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살자고 하는것인지 살자고 먹는것인지 아직도 그답을 찾지 못한채 언제부터 아침,점심,저녘 을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정해진건 모르겠으나 암튼 그동안의 생활습관속에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저녘만 먹어왔던 40년세월 의잉? 나이가 몇갠디 40여년동안 두끼를 .. 아~ 얼라때 부터 군대가기전 청춘까진 꼬박꼬박 아침밥을 챙겨 먹을수 밖에 그이유? 엄격하신 3.8 따라지 아부지가 기시기에 가정의 법에 따라 아침밥을 의무감 처럼 먹었기에 ...
말이 나온김에 엄격하셨던 그리고 교육자셨던 아부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련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이셨던 아부지 장남으로 6명의 동생과 할머니를 모시고 이북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가장노릇까지 하셨던 당연히 할아버지가 계셨지만 할아버지 께선 머리가 좋으시고 손재주가 좋으셔서 돈을 잘버셨는데. 어느날 새할머니와 바람이 나면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6.25가 터지자 일찌감치 피난길에 올라 부산에서 시계방을 운영하셨다는 ..
졸지에 가장이되신 아부지 학교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읍내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다가 집에 지금의 편의점 같은 구멍가게를 차려서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며 가장노릇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6.25가 터지고 얼마후 평상시 처럼 학교를 다녀오시다가 동네 청년단 친구들에게 잡혀서 결국 인민군< 정예부대> 가 아닌 의용군 으로 끌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총알받이 로서 일선에 침투하게 되었는데 그당시 아부지 동료 7명이 있었는데 다같은 고향에 나름 배웠다는 친구들과 함께 유엔군과 대치중 그중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셨던 아부지 께서 마주보고 있는 유엔군을 향해 영어로 귀순하겠다고 하여 그렇게 유엔군 포로가 되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 리더력과 학식을 갗추다 보니 우익에서 있으면서 교관으로 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얼마후 해군방첩대에 소속되어 해군대위로서 근무하며 다시 부산에서 고려대에 들어가 법공부를 .. 그러다가 시계방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고 대학을졸업하고 첩보대 간부로서 엄마와 결혼 서울에 성북동에 신혼살림을 ... 그러던 어느날 내가 뱃속에 있을때 정치도 안정되고 하다보니 연좌제가 다시 부활해 결국 의용군 출신이란 이유로 정보국에서 쫒겨나 실업자 신세가 되어 그때부터 힘든시간을 보내셨던 ... 내가 7살될때 까지 아부지 께선 취직을 못하시고 지금의 백수로서 ... 그러다 사법고사를 포기하고 순위고사에 도전 합격하여 저멀리 강원도 정선 산꼴짜기에 초임교사로 발걸음을 시작하셨던 .. 그렇게 교편생활 하셨고 나중에 광명에 오셔서 교장으로 정년퇴임 까지 하셨던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몸관리로 아마도 100살은 무조건 사실거라는 허나 2003년 어느봄날 청천병력같은 후두암 판정을 받으시고 6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자신이 이제 얼마 못사신다는걸 아시고 아파트를 엄마 앞으로 명의를 돌리시고 또 공무원연금까지 어머니 앞으로 . 가족납골묘 16기를 모란공원에 만들어 놓으시고 돌아가시기 하루전날 온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가시는 순간까지 절대로 슛돌엄마하고 헤어지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그만큼 큰며느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그리고 그날밤 혼자서 샤워를 하시고 새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애기엄마가 지키고 있는 가운데 그렇게 임종을 하셨던 철두철미한 그런 분이셨기에 이천방지축 지존이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렇게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내갈길로 갔던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 다만 아들이 내가 원하는데로 크게끔 하지 못하게 막고 다른길로 가게 함으로서 그것이 계기가 되면서 결국 독립군의 길로 접어들렀으니 이또한 내의도가 아닌 그녀의 선택으로 일어난 ...
아직 가슴속 한편에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관계 산소에 찾아가 맘놓고 실컷 목청놓아 울어보리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것을 못한게 가슴한켠에 아부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다 " 아부지 ! 죄송해요 " 아부지의 마지막 유언마져도 지키지 못해서 " 저도 때가되면 그때 만나뵙고 ....
미팅을 끝내고 내일부터 구체적인 일로 하도업체와 자리를 갔기로 했던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후 치과 약속이 있어 조금일찍 치과로 향했다 대기석에 유난히 상냥한 여인이 눈에 띄어 그녀의 이아기를 귀기우려서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의직업은 요양보호사 사무실 원장이였다 오늘도 그녀의 보호아래 있는 어르신을 모시고 치과에 방문 어르신이 치료 하는동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참 차칸 원장이란 생각을 했다 " 장명일씨 2번에 앉으세요" " 네 " 그렇게 잠시 신경치료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를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낼부터 비가온다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비소식은 사라져서 어제 한보따리 사온 각종상추씨를 들고 아래로 내려가 밭을 다듬고 여러가지 상추씨를 뿌려댔다 호박도 잘자라고 단호박도 여주도 고추도 가지도 잘자란다 상추만 추가되면 ...
으흐~ 아주 땀으로 샤월한다 할수없이 훌러덩 다벗을수는 없고 옷입은 그대로 냇가에 풍덩 천국이 따로없다 송사리들이 장마에 물살을 가르며 올라와 바글바글 거리면서 발가락 사이를 지나친다 개구리도 가재도 사는 이곳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뱜이 살고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그것도 7.4 나 살모사 같은 가장 독이많은 뱀들이 살고있다 여기첨에 와서는 하도 뱀이 많아 뱀과의 전쟁을 벌인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어 살생하는걸 삼가하게 되면서 그냥 함께 살아가기로 하고 이젠 봐도 그냥 놔둔다
그들도 이젠 내가 적이 아니란걸 아는지 별로 날 놀라게 하지 않을뿐 이렇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첫댓글 '마누라와 국회의원의 공통점'
누가 맹글었는지 정말 딱 맞는 말씸입니다.
100%!
글츄? ㅎ
그려 자식만큼은 뚯대로 안된다 더라 다 팔자여 팔자를 워째
이렇게 살라는 운명이거니 살아야제 아버님이 훌륭하신 분이네 에휴..
아부진 정말 훌륭한분 이셨어요
표현은 안하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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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여사 거름이 부족한거 같은데 거름발이란게 있잖아
@깜장콩 사실 거름을 사는게 쉽진않아
모종 파는데 가면 포대로 된거 있을거야. 작은거 큰거 안비싸니까 사다가 상추 옆에 듬뿍 뿌려봬
불행한 역사의 희생
재능을 다 펼치시지도
못하시고 가셔서 차암
안타깝군요.
먼저글에서도 봣지마는
가실날 아시고 깨끗히
준비 마지막 삶을 정리
하신 어째 신선들 세계에
있음직한 이야기 같네요.
참 존경스러워요.
나도 돌아가신후에야 대단하시단걸
장명일씨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네요.
오잉~ 내이름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