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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로벌선교연구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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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
1970 |
1975 |
1980 |
1985 |
1990 |
1995 |
개신교 |
2,236,000 |
3,205,309 |
4,019,313 |
7,180,627 |
10,312,813 |
12,532,110 |
13,909,284 |
천주교 |
595,900 |
765,109 |
1,012,209 |
1,321,293 |
2,423,181 |
2,739,200 |
3,580,113 |
불 교 |
4,551,370 |
6,024,539 |
11,972,930 |
12,329,720 |
19,897,366 |
22,769,020 |
22,400,050 |
유 교 |
4,223,000 |
4,423,000 |
4,723,493 |
5,182,902 |
10,290,167 |
10,204,720 |
10,185,001 |
기타 종교 |
2,311,720 |
2,412,242 |
3,548,208 |
4,477,813 |
5,164,210 |
7,053,580 |
18,294,904 |
총 계 |
13,917,990 |
16,830,199 |
25,276,153 |
30,492,355 |
48,087,737 |
55,298,630 |
68,369,352 |
총인구 |
28,578,000 |
30,720,000 |
33,949,000 |
37,440,100 |
40,419,652 |
42,790,000 |
44,554,000 |
아래 표2와 이것을 그래프로 나타낸 그림1은 1983년 이래로 전체 인구에 대비하여 종교간의 교세 변화를 보여준다. 이것은 정부가 조사한 자료와 한국 갤럽을 포함한 사회통계조사 단체가 조사한 자료들에 기초한 것이다. 통계의 신뢰성은 표2가 표1보다 높다.
표2. 전체 인구 대비 신도 점유율 동향:1983-1997 (한국갤럽 1998:218)
믿는 종교 |
정부통계 (1983) |
갤럽 (1984) |
인구조사 (1985) |
갤럽 (1989) |
사회통계 (1991) |
사회통계 (1994) |
인구조사 (1995) |
갤럽 (1997) |
개신교 |
13.45 |
17.2 |
16.0 |
19.2 |
18.6 |
18.2 |
19.7 |
20.3 |
천주교 |
4.01 |
5.7 |
4.6 |
7.0 |
5.7 |
5.9 |
6.6 |
7.4 |
불 교 |
18.92 |
18.8 |
19.9 |
20.9 |
27.6 |
24.4 |
23.2 |
18.3 |
기타 종교 |
2.90 |
2.6 |
1.96 |
1.9 |
2.1 |
1.5 |
1.3 |
0.9 |
무 교 |
60.71 |
55.8 |
57.44 |
51.0 |
46.0 |
50.1 |
49.3 |
53.1 |
총 계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조사대상자 나이: 갤럽(18세 이상), 정부 통계와 인구조사(모든 연령), 사회 통계(15세 이상) |
그림1. 전체 인구 대비 신도 점유율 동향:1983-1997
이상의 표1, 표2(그림1)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드러내준다.
1. 불교, 개신교 그리고 천주교의 신도수는 1960년 이후 30년 동안 상당히 증가했다. 이 증가는 무종교인수의 감소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1에서 보는 대로 80년대 무종교인수의 감소가 현저하게 나타났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2. 불교의 경우에 있어서 1991년 이후로 신도수가 꾸준하게 감소되었다. 이것은 무종교인의 의 증가와 상반되는 현상이다(그림1을 보라). 불교신도수의 증가(감소)는 무종교인수의 감소(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3. ‘기타 종교’는 1983년 이후 꾸준하게 감소해 왔다(표2, 그림1).
4. 표1에 따르면 주요 종교(불교, 기독교, 유교)의 교세성장율은 1985년 이래로 감소해 왔다. 예외적으로 천주교는 1990년 이후로 그 성장율이 회복되었다(표2, 그림1).
5. 개신교의 신도수는 1975년과 1980년 사이에 급속하게 증가했다(표1).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현상이 두 번의 전국적 복음전도 집회인 1974년 엑스폴로와 1980년 세계복음화대회에 기인한 것으로 동의하고 있다(Yoo 1987:219; Kim 1995:29).
