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밤 미사(루카2,1-14)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을 함께 기뻐하며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평화가 온 세상과 여러분 안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인사하시겠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의 인사를!
성탄을 정성껏 준비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동안에 노력했던 정성과 수고와 땀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갚아주시길 빕니다. 아울러 변함없는 사랑으로 세상에 예수님을 낳아드리고, 날마다 순간마다 거듭 태어나는 성탄의 삶이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요한3,16). 성탄은 바로 우리를 위해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우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랑과 나눔’의 부르심이며 요청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메마른 곳에 사랑을 전하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는 위로를 주며, 용기를 잃은 이에게는 격려를 해주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4,12)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독서를 보면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불의에서 해방시키시고 또 깨끗이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자 예수님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느냐? 복음을 보면,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였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방이 없었다’는 것에 관심을 둔다면 그분께 내어드릴 방이 없었던 것이지 방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전히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이 구세주요, 나를 구원하실 왕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문전박대하였을까요?
결국, 우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분의 생애를 말없이 일러주고 있습니다. 구유는 밥통입니다. 그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것은 밥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밥으로 오셨습니다. 밥은 자기를 완전히 내어주어서 다른 이의 영양이 됩니다. 자기는 죽고 남을 살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밥이 되셨고, 오늘도 미사 안에서 성체 성사를 통해서 그 밥을 끊임없이 주십니다. 공짜로 주십니다. 그러나 밥상이 차려져도 매일 그 밥을 먹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성당에서 성탄 축제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데 마음을 썼습니다. 그런데 다솜이라는 학생은 선천적으로 말도 더듬고 생각도 민첩하지 못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솜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어떤 역할을 줄까? 고민했습니다. 마침내 동작도 대사도 아주 적은 배역을 찾았습니다.
요셉과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는 마리아를 맞이하는 여관 주인의 역할이었습니다. 마리아와 그 일행이 여관 문을 두드리면 “방이 없어요!” 하고 한마디 말만 하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다솜이도 또박또박 발음 연습을 했습니다. 연극의 내용상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 주인과 몇 마디 더 주고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 아내가 아이를 낳을 것 같애요, 어떻게 좀 봐 주세요?” 라고 하면 “방이 없어요!” 라고 같은 말을 3번 반복하기로 정했습니다.
마침내 고통스러워하는 마리아를 부축하며 요셉은 다급히 여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나왔습니다. 다솜이는 연습한 대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방이 없어요!”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가지 않고 여관 주인에게 매달렸습니다. “제 아내가 곧 아이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방을 줄 수 없나요?”
“방이 없어요!”
다솜이는 또박또박 맡은 배역을 잘해 나갔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하면 대 성공입니다. 요셉이 마지막으로 사정합니다. “이렇게 사정하겠습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발 저희에게 방을 좀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다솜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정말 예상치 못한 말이었습니다. “제 방으로 오세요!” 연극의 대사는 아니었지만, 다솜이의 그 순수한 마음은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간절한 원의를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도 오시고 계십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구세주이심을 알았더라면 사람들은 서로 자기의 집을 내드리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오셨으니 그를 문전박대했습니다. 세상에 방은 많았지만, 그분이 태어나실 방은 없었습니다. 그 방은 오늘도 여전히 없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겸손과 낮아지심으로 마구간을 선택하시고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 안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분으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때에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오늘도 방을 내어드리지 못한 어두움, 우리의 이 어둠을 벗겨 주시러 오십니다. 그리고 빛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의 어둠이 깊을수록 더 밝게 비추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볼 수 있는 눈,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곧 그분이 태어나실 안락한 방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시길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귀한 아기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천한 마구간 구유에 누우신 이유를 새롭게 일깨우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밥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밥이 되어줍시다.
구세주 탄생의 기쁨을 함께하며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매일 매순간 우리의 마음 안에 구세주 예수님을 모셔 드리고 또 낳아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따뜻한 가슴으로 모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예수님의 성탄"
묵상 하고갑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도 오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