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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와 과부 같은 남은 자들 5:1~10
1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낼 자가 없나이다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모욕당하는 유다 백성 5:11~14
11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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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레미야는 유다의 기업이 이방인에게 돌아가고 자신들은 고아처럼 되어 기진한다고 토로합니다. 죄지은 조상은 없어지고, 후손이 그 죄악을 담당합니다. 굶주림으로 피부가 검어지고, 청년들은 맷돌을 지며 다시 노래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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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와 과부 같은 남은 자들 5:1~10
믿음의 사람은 참담한 치욕의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5장은 패망한 유다의 ‘남은 자’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살펴 주시길 바라는 호소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기업으로 받은 토지와 집을 이방인에게 빼앗긴 유다 백성은 고아나 과부와 다름없습니다. 이는 처참한 빈곤으로 이어집니다. 물과 나무를 구하기 위해 값을 지불해야 했고, 살갗이 검어질 만큼 굶주렸으며,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과 앗수르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삶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손에서 자신들을 건져 줄 구원자가 없는 현실에 절망합니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몰락 원인이 조상의 죄악에 있음을 밝히면서도 ‘우리의 범죄’(5:16)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자신들의 기업을 모두 잃은 후 유다 백성은 어떤 신분이 되었나요?
하나님이 참담한 치욕을 허락하실 때,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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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당하는 유다 백성 5:11~14
정복자 바벨론은 피정복자 유다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에게 행한 가혹한 행위를 일일이 진술합니다. 그들이 겪은 비극을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긍휼히 여기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군대는 부녀들과 처녀들을 유린하고 욕보였습니다. 바벨론에 저항한 유다 지도자들은 처형되었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청년들은 강제 노역에 끌려갔으며, 성문에서 백성의 송사를 담당하던 노인들은 사라졌습니다. 기쁨을 잃은 젊은이들은 이제 더는 노래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진노의 심판으로 인해 예루살렘성은 치욕과 불행만이 가득합니다. 심판의 주권자 하나님을 향한 탄원만이 확실하고 유일한 소망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정복자 바벨론은 유다 백성에게 어떤 굴욕을 안겨 주었나요?
내가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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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이 감해지는 길
오늘의 환난은 내 삶의 결론입니다. 인생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내 환난의 기간과 강도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환난당하는 것은 나를 괴롭게 하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남편이 괴롭혀서 고난인 것이 아니고, 재물이 없어서 고난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고난을 자초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 무너지고 망하는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따르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내 환난이 감해지려면 빨리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환난을 감해 주시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정신을 못 차리고 당장 눈앞의 고통을 피하겠다고 자꾸만 다른 길을 찾습니다. 어려울 때 돈이 생기고 주식이 잘되는 것이 곧 환난이 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고 말씀 묵상을 시작하면 환난이 눈에 띄게 감해집니다. 하루하루 말씀으로 살면 하나님이 환난을 감해 주십니다. ‘내가 이 망한 것 같은 사건에서 어떻게 하면 거룩함을 이룰까?’라고 생각하면 사랑이 솟고 언행이 부드러워집니다. 불 가운데로, 물 가운데로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는 평안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게 환난이 감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주신 성경 말씀으로 예방주사를 맞고 순종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환난이 감해집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 / 김양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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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예레미야애가 5장 13~14절
민족의 패망은 청년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유다가 패망하자, 가축이 할 일을 청년들과 아이들이 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가축 수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망하고 강제 노력까지 하게 되니 청년들이 더는 노래하지 않습니다. 비참함에 둘러싸였을 때는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 그분께 호소하며 구원을 간구해야 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최악의 고통과 불운을 만난 사람에게 주님은 낙심하지 않을 이유가 되어주신다. - 조지 포먼
오늘의 기도
주님,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의 탄식 속에서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합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저의 아버지가 되심에도 불구하고, 고아와 같이 사는 저의 연약함을 돌아보소서. 인생의 황폐함 중에도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23 어둔 죄악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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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은 돌아봄의 장인 것처럼 보입니다. 힘들고 처참한 현실에서 열조의 죄악들, 우리의 죄를 깨닫고 주께로 돌이키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는 것입니다.
