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7. 15. 월요일.
해가 빨근하게 떴다. 오늘은 초복 복날이니 무척이나 덥겠다.
내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내 글 검색하다가 아래 산문일기를 보았기에 여기 삶방에 올린다.
어제는 대전 사는 막내여동생의 아들(1녀 1남)의 결혼식이 서울 용산구 삼각지 전쟁가념관 안에 있는 웨딩홀에서 있었다.
하나뿐인 외삼촌인 나는 등허리가 잔뜩 휘어진 늙은이라서 결혼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내 아내와 큰딸 큰아들 작은아들이 참석했고, 아내가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에 있는 내 시골집으로 가고 싶은데도 가지 못한다.
"한번 시골에 다녀오지?"
라고 말을 해도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시골에 가면 당신 또 일할 것이지요? 그 아픈 허리로 마을안길을 청소하려고요?"
내 텃밭 세 자리 가생이로 마을안길이 지나간다.
길게 이어지는 길 양쪽에는 우거진 나뭇가지이며, 잡초들이 무척이나 많이 웃자랄을 것이다.
내가 톱과 왜낫으로 과일나무, 조경수목 등의 곁가지를 잘라내고, 예초기를 등에 짊어지고는 풀을 깎아야 할 터.
아쉽게도 지금 내 등허리뼈는 활처럼 휘어져서 조금이라도 무거운 물건을 쳐들려면 오만인상을 다 쓰면서 허리뼈를 곧추세우려고 안간힘을 다 써야 한다. 통증으로 혀를 내휘두르면서.
내 텃밭 안에 있는 과일나무 가운데 무화과도 있다.
1960년 대전의 아버지가 트럭으로 과일묘목을 가져와 텃밭에 심었건만 일꾼아저씨가 제대로 가꾸지 못해서 실패했다.
그 당시의 묘목 가운데 무화과도 있어서... 지금껏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후식(後食)
최윤환
동그란 흰 접시에 무화과 두 개, 포도알이 잔뜩 담겼다.
그저께 시골집 주변에서 베어 온 머위잎을 고추장 찍어서 점심밥을 쌉싸하게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아내는 후식으로 가을 과일을 내놓았다.
올해 비가 자주 내렸는지 무화과가 제법 열었다. 몇 개 딴 뒤에 서울로 가져 왔다.
포도는 고향 포도산지(남포면 사현리)에서 구입한 것이고.
후식을 먹지도 않고 내려다보면서 고향 냄새를 맡는다.
요즘 무화과가 익어 가는 계절이다.
올 들어 두 번째로 익어 간다.
무화과가 잘 익었는지 아직 설었는지를 나보다 먼저 확인하는 놈들이 으례껏 있었다.
날카로운 부리로 콕콕 쪼아서 무화과를 파 먹는 새의 횡포다.
새들보다 게으른 나로서는 무화과가 제대로 완숙하기를 기다릴 방법이 없었다.
조금 더 익기를 기다렸다가는 아예 새와 나비들의 잔치가 되였기에 조금은 덜 익었어도 따서 냉장고에 후숙해야 했다.
단맛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무화과가 덜 익으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내의 차지.
서울로 잔챙이 이십여 개쯤 가져왔는데도 아내는 오늘은 먹지 않았는지 내게 후식으로 내 놨다.
나는 점심 뒤 칫솔질을 정성들여 했으므로 이 후식을 먹지 않았다.
칫솔질을 또 해야 하니까.
시골집에는 몇 그루의 무화과 나무가 있다.
지중해 해양성 기후에 재배하기 적합한 무화과는 한국의 노지(맨땅)에서는 재배하기가 어렵다. 기온이 따뜻한 고장이라야 재배할 수 있다. 물론 대천해수욕장 부근에서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기는 한다. 비닐하우스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냥 노지에서 재배한다. 고향에서 무화과를 키운 한 지는 벌써 50년이 넘었건만 무화과는 증식은 거의 없었다. 50여 년 전, 과수원을 경영하려다가 실패한 아버지. 그때 들여왔던 무화과.
나 역시 객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기에 무화과의 증식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른 봄철 해동 직전(특히 3월 말)에 동해를 입기 십상이기 때문에 나무 등치의 굵기가 그다지 굵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무화과의 수확량이 극히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도 올 여름에는 잦은 비와 그다지 날씨가 무덥지 않은 탓으로 무화과의 성장세력이 좋았으며, 예년에 비해 수확량도 늘었다.
시중에서 나온 무화과는 대체로 남녁지방(전남 영광 등) 생산물이다.
