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이동민
20년 쯤 전이었으리라.
화원에 있는 경주 이씨 종중 묘역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상화 시인의 무덤을 비롯하여, 내가 알고 있는 쟁쟁한 분의 묘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상화시인을 만나려 간 것이 아니고 묘역을 보려고 갔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는 묘소 만드는 것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죽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싸들고 가버리는데, 이 세상에다 흔적을 남겨두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화장한 재를 산속에 뿌리니, 바다에 뿌리니 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 주장에는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영혼이란 것은 없다. 지금까지 영혼을 합리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하였으니, 죽음 뒤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라는 것이다. 이유를 하나 더 든다면 자식들에게 무덤 관리라는 짐을 떠안겨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걱정도 있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로서는 선 듯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마침 상화 시인이 묻혀있는 묘역의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 간 이유라면 내 무덤을 남기는 길을 찾을까 해서였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들은 이런저런 말들은 모두 핑계이고, 세상살이가 바빠지는데, 묘역관리가 힘들면 어느 후손이 들보는가. 내가 돌보지 않는 묘의 주인이 되어서 보기 흉한 모습으로 남느니, 아예 그럴 소지를 없애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답은 묘역관리가 힘들지 않도록 묘소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 안될까.
이곳은 작은 봉분의 산소가 서로 가깝게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무덤 앞에 묘주를 소개하는 아주 작은 상석만 있었고, 별다른 표지석도 없었다. 저쪽 구석 자리의 산소 앞에 크다란 돌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그 한 기의 비석이 눈에 매우 거슬렸다. 고요를 깨는 소음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이곳을 다녀가서, 형님들과 의논하여 우리 형제들이 갈 묘역을 만들기로 했다. 분봉은 아예 만들지 않고, 자그만 돌비석만 세운다. 비석 아래에 화장을 한 부부의 유골함만 묻으므로 이씨의 종중 산소보다 더 간략하게 하기로 했다. 비석을 다닥다닥 세우면 차지하는 공간은 아주 좁아진다. 후손들의 묘역 관리가 훨씬 수월하리라.
몇 년 전에 고향 산골에 작은 땅을 구하여 묘역을 그렇게 만들어 두었다. 아직은 그곳에서 쉬는 분은 아무도 없다. 나는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을 확인하려 한 번씩 찾아간다.
대구문협에서, 이번 답사지를 경주 이씨 종중 묘역으로 정했다며 연락했다. 나는 옛날 생각을 하면서 기꺼이 참여했다. 상화 시인의 가계는 대구에서 어느 가문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번창한 명문가이다, 문중을 자랑하는 기념관도 문중에서 지었다며 자랑했다. 그집 집안의 어른 분이 나와서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선대이며, 자료들을 소개해주었다.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산소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문중 사람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잔치도 하고, 제사 준비도 하는 집도-. 제실이다. 그러나 제사를 올리는 집이 아니다. 제실을 둘러싼 나무는 녹음이 짙어 한국화의 한 폭 마냥 한가롭다. 집 앞을 지나면 제사를 올리는 집이 나온다. 위패가 없으니 사당은 아니고, 뭐라고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 뒤의 언덕빼기에 묘소들이 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심인데도 시골의 한 자락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이게 아닌데.’
묘소를 바라 본 내 느낌이다. 작은 분봉이 줄 지어 있는 것은 그대로인데, 여기저기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비석들이 부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가문이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도 비석이 없는 작은 산소를 만든 것이 바로 자랑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찾았다, 오늘도 우리가 답사를 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묘역 여기저기에 솟아 있는 비석들로 하여, 조화를 잃어버렸다. 조화를 잃으면 추해진다. 선대의 뜻을 읽을 줄 모르는 후손이 겉만 번지르하게 비석을 세운 것일까. 후손은 겉과 달리 안속은 초라해진 자신이 부끄러워서 일까.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묘열의 맨 아래 쪽에는 어릴 때 우리집의 마당에 놓여 있던 평상보다도 더 큰 돌판이다. 제사를 올릴 때에 제수를 올리는 제사상의 모습이다. 답사를 온 일행은 모두가 그렇게 알았다.
“아, 예. 이건 제상이 아니고, 이것도 무덤입니다. 제사는 아래의 집에서 ------.”
우리가 제상이라고 의견을 모았는데 안내하는 문중 분의 말이다.
“절목에 작은 분봉의 무덤으로 모시기로 하셨다면서요.”
“예 맞습니다. 그래도 후손이 와서 꿈 이야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하겠다고 떼를 쓰니, 어떻게 합니까.”
돋보이려 만든 무덤이지만, 선대의 뜻을 읽지 못한 모양이 흉하기만 하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텅텅비어 있음이 선히 보인다.
나는 일찍부터 나의 산소를 남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추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