처참한 현실은 어제 오늘의 잘못된 삶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반복되어온 잘못된 삶의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입니다. 건강하고 하루, 이틀 잘못 살아서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매일 주님 앞에서 깨어 돌이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처음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드리는 예배를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도 말씀 앞에서 내게 선물로 주신 이 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로 잘 살아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그들이 잘못 살아온 세월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도 잘 살아봅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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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진실된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은 다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한다고 당장에 천지가 개벽하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양이 차야 할 것입니다.
70년이라는 때가 차고나면 이 회개의 기도가 분명하게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절한 고난의 자리에 가서야 비로소 가장 복된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다 깨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된 기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이 깊었던 만큼 회개의 기간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부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유다처럼 가기전에 회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 하나님께 회개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
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있음으로
이스라엘이 간구하는 옛적의 영광을 지금 누리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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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 주소서(1-2)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케 함으로 당한 수치와 치욕을 감찰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범죄에 대하여 징계를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징계하셨지만 다시 살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 이심을 알고 그분께 간구합니다. 또한 그분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깊이 사랑하시는지 알기에 그분께 구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셨지만 긍휼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분명 용서하실 것을 알기에 믿고 간구합니다.
묵상하기
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그분의 긍휼하심을 믿고 기도하는가?
2. 곤비한 이스라엘(3-6)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스라엘이 고아와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고아와 같이 아무도 돌볼 자가 없는 비참한 자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동안 누린 모든 경제적인 복도 다 거두어가시므로 힘을 다하여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방법과 힘을 의지하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여기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을 믿고 행동한다면 가장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자가 됩니다. 온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곤비함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만이 곤비함에서 해방시켜 주실 유일한 분이라고 믿는가?
3.죄의 결과
예레미야는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고 큰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렸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지고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들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경제적인 빈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빠졌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징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쁨이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춤은 슬픔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린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가능성도 보이지 안았습니다. 이처럼 죄의 결과가 무섭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두렵습니다.
묵상하기
나는 죄를 짓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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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미야애가 5장
레마: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애5:4)
<본문 관찰>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자신들이 당한 것과 치욕을 살펴봐달라고 기도한다. 자신들은 고아와 과부같이 되었고, 삶의 어려움에 기진하여 쉴 수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도한다. 굶주림으로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어졌고 삶에 노래와 기쁨과 춤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자신들을 잊지 말고 오래 버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가 주께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과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해석 및 적용>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신자의 삶! 그것은 아버지 없는 고아, 남편이 없는 과부의 삶과 같다. 값비싼 것을 제공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것을 얻을 수 있다. 압제하는 자로 인해 기진맥진한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돌보시는 은혜가 없으면 은을 주고 물을 사서 마실 수밖에 없다.
나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내가 수고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게 하시니 감사하다. 은을 주고 물을 마시지 않고 물값을 주고 물을 마시게 하신 감사하다.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니 감사하다. 힘들 때 쉴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시니 감사하다. 죽기를 무릅쓰고 양식을 구하지 않게 하시니 감사하다. 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에 굶주리지 않고 피부가 퍼석하고 아궁이처럼 검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맷돌을 질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하다.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지 않을 체력을 주셔서 감사하다. 때로 절로 노래가 나오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받은 은혜와 긍휼을 세어보면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긍휼이 내 삶에 가득하기에 불평을 가질 수 없다.