크기가 굵고, 겉표면이 더욱 짙다. 맛은? 글쎄다. 아내는 남녁지방의 무화과에는 눈길을 별로 주지 않았다. 맛을 알기에.
남녁지방의 무화과 종류도 두어 그루 있으나 맛을 아는 나로서는 그다지 증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집 텃밭에서 나는 굵기가 자잘한 것에 욕심을 더 낸다.
그런데 산이 가까운 탓으로 작은 새가 와서 쪼아 먹으며, 나비와 나방이들도 왜 그리 많은 겨? 올 가을에 처음에 양파망 세 개를 뒤집어 씌웠다. 몇 개는 제대로 익겠지.
대천해수욕장 입구 요암동에는 비닐하우스로 무화과를 재배하며, 여름해수욕철에 판매한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하려면 그만큼 생산비가 높다는 뜻일 게다. 맛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 비싼 과일을 내가 살 리는 없고...
시골에서 사는 재미는 이런 것에도 있을 것 같다.
집 주변에 과일 나무 몇 종류를, 몇 그루씩이라도 심어놓으면 절기마다 색다른 입맛을 즐길 수 있다.
하나의 예다. 요즘 물렁감이 발그스레하게 익었다. 물러쳐져서 땅바닥에 떨부덕 떨어졌다. 어렷을 적에야 물렁감을 주어 먹었으나 노년기에 든 지금에는 물렁감 먹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맛이 너무 없다. 아니 맛이 밋밋하고 지리기 때문이다. 늦가을철 찬서리가 내릴 무렵에 홍시로 먹는 게 최고의 맛이다.
지난해 가을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고사했다. 이유를 모르는 채.
올해에는 밤을 전혀 수확하지 못할까? 아니다. 어린 묘목을 심은지 여러 해가 되었으므로 어린 묘목에도 밤송이가 조금씩은 매달렸다.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껏은 풋밤/햇밤을 수확할 게다.
이쯤 잡글 쓰고는 서점에 나가 농사에 관한 책을 고르면서 오늘 오후를 보내야겠다.
무화과 두 개가 담긴 접시를 보고서 공연히 잡글만 길게 늘여 썼다.
2014. 9. 17. 수요일. 바람의 아들 최윤환
한 분뿐인 어머니를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킨 뒤에는 나는 농사를 완전히 포기한 채 병원에서만 머물렀다.
어머니가 만95살이 된 지 며칠 뒤인 2015. 2. 25. 밤 11시 15분에 돌아가셨기에 서낭댕이 앞산에 있는 선산, 아버지의 무덤 한 자락을 파서 합장해 드린 뒤 그참 서울로 올라온 나.
어머니한테는 아들이 하나뿐이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텃밭 농사를 포기한 지도 만10년이 넘었으니....
고향집을 완전히 떠난지는 2015. 3. 초순.
또 내려가고 싶다.
고향 앞으로....
잠시 쉰다.
눈이 감기고, 양쪽 귀에서는 윙윙 시끄러운 소음이 들린다.
피곤하면 나타나는 증상....
2024. 7. 15. 월요일.....
오늘이 초복이다.
10일 뒤인 7. 25에는 중복이고, 말복은 20일 뒤인 8월 15일.....
첫댓글
세상에나.
이 글 복사해서 올리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잠이 들었다니....
최선생님 많이
피곤하신 거 같아요.
건강하세요.
최선생님 다정다감
한 글에 쉬어 갑니다.
무화과 나무나 과일
도 잘 보았습니다.
더욱 건강하시어
좋은 글 기대합니다.
즐거운 하루가 되세요.
피곤하시면 쉬어
가시면서 글 쓰세요.
서점에 가신다는
말씀 또한 반갑습
니다.
저도 요즘 도서관에
가서 민법이나 민사
특별법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그냥 심심해서 강남
구립도서관에 다닌
답니다.
@서울 김일제
김일제 소설가님 댓글 고맙습니다.
김일제 소설가님은 대학에서 법률학을 전공했기에 법에 대해서는 식견이 높을 것인데도 지금도 법을 더 공부하는군요. 특히나 민법, 민사특별법에 집중하시니....가진 게 많으신가 봅니다.
저는 정치외교학 전공에 행정학 법률학을 가미했지요.
퇴직 전후로는 식물학에 관심을 가져서 야생화에 집중했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자니 답답합니다.
그저 멍멍하게 삽니다. 문학카페에 들러서 옛일이나 회상하면서 잡글이나 끄적끄적거리지요.
이런 류의 잡글은 아마도 10,000건이나 될 것 같군요. 제 눈에는 모든 게 다 글감이 되기에....
@최윤환 최선생님 편안한 시간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