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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음악 작업
신동일 추천 0 조회 68 09.09.06 10:0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몇 달간 음악 작업을 했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최종 수정작업이 끝났다. 얼마 전부터 홍보가는 이미 시작됐고, 작업 후기와 홍보 삼아 글을 올린다.

 

나로서는 12년만에 맡은 장편 극영화 음악감독이었다. 저예산 영화였고, 매우 좋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친분이 있었던 제작자 분이 몇 년 만에 준비한 영화로 음악을 부탁했고, 직접 뵙진 못했지만 꾸준히 자기 길을 지켜온 홍기선 감독님 영화라는 점, 그리고 시나리오가 꽤 재미있었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도 그렇고 배우들이나 다른 스탭들도 비슷한 입장이겠지만, 이 작품의 무언가에 끌려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억대 개런티를 받는 스타급 배우들이 기꺼이 출연했고, 많은 스탭들이 이 영화를 위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선뜻 건내주었다. 개인적인 느낌은 '돈'과 관계 없이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서 한 판 놀기에(영화의 주제를 생각하면 '논다'는 표현이 맞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걸 '논다'고 표현한다) 좋은 마당을 제공해 준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 작품의 완성은 거의 Mission Impossible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저예산 영화로는 주목할 만하게 뛰어난 배우들이 참여했는데, 홍기선 감독님과 작품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을 결정했으리라고 본다. 특히 주인공 박 검사 역의 정진영 님은 촬영장에서도 노련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촬영 종료 후에도 편집실, 후반작업실에서 작품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모든 제작진이 감화를 받았고, 피어슨 역의 장근석 씨는 이 캐릭터에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고,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8월에 <프록스>와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일정이 좀 걱정되었지만, 이 영화는 꼭 하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 걱정 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제작 일정이 앞당겨져 2009년 여름은 정말 지독하게 보내야했다.

 

<프록스> 연습이 7월12일에 시작되었는데(그 전 주인 7월4일과 10일에 전북 익산과 부안에서 <시리동동 거미동동> 공연을 했는데, 출연진이 거의 전부 새롭게 바뀌는 바람에 이것도 연습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프록스>는 배우 섭외가 특히 어려웠다. 연습 시작한 지 3-4일만에 배우 한명이 또 교체될 정도였다. 아무튼 7월12일부터 8월6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휴일 없이 <프록스>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부터 밤까지는 <이태원 살인사건> 음악 작업을 했는데, 매초에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음악의 전체적인 톤만 서로 조정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셨는데, 정작 작업이 시작되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논의를 해야만 했다.

 

사실 음악의 톤을 결정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 이 영화의 장면들이 갖고 있는 정서가 대단히 묘한 것들이 많다. 홍기선 감독님이 워낙 장르 영화를 안 하시던 분이라 장면들이 전형적이지 않은데, 게다가 저예산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영화를 독특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반면 감독님은 이 영화를 좀 더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는 방향으로 만들고 싶어하셨으니, 이런 저런 조건들이 결합되어 영화의 느낌이 정말 오묘하다. 사실 영화의 배경음악이라는 게 특별한 장면이 아니면 웬만한 음악이 대충 다 어울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웬만큼 됐다 싶게 작곡을 해도 도대체 영상에 음악이 잘 붙지 않았다. 나로서는 감독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셈인데, 나중에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영화들도 작곡한 곡을 다 쓰지는 않지만 이 작품 역시 하다 하다 안 되서 음악을 포기한 장면들도 있고, 녹음까지한 뒤에 음향효과와 부딪혀서 쓰지 못한 곡도 있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프록스> 연습과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음악 두 가지 작업만으로도 하루 하루가 벅차게 지나갔다. 그 와중에 올해 세번째 열리는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 공연 준비는 정말 최악의 스케줄에서 시간을 쪼개 내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내가 2곡을 써야하게 되었는데, 포스터 전단 작업할 시간 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역시 봄부터 진행되어 왔던 초등학교 5-6학년 신규교과서 편곡작업, 9월 나루아트센터 기획 공연 준비, 역시 9월에 있을 부산 작곡마당 공연 준비, 울산시향과 함께 연주할 <프록스> 오케스트라 버전 악보 작업 등은 완전히 불가능해서 필요한 곳은 양해를 구하고 다 미뤘다.  

 

아무튼 8월1일 음악 작업을 마쳤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음악은 고전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져서 예고편 등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감독님이나 제작에 관련된 분들이  대체로 그런 방향을 원했고, 정진영 씨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 결국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3중주를 기본으로 해서 현악합주는 컴퓨터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미디(MIDI) 등 컴퓨터 작업을 해 주신 이정석 님도 본인 음반 제작 일정과 겹쳐서 굉장히 어렵게 작업해야만 했는데, 정말 열심히 도와주셨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음악이 많이 필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음악을 위해 애초부터 비워둔 장면도 있었고, 음악적으로 신중해야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그나마 작은 편성의 음악이어서 시간 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음악 작업은 최종 편집본이 완성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정상인데, 이번에는 최종편집본과 거의 동시에 음악 작업을 완료했으니 거의 미친 사람처럼 일을 한 셈이다. 근데 지나고 보니 영화음악이 그렇게 끝내지 않았으면 8월은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었을 것 같았다. <프록스> 공연이 시작되면 시간 여유가 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공연 중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해서 연출 선생님도 공연 내내 비상대기 상태였고, 미뤘던 작업들도 여유 있는 일정이 아니어서 공연 중에도 계속 다른 작업을 해야 했다.

 

오늘 오전 울산시향에 보낼 <프록스> 오케스트라 버전 작업이 완료되어 그나마 이 글을 쓰고 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저에산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쇼박스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배급한다. 상영관이 200~250개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살인의 추억>과 비교되어 실화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로 홍보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스릴러가 아니다. 홍기선 감독의 전작인 <가슴에 돋는 슬픔을 칼로 자르고>나 <선택>을 보면 아무리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해도 전형적인 스릴러를 만들 가능성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제작진들의 모니터를 전해 들은 바로는 영화가 기대햇던 방향과 달라서 실망했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은 듯 하다. 음악도 몇 번 안 나오는데다가 클래시컬한 분위기여서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소규모로 개봉해서 확대해 나가는 방향으로 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아직 개봉을 안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화려한 영상보다는 진지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는 영화이고, 나 역시 전형적인 장르 음악을 하는 작곡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영화에 대한 특별한 선입견만 없다면 푹 빠져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블로거들의 희망처럼 이 작품이 계기가 되어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다 바랄 게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도 12년만에 음악 작업을 한 영화고, 이 영화로 경제적 이득을 본 것도 아니고, 다른 욕심 없이 순수하게 작업했던 작품이기에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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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9.06 10:04

    첫댓글 오랜만에 영화 음악 맡았습니다. 많이 봐 주세요. ^^

  • 09.09.07 11:03

    극장에서 예고편 보고 이거 한번 볼까 싶었는데,,ㅋㅋ 많이 홍보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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