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이 우리에게 주는 평생 화두
2025.12.23. 12월23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오 임마누엘, 우리의 임금이시오 입법자이시며,
만민이 갈망하는 이요 구속자이시니,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 주 하느님!”
나뭇잎들 다 지니 겨울 불암산이 한 눈에 들어오니, 저절로 되뇌이는 좌우명 고백시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2024.10.1>
오늘은 대림 제2부 마지막 일곱째 날, 역시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청원하는 내용입니다. 찾아 오시는 주님에 앞서 우리의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열정의 사랑도 항구하고 열렬해야 함을 배웁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주년의 궤도따라, 리듬따라> 진행되는 전례화한 삶이 영성생활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옛 현자의 가르침이 주는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세월이 지나면 때가 타고 닳게 된다. 사람의 마음도 잘못 길을 들이면 헐거워지고 바스라진다.”<다산>
“사람들이 선량한 마음을 놓아버려 마치 도끼로 나무를 베는 것 같으니, 날마다 베어버리면 어찌 아름답겠는가?”<맹자>
결코 죽을 때까지 놓아서는 안되는, 꼭 붙잡고 살아야 하느님 향한 <신망애信望愛의 끈>입니다. 레오 14세 교황의 “하느님 현존의 수행(The Practice of the Presense of God)”이란 가르멜회 로렌죠 수사의 책 서문의 다음 요약이 참 유익합니다.
“로렌죠 수사는 우리에게 날마다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삶의 기쁨을 살 것을 가르친다.”
이렇게 매일 삶의 기쁨을 살 것을 가르치는 주님의 전례은총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손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전례주년의 리듬따라 살아 갈 때 전례영성의 생활화요 세월의 풍화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며 한결같은 열정과 순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노래한 오래전 <사랑>이란 시가 새롭게 마음에 다가옵니다.
“당신 언제나
거기 있음에서 오는 행복, 평화
세월 지나면서
색깔은 바랜다지만
당신 향한 내 사랑 더 짙어만 갑니다
안으로 안으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세월 지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좋아지고 깊어지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1997.3. >
성인들의 하느님 사랑이, 오늘 탄생을 기뻐하는 세례자 요한의 예수님 사랑이 이러했을 것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주님인 당신께 대한 사랑과 그리움도 그러할 것입니다. 모든 시간이 하느님 손안에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때 늘 새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끝에 나오는데 바로 여기 엘리아의 재림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이 예고됩니다. 말라기 예언서의 말씀이 박진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치지 않으리라.”
바로 이런 엘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통해 세상에 온 것이요 초기교회 신자들은 이를 곧이 곧대로 믿었기에 요한의 회개의 선포에 전폭적으로 즉각적으로 응답했습니다. 바로 이런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통해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감동한 이웃과 친척들은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니 그대로 마을의 축제이자 예수님 탄생의 예표가 됩니다.
작명과정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아버지 즈가르야의 이름을 따서 즈가르야로 부르려 하자 엘리사벳의 주장이 단호하며 그의 남편 즈카르야도 이에 화답합니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성령에 감도된 엘리사벳에 주장에 이어, 즈카르야는 판을 달라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
이라 쓰자, 즉시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요한>은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바야흐로 즈카르야의 화답과 동시에 그의 장기간의 침묵피정은 끝나고, 주님 찬미의 기쁨의 빛을 온 주위에 발산하니 온 이웃이 복된 두려움에 휩싸였고 이 일은 유다의 온 산악지방에 화제가 됩니다. 정녕 자비하신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시기에 사람들은 이 모두를 마음에 새기며 되뇌이니 당대 이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대림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같은 물음입니다.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마찬가지 주님의 손길도 우리를 보살피시니 우리를 향해 자문하게 됩니다. 대림시기 화두로 삼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때 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평생 날마다 물어야 할 화두입니다. 화답송 다음 시편이 이 화두에 대한 좋은 답이 됩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4-5ㄱㄴ).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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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결코 죽을 때까지 놓아서는 안되는,
꼭 붙잡고 살아야 하느님 향한
<신망애信望愛의 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