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가는가
김 난 석
쾌청한 날씨였다.
한더위는 지나간 듯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했다.
소련이 참전했다는 보도가 있은 후
서희는 구미를 잃었는가 밥을 잘 먹지 못했다.
투명하고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박경리의 ‘토지’ 끝부분)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바탕을 지켜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강물처럼 흘려내고 있다.
그 바탕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여기서
소설의 제목이 ‘토지’임에 주목한다.
주인공 서희는 평사리의 땅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평사리를 떠난 후 다시 평사리로 돌아와
광복을 맞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요 삶의 터전이요
소유의 기본형태가 아니던가.
땅에서 낳고 땅에서 자라나며
땅을 일구어 양식을 조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땅에서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수렵시대 농경시대 전기 산업시대, 이렇게 세월은 흘러
그 개념도 조금씩 변해왔다.
땅보다 유동성 재화나 기술, 또는 신용에 집착하게 된 게 그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땅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서글픈데
소유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접촉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땅은 땅일 뿐 새끼를 치지 않는다.
확대재생산이 되지 않고 잉여가치를 낳지 못하며
한번 훼손되면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땅을 쉽게 훼손하며 거래를 부추긴다.
거래단계마다 비용이 발생할 뿐인데도
거기서 많은 잉여가치를 바란다.
바로 땅값이 오르는 이유이며, 이것은 경제를 왜곡시킬 뿐이다.
왜 하필 땅일까?
일제 암흑시대를 지나 광복이 되자
남과 북은 기존의 토지소유구조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킨다.
남측은 소위 토지개혁을 단행해
자경농민들에게 농지가 돌아가게 한다.
완전한 균등분배는 아니었지만
참 잘한 정책이었다는 평가이며
이를 기초로 국민들은 어렵게
경제를 재건해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북측은 토지를 모두 공산화해나갔다.
그 결과 피상적으론 평등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남한을 해방하여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만들자고 선전하며
유월 전쟁을 독려했던 것이다.
드디어 유월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참화로 많은 인명과 재산이 사라졌다.
지상의 모든 재산적 가치는 간데없고
남은 건 땅 뿐이었으니
이런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안전한 재산보존수단으로
땅에 더욱 집착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북에서 맨손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땅 한 평이라도 확보해 새로운 터전을 삼아야 했고
남에서는 산업화의 가속화에 따라
도시로 도시로 땅 사냥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토지열풍은 이렇게 가열되어가고 있음에도
지배계층은 기득권 보호에 관심이 더 있었을 뿐
대증요법에서 맴돌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땅 투기과열의 근원이
바로 유월전쟁에 가 닿아있는 듯해
나는 아직도 유월이 슬픈 것이다.
내 아버지는 객지생활을 하면서
월급은 모두 시골 할아버지에게 보내드렸다 한다.
시골만을 생각한 것이다.
한학밖에 모르시던 할아버지는
송금된 돈을 모두 작은 아들에게 주어 땅을 사게 하자
작은집은 그 덕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시골이 안정되자 내 아버지는 송금을 중단하고 다시 모은 돈으로
유월전쟁의 바로 그 유월에
도회의 주택과 토지를 구입하게 되었지만
소유권이전등기도 하기 전에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시골로 피난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안정이 찾아왔으나
내 아버지는 직장 잃고 재산 잃고 근거도 잃은 후 낙향하여
내가 자란 시골에서 낭인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몸으로 매일 주전자 들고 읍내로 나가
아버지가 홧김에 마실 술을 사러 갔었으니
우리는 땅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내 장인어른은 이북에 놓아두고 온 땅을 못내 아쉬워하며
병원 수입의 대부분을 땅을 사 모으는데 쓴 모양이었다.
땅 부자가 되자 이에 만족을 못하였던지
내가 사위로 들어가던 해 모두 팔아 철강회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데 의사가 사업이라니...
결국 부도를 내고는 땅만을 껴안았지만
그 아들이 다른 사업을 하겠다며 다 팔아먹고 말았다.
역시 땅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내 아내와 결혼하던 날
나는 처가의 지원을 마다하고 반지하의 방 하나 세 얻어 살림을 꾸렸다.
그러나 처가의 괄시가 심해지자 땅 투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젊은 날의 인연을 찾아 중랑천 뚝방을 거닐어보다가
거기서 루핑가옥 철거증을 사들였다.
