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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판하는 자들의 재판하기의 날들에 되었고 기근이 그 땅에 있었고 유다의 베들레헴으로부터 사람이 모아브의 토지들에 머무르기 위하여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 둘이 갔습니다(룻 1:1).
룻기 1장 1절의 “그 땅”은 이스라엘 나라 땅을 말하며, “흉년(凶年)”은 농사가 안된 해를 말합니다. 씨를 심고 씨앗을 뿌렸는데 비가 오지 않아 곡식이 말라죽거나 비가 너무나 많이 와서 곡식이 썩거나 바람이 불어서 과일이 다 떨어질 때에 그 해를 “흉년”이라고 하며, 이런 상황이 될 때에 “흉년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흉년”은 “기근(饑饉)”인데 “기근”은 “흉년이 들어 주리다”를 뜻합니다. “주리다”는 “굶주리다”, “배고프다”를 뜻합니다. 곡식과 채소가 부족하여 사람들이 먹지 못하여 배고프고 굶어서 주리는 것이 바로 “기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아들이 12명이 있었고 12명의 자손들이 지파를 이루고, 각 지파의 이름은 12명의 아들의 이름대로 불렸는데 12명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유다였으며 유다의 자손들인 유다 지파의 땅이 유다였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경기도 안에 성남시, 이천시, 여주시가 있는 것처럼, 유다도 안에 베들레헴시가 있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동네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모아브의 토지에 머무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모아브”는 이스라엘 나라 옆에 있는 나라였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중국이나 일본 같은 옆 나라입니다. 한국 땅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데 중국은 먹을 것이 많이 있어 중국에서 잠시 머물러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에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모아브 땅으로 갔습니다. 유다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모두가 모아브의 토지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떠나서 이방인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는 흉년이 물러갈 동안 잠간 모아브의 토지에 머무를 생각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아브의 토지에 들어가서 머물렀습니다(룻 1:2). 그는 거기서 죽었고 그 아내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습니다(룻 1:3).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모아브 여자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롯 1:4). 하나의 이름은 오르파고 두 번째의 이름은 룻이었고 10년쯤 살았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에 흉년이 들어 온 가족이 베트남에 가서 살았는데 아들들이 베트남 여자들과 결혼하여 베트남에 10년쯤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아들 둘도 죽게 되고, 그 여자가 남았습니다(룻 1:5). 나오미는 외국 땅 안에서 남편이 죽고 아들 둘도 먼저 죽게 된 것입니다. 모아브의 토지에 먹고살려고 갔는데, 네 명 중에 세 명이 죽었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이 자녀도 없이 죽어서 나오미에게 희망이 없었습니다.
1.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결정합니다(룻 1:6-18).
1) 룻의 시어머니가 유다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룻기 1장 7절에 “그녀들이 유다의 땅에 돌아오기에 길에 간지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들이 일어나고 모아브의 토지들로부터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들에게 식량을 주시기에 방문하셨다’는 것을 그녀가 모아브의 토지 안에 들었기 때문입니다(룻 1:6).
그녀가 거기 있은 그 장소로부터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들 둘이 나오고 그녀들이 유다의 땅에 돌아오기 위해 그 길 안에 갔습니다(룻 1:7).
2) 룻의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룻기 1장 8절에 “가라 너희 엄마 집에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며느리들에 말하였기를 “가라 너희 엄마 집에 돌아가라 너희가 나에게 보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친절을 보이실 것이라. 그가 주시겠고 너희는 새 남편의 집에서 안식처를 발견하라”고 말하니까 그녀의 며느리들이 그 목소리를 높이 들어 올려 울었습니다(룻 1:8-9).
영어 성경들은 이것을 “친절”(kindness)을 보인다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절을 보인 자에 친절을 보이신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보이는 사람에게 하나님 또한 친절을 보이십니다.
3) 그 며느리들이 그 시어머니와 함께하겠다고 합니다.
룻기 1장 10절에 “엄마와 함께 엄마의 백성에게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들이 “엄마와 함께 우리가 엄마의 백성에게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녀에게 말하였습니다(룻 1:10).
