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관적으로 선정한 식서스 1st & 2nd All-time Teams
얼마전에 두어번 필라팸에 글을 올렸던 Doctor J입니다. 1978년부터 시작, 바클리가 피닉스로 떠나던 1992년까지, 약 15년간 필라델피아의 팬이었기도 하지요. 그동안 눈팅을 해보니, 필라팸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상당히 젊으신 것 같았습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팸분위기가 동창회/동문회 같은 분위기여서 방문하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밝아지더군요. platanus님의 부탁도 있었고 해서, 아주 가끔이나마 필라팸에 7~80년대의 식서스에 대한 글들을 올려볼까 생각중에 있습니다. 필라팸이 활성화 되는데에 일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아는 약간의 지식과 선수들의 활약을 본 기억으로 구성한 식서스의 All-time Team입니다. ---------------------------------------------------------------------------------------------- 1st Team
(1965~1968) 1936년생. 신장 216cm. 필라델피아 태생. 프로데뷰 후 첫 5시즌을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현 골든 스테이트)에서 활약.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죠. 한경기 100점의 신화. 한시즌 평균득점 50점 이상. 7번의 득점왕과 11번의 리바운드 타이틀. 아마도 이런 선수가 식서스 출신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긍지를 가질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상당히 이기적이었던 플레이 스타일에서 벗어나, 아주 약간의 이타적인 자세로 변신하자마자 따낸 어시스트 타이틀 (1968년, NBA 빅맨으로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식서스에게 안겨준 첫번째 NBA 우승 트로피 (1967년). 인격적으로는 그다지 성숙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개인능력으로만 본다면 마이클 조던도 울고 갈만한 선수였습니다. NBA MVP 4회수상에, 매시즌 올스타게임과 All-NBA팀에 선정되었던 윌트 체임벌린을 식서스 역대최고팀 퍼스트팀 센터에 추대합니다.
(1984~1992) 1963년생. 신장 194cm (정수리 위에 튀어올라 있는 부분을 빼면 실제 신장은 192cm라는 말도 있습니다 ^^;;). NBA 데뷰할때의 몸무게가 무려 145kg이었지만, 공식 드래프티 신체검사때 찍은 서전트 점프가 103cm였다고 합니다. 루키시즌부터 어빙과 모제스 말론이라는 뛰어난 선배들을 만나 제대로 농구를 배울 수 있는 특권까지 누렸던 축복받은 선수였죠. All-NBA 팀과 올스타게임에 각각 11회 선정. 역대 파워포워드 3위권에 올라있는 선수. 리바운드에만 집중했다면 데니스 로드맨보다 더 뛰어난 스탯을 찍었을 천부적인 리바운더. 대부분의 NBA팬들은 바클리가 선즈의 멤버로서 MVP를 따낸 1993년을 전성기로 보시지만, 제가 보기엔 1993년 시즌은 바클리가 좋은 팀을 만나 선수의 완성도 면에서 이룬 최고시즌이었을 뿐, 전성기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바클리의 전성기는 그의 프로 2년차인 1985~86 시즌부터 1989~90 시즌이었습니다. 이때의 바클리는 한마디로 “줄리어스 어빙 + 모제스 말론”이었습니다.
(1976~1987) 1950년생. 신장 198cm. 필라델피아의 자랑이라 할만한 레전드죠.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빅맨 하나 없이 식서스팀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파이널에 3번이나 올려 놓았던 선수입니다. ABA 올스타 5회. NBA 올스타 11회 선정. 16년동안 올스타게임 스타팅 멤버. ABA MVP 2회. NBA MVP 1회 (1981년). All-ABA 5회. All-NBA 7회 선정. 커리어 평균 – 24.2점, 8.5리바운드, 4.2어시스트, 1.7블락, 2.0스틸인 올어라운더. 줄리어스 어빙의 ABA 데뷰시절의 서전트 점프는 47inch (118cm)였습니다. 1984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는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유투라인 덩크를 깨끗하게 성공시켜 50점 만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큰 손, 긴 팔과 다리, 그리고 최고의 체공력을 이용해 NBA Showtime을 개척한 사나이, 줄리어스 어빙이 식서스 역대최고 퍼스트팀의 3번자리를 맡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준비하고 있는 어빙의 역대기에서......)