소위 딱지를 한 장에 5만원씩 10매를 사들였던 것인데
지금으로 보면 대박이겠지만
소유자가 아닌 전세입자들이 나타나 떼를 써댔고
마음 약한 나는 이들에게 원금에 넘겨주고 말았으니
부동산 투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청담동에 살 때였다.
아내가 이사하려고 살던 집을 나도 몰래 팔아버렸다.
이사할 집을 찾으려니 하루에 천만 원씩이나 올랐다.
일주일이 지나니 이사할 집을 찾을 수도 없게 되었으니
아내가 밤잠을 못 자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지도를 펴놓고
광화문에서 동심원을 그려봤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 중 제일 가까운 곳이 일산 쪽이었으니
일요일에 거기를 찾아갔다.
우선 광화문에서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가보니 기본요금이었고
신촌에서 기차를 타고 일산에 도착한 건 반시간 만이었다.
옳다, 여기다싶어 여기저기 물어보니
채전 오백 평에 정미소 하나,
그리고 30여 평의 단독주택까지, 이게 8천만 원이라니
내 집 판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아내에게 이리 이사하자 했더니 말도 안한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복덕방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댔는데
약 한 달이 지났을까.
일산 신도시계획이 발표되던 날,
나는 아내에게 치도고니를 먹였다.
일산 신도시 계획 발표로 땅 투기 붐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요
정부로서도 두고 볼 수많은 없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정부로선 부동산 투기 내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때 아내가 하는 말이 걸작인데
“ 당신, 나 때문에 그 알량한 월급쟁이라도 하는 줄 알아요!”
결국 장군 멍군이 되었으니
우리도 땅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땅, 땅.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으면 땅은 춤추게 되어있다.
남북통일이 되면 월남한 사람들은 소송을 해
북한에 있는 땅을 다시 찾겠다고 벼른다는데
남북한 통틀어 땅을 둘러싼 갈등은
또 어찌 진정시켜야 한단 말이냐.
얼마 전엔 땅도 아닌 바다를 놓고도
NLL 을 둘러싼 남남갈등조차 빚어지고
유월전쟁으로 꼬인 것이 한둘이 아니니
그래서 유월이 한없이 아픈 것이다.
유월이여!
격전지의 땅! 소리 깨우지 말고 가만 가만 물러가다오.
(지난날 단상)
땅이 곧 집이다.
땅에 자리를 깔고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으면 집이 되니 그런 것이다.
청계천 철거민들을 집단으로 실어 성남 허허벌판에 내려놓던 일이
엊그제인 것 같다.
그때는 그야말로 땅의 경계선을 새끼줄을 늘여 구분하고
그 안에 자리만 깔면 집이 되었으니
참 서러웠던 시절이었다.
이젠 생활이 넉넉해진 때문인지
높이 높이 시멘트를 쳐 바르고서야 집이라 하는데
그 값이 웬만하면 십억 이십억 삼십억 사십억... 이러니
기가 찰 일이다.
집은 건드리면 값이 오르게 되어있다.
섣불리 건드릴 게 아닌 것이다.
인구 5천만에, 한 가정이 다섯 식구라면
천만세대가 천만 채의 집을 가져야 하고
각 세대마다 더 나은 집을 꿈꾸고 있으니
항상 천만채의 집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섣불리 건드릴 게 아니라 장기적인 시계에서
정파를 초월한 안정된 정책을 짜내야 하느니
단방은 절대 없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자식들이 쳐들어와 응접실 안방 모두 점거하고 있으니
뒷방 두 평 반에 칩거하고 있는데
손주들 옷장 하나 더 들여놓아달라니
주말엔 책이고 뭐고 다 들어내려 도우미를 부르고 있다.
유월이여!
땅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물러가다오.
2022. 6. 30.
* 사진은 물 속에 숨은 궁전이다
첫댓글 역시 차원이 다른글,
몇번을. 감탄하며 돼돌아보며 읽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래봐야 땅은 1차원이지요.
저는 시멘트 조적조 위 허공
2차원에서 살고요.
아팠던
석촌님의 유월이
그렇게 또 지나갑니다..
2022년 6월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살고계신
석촌님..
늘
건강하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아야
강 건너기도 쉬울텐데요
그게 지금의 현실이네요.
요석공주도 건강을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에 고마워요.
여긴 장마철이라 구적거리는데
거긴 쾌적하겠지요.
