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골수성 급성 백혈병) 투병 구백아흔아홉(999) 번째 날 편지, 4(이슈-issue, 정치)-2023년 6월 2일 금요일 |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6월 2일 금요일이란다.
신안 우이도는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이 유배당한 섬으로, 섬 서쪽 끝 바람이 만든 모래언덕(풍성사구)에서 한적한 해변이 이어지고, 성촌마을(파란 지붕)과 돈목마을이 해변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네.
섬은 감옥으로, 끊임없이 육지를 갈망하지만, 배가 뜨지 않으면 허사라, 그런 의미에서 섬은 자유로, 서로를 속박하는 관계에서 벗어나면 고립은 자유와 동의어라네.
서남해의 많은 섬은 오래전부터 정치적 유배지로, 험한 바다를 헤엄쳐 건넌다는 건 불가능에 가가워서 섬으로 유배 보낸다는 건 다시는 한양 땅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말라는 엄명이나 다름없어 먼바다의 작은 섬은 굳이 쇠창살이 필요하지 않은데,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도 그런 섬이라네.
바닷속이 뒤집힌 걸까?
간간이 흙빛을 띠던 바닷물이 우이도가 가까워지자 우유를 풀어놓은 것처럼 푸르스름한 에메랄드빛으로 변했고, 배가 방파제를 돌아들자 제법 높은 산 아래에 여러 채의 민가가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고, 한결같이 바다를 닮은 파란 지붕이라네.
우이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65km, 면소재지인 도초도와는 직선거리 8km 떨어져 있고, 주민등록상 인구는 200명이 넘지만, 실제는 그 절반 정도만 거주하는 작은 섬으로, 정약전이 천주교 전교에 힘쓰다 유배된 우이도 진리마을이 있다네.
우이도 진리마을에 내리면, 가장 먼저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복장으로 보아 큰 상인의 풍모의 홍어장수 ‘홍어장수 문순득’ 동상이 반기도, 진리마을로 들어서면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전 동상이 세워져 있고, 문순득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네.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1758~1816)은 성균관 학생을 지도하던 전적(典籍)과 병조좌랑을 역임했지만, 천주교 전교에 힘쓰다 신유박해 때 흑산도에 귀양 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쳤고, 그 흑산도가 지금의 우이도로, 먼바다로 나가는 요충으로 1676년에는 흑산진이라는 수군 진지가 설치됐고, 이때부터 우이도는 흑산도로, 지금의 흑산도는 대흑산도로 불렸다네.
수군 진지는 사라졌지만, 진리마을 어귀에는 영조 21년(1745) 축조한 선창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고, 가지런히 돌로 쌓은 타원형 방파제 안쪽은 부두와 배를 고치는 선소를 겸했고, 태풍 때는 인근에서 조업하는 어선의 피항지였고, 선창 중앙에 계주석(벼리목)을 세워 배를 줄로 묶어 두도록 했다네.
정약전의 대표 저서로 ‘자산어보’로,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근해의 수산물을 조사해 어류 패류 조류 등 155종의 수산 동식물에 대해 기록한 책인데, 이 섬에서 또 유명한 저서는 ‘표해시말(漂海始末)’로,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세세하게 기록한 책이라네.
우이도는 문순득의 증조부 문일장이 들어오며, 일대 바다의 상업거점으로 성장했는데, 문순득의 5대손인 문종옥(68) 진리마을 이장은 “근해와 먼바다의 경계에 있어 우이도부터 물살이 달라진다. 조류를 이용하기 좋은 위치이자 해상교통의 요충”이라고 말했다네.
문순득(1777~1847)은 우이도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대흑산도권에서 홍어를 비롯한 현지 특산품을 구입해 영산강 수로를 이용해 내륙을 오가며 장사하던 일종의 중개무역상이었는데, 그의 나이 25세 때인 1801년 12월 흑산도 인근으로 홍어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다네.
처음 도착한 곳은 현재의 일본 오키나와로, 이곳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풍랑을 만나 이번에는 여송(呂宋·필리핀 북부)에 표착했는데, 필리핀에서 중국 마카오로 이동한 그는 대륙을 종단해 베이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네.
1805년 1월 8일 고향 우이도로 돌아오기까지 약 3년 2개월이 걸렸는데, 조선인 가운데 가장 긴 시간, 가장 긴 거리를 표류한 인물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문순득은 고향에 유배 온 정약전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고, 정약전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표해시말을 저술했다네.
최성환 목포대 교수는 표해시말은 상인 문순득의 뛰어난 관찰력과 실학자 정약전의 치밀함으로 집필된 표류기라 평했는데(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표해시말), 표해시말은 표류 노정뿐만 아니라, 표착지의 문화와 생활상, 조선어와 현지언어까지 비교해 기록하고 있어 문순득이 한 지역에 최소 몇 개월씩 체류했기에 다양한 경험을 녹일 수 있었다는 얘기라네.
표해시말은 우이도에 전해온 ‘유암총서(柳菴叢書)’에 원문이 필사돼 있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유암총서는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가 1818~1819년 우이도에 머물며 집필한 문집이라네.
우이도 진리마을 반대편 끝에는 돈목마을과 성촌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옛날에는 학생들이 진리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매일 3km가 넘는 산길을 왕복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네.
