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조선(有明朝鮮)의 의미는...
말 그대로 명나라 조정의 통치를 받던 제후국 동국조선이다...란 일반적 해석관 다르게...
명나라 시절의 조선이란 뜻이다...란 해석과 함께...
당 연구회 선생님들 상당수는...조정의 명칭을 명(明)으로 하던 동국조선이다.
고로, 조선의 중앙조정 지역인 중국(中國)의 조정명칭이 명(明)인 것이라고들 하시는데...
저는 일단,전체적인 광의적 개념에선 이런 해석도 맞다 봅니다.
동북아에 있던 동국조선은 어짜피 무굴(서아시아&중앙아)지역 명조(明朝)의 통치를 받았던...
그 왕족들의 본향도 그곳인 상황이 이씨조선기의 상황였을 것이기 때문이지여...
제후국인 동국조선의 상국의 조대명이 명(明)이니...
당연, 동국조선인들이 섬기는 황실의 조대명은 명(明)일 수 밖엔 없는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유명조선(有明朝鮮)의 명(明)이란 뜻이...조선왕실 조대명이란 이유 중 중요한 하나로 거론들 하시는...
상재적으로 청나라 통치기의 시기엔...유청조선(有淸朝鮮)이란 기록들이 전혀 없음을 드십니다.
유명조선이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이다..란 뜻이라면...
청나라에 예속됐던 시기엔 왜 유청조선(有淸朝鮮)이란 기록들이 전혀 없냐시는 논리들이신가 본데...
이걸 어쩝니까...?
제가 일일히 조사하고 다니진 못했지만...
그의 주장의 저의가 어떻느니의 평가는 보류하더라도...
밑의 중국학자가 한반도 사대부들 묘비석들 일일히 조사한 바론...
유청조선국(有淸朝鮮國)이란 묘비석 글씨들이 널널했다 합니다...?
그럼...같은 경우로...
명(明)이 동국조선의 왕실이름이라 하신 선생님들 주장을 적용하자면...
청(淸)이라 표기됀 구한말의 청나라는...청(淸)이란 조정이름을 쓰던...동국조선의 나라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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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젠슝 교수의 '한국의 중국문화 전승 공헌론'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사이트 인민망은 지난 2월20일 거젠슝(葛劍雄) 푸단(復旦)대학 교수의 ‘왜 한국이 중국문화 전승에 기여했다 말하는가’라는 칼럼을 실었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거젠슝 교수는 “선진(先秦)시기부터 청(淸)말 중국이 청일전쟁 패배로 ‘마관조약(馬關條約)’을 체결하여 조선의 독립국을 인정할 때까지 한국은 중국에 예속 정도와 친소(親疏)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의 번속국”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의 옛 사대부들의 거의 대부분의 묘비에 ‘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 ‘대청조선국(大淸朝鮮國)’, ‘유청조선국(有淸朝鮮國)’이라 새겨 놓았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기본적으로 한국은 중국에 자발적으로 의존했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한국이 보존한 것일 뿐 중화문화의 자랑이라는 아전인수식 궤변을 펼쳤다. 거 교수는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애국 열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기본적인 역사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애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철부지 중국 네티즌들의 ‘천박한’ 애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거 교수의 논리 저변에는 노골적인 중국 우월론이 깔려있다. 마치 라틴어 문화의 힘을 강조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문화는 모두 라틴문화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셈이다. 우리로써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아래는 거젠슝 교수의 칼럼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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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광저우 ‘영남강단’에서 한 편의 연구보고를 한 바 있다. 청중들의 질의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국이 중국 전통 문화 보전에 공헌을 했다고 발언했다. 언론 보도가 나가자 큰 논란이 벌어졌다. 심지어 나를 ‘매국자’라느니 ‘한국에 아첨’한다느니 하는 각종 비난과 욕설이 인터넷에 난무했다. 본래 어떤 논리나 관점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제기하는 토론과 반론은 모두 합당한 뜻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술적으로 발전할 수 없으며 진리로 드러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본 반대의견들은 뜻밖에도 기본적인 역사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 어떤 것은 한마디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 울지도 웃지도 못할 정도의 것들이었다.