6. 개신교는 1990년 이후 수적으로 감소추세를 경험했다. 이 감소추세는 1994년까지 계속되었다. 1995년 이후 교세는 조금씩 증가되고 있다(그림1).
7. 대조적으로 천주교의 교세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8. 출생률과 인구증가율은 주요 한국종교의 신도수 동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다.
1.2 한국개신교 내의 교세(신도수)동향 비교
여기에 나타나는 자료들은 개신교 각 교파들이 보고한 통계자료들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와 사회조사기관에서 독자적으로 개신교 교파들의 신도수 동향에 관하여 조사한 바는 없다.
표3. 1960, 1969, 1977, 1984년도의 교파별 신도수와 백분율
(아래 통계표는 한국기독교연감 1965, 1985; 한국기독교대연감 1991; 한국종교연감 1993, 1995, 1996-7에서 취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
1960 |
1969 |
1977 |
1984 |
장로교 |
570,000 (54.8%) |
1,371,507 (43.0%) |
2,223,620 (44.5%) |
5,121,737 (60.5%) |
감리교 |
286,297 (27.5%) |
317,281 (9.9%) |
587,243(11.7%) |
1,007,737 (11.9%) |
성결교 |
93,414 (9.0%) |
215,289 (6.7%) |
373,941 (7.5%) |
712,464 (8.4%) |
침례교 |
4,425 (0.4%) |
64,171 (2.0%) |
183,061 (3.7%) |
505,300 (6.0%) |
오순절 |
3,293 (0.3%) |
29,986 (0.9%) |
214,788 (4.3%) |
762,687 (9.0%) |
기타 |
82,685 (7.9%) |
1,194,387 (37.4%) |
1,418,838 (28.4%) |
350,210 (4.1%) |
총계 |
1,040,114 |
3,192,621 |
5,001,491 |
8,460,135 |
(기타에는 구세군, 나사렛 교회, 제칠일안식교, 여호와증인, 전도관, 통일교 같은 새로운 종파와 분파들을 포함한다.)
표3에서 1960년과 1969년을 대비할 때 주류교회인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세성장률이 비주류교회들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기타’ 범주보다도 낮다. ‘기타’ 범주의 급속한 수적 성장에 관하여 이정석(Rhee 1995:278; 참고, 민경배 1993[1982]:537-542)은 1950-60년대, 한국전쟁, 남북의 분단, 극심한 물질적 빈곤과 질병에 직면했을 때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신비적이며 기복신앙의 사이비 기독교종파 운동’에 끌려 들어갔다고 말한다. 가장 강력한 종파는 박태선의 전도관과 문선명의 통일교였다. 오순절과 침례교는 1960-1984년 동안 꾸준한 교세 증가를 보여준다.
장로교는 1977-1984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했다. 장로교의 급속한 성장은 다음에 나오는 표4에서처럼 주류교회(장로교와 감리교)와 비주류교회 사이의 교세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러한 교세 격차는 표3에 나타나 있듯이 ‘기타’ 범주의 급격한 쇠퇴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래 표4와 표5는 한국기독교연감 1965, 1985; 한국기독교대연감 1991; 한국종교연감 1993, 1995, 1996-7의 통계자료로부터 산출한 것이다.)