지금우리가 누리고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후손에게도 이어갈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며
마음을 다하고,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자녀에게 믿음을 계승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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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애5:16)
교회가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애5:12)
예배당이 팔려 술집이 되고, 심지어 이슬람 사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애5:2)
우리의 범죄 때문입니다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애5:16)
그러나 여호와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살펴보십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애5:1)
살펴보신 후에는 어떻게 할지 아시고 연단하십니다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렘9:7)
그래서 불로 연단하여 순금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그래서 우리를 크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욥7:17~18)
그래서 정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주의 나타나시는 날에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그래서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13:9)
그러므로 불 시험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불을 통과한 후에는 풍부한 곳에 들이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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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여호와를 향해 이스라엘에게 임한 수치와 고통을 계속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4장에서의 절망적 외침의 반복적인 표현과는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기억하소서라는 간구를 시작으로 그들의 현재의 상황은 온갖 기득권을 누렸던 과거의 영광이 모두 자신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직시하고 있는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선택된 민족이었던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받았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 가운데에서도 담대하게 떠날 수 있었고 온갖 거주민들의 세력을 누르고 열방이 부러워하는 영광을 누렸던 경험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따라 세상의 민족들이 값진 것과 수많은 양식들을 취하였고 연약한 민족들을 일꾼들로 불러 자신들의 일에 쓰기도 했습니다.
전쟁에서는 패한 적이 없었고 노예의 신분이 되고 수치와 멸시 가운데 처하게 된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고 무서운 심판의 칼날과 극심한 기근,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유린이 그들을 억누르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오랜 죄악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7절).
죄는 반드시 쌓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는 결국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날마다 그 말씀의 거룩하게 하심 가운데 거할 때 능히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우리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능히 건지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로마서 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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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중심내용
시인은 다시 시온 백성의 비참한 처지를 구구절절 아룁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 조상들의 죗값을 후손들이 치르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기업을 잃음 1~3절
생존의 위협 4~10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약속의 땅의 상속자였던 이스라엘이 일터와 살터를 빼앗기고, 아버지를 잃은 고아가 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살아갈 소망이 없어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들을 버리신 주님께 자비를 구하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침묵하고 얼굴을 돌리고 모습조차 감추신 하나님을 향해, 제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살펴보시라고 부르짖습니다. 주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주님을 기업으로 모시면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4,5절 기업을 잃은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고 피곤합니다. 우물물도 맘대로 길어오지 못하고, 밥을 짓고 밤 추위를 견딜 땔감도 값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악한 지배자들이 심하게 억압했기에 생존을 위해 한시도 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안식의 상실로 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자유를 줄 것 같지만, 그 세상은 폭군의 놀이터가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삶이 참된 자유를 누리며 진정한 쉼을 얻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말씀이 주는 풍요와 자유와 안식을 누립시다.
6,7절 애굽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던 이스라엘이 스스로 애굽과 앗수르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징계를 받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키는 대신 주변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는 악수를 두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불의하고 불법한 세상 방식을 따르지는 않습니까? 악한 세상의 노예로 속박되기 전에 세상과 맞잡은 손을 속히 거두어들입시다.
8~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정복자들의 편에 서서 동족을 짓밟는 기회주의자들(8절)과 굶주린 백성을 기다리는 광야의 약탈자들(9절)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참조. 신명기 23장 15,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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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참상(5:1~8)
선지자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읍과 포로가 된 유다 백성을 돌아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기업과 집을 빼앗기고, 아버지 없는 고아처럼 되었습니다. 바벨론 군사들에게 끊임없이 쫓겨 다니니 쉴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권리를 빼앗겨 땔감으로 쓸 나무조차 돈을 주고 사야 했고, 물도 사서 마셔야 했습니다. 궁핍한 그들은 애굽이나 앗수르 사람에게 손을 뻗어 양식을 얻어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시적인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고난은 조상 때로부터 시작된 죄악을 후손이 답습한 결과였습니다. 죄의 종이 되면 하나님 자녀의 권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의 기도에 묘사된 유다 백성의 삶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나에게서 하나님 자녀의 당당함이 드러나나요? 요즘 영적으로 눌리는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범죄 때문에(5:9~16)
성도의 삶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죄’입니다. 예루살렘은 기근, 수치, 슬픔으로 가득 찬
비참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굶주림을 달래려면 죽기를 무릅써야 겨우 양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적들은 시온과 각 성읍에서 부녀들과 처녀들을 욕보였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에게 존경받지 못했고, 청년들은 노예처럼 맷돌을 돌려야 했으며, 어린아이들은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졌습니다.
