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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사해님이 워낙에 정리를 잘해 주셨는데, 그래도 창피한 줄을 원글 쓰신 분이 모르시는 듯 해서 답글 준비합니다. 바쁘긴 하지만.ㅎㅎㅎ
-->뭐 새로 이어서 설명하세요. 이렇게 현재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고서의 명조를 재 조명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되고, 이 과정을 안거치는 사람이 없으니.
상문은 원전과 글자 몇 개 정도만 다르고 거의 같습니다.
자평삼명통변연원이 이리저리 필사되면서 떠돌던 것을 편집(연원+연해+잡설)하여 <연해자평대전>이 만들어졌는데, 이때에 장도통 등의 사주 및 해설들이 첨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해자평대전>도 얼마 후 산실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 필사본 일부가 남아 있죠.
청나라 때 재편찬된 것이 현존하는 <연해자평>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희기편 원문에 사주해설을 첨가한 것이 <연해자평>의 원문이 된다 하겠습니다.
--> 첨언하자면, 연해자평대전부터를 연해자평이라고 한다는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소리입니다.
장도통 명조가 연해자평 어디에 있는가만 이머꼬님이 계속 줄기차게 물어댔던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답변을 연해자평 희기편에 있다고 해 드린 이후에도 계속 조흔님께 장도통 명조가 연해자평에 어디있냐고 자신만만하게 묻다가 증거를 대 주니까 급히 말을 바꿉니다.
그렇게 바꾼 말이,
쌈닭18.01.19. 18:50
귀하가 한 말 맞지요?
이 댓글에 있는, <<~> 사이의 말입니다. 당연히 본인이 연해자평원문에 주석이 있고 명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말한 <연해자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 원문에 제가 올린 부분이 있습니다.> 에 대해서 있음을 인정하고 그 다음 말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Yes , but~ 정도는 되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계속 연해자평 어디에 장도통명조가 있냐는 도발을 하던 인사가, 존재를 확인시켜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액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계속 물타기를 합니다. 장도통 명조가 서자평이 올린게 아니다 장도통 명조 해석을 해보면 운운,
요점은, 연해자평 원문에 장도통 명조가 있냐 이것입니다.
서자평이 올렸는지 말았는지가 아니란 소리죠.
당금지가 펴낼 당시의 연해자평이라고 부를 만한 책에 장도통 명조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이게 쟁점이란 소리입니다.
저는 뭐라고 했냐면, [희기편의 舊주가 바로 서자평이든 서승이든, <자평으로 알려진 누군가>]라고 했습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주들은 고서일 수록 진짜 써서 첨가된 것이 많습니다. 명리정종신봉통고 같은 책은 제가 알기로는 출간 기록은 거의 위천리 대 까지 내려갈 겁니다. 그 전은 전부 필사본입니다. 그래서 신봉통고가 명대의 책임을 인정 안합니까?
실제로 <자평삼명통변연원: 서대승 저>에 구주를 단 것이 서승 자신인 것 같다는 설이 존재 합니다.
저 말을 제가 쓴 의도는 뒷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실제 서거이와 서승의 300년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같은 맥락의 주들이 달린 책들이 유통되었으며 서승 이후에도 그런 작업은 계속 보입니다. (실제로 서거이는 907년에 태어나서 960년에 졸했다는 설이 있으나 공식적으로 서자평으로 확인은 안된 것으로 압니다. 학풍을 이었다는 의미로 큰 의미를 안두고 모두 자평의 학문적 업적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서승의 자평삼명통변연원은 1200년대입니다.)
첨가된 주가, 다시 그것을 옮기는 이가 봤을때 쓸데 없으면 가차없이 버립니다.
그 주가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누군가 주석을 붙인것이 확실?하다 언제 누가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는 식으로 본인의 주장을 위해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확실이라는 말을 쓰면서 폄하한다... 학문적인 자세입니까?
-->대다수가 인정하는 통설이라는 것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인 것이지요.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학계라면 적어도 바뀔때는 엄격한 근거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말을 하거나 인용을 할때도 다른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인용을 합니다. 또한 어느 책의 어느 판에서 어떻게 말했다 고 명기함으로써 본인이 지어낸 사실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이머꼬님이 이 책에만 연해자평원문이 있다고 주장하시는 김찬동님의 연해자평 정설은, 희기편을 희기론이라고 올리시는 것으로 볼때, 이머꼬님의 생각처럼 정말 이것만이 원문이라서 엄격하게 옮기신 분이 아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subtitle이라도 제명을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출판 분량을 줄이기 위해서 본인생각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주석을 배제하고 책을 내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그래서 희기편이라고 적기보다 희기론으로 제목을 수정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요즘 출판사에서 그런 요구를 종종 하더군요.
삼명통회만 해도, 워낙 분량이 많다보니 전부 출간하려고 준비하셨다가도, 내용을 대폭 줄여서 가격도 대중적으로 책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출판계도 어려워서 대중적으로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면 편집자가 과감하게 수정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공정하게 제 글이라고 빼고 이런 거 없이 댓글은 다 복사해서 올렸습니다.
제가 추가한 답변이 파란색이라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