표4: 주류교회와 비주류교회 간의 교세 비교
|
1969 |
1977 |
1984 |
주류교회 |
1,688,788 (54.3%) |
2,810,863 (56.2%) |
6,129,474 (72.5%) |
비주류교회 |
1,422,597 (45.7%) |
2,190,628 (43.8%) |
2,330,661 (27.5%) |
전체 |
3,192,621 (100%) |
5,001,491 (100%) |
8,460,135 (100%) |
표5: KNCC와 비KNCC 교회들 간의 교세 비교
|
1969 |
1984 |
KNCC |
947,682 (29.7%) |
2,665,281 (31.5%) |
비KNCC |
2,244,939 (70.3%) |
5,794,854 (68.5%) |
전체 |
3,192,621 (100%) |
8,460,135 (100%) |
표5는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소속된 교회들의 교인수와 비KNCC에 소속된 교회들의 교인수의 1969년과 1984년 사이의 변동추이를 비교한 통계이다. 69-84년의 15년 간, 두 단체사이의 교세점유율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KNCC에 속한 교회는 신학적 경향에 있어서 중도 혹은 자유주의에 속한다. 정치적으로는 중도 혹은 진보적 성향을 나타낸다. 예장통합, 기장, 감리교가 주요 구성멤버이다. 비KNCC 교회는 예장합동, 예장고신, 성결교단 등이 소속되어 있는데 정치적으로나 신학적 경향에 있어서 보수적이다. 위 통계표는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이 한국개신교의 다수를 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의 통계학적 고찰에서 결론을 내리면, 한국개신교의 교세성장률이 90년대 들면서 현저히 감퇴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교세동향은 한국종교의 (자유)시장상황, 통일을 위한 남북한 관계의 변수, 수적 감소에 대한 교회들의 적극적인 대응 및 아직 남아 있는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 요인 등으로 인하여 여전히 유동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개신교의 교세가 회복국면으로 반전될 상황적 요인이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최근 한국개신교의 교세 성장 정체(혹은 감소)의 원인 분석
교인수의 동향은 단지 통계상으로 해석될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건강한 성장이 단순히 교인수의 증감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Coalter, Mulder & Weeks 1990:27; Mead 1993). 그러므로 한국개신교의 성장실태를 보다 더 치밀하고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한국개신교의 건강하지 못한 성장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사회학적으로, 신학적으로 특히 교회론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고자 한다.
2.1 사회심리학적 요인들
노치준(1998:18-25)은 최근 개신교의 교세성장의 정체현상을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의 주요한 논지는 과거 30년 동안 개신교의 급속한 교세성장에 영향을 주었던 사회심리학적 요인들이 이제는 역으로 성장 정체 혹은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급변했던 사회 전반의 변동상황이 대중들에게 불안감을 주었으며 그 심리적 불안감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사회는 점차적으로 정치, 경제적 안정의 기조가 마련되었다. 정치적 안정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감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3년 소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사회보장제도와 소득의 팽창은 국민들에게 안정감의 증대를 가져다주었다. 다양한 사회지표는 한국사회가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노치준 1998:23f). 특히 중산층 도시인들은 여가활동에 점차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Kim 1993). 여가활동의 증대는 교회회중들의 교회활동 참여를 저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여가활동이 종교의 기능적 대행물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여가와 오락산업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노치준 1988:25). 이원규(1994:195)는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개신교의 교세 정체현상이 여가산업의 확장과 관계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한국의 사회적 안정은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그들의 의존성을 약화시켰다. 사회적 개선은 궁극적으로 한국개신교의 교세 성장률의 감퇴를 초래하는데 공헌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2.2 사회변동에 대한 한국개신교의 부적절한 대응
이성희(1988:11)는 급변하는 사회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국개신교의 실패가 최근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교세성장률 감소의 주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특히 목회자들이 현시대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교회성장의 회복을 위해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이 21C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시급히 요청된다고 주장한다(:17).
2.2.1 한국개신교 내부의 문제들
그 첫째 문제는 한국개신교의 사회정치적 보수주의에 있다. 한국개신교는 서구의 근대주의를 한국사회에 보급하고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회는 사회와 연대할 때 거의 언제나 사회정치적으로 보수주의적 경향을 띄었다(강인철 1996). 그러한 보수주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 중산층의 욕구를 성공적으로 만족시켰다(이원규 1992:233-238; 노치준 1998:13-29).
그러나 한국개신교의 사회정치적 보수주의 경향은 국가, 사회, 정치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침묵하거나 정부의 견해에 동조하고 지원하는 데 일관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보수적 복음주의 노선을 따르는 한국의 장로교회들이 사회정치적 의제들에 대하여 개혁신학의 바른 전통 위에 서지 못했다고 양낙흥(Yang 1993:2)은 지적한다: 이는 보수적 복음주의 노선의 장로교회가 한국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양낙흥은 이러한 실패가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 상실에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믿는다.