4) 시어머니가 한탄하며 소망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1장 11-13절에 “돌아가라 어찌하여 너희가 나와 함께 갈 것이냐, 나에게 아들들이 나의 내장들에 있으며 너희에게 인간들에게 되겠느냐? 너희는 돌아가라 너희는 가라 이는 나는 사람에 있기에서 늙은 까닭이니 나에게 소망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내가 사람에 있고 아들들을 낳았어도. 이 때문에 그들이 자라기까지 바라느냐 사람에 있기에 가로 막힐 것이냐 나의 딸들아 그렇지 않노라 이는 나에게 너희에서 대단히 썼기 때문이니 내 안에 하나님의 손이 나왔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한 며느리는 돌아가기를 거절하나 한 며느리는 돌아갔습니다.
룻기 1장 14절에 “그녀들이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 올리고 다시 울고 하나는 그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었고 룻은 달라붙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며느리들이 그 목소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서 다시 울었습니다. 오르파는 그 시어머니에게 입 맞춘 후에 떠났지만 롯은 달라붙었습니다. 롯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 쪽을 선택하고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2') 룻의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1)
룻기 1장 15절에 “너의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神)들에게 돌아갔노라, 너도 너의 동서 뒤에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1') 룻이 모아브로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와 유다로 돌아갑니다.
룻기 1장 16-17절에 “당신 뒤로부터 돌아가게 마주치실 것이 아니니, 당신이 가실 곳에 내가 가겠고 당신이 투숙하실 곳에 내가 투숙하겠으며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겠으며. 당신이 죽으실 곳에서 내가 죽겠으며 거기에 내가 매장함을 받을 것이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시겠고 이렇게 그가 더하게 하실 것이니, 그 죽음이 나 사이와 어머니 사이에 분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를 것을 결심합니다.2) 모아브 여자 룻은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 룻은 불교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겠다고 말한 것과 같고 베트남과 불교와 새 남편 대신 한국과 기독교와 시어머니를 택했습니다. 룻은 하나님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4)
그녀가 그녀와 함께 가기에 강함을 보고 그녀에 말하기에 그쳤습니다.
2. 그녀가 아무 희망도 없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1) 그녀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룻기 1장 19절에 “그것이 베들레헴에 그녀들의 들어오기와 같이 되고, 모든 그 성읍이 그녀들 때문에 떠들었다(was stirred)”라고 하였습니다.
2) 그녀가 베들레헴 여자들에 말하였습니다.
룻기 1장 20-21절에 “당신들은 나에게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 것이고 ‘마라’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전능자께서 나에게 매우 쓰게 하셨음이고. 충만한 내가 걸었고 공허하게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신 까닭이고, 그가 내 안에 대답하셨고 전능자께서 나에게 나쁘게 만드셨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마라”(Mara)는 “쓰다”를 뜻하는 “마라르”에서 나온 말이며, “씀”, “괴로움”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기쁨”이라는 뜻의 원래 이름 대신, “씀”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하였습니다.
1') 그녀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룻기 1장 22절에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 모아브 여자인 룻이 돌아오고 베들레헴에 보리들의 수확의 시작에(at) 들어왔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3. 룻과 보아즈가 만나게 됩니다(룻 2장).
1)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삭들에 줍겠다고 말했습니다(룻 2:1-2).
룻기 2장 1-2절에 “재력의 사람인 친척이 있고, 그 이름은 ‘보아즈’고. 그 모아브 여자 룻이 그 시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밭에 갈 것이고 내가 그의 눈에 은혜를 발견할 자 뒤에 이삭에 주울 것입니다’라고 하고, 그녀가 말하기에 ‘나의 딸아 가라’라고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친척”이라는 단어(모다)는 “친족”(relative), “혈족”을 뜻합니다. “알다(know)”라는 단어(야다)에서 나왔고,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보아즈”라는 하는 이름(Boaz)에 “재빠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룻기 2장 1-3절은 룻기 2장의 서론입니다. 1절에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소개됩니다(룻 2:1). 그는 “친척”이었습니다. “재력의 강력한 사람”은 사회적 신분이나 평판을 가진 자를 말하는데, 이것은 부(富)만이 아니라 능력과 명예까지도 내포합니다.5) 그 이름은 ‘보아즈’입니다.
룻은 그 시어머니에게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겠다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2) 룻이 밭에 이삭을 주웠습니다(룻 2:3).