(1958~1973) 1936년생. 신장 188cm. 식서스의 1966~67 시즌 우승팀의 주전 슈팅가드였던 분입니다. 커리어 통산 평균이 19.2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코트 전체에서 활약을 했던 레전드죠. 1997년 역대 최고 50인에도 뽑혔습니다. 1967년 우승 시즌에는 평균 22점 이상에, 플레이옾에서는 24점 이상을 찍어주며, 체임벌린과의 안팎 득점 밸런스를 잘 맞추어 줬던 선수입니다. 당시에 3점슛이 있었다면, 이 선수의 커리어 평균득점이 4~5점은 더 올라갔을 겁니다. 커리어 15년 전체를 한 프랜차이즈와 함께 했던 선수이기도 하죠. All-NBA 세컨드팀에 7회 선정되었고, 올스타게임에 10회 선정된 그리어는, 일반적으로 오스카 로벗슨과 제리 위스트와 함께 60년대 최고 가드 3인방으로 통합니다. 자유투를 던질때, 점프슛으로 일관해 유명했던 그리어는 식서스 프랜차이즈가 배출해낸 역대 최고의 슈팅가드입니다.
(1996~2007)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래서 설명 안하겠습니다. 정통 포인트 가드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있는 아이버슨이 퍼스트팀의 포인트 가드입니다.
(1965~1972, 1974~75) 1943년생. 신장 196cm. 아마도 1980년대 식서스의 영상을 보신 분들에게는 감독으로서 더 낯이 익은 분이겠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함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식서스의 중흥을 이끌었던 감독이지요. 하지만 이 커닝햄은 선수로서 더 유명했었습니다. 별명인 ‘캥거루키드’가 말해 주듯이 백인이면서도 잘 뛰고, 흑인들보다도 점프를 잘하는 특이한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커리어 평균이 21.2점, 10.4리바운드, 4.3어시스트였던 커닝햄은 60년대 당시 식서스에서 '식스맨'으로 뛰면서 이러한 스탯을 냈습니다. 66~67 우승팀에서도 체임벌린과 그리어 다음으로 팀의 3번째 주득점원이었고, 리바운드는 팀내 2위였던 선수였죠 (2007년도 우승팀 스퍼스의 지노빌리와 비슷한 스타일의 비슷한 역활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1972~73 시즌에는 잠시 외도(?)를 해서 ABA에 가서 뛰면서 리그 MVP를 먹고, 다음 시즌에 NBA의 필라델피아로 복귀한 선수였기도 합니다. 2nd Team
(1982~1986, 1993~94) 1955년생. 신장 208cm. 식서스의 구세주라고도 불리우죠. MVP 3회. 리바운드왕 6회. 역대 최다 리바운드 3위. 역대 최다 공격리바운드 1위. 40분 환산 커리어 공격리바운드 게임당 6개. 한마디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NBA의 MDE였던 선수였습니다. 워낙에 골밑장악력이 좋고, 리바운드가 탁월해서 (200년대 초반의 샤킬 오닐과는 또 다르게) 리그를 지배하고 장악했던 센터입니다. 80년대 초반에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었던 13.2 mil / 6년계약으로 식서스에 영입된 선수죠. 본인의 져지넘버 2는 13.2를 6으로 나눈 숫자를 의미했습니다. 빅맨없이 파이널에 올라갔다가 포틀랜드의 빌 월튼, 셀틱스의 로버트 패리쉬, 레이커스의 압둘자바 등에게 매번 당했던 식서스의 마지막 카드였고, 말론은 거액의 연봉과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며 식서스에게 두번째 우승을 선사했습니다. 플레이옾에 들어가기 전, 그의 fo-fo-fo 예언은 세 시리즈를 모두 스윕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말이었는데, 밀워키에게 4차전을 내주는 바람에 fo-fi-fo (4-5-4)로 끝나고 말았었죠. 72 대 30. 1983년 파이널 시리즈에서의 말론과 압둘자바의 리바운드 대비 수치입니다.
(1995~1998, 2001~2004) 1967년생. 신장 208cm. 1991년 신인왕. 1994년 올스타. 1994년 세계농구선수권 우승의 주역. 커리어 평균이 16.5점, 9.3리바운드입니다. 선천적인 재능으로만 따지면 팀 던컨과 칼 말론을 월등히 앞서는 선수였습니다. 페이스업, 포스트업,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었고, 드라이브인이나 리바운드, 특히 패싱력이 뛰어났었죠. 어렸을때부터 포인트가드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매직 존슨보다 더 드리블 능력이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매직 존슨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유연한 볼핸들링을 보유하고 있었죠. 첫 두 시즌 경기를 보면 자신이 리바운드해서 드리블 치고 나와 패스를 넣어 주거나, 자신이 직접 슈팅까지 하는 플레이가 많이 나옵니다. 마음을 다잡고 농구에만 열중했으면 커리어 평균이 23~4점, 11~12리바운드, 4어시스트 정도는 나올만한 선수였죠. 이 선수의 단점은 게으름과 실력을 따라주지 못하는 그의 인격이었습니다. 자신의 몸관리를 잘 못하다 보니 15시즌 동안의 시즌당 평균출장수가 52게임밖에 안 됐습니다. 파워 포워드로는 빵점짜리 훈련태도도 문제가 됐었고, 그 외에도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마약, 공공장소에서의 변태성 행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썽을 피웠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재능때문에 세컨드팀에 올려 보았습니다.