한국개신교의 두 번째 문제는 종교적 혼합주의다. 한국기독교는 샤마니즘적 물질주의와 신령주의(spiritualism)를 비롯하여 유교의 음양사상, 계층제도(a hierarchical class system), 예절의식 그리고 가족의례 같은 한국의 전통적 종교문화를 신학적 비판 없이 수용했다. 물론 전통적 유교와 샤마니즘 문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의 혼합적 수용은 대중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이게 한 것은 사실이다(Grayson 1995). 그러나 이정석(Rhee 1995:232)은 한국의 독특한 종교문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한국은 샤마니즘,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를 포함하여 각종 세계종교가 융합하는 도가니가 되어왔다.” 그런데 한국인의 문화와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탈피하는데 한국개신교가 실패함으로써 교회의 세속화를 가속시켰을 뿐 아니라, 혼합주의적 종교성에 포로가 되었으면서도 그 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정석(:228-281)은 주장한다.
한국 개신교의 세 번째 문제는 신학적 보수주의이다. 개신교의 신학적 전통의 주류는 보수적 복음주의다.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가 다수(70%)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것과는 달리 도시 중산계층의 주류문화에는 적절한 신학적 반성 없이 타협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이러한 경향은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가 적응주의(accommodationism)와 실용주의의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함의한다.
2.2.2 한국개신교의 세속화
이정석(:228-281)은 한국개신교의 정치적, 도덕적 세속화의 문제를 그의 논문에서 다루면서 그러한 세속화가 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게 했다고 가정한다.
노치준(1998:26-31)은 한국개신교가 세속화된 근본 이유를 근대주의(modernism)에 대한 교회의 무비판적 타협에서 찾는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개신교가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한국사회에 전달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근대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국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은 근대주의의 부정적인 결과들을 비판하면서 그동안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주도해왔던 한국개신교를 함께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노치준(Ibid)은 한국의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진보 이데올로기); 친미주의; 반공주의.
자본주의의 이념은 한국사회 전체에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정착시켰으며 그로 인하여 사회 전반에는 도덕적 해이가 조장되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회의 대형화와 현대화 작업이 자본주의의 이념과 밀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교회가 자본주의적 이념의 역기능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비판하는 자리에 서 있지 못함에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이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개신교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의 군사정권을 지지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한국 정부에 자국의 농작물 수출을 위한 한국시장의 개방을 강요하는 등 계속하여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미 감정은 증대되고 있다. 이제 한국인들은 지성인들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농부나 사업가 같은 보통의 사람들조차도 미국이 우리의 우방국인지를 의심하고 있다(Kim 1994:36-47; Kang 1997:117-126).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대중들은 미국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을 역시 비판하기 시작했다.
근대주의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저항이 전통문화와 전통종교 그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한국인의 전통을 무시해 왔던 서구화된 한국기독교에 이제 비판적 눈길을 보내고 있다. 동시에 남한 사람들은 남북한 통일을 몹시 희망한다. 민족통일이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통일국가 수립을 한민족의 최우선적인 과제로 여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반공주의의 선두주자로 나섰던 한국개신교의 주류교회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백성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컨대 한국인들은 교회가 서구의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타협했기 때문에 한국개신교가 그들을 바르게 인도할 것인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심의 확장이 한국개신교의 수적 성장의 정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2.3 한국개신교의 교회론적 문제
한국개신교의 문제는 교회의 세속화와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무비판적으로 영합한 데 있다고 이미 언급했다. 교회의 세속화와 근대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조우는 교회론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교회론은 복음에 충실한 교회에 관심하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론(effectiveness-centered ecclesiology)이다. 즉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예배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의 구현보다는 교회의 외형적 규모와 수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Son 1995:258). 이렇게 효과성에 경도된 주류 교회론은 미국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노치준(1998:32f)과 이원규(1994:190-194)는 주장한다. 이러한 교회론적 왜곡은 한국개신교를 토착종교인 샤마니즘 전통과 근대주의 이념들인 자본주의, 물질주의, 실용주의에 타협하도록 부추겼으며 기독교를 개인의 성취를 뒤에서 조력하는 종교로 변질시키는데 기여했다.
