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여행] 운봉. 청학동 공안서당(숨은보석10선.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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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운봉,공안서당(孔安書堂:숨은보석 10선,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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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공안서당(孔安書堂:숨은보석 10선,8)에 들렀다, 사실 서당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냥 한문정
도를 가르키는 한문학원 정도로만 생각 할 것 같다. 하지만 60대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서당의 개념을
정확히 알 것 같다, 유랑자의 유년시절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어렴풋이 생각나는게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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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훈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서 아이들의 기초 한문 공부를 담당했던 회초리를 든 선생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럿이서 모여 한늘천 따지를 부르짖던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를 향교에서만 듣는
게 아니고 서당에서도 들었기 때문이다. 유랑자는 오늘 정자관을 쓴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치는 공안
서당(운봉읍 수철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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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으로 유명한 지리산 바래봉 아래 트리 하우스 가는 길 도중에서 분기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조선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서당을 만나게 된다. 옛날 방식으로 학동을 가르치고 있는 공안서당
이라 하여 궁굼증 또한 매우컷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서 서당이라는 글 자체가 보기드문 것이
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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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뒤로 돌고돌아 길이 끊길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는 서당 가는길. 차 한 대 겨우 들어 갈수 있는 좁
은길. 남원시에서 선정하고 추천하는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에 올려 놓았다. 유랑자는 먼저 공안서
당 마당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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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책을 읽지 안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역시 훈장님의 조언을
받아서 풀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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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당(中和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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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아서는 그저 평범한 건물 같지만 그러나 특이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중화당,을 구경하기 위해
난 계단을 오른다, 계단 화단 우측 돌에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책을 읽지 안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서당다운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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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에서 눈여겨 볼점은 중화당 내부로 들어서면 천장의 시공 밥법이 특이한 구조다. 작은 정자에서
이런 구조를 한두번 정도 보긴 했지만 큰 건물에서의 이런 구조는 처음이다. 대단 하면서도 특이하다,
혹시 이 특이한 공법 때문에 공안 서당이 남원 숨은보석 10선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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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梯忠信(효제충신):부모에 대한 도리로 효(孝)를 형제에 대한 도리로 제(梯)를, 나라에 대한 도리로 충(忠)을 그리고 벗에 대한
도리로 신(信)일게다. 권모술수 와 꼼수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거리와는 너무나 먼 세상의 이야기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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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시공 밥법은 '원방각 원리' 공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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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공안 서당도 코로나19를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한참 학동들로 가득해
야할 여름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두기 때문에 서당도 문을 닫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것
같다, 텅 비어있는 강당은 차라리 을씨는 스럽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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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방학때면 이학규 훈장이 전통예절 학당으로 운용하고 있는바 학생들로 가득할 강당 이었겠지
만 지금은 텅텅비어 바닦에 먼지 쌓인지가 오래 된것같다, 이놈의 코로나가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하
는 것 같아서. 유랑자는 더더욱 조심 스럽게 돌아 볼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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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시공 밥법은 '원방각 원리' 공법이라는, 보기드문 특이한 공법을 여기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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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당이란 무엇일까? 서당하면 쉬운말로 요즘으로 말하면 당시 사설 학원으로 초등교육 기
관으로 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조선 전기까지 초등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
는 것이 일반적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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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가정에서 한문 해독 능력을 갖춘 다음 서재류(書齋類)의 사설 교육기구나 관학인 향교를 통
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교육과정을 밟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보편적인 초등교육기구로 자리잡
은 서당의 직접적 전신은 서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서재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이었으나 초등교
육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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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命堂(양명당) 건강관리를 잘하여 목숨을 지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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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에는 서재를 잇는 서원이 성립되면서 중등교육을 담당하게 되고, 서재에서 이루어지던
초등교육은 서당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교육과정이 명확히 분화 되었다. 서당은 처음에는 서원에 부
속된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17세기부터 서원과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교육기구로 자리잡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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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훈장과 학생으로 구성되었으며, 규모가 큰 경우에는 학력이 우수하고 연령이 높은 학생을 접
장(接長)으로 세우기도 했다. 학생은 8~15세의 연령에 있는 양반과 평민층의 아동들이었다. 학과 내
용은 강독·제술·습자로 구성되며, 강독은 [천자문 千字文],[동몽선습 童蒙先習]이 기본이며 그외에
[사략 史略],[통감 通鑑],[소학 小學],사서(四書)·당송문(唐宋文)·〈당률 唐律〉 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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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설립 주체에 따라 훈장이 스스로 서당을 세워 아동들을 모아 가르치는 훈장 자영(自營) 서당,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에서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서당을 세우고 훈장을 고용하는 유지독영서당,
몇 명이 함께 운영비를 부담하여 훈장을 초빙하고 그들의 자제들만 가르치는 유지조합서당, 한 마을
전체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훈장을 두고 마을 아동들을 가르치는 촌조합서당으로 그 유형을 나누기
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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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선현들에 대한 향사(享祀) 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묘(祀廟)가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 서당이 운
영되는 지역적 범위가 군현 아래의 면이나 동리를 단위로 하며, 교육내용이 과거나 도학적 학문을 직
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향교나 서원과는 전혀 다른 교육체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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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서당 훈장님의 도움을 받아 뜻 풀이를 해 본다.