그러니 먼저 역사적인 사실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자. 일찍이 선진(先秦)시기에 지금의 조선반도에는 이미 중원에서 옮겨간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요동(遼東)에 인접한 서북부 지역에 많이 분포했다. 진한(秦漢)시기 세워진 위씨(衛氏) 조선은 중원 이민자들이 주체가 된 나라였다. 서한(西漢) 무제(武帝)가 강토를 개척하면서 영토가 조선반도 북부까지 넓어졌다. 요동과 조선에 사군(四郡)을 설치해 조정에서 직접 관할했다. 내지의 행정제도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통치한 것. 동한(東漢) 후기 관할구역이 비록 축소됐으나 중국의 삼국, 서진(西晉)시기 다시 확대하여 새롭게 일급 행정구역인 영주(營州)를 설치했다. 6세기 후반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중원 정권과 관계를 끊었다. 당(唐) 고종시기 다시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다시 한번 직접 통치를 진행했다. 원(元)왕조가 조선을 정복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했으나 대내적으로는 국왕을 잔존시켰다. 명(明), 청(清) 두 왕조는 조선을 번속국으로 두었고 갑오전쟁 패배 후에 일본과 ‘마관조약(馬關條約)’을 맺은 후에 비로소 그 독립 지위를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지금 소수 한국인이 온갖 방법으로 중국과의 역사 관계를 끊고, 어떤 이는 본말을 전도하여 사실을 날조하려 하고 있지만 역사상 조선은 줄곧 중국의 일부분으로 자처하거나 천조(天朝)의 번속국임을 영광으로 여겼다. 나는 한국에 가서 두 눈으로 거의 모든 고대 사대부의 묘비에 ‘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 ‘대청조선국(大淸朝鮮國)’, ‘유청조선국(有淸朝鮮國)’이라 새겨 놓은 것을 확인했다. 특별히 명조 만력(萬曆)년간에 조선에 원군을 파견해 일본의 침략을 패퇴시킨 후 조선의 군신들은 은혜에 감사해 했다. 청조가 입관한 후에 조선의 나라가 적고 백성이 빈궁한 것은 고려치 않고 군신들이 수 차례 은밀히 모반을 도모해 명조의 회복을 도움으로써 ‘생명을 구해준 은혜[再造之恩]’에 보답하려 했다. 목숨을 걸고 청조의 치발령과 복식령은 거부한 이후에 계속해서 ‘한족의 의관’을 고수했다. 19세기 말 내란과 외환이 심해져 망국의 위기에 닥쳤을 때에도 종주국인 청조에 출병하여 원조해줄 것을 희망했다.
기원전 2세기 서한의 판도에 편입된 이래 조선 북부는 중원 왕조의 일부분으로 수백 년을 이어왔다. 중국문화가 그 곳의 주류 문화가 된 이래 조선반도 전통문화의 원류와 주체가 됐다. 그때부터 조선은 직접 한자를 채용했다. 자기의 문자를 제정한 후에도 한자는 여전히 관방의 정식 문자로 남았다. 조선의 주요 제도, 주류문화, 윤리도덕, 학술문화는 모두 중국에서 전해져 그 기초 위에서 발전했다. 서한 말 조선 북부의 방언과 ‘연대(燕代, 대부분 지금의 하북(河北) 북부, 산서(山西) 서북부와 일치)’ 일대 사람들의 말과 일치했다. 조선의 세가대족은 모두 그 조상이 중원의 대성에서 연원한다고 자칭했다. 기자(箕子), 주공(周公), 공자(孔子), 태원왕씨(太原王氏), 청하최씨(淸河崔氏), 형양정씨(滎陽鄭氏), 하동유씨(河東柳氏)로부터 주희(朱熹)까지 조선에는 수많은 ‘후예(後裔)’들이 존재했다. 비록 이들 대다수는 권세에 빌붙으려는 의도로 나온 것이나 중국과 중국 문화가 고대 조선에서 숭고한 지위에 있었음을 반영한다. 하물며 문화는 결코 강역을 경계로 할 수 없다. 조선과 중국의 관계는 부속되기도 나뉘어 있기도 했고 밀접할 때도 소원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전 조선반도는 줄곧 중국 문화에 속한 지역이었음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 문화의 원류는 중국 문화다. 단 전승 과정에서 조선반도라는 구체적 조건에 근거하여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창조한 것이다. 이는 한국 문화의 성취이며 이는 또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공헌이다.
