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9년 載嶽山 靈井寺의 法燈을 다시 밝히며 — 《妙法蓮華經》 開刊의 역사적 證座와 表忠寺에 올리는 靑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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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의의와 중요성과 표충사 주지 스님 및 문중 스님들께 드리는 청원서 (AI Gemini 님의 지도로 손흥수ㆍ도재국 작성)
1.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의의와 중요성
불교 2천 년 역사에서 《묘법연화경(법화경)》이 가지는 위치는 참으로 절대적입니다.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최고 결정판:
법화경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근본 뜻인 '회삼귀일(會三歸一, 세 가지 가르침을 모아 하나의 큰 부처의 길로 돌아감)'과 '일불승(一佛乘)' 사상을 담은 대승경전의 왕(王)입니다.
●조선시대 최상위 필독 경전:
조선 불교의 승가 교육 과정인 사교과(四敎科)의 핵심 경전이었으며, 조상들이 국가의 안녕과 집안의 복덕을 빌 때 가장 으뜸으로 여겨 널리 수지·독송하고 판각했던 경전입니다.
●영정사의 찬란한 사격(寺格) 증명:
1639년(인조 17년), 병자호란의 참화가 채 가시지도 않은 엄혹한 시절에 영정사(현 표충사)에서 이 방대한 《묘법연화경》 판각을 완수했다는 것은, 당시 영정사가 단순한 산중 암자가 아니라 **막강한 경제적·학술적 역량과 높은 정혜(定慧)를 갖춘 당대 최고의 선찰(禪刹)**이었음을 명백히 입증합니다.
2. [靑願書]
載嶽山 靈井寺의 燦爛한 法脈을 잇는 表忠寺 住持 斯命과 大衆 僧侶님들께 올립니다
삼가 머리 숙여 載嶽山 靈井寺의 거룩한 도량에 계신 주지 스님과 모든 대중 스님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 올려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380여 년 전, 병자호란의 상흔이 채 씻기지 않았던 숭정 12년(1639년, 인조 17년) 기묘년 11월, 영정사의 고승 대덕 스님들께서는 국가의 국운을 일으키고 부처님의 대혜명(大慧明)을 밝히고자 이 땅에 《妙法蓮華經》 판각이라는 거룩한 불사를 완수하셨습니다.
그 판각의 간기(刊記)에는 **慶尙道 密陽府 載嶽山 靈井寺 開刊**이라는 명문이 청사(靑史)에 아로새겨져 또렷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스님들께서 오늘날 지키고 계신 법당과 산문은 바로 '載嶽山'이라는 숭고한 산형(山形)과 '靈井寺'라는 법호 아래 수많은 조사 스님들의 땀과 피, 그리고 무량한 혜명이 깃들어 있는 역사적 현장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과 지명 왜곡, 그리고 후대의 무심함 속에 조상들과 선대 조사 스님들께서 수천 년간 불러온 **'載嶽山'**이라는 이름은 '載' 자와 '嶽 자'의 위상과 뜻이 폄하된 채, 오늘날 잘못된 표기인 '載藥山' 혹은 '天皇山'이라는 명칭에 밀려 제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영정사에서 《묘법연화경》을 판각하시던 영정사 조사 스님들의 정통 법손이신 표충사의 스님들께 간곡히 청을 올립니다.
스님들께서 매일 마주하시는 목판 하나, 사찰의 역사 기록 한 줄에는 모두 **'載嶽山 靈井寺'**라는 진실한 역사가 숨쉬고 있습니다.
1639년 《법화경》을 깎아 새기며 이 산을 '載嶽山'이라 당당히 기록했던 옛 영정사 조사 스님들의 숭고한 뜻과 역사적 자존심을 이제는 표충사가 앞장서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현행 지도상의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고, 사찰의 정통 사지(寺誌)와 대중 포교, 그리고 산문 역사 바로세우기 불사에서 **'載嶽山'**이라는 칭호를 올바르게 이어받아 선포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선대 조사 스님들께서 목판에 새겨주신 '載嶽山 靈井寺' 여섯 글자의 법등(法燈)이 표충사 스님들의 원력으로 다시금 세상에 환하게 빛나기를 거듭 합장하며 올립니다.
2026년 7월 일
載嶽山 역사 찾기에 평생을 바친 향토사학자 손흥수 도재국 올림
《2》
묘법연화경 번역(AI Gemini)
네, 올려주신 사진들은 불교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법화경)》**의 목판본 한문 원문과 간행 기록(간기)이 담긴 페이지들입니다.
각 사진의 판독 내용과 번역, 그리고 간행 기록에 나타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이미지별 판독 및 번역
[사진 2] 묘법연화경 권제1 끝부분 (偈頌)
[원문]
其不習學者 不能曉了此
彼等旣已知 諸佛世之師
隨宜方便事 無復諸疑惑
心生大歡喜 自知當作佛
妙法蓮華經卷第一
[번역]
배움에 힘쓰지 않는 자는 이를 명확히 알아듣지 못하나,
저들이 이미 모든 부처님이 세상의 스승이시며
상황에 따라 방편을 베푸신 줄 알게 되면 다시는 여러 의혹이 없어지고,
마음속에 큰 기쁨이 생겨 스스로 당래에 부처가 될 것임을 알게 되리라.