룻기 2장 3절에 “그녀가 가고 그 수확하는 자들 뒤에 그 밭 안에 줍고, 그녀의 우연이 보아즈에 그 밭의 한 부분에 직면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연”(미크레)은 “우연”, “운”(hap), “돌발사고”를 뜻하며, “일어나다(happen)”, “직면하다”라는 동사(카라)에서 나왔습니다.
“우연(偶然)”이라는 한자는 뜻하지 않게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뜻하지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으나 밭의 한 부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처지에서 보면 우연이었지만 실상 필연(必然)이었습니다.
그녀는 뜻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되게 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손들에서 메시아를 태어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녀의 발걸음을 그 곳에 이끄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관점에서 우연인 것처럼 생각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필연만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을 만날 때 거기에 하나님께서 미리 작정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게 되는 모든 일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이 그를 팔아넘긴 것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divine providence)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품고 계시는 그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범사를 선하게 협력하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셨음을 인정하고 모두가 선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필연만이 존재합니다.
3) 보아즈가 룻에 대해 들었습니다(룻 2:4-7).
룻기 2장 7절에 “그녀가 아침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서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4-17절은 릇과 보아즈가 추수 밭에서 만나는 내용입니다.6)
보아즈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라고 하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룻 2:4).
그리고 보아즈가 그 수확하는 자들 위에 선 그의 소년에게 말하였기를 “이 소녀는 누구에게 속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룻 2:5).
여자는 가부장적 세계에서 독립 신분과 신원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여자는 미혼 때에 아빠에게, 기혼 때에 남편에 속하여 살아야 합니다.7) 여자는 아빠의 권위, 남편의 권위 아래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보아즈는 그의 소년에게 “이 소녀는 누구냐?”고 묻지 아니하고 “이 소녀는 누구에게 속하였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보아즈는 이방인인 룻이 누구의 딸이나 아내인지 물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자연적으로 일반적인 질문으로 그녀의 소속을 물어야 했습니다.8)
그리고 그 수확하는 자들 위에 선 소년이 그에게 대답하고 말하였기를 “그녀는 모아브의 들판으로부터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아브 소녀인데. 그녀가 말하기를 ‘제가 모아들이고 단들에서 모을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그녀가 오고 아침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서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4) 룻과 보아즈가 만났습니다(룻 2:8-14).
룻기 2장 8-9절에 “나의 딸아, 너는 다른 밭에 줍기에 갈 것이 아니고 이것으로부터 지나갈 것이 아니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달라붙을 것이라. 그들이 수확할 밭에 너의 눈이 있으며, 너는 그녀들 뒤에 따랐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고 땅에 절하고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주목하기에 내가 당신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한 것입니까 그리고 나는 외국의 여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11-12절에 “남편의 죽음 후 너의 시어머니에 행한 모든 것과 너의 이전에 알지 아니한 백성에게 온 것이 나에게 알려졌노라(report). 야훼(the LORD)께서 너의 행함(your work)에 보답하실(repay) 것이고, 너의 보상(wage)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와 함께로부터 완전하나니, 너는 그의 날개 아래 피난하기에(take refuge) 왔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대상을 그 피난할 반석으로 삼고 그 신(神)들로 섬긴 사람들은 막상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신 32:37). 누구를 피난할 반석으로 삼고 나의 신(神)으로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난하기 위해 왔는데(룻 2:12),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난한 룻이 얼마나 잘되었는지는 룻기에 나옵니다.
룻이 말하기를, “나의 주여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나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만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고 그녀가 먹고 배부르고 남았습니다.
3') 보아즈가 룻에 대해 말했습니다(룻 2:15-16).
룻기 2장 15-16절에 “또한 그 곡식 단들 사이에서 그녀가 주울 것이고 너희는 그녀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지 말 것이고(do not embarrass her). 너희가 그녀를 위해 묶음들로부터 뽑아내고 버리고 그녀가 주울 것이고, 너희는 그녀를 꾸짖지 말 것이라(do not rebuke her).”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룻의 수고를 덜어 주고 이삭을 더 많이 줍도록 해 주었습니다.9) 그는 그의 종들이 그녀를 꾸짖어 그녀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지 말 것을 그의 종들에게 말하였습니다.10)
2') 룻이 밭에 이삭을 주웠습니다(룻 2:17).