(1962~1969) 1940년생. 신장 201cm. NBA 올스타 7회. 커리어 평균 – 18.2점, 7.1리바운드. 1966~67 시즌 우승팀의 스타팅 스몰 포워드였습니다. 빌리 커닝햄이 60년대 대부분을 식스맨으로 뛰었으니, 식서스 구단 역사상 동포지션에서 단연코 어빙 다음의 2인자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가릴 것 없이 쏴대는 전천후 공격수였습니다. 이런 뛰어난 선수와 체임벌린, 할 그리어, 커닝햄이 전성기를 함께 했는데도 우승을 1회밖에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만큼 보스턴 셀틱스의 위력이 대단했다는 반증도 되겠습니다.
(1980~1988) 1957년생. 신장 190cm. 이 선수가 어떤 선수였는지는 그의 별명이 말해줍니다 - '보스턴 교살자'. 토니는 한마디로 보스턴 셀틱스 킬러였습니다. 루키시즌인 1981년 시즌부터 약 5~6 년간 이 선수는 혼자서도 보스턴 진영을 초토화시키던 선수였습니다. 식서스는 물론 어빙의 팀이었지만, 셀틱스와 붙기만 하면 이 선수가 거의 매게임 Player of the game으로 뽑히곤 했었습니다. 이 선수 하나를 막기위해, 보스턴은 84 시즌을 앞두고 당대 최고의 2번 수비수 데니스 존슨을 거금을 들여 영입해야만 했습니다. 상당히 뛰어난 외곽슛을 갖고 있었는데, 점프를 한 상태에서 팔을 쭉 뻗어 올리며 손목의 스냅만 사용해서 슛을 쏘았기 때문에 블락을 하기가 쉽지 않았죠. 한번 발동이 붙으면 40점도 쉽게 넣어버리는 선수였습니다. 워낙 강심장이라서 플레이옾에서 더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던 정통 슈팅가드였습니다. 커리어 평균 16점. 올스타 2회 (83년, 84년).
(1978~1989) 1956년생. 신장 185cm. 현 식서스의 감독이죠. 80년대 모든 포인트가드들이 닮고 싶어했던 '포인트가드계의 교과서'였습니다. 올스타 게임에도 4회 출전했죠. 앞선에서의 수비가 빼어나 All-Defensive Team에 5회나 뽑혔었고, 수비와 스틸에 이은 속공이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안정된 드리블, 화려하지는 않으나 창조적인 패싱력으로 뛰어난 경기 운영력을 보여 줬습니다. 커리어 평균은 11.1점에 6.7어시스트, 2.1스틸입니다. 루키시즌부터 식서스의 살림을 도맡아 했던 민완가드였습니다. 이 선수가 없었다면 80년대 초반의 식서스의 원활한 공격도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멋진 어빙의 덩크도 많이 못 보았을지 모릅니다. 이 선수가 식서스에 합류해 포인트 가드를 맡으면서부터 어빙의 평균득점이 3~4점 올라갔습니다.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1978~1986) 1951년생. 신장 206cm. 프로 통산 12시즌동안 11번의 All-Defensive Team에 선정된 기록적인 수비수입니다 (퍼스트팀 9회). 별명이 "국방부 장관"이죠. 1982~83 우승시즌에 올해의 식스맨상도 탔습니다. '올해의 식스맨' 초대 수상자입니다. 사실 이 선수때문에 식스맨상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올스타급 선수가 스스로 자원해서 벤치에서 나오면서 식서스의 65승 시즌과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활을 담당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고나 할까요? 올스타 게임에도 4회 출전했습니다. 운동능력이 워낙 탁월했던 백인이라, 80년대 식서스 경기를 보면 속공시에 칙스의 패스를 받아 런닝덩크를 호쾌하게 성공시키는 장면을 많이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선수는 주로 상대방 주득점원인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를 전담마크 했는데, 정말로 "깨끗한" 수비로 상대방을 제압해 많은 칭찬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스틸 수치가 높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박빙의 게임에서 마지막 순간의 결정적인 스틸을 해내던 '완소'선수였습니다. ----------------------------------------------------
센터: 윌트 체임벌린 – 모제스 말론 파포: 찰스 바클리 - 데릭 콜먼 스포: 줄리어스 어빙 – 쳇 워커 슈가: 할 그리어 - 앤드류 토니 포가: 앨런 아이버슨 – 모리스 칙스 벤치: 빌리 커닝햄 - 바비 존스 글: Doctor J
|
첫댓글 필라팸의 활성화에 작은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다음에는 줄리어스 어빙에 관한 글이나 식서스 프랜차이즈의 간략한 역사등을 써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필라팸 게시판에서 2페이지로 넘어가면, I Love Basketball 에도 올릴 계획입니다.
