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적 단편소설
일흔넷의 초행길
석야 신웅순*
하얀 여백 앞에서
봄의 밀도 높은 햇살이 오늘따라 방안 깊숙이 들어왔다. 화판 위의 화선지가 유난히도 눈부셨다. 먹을 갈던 석야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벼루에 부딪히는 사각사각 먹의 마찰음이 멈추자 사방은 이내 적막 속에 잠겼다.
올해로 일흔넷. 화선지를 마주할 때마다 머릿속이 하얀 종이처럼 아득해지는 것은 여전했다.
“또 멍하니 서 계시네. 그렇게 들여다보신다고 화선지가 먼저 말을 걸어 온답디까?”
미닫이문이 열리며 아내, 혜숙이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은은한 국화향이 먹향 사이로 스며들었다. 혜숙은 석야 곁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당신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온다고 내가 밖으로 등 떠민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네요. 이제 제법 화가 구색이 나요.”
“화가는 무슨…… 초딩 할아버지 그림이지.”
석야가 헛기침을 하며 붓을 들었다. 60여년 전, 시골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석야는 그림 참 잘 그리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이 어제 일만 같다. 그 칭찬 한마디를 가슴에 묻어두고 살다가, 반세기를 훌쩍 넘겨 사십여년 공직과 시를 쓰는 삶을 다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붓을 잡았다.
“그때 화실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칠십 넘어도 그림 그릴 수 있냐고 물 으니까,‘그럼요, 할 수 있어요’라고 가르쳐주신 거. 당신 그림에는 시 가 들어 있대요. 수묵 쪽으로 방향 잡길 잘했어요.”
혜숙이가 나간 뒤, 석야는 붓 끝에 검은 먹을 적셨다. 반평생 시를 쓰고 글을 쓰며 묵(墨)과 함께 살아왔으나 글씨가 아닌 그림으로 묵을 풀어내는 일은 석야에겐 낯선 초행길이었다.
첫 획을 내딛기 전,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실수가 만들어낸 풍경
바람이 불자 창문이 덜컹거렸다. 석야의 손끝이 흔들렸다.
툭.
의도하지 않은 곳에 묵중한 먹방울 하나가 떨어져 번져나갔다. 아차,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산의 능선을 미려하게 그려 내려가던 참이었다. 의도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얀 여백에 더렵혀진 검은 얼룩을 보며 석야는 잠시 붓을 멈추었다. 옛날 같았으면 참지 못해 화선지를 구겨버렸을 것이다.
이제 그는 안다. 무작정 시작한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실수들이, 결국 내 그림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허허”
석야는 웃으며 의연하게 붓을 다시 잡았다. 번져나간 먹물 주위로 거칠게 붓질을 더해갔다. 얼룩은 깊은 계곡이 되었고, 가파른 바위산은 절벽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실수가 아니었다면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육중한 형상이었다.
“그래, 그렇게 가자.”
석야는 중얼거렸다. 치열할 필요가 없다. 이것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젊은이도 아니요, 명성을 얻어야 하는 장인도 아니다. 그저 붓질을 즐거움 삼아 동무하면 된다. 힘들어 못가면 그림 녀석이 나를 끌고 가게 내버려 두면 그만이다.
그는 화판에서 두어 걸음 물러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묘하게도 자신을 닮아 있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고집스럽고,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맛이 나는, 굵은 주름살의 또 하나의 낯선 노시인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여백의 이유
며칠 뒤, 화실의 지도교수가 석야의 그림 앞에 섰다. 교수는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나직이 감탄했다.
“신 선생님, 그림이 참 시적입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선생님만의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이 거대한 여백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하신 걸까요?”
교수의 질문에 석야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의 절 반 정도가 텅 비어 있었다. 요즘 한국화들은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 여백 없이 빽빽하게 채우는 경향이 많았다. 석야의 그림은 달랐다.
“잘 그리지 못해서 남겨둔 것입니다.”
석야의 솔직한 대답에 교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억지로 잘 못 그려 넣어 화면을 망치는 것보다야,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 게 멋대로 상상하라고 비워두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그릇이 작아 빽빽 하고 큰 화면은 제겐 어울리지 않아서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석야는 문인화에나 들어갈 법한 시 한 구절을 한국화 한가운데쯤에 써넣었다. 그것도 좌나 우에 전통적인 세로쓰기가 아닌, 과감한 가로쓰기였다.‘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찍어 내린 붉은 낙관마저 가로로 당당하게 박혀 있었다. 원칙과 규율을 깨뜨린, 오직 '석야'라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작정의 파격이었다. 석야는 예술은 상식을 깨야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붓 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진짜 묵의 길이지요.”
시가 되어 만나는 날
석야는‘여여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인데도 밤바람은 여전히 맑고 신선했다.
붓을 내려놓고 갖는 잠깐의 휴식. 그 치열했던 삶의 한복판을 지나 마주하는 고요가 참으로 달콤했다. 삶의 길이나 묵의 길이나 결국은 초행길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국화라는 고집스러운 녀석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 리가 없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인연에 맡겨둘 뿐이다.
석야는 책상 위에 놓인 화선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직이 읊조렸다.
그리운 것들은 다 산너머에 있는데
빈칸을 서성이는 빗방울은 거기 없다네
“언젠가는 긴 기다림 끝에, 그림은 나를 알아나 볼 수 있을까.”
지금 그리는 서툰 붓질들이 몇 생을 지나고 나면, 혜원 신윤복의‘미인도’의 여인처럼 아름다운 시가 되어 나를 찾아와 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곳이 눈 내리는 쓸쓸한 벌판이든, 비 내리는 호젓한 강가든 상관없다. 그림이라는 동반자가 언젠가는 자신을 만나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어떤 믿음이 석야에게는 있었다.
석야는 만년필로 원고지 위에 오늘의 날짜를 적었다.
2026년 5월 25일. 석야의 서재, 여여재.
내일은 화실에 가서 오늘 남겨둔 그 넉넉한 여백 위로, 어떤 바람이 지나갈까. 어떤 구름이 머물까. 이 행복한 고민은 70년 인생을 건너온 한 남자의 순정의 고백이었고 인생 순례의 긴 여정길이었다.
- 2026년 5월 25일자 에세이 「잠깐의 휴식」을 자서전적 단편소설로 재구성해 쓴 글이다.
*시인, 서예가
첫댓글 시.서.화를 겸비한 귀한 걸작도 감상하고 싶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
저의 버킬리스트였던 그림이라 언제나 초딩입니다.
제겐 그리는 게 중요하지 결과물이 중요한 아니옵니다.
화가들의 그림, 님이 참 부럽습니다.
감상하는 것 그게 제겐 행복입니다.고맙습니다.
교수님의 글 속에 이미 名作이 태어났습니다. 어쩜 글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표현하시는지요! 부럽습니다~^*^
아이구, 선생님 웬 채찍을요. 정말 몰라서 하는 것인데 그리 보시다니요.
손 둘 곳이 없습니다.
찾아주시고 댓글 주셔 감사합니다.
"그저 붓질을 즐거움 삼아 동무하면 된다. 힘들어 못가면 그림 녀석이 나를 끌고 가게 내버려 두면 그만이다.
ㅡ.ㅡ.
좋은 생각 하게하는 아침 글 멋지십니다.
건강하세요🫡
길을 잃을 때가 많은데 그 길을 가르쳐 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채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