룻기 2장 17절에 “그녀가 그 밭 안에 그 저녁까지 줍고 주운 것을 펴고 보리가 에파(Ephah)와 같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거둔 양은 굉장히 많은 분량입니다.11) 그렇게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보아즈의 관대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 자신의 헌신과 근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에게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12)
1') 룻이 시어머니에게 그날 있은 일을 말했습니다(룻 2:18-23).
(1) 룻이 시어머니에게 돌아왔습니다.
룻기 2장 18절에 “그리고 그녀가 들어 올리고 그녀가 성읍에 들어가고 그 시어머니가 주운 것을 보고 그녀가 남긴 것을 그녀에게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2) 시어머니가 룻에게 일한 곳을 질문하였습니다.
룻기 2장 19절에 “어디에 너는 오늘 주웠으며 어디에 너는 일하였느냐 너를 주목하여 보는 그는 복을 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룻이 대답하였습니다.
룻기 2장 19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보아즈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4) 시어머니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룻기 2장 20절에 “생존자와 사망자를 친절을 떠나지 아니하신 야훼께 그가 복을 줌을 받노라”고 하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가 룻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우리에게 가까운 자며, 그는 우리의 되사는 자로부터라”고 하였습니다(룻 2:20).
여기 “되사다(redeem)”라는 단어(가알)는 “되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redeem), “속바쳐 건지다”, “속죄(贖罪)하다”를 뜻합니다. “근친 역할을 행하다”, “자기 친족을 어려움에서 구하다”를 뜻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 “기업을 무르다”로 번역된 말이 “되사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되사다”(redeem), “다시 사다”(repurchase)라는 의미입니다. 룻기의 주제인데, 레위기 25장과 27장에 이것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팔린 대상에 대해 원래의 주인이나 근친(近親)만이 되살 수 있었습니다.
(3') 룻이 계속 대답하였습니다.
룻기 2장 21절에 “그들이 나에 있는 모든 수확물을 끝낸 때까지(until) 너는 나에게 있는 그 소년들과 함께 달라붙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이방 신분은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이야기의 독자들에게도 명확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방 출신이라는 설명은 아버지의 이름 대신 붙여졌습니다.13)
(2') 시어머니가 룻에게 일할 곳을 충고하였습니다.
룻기 2장 22절에 “좋다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는 것이고 다른 밭 안에서 그들이 너를 마주치지(meet)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다른 대상 안에 아니라, 오직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대상 안에 행복 혹은 만족을 찾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14)
(1') 룻이 매일 나갔다가 시어머니에게 돌아왔습니다.
룻기 2장 23절에 “룻이 수확을 완성하기까지 그의 소녀들에 달라붙고 그녀가 그녀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그의 소녀들에 달라붙었다는 것은 가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15) 룻은 정숙한 여자였기에 적당한 시기에 일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룻은 양식을 구할 때 외에 항상 집에 있어 그 어머니를 도왔습니다.16)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떠난 가정에서 남자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며 남아 있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음식을 주셨습니다.
룻은 죽기 전에 그녀의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모아브의 신(神)들 대신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미래를 좌우합니다. 좋은 배우자, 좋은 책, 좋은 교회, 또 영원히 거할 곳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선택한 것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선택하는 것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며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17)
룻은 엄마의 집으로 돌아가 새로 결혼하는 쪽을 선택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선택하였으며 시어머니에게 자비를 보이기를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삶이 어떻게 될지 다음 기회에 살피겠습니다(마 6:33). 어쨌든 가장 큰 복인 구원 영생을 선택하는 복된 성도들이 모두 됩시다!
1) David A.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3), 183.
2)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399.
3)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399.
4) 존 맥아더, 『하나님이 선택한 비범한 여성들』, 조계광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1), 111.
5) Frederic W.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9, 정일오 옮김 (서울: 솔로몬, 2007), 167-170.
6)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179.
7)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189.
8)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189.
9) 맥아더, 『하나님이 선택한 비범한 여성들』, 113.
10)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10.
11) 강성구, 『숨겨진 하나님』 (서울: 서로사랑, 1995), 67.
12) 강성구, 『숨겨진 하나님』 (서울: 서로사랑, 1995), 68.
13)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28.
14) Matthew Henry,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룻 2:17-23)”, 『룻기』.
15)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18.
16) Matthew Henry,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룻 2:17-23)”, 『룻기』.
17) 강준민, 『벼랑 끝에서 웃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