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9. 16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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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大尉) -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미국인 윌리엄 해밀턴 쇼
(William Hamilton Shaw) 대위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작은 공원(公園) 한 구석에는 푸른 눈의 28세 청년 동상(銅像)이 묵묵히 서 있다.
가장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장(保障)된 미래(未來)를 제 손으로 찢어버리고, 이름 모를 극동의 작은 땅을 고향(故鄕)이라 여기며 그 곳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알받이가 되었던 사내,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大尉)의 동상(銅像)이다.
1922년 평양. 미국인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여겼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평양(平壤)의 골목을 누비던 그는, 태평양전쟁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海軍) 장교로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치러낸 참전(參戰) 용사(勇士)였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학 박사과정에 진학(進學)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까지 둔, 그야말로 미국 상류사회의 완벽하고 안락한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그가 도서관에서 박사(博士) 논문(論文)을 준비하던 무렵, 한반도에 전쟁(戰爭)이 터졌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이미 2차 대전에서 충분히 싸웠다.
넌 두 아이의 아빠다.
이제 너의 삶을 살아라!" 하지만 쇼의 눈앞에는 자신이 뛰어놀던 평양의 골목과, 폭격에 무너져 내리는 한국인 친구(親舊)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부모님과 아내에게 짧은 편지(片紙)를 썼다.
"나의 고향 한국에 전쟁(戰爭)이 났는데, 제가 어떻게 마음 편히 하버드에서 공부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 평화가 온 뒤에야 제 양심에도 평화(平和)가 올 것입니다!"
그는 그 길로 미 해군(海軍)에 자원 재 입대(入隊)했다.
한국어와 한국 지형에 완벽히 통달했던 그는, 맥아더 장군(將軍)의 최측근 정보장교로 발탁되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成功)으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役割)을 해낸다.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 해도 충분(充分)했다. 지휘부에 남아 정보(情報)를 분석(分析)하는 것만으로도 공로(功勞)는 넘쳤다.
하지만 그는 후방(後方)의 안전한 막사를 거부(拒否)했다.
"한국인 친구(親舊)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기어이 소총을 들고 최전선 해병대(海兵隊) 수색대로 자원(自願)해 들어갔다.
1950년 9월 22일 아침. 서울 탈환(奪還)을 위해 은평구 녹번리 일대에서 수색 작전을 벌이던 중, 적의 매복 기관총(機關銃)이 불을 뿜었다.
가장 앞장서서 적진(敵陣)을 돌파하던 쇼 대위(大尉)는 적의 총탄에 가슴을 맞고 28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버드의 빛나는 학위(學位)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의 품도, 차가운 서울의 진흙탕 속에서 피와 함께 식어갔다.
가장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아들의 전사(戰死) 소식을 들은 부모의 태도(態度)였다. 보통의 부모라면 자신의 소중(所重)한 아들을 앗아간 한국 땅을 저주(詛呪)하며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군 군목으로 참전(參戰) 중이었던 그의 부모는 아들의 시신(屍身)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대신,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安葬)했다.
"한국을 사랑했던 아들의 뜻"이라는 이유였다.
그들은 슬픔을 원망(怨望)으로 바꾸지 않았다.
아들의 핏값인 전사 조의금(弔意金)과 사재를 털고 지인들의 모금을 받아, 아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의 학교였던 감리교 대전 신학교(神學校)(현, 목원대)에 강당(講堂)을 짓고 세브란스병원 등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 부어 전후 한국사회를 재건(再建)하는 데 평생(平生)을 바쳤다.
미망인이 된 아내 후아니타 여사 역시 두 아들을 데리고 다시 폐허가 된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 교수(敎授)로 재직하며 평생(平生)을 헌신(獻身)했다.
대를 이은 이 숭고한 사랑, 쇼 가문의 후손(後孫)들은 무려 60여 명이 넘게 한국의 발전과 안보(安保)를 위해 복무(服務)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이 눈부신 봄 공기(空氣)는 결코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76년 전, 은평구 길바닥에서 붉은 피를 쏟아냈던 푸른 눈의 28세 청년과, 아들을 가슴에 묻고도 기어이 이 땅의 헐벗은 자들을 안아주었던 진짜 어른들의 거룩한 영수증 위에 세워진 기적(奇蹟)이다.
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그 눈부신 청춘(靑春)의 꽃비가,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고 아프게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