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르트는 1979년 요한 크라이프의 지도 아래 아약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19세에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87년에 라이카르트는 아약스를 떠나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잠시 머물렀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밀란 소속으로 그는 유럽/남미컵과 챔피언클럽스컵에서 각각 두 번 우승했다. 그는 어떤 위치도 잘 소화해냈다. 밀란에서는 미드필더였지만,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대표탐에서는 중앙 수비수를 맡았다.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전 소속팀인 밀란을 꺾고 우승했다.
22위. 데이비드 베컴
출생: 1975년 5월 2일
국가: 잉글랜드 국가대표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트, 레알 마드리드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1996년 프로 데뷔전인 윔블던과의 경기 도중 하프라인에서 장거리 슛으로 득점해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대담한 슈팅, 정확한 패스와 책임감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대표로 발탁됐지만, 1998년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퇴장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득점력을 회복한 덕분에 잉글랜드는 4년뒤에 다시 본선에 진출했다. 국내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를 주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1999년 소속팀이 리그, FA컵, 챔피언스 리그 등 3관왕을 차지했을 때 햄심 선수였다. 그는 2003년 7월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23위. 보비 무어
출생: 1941년 4월 12일 (1993년 2월 24일 사망)
국가: 잉글랜드 국가대표
클럽: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풀햄, 산 안토니오 썬더, 시애틀 사운더스
무어는 1960년대 영국 축구의 총아였다 그는 웸블리 구장에서 3년 연속 승리팀의 주자이었다. – 웨스트 햄 소속으로 1964년 FA컵 우승, 1965년 컵위너스컵 우승, 잉글랜드 대표선수로 1966년 FIFA 월드컵 우승, 무어는 모범적인 중앙 수비수이자 주장이었고, 1962년 페루와의 경기에 잉글랜드 대표로 데뷔해 10년동안 108경기에 출장하면서 단 10경기에만 출전하지 못했다. 무어는 1958년부터 1974년까지 웨스트 햄 소속으로 544경기에 출장했고, 1976년에 은되할 때까지 풀햄 소속으로 124경기에 출장했다.
24위. 로베르토 바조
출생: 1967년 2월 18일
국가: 이탈리아 국가대표
클럽: 비첸차,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AC 밀란, 볼로냐, 인테르 밀란, 브레시아
바조는 비첸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다섯 번째 시즌에서 그는 17골을 기록하면서 피오렌티나를 UEFA컵 준결승까지 이끌었지만 유벤투스에게 져 탈락했다. 그 후 유벤투스는 논란 끝에 바조를 영입했다.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넣었고, 4년 뒤에는 이탈리아를 결승전까지 이끌었으나 브라질과의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다. 1993년에 바조는 FIFA선정 ‘올해의 축구선수’와 ‘올해의 유럽 축구선수’상을 모두 휩쓸었다.
25위. 미카엘 라우드룹
출생: 1964년 6월 15일
국가: 덴마크 국가대표
클럽: 브뢴드비, 라치오,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비셀 고베, 아약스
미카엘 루우드룹은 1986년 FIFA 월드컵 우르과이 전을 6-1 대승으로 이끌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덴마크가 1992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에는 리차드 뮐러 닐센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야했다. 우벤투스 소속으로 유럽/남미컵에서 우승했다.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챔피언클럽스컵에서도 우승했고, 리그에서 5번(바르셀로나에서 4번 레알 마드리드에서 1번)우승한 뒤 스페인을 떠났다. 그는 은퇴하기 전 아약스 소속으로 네더란드 리그와 컵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26위. 로날드 쾨만
출생: 1963년 3월 21일
국가: 네덜란드 국가대표
클럽: 그로닝엔,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바르셀로나, 페예노르트
쾨만은 훌륭한 스위퍼로써뿐만 아니라 가장 뛰어난 프리킥 전문가들 중의 하나도 칭송 받았다.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가 챔피언클럽스컵에서 우승할 때 결승전에서 프리킥으로 득점을 기록했다. 그는 1988년 같은 대회에서 PSV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우승하기도했다. 쾨만과 그의 형제인 어윈은 아버지가 선수로 있었던 그로닝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네덜란드가 198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에도 같이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그 해에 로날드 쾨만은 챔피언클럽스컵, 네덜란드 리그, 리그컵 등 3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1989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 팀을 네 번의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챔피언클럽컵에서도 우승했다.
27위. 피터 슈마이켈
출생: 1963년 11월 18일
국가: 덴마크 국가대표
클럽: 히도브르, 브륀드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포르팅 클루베 데 포르투갈, 아스톤 빌라, 매체스터 시티
슈마이켈은 승부욕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수이다. 선수생활 초기에 덴마크 리그에서 보여준 노력으로 그는 1991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는데 성곡했다. 슈마이켈은 1988년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덴마크에서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됐고, 1992년 덴마크가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고, UEFA컵 로토 볼고그라드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는 15세에 청소년 국가대표였고, 17세에는 리그 최고의 선수였으며, 18세에는 국가대표 주전 선수가 됐다. 그는 19세에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북아일랜드를 상대로 국제경기 첫 득점을 기록했다. 그 다음해에 하지는 국내 리그에서 20골을 기록해 득점왕에 올랐고, 1986년에는 한 경기에 6골을 넣은 것을 포함해 31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부쿠레슈티 소속으로 3년 연속 리그와 컵 2관왕을 차지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에서도 활약했다. 2000년에는 갈라타사라이 소속으로 UEFA컵에서 우승했다.
29위. 제프마이어
출생: 1944년 2월 28일
국가: 서독 국가대표
클럽: TSV 하르, 바이에른 뮌헨
마이어는 1966년에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는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할 때만해도 3순위 골키퍼에 지나지 않았지만, 1972년에 서독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주전 골키퍼로 성장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챔피언클럽스컵에서 세 번 우승했고, 1976년에는 유럽/남미컵에서도 우승했다. 그의 전성기는 1974년이었는데 그 해에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처음 챔피언클럽스컵에서 우승했고, 몇 주뒤에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마이어는 바이에른 소속으로 473경기에 출장했고 422경기 연속 출장 갖도 갖고 있다.
30위. 올리버 칸
출생: 1969년 6월 15일
국가: 독일 국가대표
클럽: 칼스루어, 바이에른 뮌헨
칸은 독일이 결승에 진출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MVP로 선정되었다. 그는 칼스루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4년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고, 2001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뿐만 아니라 분데스리가와 리그컵에도 우승했다. 올해의 축구선수에 두 번 뽑힌 바 있는 칸은 1994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로 선발되긴 했지만 1년 후에야 데뷔전을 치룰 수 있었다. 그는 1998년 월드컵 이후에 주전 골키퍼가 됐고, 나중에는 클럽과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게 됐다.
첫댓글 슈마이켈 아직도 맨체스터 시티에 있나요? 은퇴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