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정신’이 아닌 법무부, 노동부, 산업부, 국토부, 행안부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전반적 ‘행복도’가 60점대로 나타났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청소년 행복도가 세계 꼴찌란 얘기가 많았기에 새삼스럽진 않다. 그렇다고 그러려니~ 하고 당연시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불행하면 우리 미래도 암울하니까!
점점 더 악화하는 한국 청소년 행복도
보건복지부·아동권리보장원이 최근 발표한 ‘2022년 아동권리 인식조사’엔, 2022년 초등 4학년 이상 고교 2학년 이하의 아동·청소년 행복도 평균이 69.22점으로, 2021년의 75.75점에 비해 6.53점이나 떨어졌다. 응답자 1379명 중 1002명(72.7%)은 ‘행복한 편’이라 했으나, 377명(27.3%)은 ‘행복하지 않은 편’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편’이라는 응답 비율이 최근 3년간 계속 증가한 것(2020년 16.5%→2021년 18.6%→2022년 27.3%)은 좀 심각하다.
행복도 점수가 가장 낮은 42명은 그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이 ‘학업문제 때문에’(19.0%)와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서’(19.0%)라고 했다. 그 외, ‘외모나 신체적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11.9%), ‘친구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9.5%),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 때문에’(9.5%),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4.8%) 등이었다. 학업과 가족 문제가 핵심인 셈인데, 사실 이는 다른 이유들(미래 불안, 친구관계, 가정 형편)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아동·청소년 행복도 조사 결과는 해가 바뀌어도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전반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 앤 윌슨 섀프 선생은 이미 1987년에 낸 <중독 사회>에서 특정 시스템이 4가지 신화(잘못된 믿음)에 의해 돌아갈 때 이를 ‘중독 시스템’(또는 ‘중독 사회’)이라 했다. 그 신화란, △자기 시스템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시스템임 △자기 시스템이 원래부터 우월함 △자기 시스템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음 △자기 시스템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객관적임 등이다. 이 오만한 믿음 아래 특정 시스템(사회)이 마치 알코올 중독자처럼 ‘이상하게’ 작동할 때, 중독 시스템(중독 사회)이 된다. 현실부정, 흑백논리, 책임전가, 통제환상, 적반하장 등이 핵심 특성이다.
“공부해라” 부모님 말이 하나님 말씀인 한국 사회
이를 염두에 두고 한국 현실을 보자. 우선 아동·청소년이 경험하는 현실은 한마디로, ‘공부’ 잘 해 좋은 대학 진학하는 걸 최고로 치는 사회다.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 수 없기에 부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따라서 부모의 말이 거의 하나님 말씀이다. 부모가 고생해서 너희들 뒷바라지 해주고 있으니 너희는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 이것이다! 여기서 부모가 믿고 있는 가치나 기존 현실은 과연 어떤 시스템인가? 그것은 ‘엘리트 시스템’이다. 공부 잘해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 받기 어려운 사회이기에,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은 그 엘리트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니 부모가 당면한 현실은 자녀들에게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그 압박을 내면화한 아이들은 마치 그 시스템이 옳고 정당한 것처럼 수용하고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려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공하는 10%의 소수나 성공 못하는 90%의 대다수나 스트레스 받기는 매한가지다. 성공하는 10%의 소수를 보라. 이들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잘 해내야’ 그 엘리트 그룹에 진입한다. 친구가 더 잘하면 시기심에 불탄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그간 고생한 부모님을 배신하는 일이기에 자신을 더 옥죈다.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잘해야’ 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무조건’ 잘해야 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고 성공하더라도 (특히 부모가 원했던 전공 분야가 자신의 꿈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소외감에 시달린다. 반면, 성공하지 못하는 90%를 보라. 이들은 늘 결핍감, 열등감, 죄책감에 시달린다. 물론,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면 그나마 다행! 그럼에도 성공한 10%를 보면서 부러움, 열등감, 패배감을 느끼며 피해의식에 빠지기 쉽다. 이는 ‘묻지 마 범죄’의 배경도 된다.
