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런 절망의 깊이는 소리가 없다 수직의 모래가 가랑이 사이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소리 없는 공포를 전염시킨다
밤이 오지 않았으나 천지간을 분간할 수 없으니 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다 개는 제 울음의 타이밍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축 늘어진 귀와 치켜뜬 눈동자엔 한 가닥의 전의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검게 타버린 태양의 흔적이 머리 위에 남아 있을 뿐 광기가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기에 천진함이란 폭력보다 역겹다 푹푹 빠져드는 모래 늪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우고 먼지를 뒤집어쓴 하늘이 희번득 돌아눕는다
사방에서 모래바람이 몰려온다 눈을 뜰 수 없는데 소리마저 삼켰다
천천히 묽은 수프를 떠먹으며 그는 치매처럼 바라보았을 것이다 침실과 계단과 거실 벽과 핏물 뚝뚝 흘리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살아남은 자신과 그 후손들을
이성이 잠들고 내 안의 온갖 괴물이 깨어나면** 몽매와 야만과 그 아비규환을 지나 우리는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다 주둥이만 간신히 내민 채 왜 이러고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거짓과 공포의 근원에 대한 의심도 없이 아우성 속에 나를 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