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못쓰게 망가졌어도 그에게도 어젯밤이 있었으리 달빛 비치는 수돗가에 양말과 속옷 빨아서 널고 핏기 잃은 이부자리를 가만히 쓸어도 보았으리 외길 못 벗어난 하루가 달빛에 번들거렸으리
담배 사는 것도 잊어먹고
불빛에 반짝일수록 더 가난해지는 백동전을
이빨로 깨무는 밤이다
<시작노트>
누구든 과거가 없고 추억이 없으랴. 파란만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목을 세울 법한 일은 누구든 지니고 살지 않으랴. 또래들보다 정신연령이 한참 모자랐던 나는 지금도 못난이 축에 낀다. 이런 나를 몰고 옛길을 돌아보는 길. 남들이 나를 반편이라고 부르든 말든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욕망이 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어도 내 몸은 아직도 욕망의 집이 되어 있고, 잊을 것을 못 잊고 산다. 그래서 반편이 머리가 자주 무거운가 보다.
이병초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고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가 있다. 여기에 소개된 「외발자전거」는 최근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