德不孤心有隣(덕불고필유인)덕이있는 이는 외롭지 않다, 반듯이 이웃처럼 친히 하는 이가있다..결과적으로 덕을 닦으라는
이야기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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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곳 공안서당도 코로나 19를 피해 갈수는 없는가 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2019년 표어들이 없는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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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부터 이러한 서당이 널리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 농민과 그 처지가 비슷한 하층양
반들이 존재하기 시작하고, 또 상층농민 등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평민층의 교육 요구가 높아 지면서
조선왕조의 체제적 교육으로부터 벗어나 광범위한 교육인구를 대상으로 하며, 교육내용에서는 그 정
도가 낮은 교육이 필요하게 된 사정과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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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8~19세기에 동족부락이 형성되고 이것이 서당설립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서당
이 그들 가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이전과는 달리 서당도 향사기능을 수
행하는 등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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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훈장님의 도움을 받아....
朝採三山不老草 暮汲天台甘露水 (조채삼산불로초 모급천태감로수),(아침엔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캐고. 저물녘엔 천태산에서 감로수를 길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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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기의 사회변화와 함께 서당교육은 전체적으로 보아 체제교육의 틀내에서나마 새로운 교
육관에 입각한 교육을 산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구한
말 일제에 병합되면서 서당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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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국의 서당은 1만 6,540개로 거의 모든 마을에 있었는데, 일제 침략 이후 일부에서는 종래의 초
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에 더하여 민족교육 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일
제는 1918년에 〈서당규칙〉을 제정하여 서당이 일제의 동화교육을 담당하도록 하는 한편 민족교육
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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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의 시문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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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의 숙소.이를테면 향교의 동재.서재같은 역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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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당은 근대적 학교로 일부 개편된 경우도 있으나 그 입지가 점차 축소·쇠퇴하여 8·15해방 무렵
에는 병합 당시의 수에 비해 1/3 수준으로 격감했다. 해방 후 새 정부의 교육법에 따라 서당은 그 기
능을 보통학교에 물려주고 점차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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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렇게 각 마을마다 서당이 있음으로 인해서 인성 형성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사회에 필요한 토
대를 구축하고 있는 충(忠), 효(孝), 예(禮), 의(義)를 배우고 그 교육을 바탕으로 인간의 품성이 형성
되었던 남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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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충,효.열,를 상진하는 정려각 (旌閭閣)이 안동 다음으로 많다는 것
도. 또 임진년에 전국에서 호남이 의병(義兵)이 가장 많았다는 점은 바로 이런 향교나 서당같은 곳이
많았기에 이런 교육의 바탕 위에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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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남원이란 소도시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 가치와 깊이가
여느 대 도시 못지않게 상당히 내실(內實) 있으면서도 광범위 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나름 주제
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문화도시 남원은 새로운 여행지가 아니었나 생각
하면서. 유랑자는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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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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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b2345/9toB/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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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www.insu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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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운봉읍 수철길 59-96.
(지번)운봉읍 공안리 46-4
문의:(063-634-1422)..010.634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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