이렇게 저희팸 고문을 허락해 주신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Doctor J님의 해박한 지식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부탁을 드렸었는데 팸에 좋은 글을 올려주시다니 너무 기쁘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겠습니다. ^^
올드팬일 뿐인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필라팸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 '새로운 세상'님이 올려주신 83년 파이널경기 보고, 클박에서 82,83시즌 식서스 경기 몇개를 감상했었는데, 정말 막강하고 매력적인 팀이었더군요.제가 그당시의 팬이었었다면, 지금의 칙스감독을 욕하진 못했을것 같습니다.^^
그 클박의 82, 83 경기들은 제가 업로드한 게임들 같은데요...? ^^ // 칙스감독 욕하면 안되죠. 얼마나 훌륭한 프랜차이즈급 포인트가드였고, 얼마나 뛰어난 인격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데요.... 아마도 자신과 케미스트리가 맞는 선수들을 만나고, 구단측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준다면, 머지않아서 '본색'이 드러날 것입니다.^^
아마 제이님이 올려주신 자료일꺼라 생각은 했습니다.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잘 감상했기에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쉬운건, 83년만 파이널이 클박에 없더군요. 지난 경기라도 지는 경기 보는건 즐겁지 않은데, 어빙 나오는 유명한 경기 받아보는데, 반타작했습니다.ㅠ.ㅠ 칙스감독이 선수시절 실력과 인격적으로 훌륭했다는건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제가 직접 보고 응원한 팬이 아니었던지라 지난 2년간의 식서스 감독으로써의 모습은 상당히 실망적이었습니다. 덕장일지는 몰라도, 구성선수의 능력 이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명감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구심이 남아있습니다. 올 한해동안 지켜봐야죠.^^
클박의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요.... 다운로드 횟수가 적은 자료들은 클박 자체에서 삭제를 해버립니다. 제가 사는 곳이 호주인지라 한 경기 업로드하는데 하루종일 걸리거든요. 특히 저는 정말 구하기 힘든 7~80년대 게임들을 많이 올리는데, 몇개월 있다 보면 자료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다른 대용량 커뮤니티로의 이전을 심각히 고려중에 있습니다.
아..전 업로드를 해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런 고충이 있으셨군요.자료가 자동삭제되는줄 몰랐습니다. 제가 식서스가 지는 경기를 보기 싫어하듯, 사람들도 매직이 지는 경기는 보기싫어하나보네요..ㅠ.ㅠ 그래도 파이널인데, 83년만 날라간걸 보면...ㅋ
저도 제프리님 카페에 가입을 했는데 눈팅만 하는 회원이라서리... 저도 시간되면 마구마구 참여하겠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100 Greatest Basketbal Players Of All Time 책에 있는 선수중에 토니,콜먼,워커 빼고 다 있군요..이 책이 2000년에 나왔으니깐 아이버슨은 없는게 당연하구요..
콜먼이 솔직히 게을러서 부상에 시달렸지만 자기관리만 확실했다면 웨버보다 더 뛰어난 선수였을겁니다. 상당히 똑똑한 선수여서 어떤 롤을 실행하더라도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었죠.
올타임 팀으로만 보면 필라델피아 정말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닥터제이님 정말 감사합니다 또 하나 배우고가네요 ㅋㅋ
보스턴, LA에 이어 역사적인 구단중 하나가 필라델피아죠. 조던era가 있기전 저 세팀이 항상 최고의 구단이었습니다.
역시 우리 필리도 명문구단중에 하나라니까요!!
