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링크 주소의 사진은...
8개국 연합군에게 개박살난 청황실이...서안으로 피난하고...
광동에 있던 이홍장을 불러올려 황실 대신 신축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라는데...
아무리 부패한 청황실이라지만...유라시아 전역을 통치한 청나라황실의 종친들 중...용기있는자 하나가 없어...
까진 목숨 아까워...황실이 행사해야할 주권과 관련됀 조약을...일개 식민지 출신 무장에게 대리시켰을 린 없습니다.
실제로도 신축조약은...
경왕 혁광의 왕부에서 체결이 됐고...그 대표단에 경왕(혹,영록?)이 있었습니다.
직위상으로도...직례총독 북양대신 출신이던 이민족 무관인 이홍장이...여진족 황실의 경왕을 제치고 최고 대표로 조인할 순 없습니다.
이홍장은...
이미 양이들과 친분이 두터운 중원 남방의 남명족이요...
그러기에 양쪽을 주선하면서도...타타르의 잇권도 보호하기 위한 역할로 참가하게 됀 뚜쟁이 역할이라 봐야 할 겁니다.
그 신축조약 주선하러온 이홍장의 복장여...우리가 아는 만주족의 그 강시형(타타르형?)복장입니다.
허나, 정작 기록사진의 경왕부 사진엔...
청나라 관리들의 복장은...모두 삿갓형이 전부입니다.
그럼, 이홍장과 그 수행원들의 강시형 모자는 뭐고...
경왕부 신축조약 체결장의 청나라 삿갓쓴 관리들 복장이 다른 이유는 뭘까여...?
정작 신축조약장에선...강시모자를 쓴 이홍장 수행원들은 왜 하나도 찍히질 않았을까여...?
저는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강시 모자는...서역 타타르여진의 모자다.
태평천국의 난으로 이미 서양과 일본& 남명의 잔존 세력에 제압당한 키타이청조는...
서역의 동족인 타타르 연진을 끌어 들일수 밖엔 없었고...
이후부터 서역 타타르가 청나라의 패권을 쥐고 흔들었으며...
남명의 잔당들도 이미 그들의 주구가 돼어...
타타르가 임명한 키타이 청조의 관리나...총독으로 부임했던 것이다...라고여...
일국의...그것도 자칭 천자국의 중앙 대신들 복장이 저리 크게 차이가 날닌 전혀 없었다 보이니여...
그리고 밑의 주소의 이홍장이란 사진여...제가 보기엔 경왕 혁광(혹,영록?)입니다.
전 대원군과 꾀 닮았다 생각돼니...대원군이 실제로 1898년 죽은 건지도 추가로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실제 일제가 지닌 유일한 대원군 장례식 사진엔...1899년으로 표기돼기도 하는 뒤죽박죽이니여...
이홍장의 턱수염은 왠지 거의 없고...입술밑에만 염소같이 길게 난(기른?)수염인데...
밑 링크글의 인물은 경왕같이 길고 넓은 턱수엄입니다.
이홍장은 비교적 낮은 코에...작고 가는 눈인데...
밑의 인물은..대원군같이 부리한 눈에...시원한 콧날입니다.
경왕(혹,영록이나 대원군?)의 사진이 분명합니다.
아래 링크도 거의 유일한 글 같은데 펌이 않돼...
사진만 좀... 김재관 선생님이 좀 옮겨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펌의 제왕 김홍필 선생께선...우연이겠지만...한반도와 현만주도 조선의 땅이였단 증거들엔 이상하게 비 협조적이시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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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beijingslowwalk/1575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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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겨울 베이징을 점령한 서구 열강과 담판하기 위해 회담장에 도착한 이홍장. 김명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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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 식민지관리인 이홍장이..키타이와 유사한 갑옷을 입었습니다...?
전 키타이 청나라 장군들의 투구는 우리가 아는 삼지창의 조선투구요...
밑의 이홍장 새깃털투구는...명나라 투구라 사료됍니다...
티벳&아랍식 무굴투구라 생각합니다.
그 활은...조선 전통 각궁같습니다...?
첫댓글 홍진영 선생님... 모자가 서로 다르다고 하여, 2개의 청(淸)나라가 있었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코미디"라니까요...
