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Paul Klee, 독일/스위스, 1879~1940
세네치오
Senecio, 바젤, 바젤 미술관
이번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를 만나볼까. 파울 클레는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지. 어릴 때부터 다재다능한 끼를 보이더니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삶을 살았단다. 클레는 원시미술, 초현실주의, 입체주의의 모든 특징들로 가득 찬 우아하고 정교한 작품들을 남겼어. 특히 어린이들의 표현력에서 창작의 신비성을 발견하고 아이들의 독창적인 이 기질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옮기려고 노력했지, 클레의 감수성은 무척 독보적이어서 낡은 전통과 고정된 형식을 거부했단다. 클레는 20세기 최고의 지적인 화가로 평가받으며,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가 되었지. 그는 "화가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해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 과연 마음으로 느끼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할까?
클레의 부모님은 모두 음악가였단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더니 열살무렵에는 이미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정도의 재능을 보였지. 훗날 피아니스트 아내와 결혼한 탓인지 클레의 생활에는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단다. 하지만 클레는 알고 있었지. 자신이 음악보다는 그림에 더욱 이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하여 클레의 삶은 그림을 향해 갔단다.
20세기 추상을 선도했던 클레의 상상력은 과연 어땠을까. 이 그림은 무대예술 공연가였던 세네치오의 초상화란다. 클레는 솟아오른 원으로 사람 얼굴을 보여주고, 그 얼굴을 기하학적인 면으로 분할했단다. 삼각형의 눈썹과 직사각형에 가까운 턱과 뺨, 이마, 얼굴은 크게 여섯조각의 면이 되었구나, 여기에 여러 색채를 이용해 자신이 마음으로 원했던 형태를 찾아내려했지. 이 방식이 바로 클레만의 마술적 기법이란다. 약간 멍해 보이면서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는데, 이 얼굴에서 무대예술공연가의 다채로운 특성들이 느껴지느냐? 노랑과 핑크, 흰색 등으로 분할한 얼굴을 채색했기 때문에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각양각색의 무대의 배우를 보는듯하지 않느냐? 때로는 어릿광대의 모습과 알록달록한 광대의 의상들이 둥그런 가면 속에 모두 들어 있는 것 같구나. 눈은 붉은색의 동그라미로, 코는 가느다란 직선으로 그랬지. 게다가 입은 아주 작은 직사각형 2개를 맞붙었구나 동화의 세계를 그린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면
서 순박해 보이지만 이 초상은 선과 색, 평면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이지적인 세계한다. 화가는 자신의 마음에서 솟아오른 에너지를 이렇게 표현했던 거야. 과연 클레만의 예술적 에너지의 산물이구나
"눈에 보이는 모습을 묘사하려면 사진을 찍으면 된다. 나는 대상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뚫고 들어가 그 뿌리까지 접근하고 싶다". 클레의 이 말은 추상을 향한 대담하고 진지한 선전포고처럼 들리는구나. 그는 "예술가의 역할은 세상과 문화를 신화화하는 데 있다"라고도 했단다. 아프리카의 튜니시아를 여행한 이후에는 그곳의 색감과 빛에 매료되었지. 그의 감
동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나와 색은 동일하다. 나는 화가다" 라고 선언했단다. 클레는 바우하우스에서 10년간 교수생활을 했단다. 바우하우스는 20세기 초 독일에 설립되었던 최고 수준의 미술, 공예, 사진 및 건축 학교였다. 하지만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오해로 파면되고 많은 작품을 몰수당하는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었지. 자신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일생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리드미컬
Rhythmical, 파리 퐁피두센터
이번에는 음악이 흐르는 그림의 화가, 파울 클레의 다른 작품을 만나보자. 클레는 미술뿐만아니라 음악과 문학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에 올라 있던 당대의 최고 예술인이자 지성인이었지, 음악과 미술과의 관계에 매혹되었던 클레는 다음과 같이 확신했단다. “예술의 목적은 감정의 내면세계와 색과 형태의 외면세계를 결합시키는 것인데,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실마리는 음악이다."
클레는 스위스에서 출생했지만 삶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냈지. 뛰어난 화가이자 존경받는 교수였지만 어떤 특정 이념이나 화풍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어. 다만 음악에 관해 공감대를 갖고 있던 칸딘스키와 교우했었지. 19세기말 독일의 음악계는 바그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단다. 하지만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적이고 게르만의 우월성에 열광했던 탓인지, 클레는 모차르트와 바흐 음악을 더 즐겼다는구나. 이 때문에 클레는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격하되었단다. 클레는 섬세한 선과 익살맞은 기하학적 형태를 수채화로 담아냈지. 그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림은 비록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선과 색조로 만들어낸 그 미묘한 느낌은 놀라운 것이었어. 클레의 예술에는 심오한 시적, 신화적인 풍자가 살아 있었단다.
그럼 음악으로 그리는 클레의 캔버스를 살펴보자. “물감이 묻은 피아노 건반을 채색된 캔버스 위에 두드려서 즉흥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과연 클레의 말과 꼭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아니겠느냐? 갈색 바탕 위에 검은색, 회색, 흰색의 건반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오르내리는구나. 클레는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각각 크기가 다른 공간을 칠해나갔지. 음악의 악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듯이 그림을 감상해보자꾸나. 곧
각각 다른 색의 사각형들이 서로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지. 이 격자들은 결국 수평에서 수직으로 다시 대각선으로 연계되어 있구나. 사각형의 형태도 선의 리듬과 박자의 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구나. 각기 다른 면적의 사각형과 그 안에 배열된 색채들, 여기에 두꺼운 물감의 질감까지 함께 어우러져 특이한 리듬감을 보여준단다. 음악적인 회화, 이것이 클레가 생각했던 독자적 예술세계가 분명할 게다. 클레는 바우하우스에서 가장 우수했던 교수로서, 그의 그림은 이후 모든 시각디자인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단다.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