대부분이 ‘영원한 불만족’에 시달리는 ‘엘리트 시스템’
이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중독 시스템(중독 사회)’으로서의 ‘엘리트 시스템’에서는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는 것! 물론, 그 엘리트 그룹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들은 최소한 ‘겉보기에는’ 사람답게 사는 듯하다. 하지만 그 깊은 내면은 별로 그렇지 않다. 불행히도 그들의 현실적 삶은 외면과 내면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에, 심층 내면에서는 늘 공허감, 불안감, 두려움에 시달린다. 표면상 그들은 ‘충만한 행복감’의 얼굴을 보이지만, 심층 심리상 그들은 ‘영원한 불만족’에 시달린다, 대부분!
물론, 예외는 있다. 이들은 엘리트 그룹에 속하더라도 심층적인 성찰을 통해 ‘중독 사회’의 모순을 철저히 간파한 이들이다. 반대로, 엘리트 그룹에 속하지 않아도 역시 심층 비판과 성찰을 통해 더 이상 ‘중독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게 된 이들 역시 예외다. 물론, 심층 성찰을 통한 탈신화화의 길, 자기 해방의 길은 쉽지 않다. 현실이 발목을 잡기 일쑤기 때문!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교사와 학생을 위한 교육권 확보를 위한 집회에서 한 교사가 사망한 서이초 교사 유가족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8.5. 연합뉴스
대학 입시와 취업 고시 외에는 ‘공부’랑 담을 쌓은 사회는 쉬이 ‘중독 사회’가 된다. 한국이나 일본이 그렇다.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은 기저귀 갈아주고 학교 가기 전까지일 뿐, 일단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고 성적표를 받아오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조건부 사랑’이 시작된다. 부모, 학생, 교사, 교장 등 모두가 ‘공부 잘하는 아이’만 예뻐한다. 무슨 공부를 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별 토론이 없다. ‘무조건’ 잘 해야 한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에 가도 마찬가지다. 과연 무슨 전공을 해서 어떤 분야에서 자기만의 꿈을 이루면서도 동시에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까, 하는 고뇌는 거의 없고, 오로지 주어진 시스템에서의 출세와 성공, 성과와 안정만이 목표가 된다. 특히, 돈과 권력을 주무르는 위치에 오를수록 주어진 시스템을 당연시하고 적극 옹호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중독 시스템, 중독 사회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
첫째, 위 청소년 행복도 조사에서 보듯, 아이들 행복감이 해마다 낮다면 온 나라가 떨치고 일어나 그 원인을 따지고 시스템을 바꾸고 구조와 행위를 바꾸도록 애써야 한다. 그게 ‘제 정신’인 사회다. 그러나 해마다 조사는 조사대로 하고, 발표만 끝나면 그 다음 아무 변화도 없다. 그리고 다음에 또 다른 조사만 ‘더 비싸게’ 한다! ‘제 정신’ 없는 마약 중독자의 행위랑 무엇이 다른가? 서이초 교사의 자살이나 “왕의 DNA” 논란 뒤에는 바로 이런 중독 시스템이 깔려 있다. 이에 과연 교육부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나?
