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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삼천포에서 평범하게 자란 4형제 스님들. 왼쪽부터 명본스님, 법성스님, 금강스님, 붓다빠라(본원)스님. 이들 스님은 ‘전문 분야’는 달라도 수행ㆍ포교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
“5형제 중에 4형제가 출가를 했으니…우리 어머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소?” 속가 동생 셋을 출가사문의 길로 이끈 금강스님의 ‘자랑’에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들 넷을 부처님께 보낸 어머니도 대단하지만, 4형제가 스님인데 출가를 하지 않은 나머지 한 분은 어째서…” “자기는 출가를 못했지만 지 아들이 출가했다 아이요? 지금 통도사에서 행자생활 끝내고 아마 수계를 받았을끼야.” 여기가 끝이 아니다. 4형제 중 맏형의 출가인연은 아버지 바로 밑 삼촌의 출가 영향이었다.
가족사를 다시 정리해보자. 경남 삼천포에 5형제가 살았는데 어느날 함께 살던 삼촌이 머리를 깎고 통도사로 출가했다. 삼촌 찾아 절에 놀러간 맏형은 삼촌따라 스님이 됐고, 큰형 찾아온 셋째형, 셋째형 찾아온 넷째형, 넷째형 찾아온 막내까지 줄줄이 출가했다. 출가하지 않은 둘째형은 경봉스님 유발상좌로 한때 통도사 축서암에서 수암스님을 모시고 1000일기도를 할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출가안한 둘째형의 아들은 아버지의 신심 덕인지, 4명의 ‘삼촌 스님’ 영향인지, 결국 출가했다.
지난 4월20일 4형제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십수년간 <법화경>을 공부해오던 막내 스님이 서울 한복판에 ‘법화경연구소’를 문열고 본격적인 수행과 대중포교에 나선 ‘역사적인 순간’을 경축하기 위해서다.
맏형 금강스님 김해 포교텃밭
1970년대 부산불교 일으켜
“동생 스님들 고맙고 감사해”
“우리 법성스님 얼굴에 빛이 난데이. 출가해서 지금까지 25년간 법화경 공부에 쉼없이 정진해온 우리 막내 스님이 마침내 좋은 책도 출간하고 여법하게 법화경연구소까지 개소하고…참으로 대견하고 감사하제.” 김해 대법륜사 회주로 있는 금강스님은 속가 막내동생인 법성스님과 19살 터울이다. 마냥 어린애 같았던 막내가 어느새 자기 길을 개척하고 원력을 품고 십수년 공부한 결실을 맺자, 흐뭇한 마음에 말끝까지 흐렸다.
금강스님은 1967년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1970년대 부산과 김해 일대에서 불교대학을 열어 부산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본인이다. 금강스님은 “내 보러 절에 왔다가 출가한 동생들이 이제 함께 정진하는 도반이 돼 감사하는 마음 그지 없다”면서 “우리 4형제 스님은 저마다 ‘전문분야’가 다르다 아입니까?”하면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얼마 전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금강스님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도의 광채’가 난다는 뜻이 무슨 의미인지 체험했다”며 “포교하고 법문하면서 45년을 살아왔지만, 진정한 ‘도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할 일만 남았다”고 했다.
붓다빠라스님 남방불교 ‘거목’
동국대 선학과서 석박사 학위
국내외 넘나들면서 수행·포교
금강스님 곁에서 빙긋 웃기만 하는 붓다빠라(buddhapala)스님. 법성스님을 기준으로 하면 셋째 형이다. 우리나라 이름으론 본원스님이다. 통도사승가대학을 나와 동국대 선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스님은 인도 붓다가야선원과 미얀마 마사히선원 등지에서 수행하면서 남방불교를 전하고 있다. 법성스님은 붓다빠라스님을 두고 “솔직히 세분의 형님 중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오로지 수행정진에 모든 것을 바치는 위대한 스님이세요. 붓다빠라스님의 뒤를 따라 저 역시 법화경의 세계를 두루 섭렵해서 우리나라 법화경의 1인자가 되고자 합니다.”
