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모시 한 필을 받고서
한산도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택배가 나를 맞았다. 어디서 왔지, 광주의 서화자 선생님이었다. 무엇을 보내셨을까? 택배상자를 열자 모시 한 필이 들어 있고, 정갈하게 쓰여 진 편지 한 장, 가슴이 뭉클했다.
이십 여년 저 편에 만나서 답사에 함께 했고 둘째 아들 지원이가 광주의 동아여고에 있을 때 지원이를 도와 주셨던 서화자 선생님, 광주 부근에 답사를 가면 박사 위에 ’밥사‘라고 일행이 몇 명이든 밥을 사주시던, 서화자 선생님이 모시 한 필을 보낸 것이다.
내 생애 처음 받은 모시 한 필, 그렇다면 모시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옷감이었을까?
“여름이면 읍내 유지나 되어야 풀 먹이고 다림질 잘한 모시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김원일의 소설 《노을》에 나오는 것처럼 모시옷만큼 여름에 시원한 의복도 없다. 모시로 지은 옷은 통풍이 잘되고 시원하며, 가볍고 깔깔하고 산뜻한 맛은 무명이나 삼베가 따르지 못한다. 모시 원단은 선이 곱고 우아하여 고전미 넘치는 전통 한복과 다양한 디자인의 생활한복뿐 아니라 양장, 그 밖의 생활 소품으로 사용 되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탄성이 좋지 않아 잘 구겨지는 단점이 있어 입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고운 모시옷을 입고 조심하는 버릇이 몸에 배면 더욱 우아한 자태를 풍길 수 있다. 그 옛날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모시를 짜던 아낙네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시옷에 깃들어 있다.
모시는 한자로 저苧·紵, 저포苧佈, 저마포苧麻佈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 자료인 《삼국사기》에 “신라에서는 삼십승저삼단三十升紵衫段’을 당나라에 보 낸 기록이 있다. 《계림유사》에 고려 방언으로 저왈저모苧曰苧毛, 저왈모시배苧曰毛 施背라 하여 오늘날 모시라는 이명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모시옷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입었던 옷이다.
고려 때 원나라에서도 모시 직물을 선호하여 수출을 요구해온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고려 때가 모시 직물 제작의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동래 지방 에 전해오는 민요에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담배씨만큼만 보고 가소”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모시옷 아래로 은은하게 비치는 여자의 젖가슴을 훔쳐보기는 보되 조금만 보라는 은근한 충동질이라 고 볼 수 있다.
1123년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이 보고 들은 풍물을 쓴《고려도경》에 모시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모시는 백옥처럼 희고 맑아 결백을 상징하고 윗사람이 입어도 의젓함이 나타나며, 백저포로는 상복을 삼았다. (……) 임금도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흰 모시옷으로 평상복을 입었다.
모시의 생산 지역은 삼베가 전국에서 고르게 생산되는 것과 달리 충청도의 부여를 비롯한 서천, 정산, 홍산, 비인, 임천, 남포를 이르는 저산 팔읍과 전라도 일부였다. 그중에서도 충청도의 여덟 고을은 모시가 많이 나고 모시 거래가 활발한 곳이라서 저산팔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시 중에서 고급 옷감은 한산 지역에서 나는 가는 모시(세모시)를 들 수 있다. 한산 세모시는 《택리지》 〈복거총론〉의 ‘생리生利’편에도 “진안의 담배밭, 전주의 생강밭, 임천과 한산의 모시밭, 안동과 예안의 왕골논”이라는 구절로 언급되어 있다. 한산 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여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라는 말이 생길 만큼 결이 가늘고 고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모시를 곱솔 바느질한 깨끼저고리의 정갈한 맵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치마는 폭 28센티미터의 12폭 치마를 만들어 입었는데 빨고 풀 먹이고 만지고 다림질하는 여인의 특별한 솜씨가 깃들어야 한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충청도 서천 편에서
서화자 선생님이 언급한 간첩죄는 너무 늦게야 <과거사 진실 위원회>에 계류되었는데, 2기에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종료가 되어서 3기 출범 이후에나 가능할지, 아니면 영원히 미해결로 남을지 모르지만, 서화자 선생님이 보내주신 모시 한 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보내준 그 마음이 ‘세상을 살만하다.’ ‘걸어볼만 하다’고 여기게 하는 지렛대가 아닐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부디 선생님 내외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25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