양심세력은 괴롭히고 중대 경제범들은 풀어주는 법무부
둘째, 대통령이 단행한 8월 15일 ‘광복절 특사’ 대상엔 정치경제적 중대 비리를 저질러 죄수가 된 이들이 대거 들어 있다.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정직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정치범’이 된 양심세력은 법을 농락하며 괴롭히는 대신, 중대 범죄를 저지른 엘리트들은 “한국 경제를 위한 활력”을 명분삼아 풀어 준다. ‘제 정신’으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법무부장관 아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셋째, 건설현장이건 제빵공장이건,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재해가 반복된다. 행복하려고 일하러 갔는데, 바로 그 일터에서 죽어 나온다. 한 사고가 발생하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 그 원인과 책임을 묻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예방하는 게 ‘제 정신’인 사회다. 그러려고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는 척’만 했을 뿐, 실질적인 책임 규명은 없고 늘 ‘꼬리 자르기’ 또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다. 이 법 이후에도 8명이 사망한 D건설사에 대해 노동부장관이 “철저히 수사하라”고 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책임 규명과 사후 대책이 나올지 미지수다.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간의 산 노동을 먹고 산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부단히 노동자의 목숨을 산 채로 앗아가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그러나 이 역시 ‘제 정신’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수조물을 떠마시고 있는 국민의힘 김영선 의원. 2023.6.30. MBC 뉴스 유튜브 채널 갈무리
넷째, 후쿠시마 핵폐수를 해양 방류하려는 일본에 대해 정부나 국회의원들, 어민과 수산업자들, 그리고 일반 국민과 학생들, 그 모두가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도 될까 말까 한 판국에, “얼마든 마실 수 있다”거나 “수영도 할 수 있다”며 쇼를 하는 정치인, 행정가들이 많다. “수산물 릴레이 시식회를 적극 해나간다”는 해양수산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또, 진실과 정직의 눈으로 건전한 여론 조성을 위해 토론 문화를 촉진해야 할 언론조차 한통속(동반중독)이다. ‘제 정신’인 사회에서는 불가사의! 비교적 ‘제 정신’인 독일 사회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붕괴 직후 “원전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공언했고, 2023년 4월, 모든 원전을 폐쇄했다.
‘제 정신’이 아닌 산업부 국토부 행안부
다섯째, 2018년 10월 초,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제48회 IPCC 총회(기후변화 정부협의체)에서 가맹국 만장일치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채택됐다. 한국 역시 당사국이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고자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이산화탄소, 메탄, 불화가스 등 온실가스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탄발전소 대신 LNG발전소를 추진 중인데 이는 더욱 나쁜 메탄가스를 대량 방출한다. 이는 미국 환경청 홈피에도 나오는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친환경’ 에너지라며 떠든다. 나아가 현 정부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되 원전을 확대하려 한다. 그러면서 ‘미래를 위한 에너지 정책’이라 한다. ‘제 정신’인 사회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다.
여섯째, 국토부는 어떤가? 국토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보존·보호해야 함에도 오히려 자본을 위한 개발, ‘본부장’을 위한 고속도로, 불필요한 공항, 골프장, 케이블카 추진 등 국토훼손 역할을 앞장서서 하려 한다. 거짓말을 하고도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 전형적인 중독 시스템의 행태다. 과연 ‘제 정신’인가?
8일 오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야영지에서 철수하고 있다. 2023.08. 08 연합뉴스
일곱째, 여성가족부, 행안부, 문체부가 공동 주관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보라. 개회식부터 폭염과 벌레 아래 4만여 명 아이들 고생을 시키더니 뒤늦게 도착한 대통령 부부를 위해 행사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대통령은 축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책임감과 봉사정신으로 힘을 모아 인류가 당면한 위기와 도전에 대응”할 것을 주문한 연설 내용과 달리 대통령은 현실 속의 기후위기나 전쟁위기, 경제위기, 핵폐수 위기 등과 관련, ‘제 정신’을 가진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150여 나라 4만여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미래의 성취”를 자신 있게 말하는가?
지옥이 기다리는 어리석음의 반복
세 살짜리 손주가 집에 왔다. 나랑 놀다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살짝 부딪쳤다. 아프다며 울더니 금세 행동이 바뀐다. 모서리를 지날 때마다 조심스레 자기 손바닥을 대고 지나간다! 세 살 꼬마도 ‘제 정신’이면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데, 어이하여 배운 자일수록, 높은 자일수록, 잘난 자일수록, 엘리트일수록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을까? 마치 ‘정상’처럼 작동하는, 매우 오만한 ‘중독 시스템(중독 사회)’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이 어리석음은 반복되고, 아이나 어른 그 누구도 행복하긴 어렵다. 그 끝엔 ‘지옥’이 기다릴 것이다.
‘중독 시스템’에선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