돈목마을은 넓은 백사장과 특이한 모래언덕 덕분에 관광객이 제법 찾는 곳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돈목마을 좁은 골목을 벗어나면,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고, 약 700m에 달하는 둥그런 해변이 섬 끝으로 연결된다네.
인적 없는 해변에 동네 염소가 어슬렁거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잔물결에 햇빛이 반짝거리며,. 거세지 않은 바람과 살랑거리는 파도소리가 참 좋아 비치타월 한 장 준비해 그대로 누워 쉬고 싶은 해변이라네.
사실 우이도에 들어갈 때만 해도 돌아오기 힘든 곳으로 쫓겨나는 정약전의 심정에 감정이입했는데, 돈목해변을 거닐 때에는 오히려 그가 부러워졌는데, 이 섬에서만큼은 죄인의 몸이라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냉혹한 정치판, 번잡한 세상사 잊을 수 있느니 이곳이 진정한 휴식과 자유의 땅 아닌가?
외로움이 사무칠 때까지 한동안 표류해도 좋겠고, 우이도 돈목마을 골목을 통과하면, 감춰 둔 이상향 같이 드넓은 돈목해변이 나타나는데, 돈목해변 끝에서 바람이 만든 우이도 풍성사구가 이어지는데, 해변 끝자락 성촌마을 오른쪽에 하얗게 모래가 드러난 산등성이가 섬이 자랑하는 풍성사구라네.
여름엔 돈목해변에서 불어대는 동남풍이, 겨울엔 언덕 너머 성촌해변에서 몰아치는 북서풍이 모래를 실어 형성된 사구로, 주민들 사이에 ‘산태’라 불리는 모래언덕은 높이 50m에 33도가 넘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한때는 독특한 풍광 때문에 누드 사진촬영대회가 열리기도 했다네.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래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이라 소문이 나면서 사람이 몰리기도 했는데, 자연히 억겁의 시간 조금씩 쌓인 모래언덕이 훼손돼 지금은 사구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하고, 대신 사구 바로 옆으로 탐방로가 놓여 있어 정상에서 작은 사막이 빚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모래언덕 아래로 길게 펼쳐지는 돈목해변과 마을 풍광이 한 폭의 그림으로, 해변은 잠잠한데, 언덕을 넘는 바람에 옷깃이 펄럭거리고, 모래 알갱이가 날리며, 또 다른 모래 사구를 만들어 사구의 형성과정을 맨눈으로 관찰할수 있다네.
돈목해변에서 풍성사구를 넘어가면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성촌해변으로 연결되는데,. 역시 무인도에 온 것처럼 한적하고, 짧은 섬 여행을 마치고, 성촌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라는데, 한낮의 볕이 제법 따가운데 그늘로 들어서니, 소매를 내려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네.
우이도 풍성사구는 돈목해변과 성촌해변에서 계절 따라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빚은 자연의 작품으로, 풍성사구 바로 옆에 위치한 성촌마을. 육지와 바람이 달라 여름에도 시원해 피서지로 더없이 좋다네.
목포에서 바로 가는 배는 하루 한 차례 ‘섬사랑6호’뿐이고, 우이도의 3개 마을과 섬 동쪽의 동우이도 서우이도까지 거치면, 무려 4시간이 걸여행지로서 우이도는 여전히 불편한데, 돈목마을과 성촌마을의 약 15가구가 민박을 운영하고, 식당이 따로 없어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네.
우이도에 가자면 면소재지인 도초도를 거치는데, 도초도는 6월이면 ‘수국섬’으로 변신하는데, 전국에서 기증받은 70~100년생 팽나무 760그루로 조성한 팽나무 10리길, 일명 ‘환상의 정원’ 산책로에 통 수국이 심겨 있고, 길이 끝나는 언덕에는 별도로 수국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6월 24일부터 7월 3일까지 섬수국축제가 예정돼 있다네.
도초도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바다 건너 실제 무대인 우이도가 보이는데, 2021년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의 주요 장면을 촬영한 곳도 흑산도가 아니라 도초도로, 수국정원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 언덕에 촬영 당시 세운 초가집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바다 건너 실제 정약전이 유배됐던 우이도가 아련히 보인다네.
도초도와 다리로 연결된 비금도도 볼거리가 쏠쏠한데, 일명 하트해변으로 불리는 하누넘해수욕장은 인증사진 명소로 알려졌고, 4.2km에 이르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은 광활하고, 단단한 모래사장으로 유명하고, 바로 옆 원평해변은 ‘바다의 미술관’을 꿈꾸고 있다네.
세계적인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바다에 설치될 예정이고,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라는 작품으로 영국의 쇠락한 도시 게이츠헤드를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작가이고, 비금도 명사십리해변. 차로 달려도 될 정도로 곱고, 단단한 모래사장이 4km 넘게 뻗어 있다네.
비금도 그림산 바위 능선으로 탐방로가 개설돼 있어 시간을 넉넉히 잡는다면, 그림산(226m)과 선왕산(255m) 산행도 고려해볼 만한데, 그리 높지 않지만, 제법 험한 바위산으로, 산등성이에 오르면 주변 다도해와 비금도 들판이 시원하게 조망된다네.
요즘은 갓 모내기를 마친 논과 염전이 햇볕에 반짝거리는데, 비금도는 1946년 주민들이 민간 최초로 천일염전을 조성한 섬이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전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6월 2일 금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Olivia Newton John-You’re The One That I W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