난징-조약(南京-條約) 1842년 8월 29일, 베이징-조약(北京-條約) 1860년 10월 18일,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 1895년 4월 17일,
신축-조약(辛丑-條約) 1901년 9월 7일에 체결되었습니다.
이홍장(李鴻章)은 1901년 11월 7일에 사망하였습니다.
위 본문의 이홍장(李鴻章) 일행 사진에는 "1900년 겨울"이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한 번 확인해보세요...
이홍장(李鴻章)은 본래 청나라 말기 나라의 혼란에 즈음하여 발생한 여러 한족계 민병단을 이끌고 있었다. 이홍장(李鴻章)의 군대는 본래 '회군'이라 이름지어졌는데, 태평천국의 난에서 스승인 증국번(曾國藩)과 함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여 조정에 등용되었다. 증국번(曾國藩) 사후, 이홍장(李鴻章)은 청나라의 한족계 대신이 되어, 북양대신의 자리에 오른다. 북양대신은 본래 남양대신과 함께 청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는 자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정 유일의 실력자의 위치이다. 이홍장(李鴻章)이 북양대신이 된 것과 더불어 그의 '회군'은 '북양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모자(帽子)라는 것은... 계절(季節)과 용도(用途)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인데...
경왕부 신축조약 체결장의 청나라 삿갓 쓴 관리들 복장이 다른 이유는 뭘까여...?
정작 신축조약장에선...강시모자를 쓴 이홍장 수행원들은 왜 하나도 찍히질 않았을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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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본문에서 홍진영 선생님은 이렇게 주장하셨는데요... 정말로 웃깁니다... 이건 "코미디"라니까요... (하하하)
조형진 선생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청조(淸朝)의 여름(夏) 모자(帽子) 및 겨울(冬) 모자(帽子)에 관한 사진을 추가로 제가 올렸습니다.
조선군복이나 송,원,명시대의 군복들이...동복 하복이 있었나 의아스럽습니다...물론 지역마다 지방군들의 복식은 그 지역 전통을 따랐을 겁니다.
문젠...그걸 통솔하는 중앙관리들의 복장은...그 흉배의 장식 하나까지도 까다롭게 규정을 짓고 통일시키는게 전통적인 예라 저는 압니다...?
허나 청나라만 걷옷을 어떤걸 입었냐 의관 장식이 어떻게 지역과 계급마다 차이가 나느냐의 차원이 아닌...
완전히 그 현태가 다른 두가지 형태의 중앙관료들 관복이 있었단게 의심스럽단 겁니다.
지방군이나 지방관의 의복차가 아닌...중앙 관료들의 관복이 차이가 났단 점을 짚은 겁니다.
이제는 딴소리를 하십니다...
"삿갓"형 모자와 "강시"형 모자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2개의 청(淸)나라가 있었다고 홍선생님이 주장하셨지요???
"삿갓"형 모자는 "여름용"이고, "강시"형 모자는 "겨울용"입니다. 구분한다면...
제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조선 군복이나 송,원,명 시대의 군복들이... 동복, 하복이 있었나 의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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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 선생님은 이렇게 주장하셨는데요...
겨울과 여름이 명확한 지역에서는... 기온 차이 때문에... 동복도 있고, 하복도 있어요... 군복이든, 평상복이든...
이홍장이 북경사변 당시에 이를 중제키 위해 1900년 겨울에 입경하고...1901년에 조약이 체결됐단걸 제가 모르고 썼겠습니까...?
일국을 대표한다며 입경했다면...그와 수행원들은 기본 관복은 입은 것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평상시 관복 따로 있고...정식 업무때의 관복이 따로 있단건 좀 무리가 많습니다.
특히 동복 하복 아니겠냔 조선생님의 예상은...
제가 올린 청나라 결혼식 사진글에 나오는...더운날 결혼식을 하던 청나라인들 강시모자 옷들을 보면...
겨울철의 이홍장관 옷 두께차만 난단걸 볼 때...그건 아니란제 생각이고여...
제가 청조(淸朝) 문관(文官)의 보복(補服) 모델(Model) 자료를 추가로 올렸는데요.....
장포(長袍; 창-파오)와 여름(夏) 모자(帽子)도 있고요... 안 보셨어요???
청(淸)나라 결혼식 사진이요... 그 촬영 시기가 "여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아무런 표기도 없는데요...
[출처=http://cafe.daum.net/china-hallym/52kN/11]
저는 조형진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