한국개신교의 주류 교회론은 한국민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더욱 조장하는 역할도 했다. 한국개신교는 이웃 교회들 간의 과도한 경쟁과 갈등, 개교회 중심주의, 분파주의, 분리주의, 지역주의, 민족주의로 표현되는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연합보다는 분열 상황이 심화되었다. 한국교회의 분열상은 한국사회의 분열을 가속화하는데 일조를 한 것이다.
결국 한국개신교의 교회론적 왜곡은 교회의 각종 병리현상을 유발했다. 그것은 사회의 병리현상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병리현상은 교회의 대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교회의 수적 성장의 정체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노치준(1988:12-40)은 평가한다.
한국개신교의 주류 교회론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교회-세상(문화)-복음’간의 3중적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참고, Hunsberger &.Van Gelder 1996; Guder 1998). 한국개신교는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서 복음의 충실한 증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개신교의 대다수 교회들은 한국의 주류문화와 지배 이데올로기 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반복음적인 요소들을 식별하고 비판하고 저항하는데 실패했다(Chung 1996:535).
좀더 근본적으로 한국개신교는 기존의 주류 교회론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비판하는데 소홀히 했다. 동시에 한국개신교는 미국교회의 상황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미국의 교회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Gwak 2000:58, 69, 79). 또한 한국 개신교회의 주류 교회론은 교회의 사명과 본질뿐만 아니라 복음의 이해에 있어서 심각한 내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49-82). 한국개신교의 주류 교회론은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교회의 본질(정체성)과 사명을 분리시키고 있다(참고, Guder 1985:113-115). 대형교회 운동과 복음의 효과적인 전달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는 복음주의적 교회론은 복음의 개인적 수혜와 신앙의 내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 교회로 하여금 수적 성장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세계보다는 교회가 복음의 중심에 서게 된다”(:114). 대조적으로 자유주의적 교회론은 교회의 증인됨(본질 혹은 정체성)보다 교회의 대사회적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교회활동이 정치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115)
문제는 복음주의적 교회론이든지 자유주의적 교회론이든지 할 것 없이 양 교회론 무두가 교회로 하여금 지배적인 세속문화로부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세속문화에 대하여 비판적 안목을 갖게 하고 그래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개혁신학적 교회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한국개신교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에는 왜곡된 교회론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과 결론
필자는 여러 각도에서 최근 한국개신교의 교세(신도수)동향을 묘사하였고 그러한 교세동향에 영향을 미쳤던 여러 요인들을 분석해 보았다.
한국개신교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1990년대 새로운 민주정부의 출현과 함께 사회적 상황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미국의 정치경제적 정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변동상황에서 지식층들은 거의 언제나 정부와 미국과 반공주의를 지지했던 한국개신교의 주류교회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국개신교의 대다수는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개혁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각종 병리현상들이 한국사회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것 때문에 한국개신교는 대사회적 공신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개신교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이며 고질적인 문제는 왜곡된 교회론에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론을 고수했던 교회들은 도시 중산층의 주류 문화와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영합해왔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자아성취주의, 성공지상주의, 소비주의, 개인주의, 근대주의, 친미주의, 반공주의, 정치적 보수주의, 종교혼합주의, 그리고 신학적 보수주의 등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요즈음 한국개신교 내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교회갱신운동조차도 교회론에 대한 올바른 반성을 결여하고 있다. 특히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힘있는 대형교회들은 도시 중산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종교 상품을 생산하고 진열함으로써 좀 더 많은 신도를 모으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왜곡된 교회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최근에 보이고 있는 한국개신교의 교세성장률의 상당한 감퇴는 한국개신교의 주류 교회론 내에 뿌리 내리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한국개신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비평하는 신학적 반성을 결여함으로써 세속주의와 근대주의에 무비판적으로 영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보다 복음에 충실하며 동시에 현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균형잡힌 교회론의 정립이 한국개신교 내에 시급히 요청된다. 이러한 교회론을 우리는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교회론(a faithful and effective ecclesiology)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균형 잡힌 교회론은 한국개신교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교회론의 논의는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참고하라 (Gwa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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