땅~땅~땅!
이 소리는 6월에 듣던 잊어야 할 그 총소리가 아닌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나오는 그 땅 입니다.ㅎ
올해도 벌써 또 반년이 후딱 지나 갑니다
간다는 말은 또다시 시작 한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금년의 남은 반년 시작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기 또 서 있습니다
장마철이라 오늘도 비가 온다지만 7월은 접시꽃처럼 얼굴에는 웃음꽃 가득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접시꽃 당신인가요?
좋은말씀이에요
희망을 가져야지요.
한번 또 봐야지요?
정말 세월이 도둑처럼 달아납니다 그려
벌써 7월이면 곧 가을이니 가을 냄새가 나느니
할게 아닙니까 추억하나 남기지 못하는 이 눔의
의미없는 계절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못마땅한 것은
뭔 심술인지
토지 처음 연재 되었을 때 부터 개정판 나온 거 까지
다 읽으면서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하느니
자괴감에 시달렸지요
그리고 이렇게 글에서 만나는 토지
또 가심이 아픕니다 너무도 대단한 작품이라서
세월은 그렇게 흘러
토지에 관심하는 세대도 점점
옅어가겠지요.
유월에 터잡는 대하소설은
아직 현실로 이어지고 있으니
세월이 무심하기도 합니다.
참
시간은 무심하게도
가네요
6월을 넘기며
한해반을 가네요
나이들면서 소리없이 가는 세월이 아쉽네요
그러게요.
벌써 반허리가 꺾이네요.
낙엽따라 가버린 가을이 아니라
비따라 유월이 가네요.
석촌호수에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겠지요.
책들이 손주옷장에 밀려나는군요.
비가 많이 왔나봐요.
한강 홍수주의보가 내려졌으니.
벌들도 쉬겠지요.
꿀이장이야 감독할 것도 없고.
치도곤(治盜棍 몹시 혼나거나 맞음)
오랜만에 접하는 단어라
검색해 보니
한자어네요.
석촌 큰 형님의
'유월이 가는가' 긴 글(땅 이야기)
잘 읽고 마음에 담습니다.
우리말이 한자에서 유래된게 많아요.
그리고 지방별로 쓰는 용례도 다르지요.
우리때는 치도곤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엔 도둑을 잡아 때린다기보다
아예 갈아 없앤다는 말을 더 많이 쓸겁니다.
토지 토나올 정도로 재미지게 쫄깃하게 보았지요 서희역 최수지 당차고 이쁨 ..
아련하게 떠오르는 연속극의 극극치 맛
유월은 내 생의 의미를 다 담고 있어요
민증에 유월생 이니까요 ㅋㅋ
50년대 징하지요
전쟁나고 종전되고 사하라 태풍을 어찌 잊겠습니까
현 생존하신 모든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일찍가신 혼이시여
부디 천상에서 행복하시길 ...
유월의 노래 유월의 잔상 고운글 감사 합니다 좋은시간 되십시요
유월의 마지막 날 찬란히 ~!
맞아요.그 시기 참 잘도 건너 왔지요.
앞으로 축복만 내리시길~
무척이나 아쉽네요ᆢ
그게 인생인걸요.
저도 땅에대한 욕심이 업씁니다 아버지께서도 이북출신이라 땅사는걸 말리셨지요
황해도 가면 과수원에 비옥한 땅이 많으니 땅을 사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복해서 그걸 찾아야겠는데~
사진 속의...
수면은 현실과 꿈의 경계인 듯 한데...
경계를 넘나들며 살다 보니...
세월은 대책없이 흘러...
이제는 well dying 할 준비를... ㅎ
하루 하루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삶의 지혜가 요구되는
싯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까르페디엠!
네에 인생은 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 하게 머무는 것 같습니다.
6월 한달도 오늘 역사속으로
묻혀져 갑니다.
저도 땅인연은 없나 봅니다.
그래도 아직 도심 근처
시골 생활을 꿈꾸며 삽니다.
이루어나 질지??
6월은 지나가지마는
그 아픈 역사를 가슴에
새겨야 할거 같습니다.
역사는 새기고
꿈은 이루시길 바랍니다.
오늘 자정 이후면 유월이 가는 군요
아쉬움에 유월의노래 동영상 댓글 입니다
https://youtu.be/u2-UVnoiTxQ
PLAY
네에 잘 감상하였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
거긴 비 안 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