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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대리자 (시2-82)
2026년 4월 10일 (금요일)
찬양 : 주 음성 외에는
본문 : 시82:1-8절
☞ https://youtu.be/FgZKQA_DeXs?si=591oWyYymR5us-WV
어제 목회사관학교 6주차 수업이 마쳤다. 사관생도들의 열정에 감동되어 모든 강사님이 한결같이 힘을 얻고 계신다. 나도 어제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사관생도들의 사역뿐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있어 힘이 나기를 기도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종들입니다. 주님 기억하시고 일하소서.>
오늘은 금요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주가 일하시네>란 주제로 진행되는 시간 진실로 주님의 일하심이 충만하게 경험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은 매우 특별한 장면을 우리에게 연출해 보여준다. 1절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여기서 <신들의 모임>이 무엇인지가 본문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자칫 이들을 이방 나라의 우상들이나 영적 존재로 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름받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 특히 재판을 담당하는 이들로 해석함이 맞을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았기에 신들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그들 가운데 서신 하나님은 강력한 책망을 하신다. 2절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히브리어 '나사 파님(נָשָׂא פָנִים)'은 직역하면 <얼굴을 들어 올려 주다>란 뜻으로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편애를 베풀고 면죄부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한 마디로 법의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 즉 지위를 먼저 보았다는 말이다.
그들은 고아와 과부의 신음에는 눈을 굳게 감고, 권력을 가진 악인의 화려한 낯을 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5절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여기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와 타인의 고통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버린 영적 소경 상태를 말한다.
<땅의 모든 터>는 히브리어로 '모사데이 에레츠(מוֹסְדֵי אָרֶץ)'로,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즉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덕적 우주 질서와 정의'를 뜻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라는 기초 위에 세우셨다. 따라서 재판관과 통치자들이 공의를 버리는 순간, 세상은 그 물리적, 사회적 기반이 붕괴하는 것이다.
그렇다. 공평과 정의란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다.
금이간 건물이 무너짐처럼 공평과 정의가 금이 가면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정의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권력욕에만 취해 산다면
온 세상의 수천만의 생명과 국가는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안타깝게 외친다. 6-7절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고 공의를 실현하도록
‘신적인 권위와 영광을 위임받은 자’이다.
특히 재판관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분의 성품인 공의와 사랑을 세상에 반사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비춰야 할 빛이 사라지니 그들은 <사람처럼 죽으며... 넘어지리로다> 라고 한다. 이 말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 아담의 한계를 꼬집는 단어다.
스스로를 법 위에 군림하는 '신'으로 착각했지만, 결국 그들도 병들고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함을 선고하신 것이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목사로서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게 할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비록 내가 세상의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는 아니지만
작은 가정을 통치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빛, 즉 공의와 사랑을 비추는 자로 부름받았음을 묵상한다.
하나님은 언젠가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심판에는 그 어떤 것도 숨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이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 공의와 사랑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는 심판의 날 사람처럼 죽으며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통로로서 오늘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영광에 설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고 선언한다. 이 굳건한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을까, 깊이 묵상하게 된다.
진정한 '지존자의 아들'이시며 본래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은,
오히려 거꾸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고,
세상의 가장 연약한 자들을 품으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엎어지셨다'.
생명을 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진정한 왕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편 82편의 고발처럼, 결국 사람처럼 죽으며 엎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흠 많은 존재이다. 그러나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친히 무너져 내리신 참된 지존자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덕분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마땅히 빼앗겨야 할 영광을 주님이 대신 빼앗기셨고, 내가 형벌로 흔들려야 할 그 참담한 자리를 주님이 친히 담당하셨다. 그 십자가의 역설이 오늘 나를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백성이자, 어둔 세상에 공의와 사랑을 비추는 거룩한 빛으로 다시 세워주신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한다. 고후 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나의 죄와 허물과 약함을 알아채 주시고 대신 담당해 주신 그 공의로우심과 그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이란 내게 주어진 하루를 주님이 맡기신 역할에 충성하는 날 되기를 다짐해 본다.
내게 맡기신 자리에 약함과 허물에 무너져 내리는 이들의 그 금이 간 기초를 막아서서 기도하며 대안을 세워주기 위해 몸부림치며 또한 세상의 악에 대해 정의로 맞서주는 자로 서기를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당신이 맡기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비춰야 할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넘어지신 은혜를 기억하며, 내가 선 곳에서 거룩한 빛을 한 번만이라도 비추자.>
적용 질문 :
1.나는 내 삶의 자리(가정, 일터, 관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공의와 사랑'을 반사하고 있습니까?
2. 내 삶 속에서 사람의 지위나 겉모습만 보고 편애하거나 차별했던 순간은 없습니까?
3. 금이 간 사회와 공동체의 기초를 막아서기 위해, 오늘 내가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하고 품어주어야 할 '연약한 자'는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