정말요 ㅋㅋ 모제스 말론이 세컨팀이라니 ㅋㅋ
NBA에 정말 많은 팀들이 있지만, 우승 2회 하고, 수차례 파이널 올라가고, 어빙이나 바클리, 아이버슨같은 레벨의 선수들이 전성기 대부분을 보낸 팀은 ......... 별로 없습니다. 응원하는 식서스팀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십시오.^^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필리도 과거에는 엄청난 공격력을 지닌 강팀이었는데 ㅠ,ㅠ 그리고 모 칙스!! 선수로는 훌륭할 지 모르나 감독으로서는 아직도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입니다,프랜차이저라 할지라도 성적을 내는 데 실패한다면 비난을 받는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개인적으로 작년의 칙스는 분명히 선수들의 포텐셜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한 감독이었다고 봅니다.
아, 물론 선수로서의 과거 명성이 면죄부를 가져다 줄 수는 없지요. 다만 작년의 구단 상황이 구단주 자신부터 문제가 많았었고, 선수들간의 조화도 안 좋았고, 팀 전체가 시즌 초반을 부진속에 시작했고, 뭐 이런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팀의 성적저하로 이어졌기 때문에, 섣불리 칙스감독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주전급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지금의 뒤숭숭한 구단 분위기 아래에서는 연습이고 게임이고 아무런 의욕이 안 생겨난다고까지 말했었죠.
역시... 좋은글 감사합니다! 칙스도 대단한데... 아이버슨도 역시 ㅋㅋ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데릭 콜먼 보다는 돌프 셰이즈(Dolph Schayes)를 넣었어야 했습니다. 돌프 셰이즈는 필라델피아 식서스의 전신인 시러큐스 내셔널스의 수퍼스타(1948~1964)로서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번갈아 가며 보았고, 무엇보다도 1955년 내셔널스 팀을 우승시킨 주역이었죠. 올스타 선정 12회, All NBA 팀 선정 12회 (퍼스트팀 6회), 역대 최고 50인 선정,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냈던 빅맨이었습니다. 빅맨이면서도 포스트업보다는 페이스업을 통한 점퍼를 잘 구사했던 레전드였습니다. 51년 시즌에는 리바운드왕도 했었지요. 콜먼 대신에 셰이즈를 넣었으면 훨씬 더 균형잡힌 올타임 팀의 면모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포럼게시판 리서치중 좋은 자료라 생각되어, 공지사항으로 업데이트 했습니다. 향후 변경 계획이 없으니 두고두고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 자리가 없던 덕 콜린스는 현재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기라도 한걸까요?ㅎ
아니, 이런 보잘 것 없는 글을 공지로??? ... 감사합니다.
사실 데릭 콜먼 자리에 돌프 셰이즈가 들어갔었어야 했는데...
댓글에 설명을 해놨으니, 처음에 쓴 글 그대로 남겨 두겠습니다.
스퍼스 포럼 다음으로 가장 애정을 가지고, 글을 올려주시잖아요.ㅎㅎ
매번 잘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벤 시몬스가 식서스에 지명되어, 식서스 올타임 팀에 꼭 한자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엠비드는 무지막지하게 하지 않는 이상 이름 올리기가 상당히 힘들겠네요, 체임벌린에 모제스 말론이니 ;;)
줄리어스 어빙 이후로 이런 재능을 지닌 스윙맨이 식서스에 온 적이 없죠. NBA 역대 최고의 '포인트 포워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포텐셜을 필라델피아에서 빵빵 터뜨려주길 기원합니다.
@Doctor J 그 잠재력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시먼스의 경우 호주출신이기도하고 어릴때부터 이에 대한 정보만큼은 Doctor J님이 많이 아실거라 봐서요.
그리고 멘탈이나 인성문제가 좀 대두되는데 실제로 어떤가 궁금합니다.
참고로 저흰 감독도 호주(스퍼스) 출신이고, 팀 스포츠 사이언스 프로그램도 호주에서 수입했죠.
Doctor J님과도 연결고리가 상당하죠.
@NEW ANSWER 그 잠재력은 '감춰져있는 듯한 공격스킬' 입니다.
아직 이 선수의 공격스킬 포텐셜은 안 터졌다고 보고요.
멘탈 부분은 이 선수가 너무 유복하게 자라서...
좀 악바리같은 근성이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합니다.
아버지인 데이빗 시몬스는 블루칼라워커 빅맨으로선
호주에서 최초로 레전드 대우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벤은 그런 파이터 기질은 없습니다.
인성은 아주 좋은 선수입니다.
@Doctor J 인성 역시 아버지의 유명세 덕에 잘 갖춰졌군요 ㅎㅎ
다행입니다 .. 사실 파이터 기질의 부재보다 인성이 엉망인게 더 치명적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