개진다.
씬 51. 약국 앞, 거리.
밖에까지 나와서 호걸과 승재를 배웅하는 선미.
호걸: 엄마가 싫어할 걸?
승재: 뭐?
호걸: 삭았잖아.
승재: 헛물켜지 마라……. 그나저나. 너, 어쩔래?
호걸: (머리를 마구 털며)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쇼.
승재: (한숨을 푹- 쉬며) 내 적금 깨면 한 삼백……. 그 정도 나올 거야. 그걸로 우선 합의 봐.
호걸: (한숨을 푹 쉰다.)……. 저기 미안해……. 사실…….
승재: 미안한 줄 알면 조신이 좀 있어. 이리저리 튕겨 다니지 말구.
호걸: 그게 아니라 (한숨을 푹 쉰다.)
승재: ?
호걸: 형 적금……. 내가 좀 썼어.
승재, 발걸음 멈춘다.
다짜고짜 호걸을 패는.
호걸: (승재를 막으며) 아야……. 두 배로 갚으면 되잖아. 아……. 더 때리면 고소 할 거야.
둘의 그런 모습이 둑방길에 펼쳐지면서 그 위로 떠 있는 초승달이 보인다.
그 초승달이 자연스레 서울의 어느 곳으로 간다.
씬 52. 소희네 집 밤.
전경……. 그 위로 초승달.
고모네, 거실 씬
불 꺼진 거실.
어둠 속에서 살금살금 걸어가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후레쉬를 들고 조심조심…….
거실 찬장에 후레쉬를 비치는. 마리아상……. 가지런히 꽂힌 성경책.
조심스럽게 찬장 문을 여는 손…….
성경책 옆에 꽂힌 가계부를 뽑는다.
가계부를 빼다가 마리아 상을 살짝 건드는. 툭 떨어지는 마리아 상.
아슬아슬하게 탁 잡는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는.
씬 53. 고속버스 터미널.
소희가 주위를 살피는 느낌으로 심야 티켓 창구에서 버스.
씬 54. 고속도로 휴게소.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는 소희.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통장……. 소희, 통장을 가방 깊숙이 밀어 넣는다.
공중전화 부스 씬
소희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씬 55. 소희네 집.
벨소리와 함께 할머니 방의 불이 켜진다.
씬 56. 승재네 집.
마당에서 늦은 시간의 운동을 하고 있는 호걸.
그때……. 문으로 나타나는 할머니.
호걸……. 깜짝 놀란다.
호걸: 엄마야……. 어……. 할머니……. 에이 놀랐잖아요.
할머니: 승재 자냐?
호걸: ‘뭔 일이지
씬 57. 시외버스 터미널.
새벽, 승재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의 얼굴에는 흥분기가 서려있다.
시계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유리창에 비춰 보기도 한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첫차의 도착…….
사람들 몇몇이 내린다.
그리고……. 그녀가 내린다.
소희다.
승재 숨이 멎을 것 같다.
소희의 모습……. 언제나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소희, 차에서 내려 두리번대더니 승재 쪽으로 걸어온다.
승재……. 점점 긴장된다.
소희 승재를 몰라보곤……. 그냥 스쳐 지나간다.
승재 계속 아무 말도 못하고 소희를 바라본다.
지나간 소희 이상한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돈다.
그리고 승재를 발견한다.
한참 둘이는 서로를 본다.
소희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다간……. 작은 읊조림으로…….
소희: 승……. 재 오빠?
승재……. 씨익 웃는다. 기쁘다.
씬 58. 집으로 가는 길.
승재가 자전거를 끌고 소희와 걸어간다.
소희의 짐을 자전거 뒤에 싣고 간다.
소희, 고개를 돌려 승재를 몇 번 본다.
승재 그런 시선이 어색하기만 하다.
소희: 결혼 안했나봐?
승재: 결혼은 무슨……. 후후……. 참…….
소희: 계속 이 동네에서만 있었어?
승재: 군대 제대하고……. 서울에 잠깐 있었어. 작은 아버지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일했는데……. 후후……. 잘 안 맞더라구…….
소희: 그래?
승재: 응……. 그때쯤 아버지가 아프셔가지고 겸사겸사 집으로 내려왔지.
소희: 여긴 그대로 같아. 그다지 달라진 것도 없이……. 답답하지 않아? 여기에 있는 거?
승재, 그냥 웃고 만다.
소희: (자기의 집을 보고) 저기다.
승재, 멈춰 서서 짐을 내려 준다.
승재: 이따가……. 득삼 아저씨 결혼식이 있어? 생각나니? 양천 참외밭 곰보……. 그 집 원두막 놀러 가면 우리한테 참외랑 수박이랑 죄다 따주고 그랬는데…….
소희: 아……. 알아. 내가 그 아저씨 보면 얼굴 무섭다고 울고 그랬지?
승재: 응……. 후후후…….
소희: 이제 결혼 한다고?
승재: 후후……. 할머니도 오실 거야. 모시고 같이 와. 거기 애들 다 올 꺼거든…….
승재 소희와 눈인사를 주고받고 돌아서 간다.
얼굴 가득 미소다.
소희 가는 승재를 보다간 집으로 길을 돌린다.
씬 59. 소희 집 앞.
소희 짐을 들고 문 앞에 선다.
집을 둘러보고 숨을 고른다.
방문 앞에 할머니의 신발…….
소희……. 가슴이 살짝 떨려온다.
씬 60. 동네 어귀.
가마를 든 사람들과 동네 아낙들이 왁자지껄 지나간다.
가마 안으로 보이는 신부 얼굴……. 연지 곤지를 찍은 우미 네다.
아이들, 재밌다고 가마를 따라가는.
아낙1: 새색시 나간다. 훠이.
아낙2: 새색시는 무슨 새색시야, 헌 색시지……. 호호호호…….
아낙1: 새신랑한테 가니까 새색시지, 호호호호…….
승재모: 빨리……. 아, 신랑 애 닳것네.
가마꾼들, 걸음이 빨라진다.
우미네, 덜컹거리는 가마를 꼭 잡는.
씬 61. 이발소.
긴장된 얼굴의 득삼.
정갈한 2:8 가르마 위로 포마드 기름을 바르는 이발소 박씨.
따발따발 입을 한시도 쉬지 않는데…….
박씨: (따발따발) 내 말대로만 하믄 30년이고 40년이고, 부부사이에 싸울 일이 없당께, 성님, 알겠서라?
득삼: (손이 바들바들, 입이 바짝바짝)
박씨: 어메, 시방 떨고 계수?
득삼: 나……. 첨이잖어…….
승재: (사모관대를 들고 서 있다.) 아저씨, 서둘러요. 신부 도착하겠어요.
박씨: 등치 안 맞게 사삭떨기는……. (득삼의 얼굴에 파우다 가루를 발라준다.)
득삼: (재채기를 하며) 이이구, 뭐여.
박씨: 가만있어 봐. 원래 다 하는 거랑께…….
승재: (밖을 내다보며) 온다……. 아저씨, 어서요…….
박씨: (대충 마무리하며) 성님, 잘 살아부쇼잉. 내 꼬락서니 나지 말고.
득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