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간(루카1,57-66) 23일
하느님께는 공수표가 없습니다
요한의 탄생은 그 기쁨이 남달랐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이미 나이가 많은 여인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하느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알게 되었고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이라는 이름은 즈카르야(‘하느님께서 기억하시다’는 의미)가 성전에서 천사로부터 전해 받은 이름입니다. 친지들은 아기의 이름을 조상의 이름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아기의 부모는 하느님께서 주신 요한이라는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깊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의 신뢰가 형성되어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이름을 쓴 순간 즉시 혀가 풀렸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이 실천되었을 때 입이 열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말에는 공수표가 많지만, 하느님께는 공수표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말씀에 대한 신앙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베푸신다. 주님께서 너그러우시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묵은 이름이 아니라 새 이름으로 태어난 요한은 그 이름값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몫에 충실했습니다. 혈육을 떠나 더 넓은 의미의 형제자매를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루카3,4; 요한1,27),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분의 길잡이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 고 하며 구세주의 오심을 외쳤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어서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 하는 법인데 역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즈카르야는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역사에 순종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매여 있던 모든 고리를 끊어 버리고 하느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입이 열리고 즈가르야가 한 첫 말은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노래였습니다. 그는 이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선포하게 되고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도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1,66). 하고 말했습니다. 그 아기는 결국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의 일꾼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이름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돋보였습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이름, 세례 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을 통하여 주님을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인 동시에 은혜를 전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새 이름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성탄이 코앞에 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탄생이지만 기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려운 나라의 현실에서 주님의 손길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빛으로 오시는 당신은 제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내어 드릴 마음의 방은 활짝 열려있는가요?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 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빛으로 오시는분"
묵상 하고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동시에 은혜를 전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아멘!
아멘
신부님 고맙습니다
우리의 새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인 동시에 은혜를 전하는 귀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