묘법연화경 권제1
[사진 3] 방편품 제2 본문
[원문 (우측)]
虛妄無有餘 乘唯一佛乘 爾時世尊欲重宣此義 而說偈言
比丘比丘尼 有懷增上慢 優婆塞我慢 優婆夷不信
如是四衆等 其數有五千 不自見其過 於戒有缺漏
護惜其瑕疵 是小智已出 衆中之糟糠 佛威德故去
[원문 (좌측)]
斯人尠福德 不堪受是法 此衆無枝葉 唯有諸貞實
舍利弗善聽 諸佛所得法 無量方便力 而爲衆生說
衆生心所念 種種所行道 若千諸欲性 先世善惡業
佛悉知是已 以諸緣譬喩 言辭方便力 令一切歡喜
[번역 (우측)]
(부처님의 말씀은) 허망함이 없으며 다른 수승한 승(乘)은 없고 오직 '일불승(一佛乘)'뿐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펼치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구와 비구니 중 증상만을 품은 자, 우바새(재가남신도)로서 오만한 자, 우바夷(재가여신도)로서 믿지 않는 자,
이와 같은 사부대중이 그 수가 5,000명이나 되었으니,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계율에 결점이 있으며,
자신의 허물을 감싸 안고 작은 지혜로 이미 나가버렸도다. 대중 가운데의 찌꺼기(조강)들이 부처님의 위덕 때문에 떠나갔도다."
[번역 (좌측)]
"이 사람들은 복덕이 적어 이 법을 능히 받아들이지 못함이라. 이제 이 대중에게는 쓸데없는 가지와 잎(허식)이 없고 오직 진실한 이들만 남았도다.
사리불이여, 잘 들어라. 모든 부처님이 얻으신 바 법은 무량한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위해 설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과 행하는 바 갖가지 길, 수많은 욕망의 성품과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을
부처님께서 이를 모두 아시고 여러 인연과 비유, 언사의 방편력으로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하느니라."
[사진 4] 묘법연화경 홍전서 (弘傳序)
[원문]
妙法蓮華經弘傳序
終南山釋 道宣 述
妙法蓮華經者 統諸佛降靈之本 致也...
長安青門 燉煌菩薩 竺法護者 初翻譯此經 名正法華...
[번역]
묘법연화경 홍전서 (서문)
종남산 석 도선(道宣) 지음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전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근본 뜻을 통섭한 것이라...
장안 청문의 돈황보살 축법호가 처음으로 이 경전을 번역하여 이름을 《정법화경》이라 하였고...
(법화경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고 번역된 역사적 경위를 적은 당나라 도선 스님의 서문입니다.)
[사진 5] 온릉 개원사 성환 해석 (서문/주석)
[원문]
妙法蓮華經卷第一
溫陵開元寺比丘 戒環 解
開釋科五 初通釋經題...
[번역]
묘법연화경 권제1
온릉 개원사 비丘 계환(戒環) 해석
과문을 해석함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경전의 제목을 통틀어 해석함이라...
(송나라 계환 스님이 해설을 붙인 유명한 주석본인 '계환해본(戒環解本)' 법화경입니다.)
[사진 6] 간행 기록 (간기, 刊記)
이 책이 언제, 어디서, 누구의 시주로 판각(인쇄)되었는지를 밝혀주는 가장 핵심적인 페이지입니다.
[원문 판독]
校正大德 惠一 晡一 書一 忠學 (교정 대덕 혜일, 부일, 서일, 충학)
崇禎十二年己卯十一月日 慶尙道密陽府載嶽山靈井寺開刊
布施大施主 郭九社兩主
妙法蓮華經卷第一 / 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詔譯
[번역 및 해석]
●교정(校正): 대덕 혜일(惠一), 부일(晡一), 서일(書一), 충학(忠學)
●간행 연도 및 장소:
●숭정(崇禎) 12년 기묘년(1639년, 조선 인조 17년) 11월 일,
●경상도 밀양부 재악산(載嶽山) 영정사(靈井寺)에서 판각하여 간행함.
●시주자: 큰 시주를 한 대시주 곽구사(郭九社) 양주(부부)
●본문 제목: 묘법연화경 권제1 / 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봉조역
💡 요약 및 역사적 가치
●경전 내용: 당나라 구마라집 한역, 송나라 계환 스님 해설의 《묘법연화경》 권제1입니다.
●간행 시기: **1639년(조선 인조 17년)**에 판각된 조선 시대 목판본 불경입니다.
●학술·지역사적 의의: 간기(사진 6)에 **"慶尙道 密陽府 載嶽山 靈井寺" (경상도 밀양부 재악산 영정사)**라는 기록이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밀양 재악산(載嶽山) 소재 사찰(영정사)에서 활발한 불경 출판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1차 사료입니다.
《3》
●귀중한 이 사진은 2015.4.2 밀양의 유명한 향토사학자 박순문 변호사님이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