한 배에서 났지만 4형제 스님들은 모두다 제각각이다. 속세를 떠난 스님들도 속가 형제들처럼 티격태격할 때가 있다. 법성스님과 스님의 바로 위 형님, 명본스님이다. 세 살 터울의 형제지만, 출가는 1년 차이다. 1986년 명본스님이 출가하고, 이듬해 법성스님이 머리를 깎았다. 같은 스님이지만 취향과 관심영역이 다른탓에 자주 만나지도 않을뿐더러, 두 스님이 형제지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드물다. 그래도 명본스님은 보이지 않게 동생 스님을 챙긴다. 법성스님 왈. “저는 옷도 거의 명본스님이 주신 겁니다. 법화경연구소에 장엄한 후불탱화도 명본스님이 직접 티베트에 가서 구해온, 아주 귀한 탱화랍니다.” 명본스님은 현재 김해 대법륜사 주지를 맡고 있다. 교단정치에 관심이 많은 명본스님은 총무원에서 주요 소임을 맡은 경력도 갖고 있다.
법성스님 법화경연구소 개원
명본스님 티베트 탱화 ‘선물’
“형님 스님들 스승이자 멘토”
이제 오늘의 주인공 법성스님. 세 형님을 능가할 정도로 막내 스님의 수행이력은 화려하다. 수계를 받고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 동대학원서 석사학위를 받을 즈음, 미국으로 만행을 떠났다. 1996년께 미국 삼보사 백림사 등지에 머물면서 유학생활을 하고 캐나다까지 가서 영문학의 토대를 닦았다. 1997년 귀국하자마자 법화경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이듬해 4월 입대해서 공군 군종장교로 10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김해공항, 서울 보라매법당, 성남 서울공항, 청주 전투비행단 등에서 군포교에 일심정진한 공로로, 조계종포교원장상(2001), 조계종종회의장상(2007), 공군참모총장상(2008)까지 휩쓸었다. 특히 보라매법당 주지로 있던 2000년대 초반 신도회와 손잡고 ‘사찰재정공개’라는 대대적인 ‘개혁’을 실천했고 전국 곳곳의 어려운 군법당에 불사기금을 지원하는 등 군포교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법성스님은 2008년 여름 전역하자마자 중국 어학연수를 떠났고 이후 서울 수국사, 봉은사에서 총무와 교무 등의 소임을 맡았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스님은 출가 이후 줄곧 <법화경>을 화두삼아 정진했다. 외국 유학시절에도 군포교 현장에서도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도 <법화경>을 보고 또 보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다. 특히 최근 출간된 <법화경 사요품-법화경의 네 가지 보석>은 국내 최초로 사요품의 출처를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법화경 권위자 중 유명한 당나라 담연대사가 쓴 ‘법화문구기’에서 ‘방편품’과 ‘안락행품’, ‘여래수량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법화경의 보석창고를 여는 핵심열쇠”라고 밝힌 것.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오직 ‘법화경’에 빠져 사는 법성스님은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법화경연구소를 문열었다. 스님은 날마다 강의 듣고 강의하는 일이 전부다. 강의를 제대로 들으려면 사전준비는 물론 리포터가 동반돼야 하고, 강의준비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개설한 다음카페 ‘법화경연구원’에도 ‘법화경 마니아’들의 문의가 들끓고 있어 관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법화경 공부,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다라니수행…이런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어요? 법화경을 공부할수록 마음에 꽃이 피는 것처럼 모든 것이 환해집니다. 법화경을 강의할 때, 가장 큰 환희심이 샘솟습니다.”
마지막 질문. 세 형님이 스님이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수행정진하는 출가자로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도 하고 치유도 받을 수 있는 스승 겸 멘토가 돼서 든든합니다만……한 사람이 잘못하면 4형제 전체가 욕먹으니 손해볼 때도 많죠! 하하하.”
■ 법화경연구소 법성사
매주 화·목 강의와 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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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법화경연구소 법성사에 봉안된 부처님. |
법화경연구소는 ‘법화경 박사’로 통하는 법성스님의 <법화경> 강의 뿐만아니라 실천수행의 일환으로 사경도 함께 한다. 연구소는 법성스님이 직접 출간한 교재로 공부하고 수행한다. 오는 26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7시반에 각각 두시간씩 <경전학교의 법화경 강의>를 교재로 한 스님의 강좌가 열리고, 오는 6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에는 주야간 같은 시각 <법화경의 네가지 보석>을 텍스트로 한 강의를 실시한다. 스님이 출간한 <한권으로 쓰는 법화경 사경>과 <법화경 사요품 사경>도 강의교재로 쓰인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법화경>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법성스님은 다음카페도 개설해서 법화경연구소에서 함께 정진하는 공부도반을 찾고 있다.
[불교신문 2718호/ 2011년 5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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