성문에 앉아 재판을 행했던 노인들은 이제 그렇게 할 권위를 잃었고, 바벨론 관료들의 불의한 판결을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누렸던 기쁨과 영광도 사라졌습니다. 선지자는 이 모든 것이‘우리의 범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중보자의 기본 태도입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유다 땅에 기근과 치욕과 슬픔이 가득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 적용 질문: 내 마음과 공동체에 기쁨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사라진 기쁨과 찬양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인정해야 하나요?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보며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그들에게 임한 무서운 진노를 보며
제게 임할 심판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소서.
여전히 남아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고 그 자리에 말씀을 깊이 심는 하루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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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치욕을 보시고 긍휼을 베푸소서” 노치형 목사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의 참상을 바라보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선지자는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달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다고 슬퍼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난한 존재이며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러 기진하여 쉴 수가 없다고 애통해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에 빠지므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담한 치욕을 허락하실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시면서도 돌이키면 언제나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어려움을 반복해 간구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모든 세대가 심판에 빠져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죄악을 물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를 묵상하며 계속해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믿음의 세대가 되도록 기도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죄를 되돌아보며 회개하며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도록 기도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멀리한 죄인들이 받아야 할 치욕과 상실과 탈진과 굶주림을
우리가 피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려는 마음들을 모두 버리게 하소서!
기성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악들이
확산되지 않도록 날마다 지켜 보호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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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그들의 예루살렘의 파괴 이후 그들이 살고 있는 처절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그들 앞에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파괴를 당하여 겪고 있는 이러한 모습을 오늘 말씀을 보고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어김으로 죄를 범한 그 모습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La 5:7)
죄를 범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파괴에서 죽었고 그 이후 세대 사람들은 멸망 이후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또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조상들이 이 당시의 이스라엘과 비슷한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었는데 그것에서 깨닫지 못하고 또 그와 비슷한 죄를 범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죗값을 치르는 벌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죗값을 치르는 성경 속의 신앙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또 그 처절한 죗값을 치르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엄한 통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의 파괴 이후 하나님께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해달라고 기도하는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상시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호소'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제 멋대로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하지 말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시여'라고 슬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기뻐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사는 삶을 살 때
하나님도 분명히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면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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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 멸망한 이스라엘을 위해
애통의 눈물을 흘리던 예레미아는
민족의 회복을 위해서 중보기도한다.
계속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죄를 담당하며 백성의 대변자로
민족의 대언자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없이 사는 인생의 비참함과
죄악 가운데 거하는 삶의 고난과 고통과
치욕과 고뇌와 고달픔과 애통을 본다.
유다가 당한 것과 치욕적인 내용은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낯선 사람의 손에
우리의 집들도 외국인에 돌아가고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되고
어머니는 과부 신세가 되며
물을 마실 때도 돈 주고 마셔야하고
땔감도 비싼 값을 주고 사야만되고
종에 불과한 자들이 우리를 다스리고
죽기를 무릎써야 양식을 얻고
예루살렘의 부녀자와 처녀들이 강간을 당하며
지도자들이 매달리어 죽음을 당하고
장로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소년들이 힘겹게 맷돌을 돌려야하고
아이들이 무거운 나뭇집을 지고 비틀거리며
노인들은 성문에 앉지못하고
젊은이들이 노래를 하지 못한다.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춤이 변하여 슬픔이 되었다.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범죄했기 때문에.
죄의 결과들이 너무나크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자녀들을 향해 그 크신 인자로 끝까지 덮어주셔서
오늘도 새롭게 일어나고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직 생명이 주께 있고 그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환난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성령의 사람으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