공자는 일찌기 ‘즉 예를 잃었으면 초야를 뒤져서 찾아내야 한다(禮失求諸野)’라 말한 바 있다. 화하(華夏)의 여러 민족들이 황하의 중상류 지역에서 형성한 화하(漢) 문화는 인구의 이동, 경제와 문화의 교류에 따라 점차 중원 왕조와 번속국으로 확대됐으며 중국 문화의 주체를 형성했다. 그 발전과 변화의 과정 속에서 각종 문화현상은 파도의 모양과 같이 중심에서 주변으로, 발달된 선진구역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뻗어나갔다. 주변 지역은 왕왕 지형이 폐쇄됐거나 교통이 막혀있고 인구 이동이 적어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심지역이나 발달지역보다 늦다. 이러한 문화지체현상은 도리어 문화의 보존과 연속으로 나타났다. 중심 지역에서 일찍이 소멸된 문화현상이 도리어 주변부 혹 폐쇄된 지역에서는 장기간 존속할뿐더러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연히 이러한 문화는 그 곳의 주류문화로 인정받고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후에는 현지 사람들이 더욱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부단히 새롭게 가꿔 어떤 방면에서는 심지어 모체문화를 뛰어넘는다. 이렇기 때문에 공자는 ‘야(野)’에 가서 중원 화하가 이미 잃어버린 ‘예(禮)’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에서 이미 잃어버린 ‘예’ 역시 한국에서는 온전하게 찾을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예’를 얻어 널리 알린다면 이것이 어찌 조선인들이 중국문화에 대한 공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어찌 중국 문화 자체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한국은 1972년 세계문화유산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137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의 명나라 홍무(洪武)연간에 해당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예실구제야(禮失求諸野)’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종이와 활자인쇄는 중국이 발명한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의 주요 내용은 ‘경덕진등록(景德鎭燈錄)’,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등 사전부(史傳部)의 불경을 널리 읽은 후에 역대 불교계의 여러 선사들의 게(偈), 송(頌), 찬(贊), 가(歌), 명서(銘書), 법어(法語), 문답(問答) 중에서 선(禪)의 중요부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초록한 것이다. 분명히 한나라 때 전해진 불교와 중국에서 탄생한 선학(禪學)은 한자를 사용했다. 그 자체가 중국 문화의 일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그보다 더 오랜 같은 유형의 인쇄물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화 산물은 확실히 한국인이 창조한 것일 수도 있고, 중원으로부터 전래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한국인들이 완전하게 보존해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모두 중국 문화에 대한 공헌임은 확실하다. 만일 이후 중국에서 더 오래된 비슷한 유형의 인쇄물이 발견된다면 보충 신청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세계문화유산의 기록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후에 새로운 발견이 없다면 그것이 중국의 불교문화와 인쇄술, 제지술을 대표하여 세계에 전시하면 된다.
또 청조가 들어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복식을 바꾸면서 명대의 복식은 중국에서 기본적으로 사라졌다. 단지 조선에서는 19세기 말까지 보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예는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중에 많은 수는 중국에서 이미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은 것들이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애국 열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기본적인 역사사실을 모른다면 어떻게 애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과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첫댓글 조작된 역사를 배웠으니 저런 엉터리 짱개학자가 말도 안되는 가설을 떠벌리는 구만 짱개학자들도 은나라는 고조선에서 나와서 망한후 고조선땅으로 유민이 돌아갔다고 한다. 그럼 고조선이 상국이냐 은나라가 상국이냐 !!!은나라 유물을 발굴한 결과 발해만일대를 향해 있는 것이 많다고 한다. 왜냐 발해만일대에 고조선의 수도가 있었으니까 그런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유주에 당장경이 있는데 고조선의 수도라고 한 기록이 있고 명나라기록에도 영평부에 조선성이 있다라고 했다. 조선시대 학자들 문헌을 보면 고조선이 부여에게 천자국의 지위를 물려준 것을 알수 있다. 그러니 고구려 백제가 부여의 계승국이라고 그렇게 주장했던 것
한나라기록을 보면 유방과 항우의 마지막 대전에서 북맥( 부여)의 기병들이 도와줘서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왕망이 말하길 부여가 예전처럼 다시일어나서 공격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즉 부여는 고구려에 밀리기전까지 사실상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다.약소국이었다면 왜 백제가 남부여라고 이름까지 바꾸고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줄기차게 주장했겠는가 고구려 백제의 태왕들이 죽을때 짱개왕조의 왕들은 마치 상국의 왕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조회를 폐했다. 그러나 신라의 왕이 죽으면 부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고구려 백제는 짱개에게 두려운 상위의 존재였고 신라는 동맹국이었던 것이다. 이후 발해의 경우 돌궐과 함께 당을
공격하여 최치원의 표현대로라면 만리의 벌판을 차지하고 북방의 강자로 군림했다. 독자적으로 황제라고 칭하고 제후왕도 있었으니 발해와 돌궐은 당에게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고 신라는 계속적으로 당과의 동맹관계였던 것이다. 고려가 성립될때 요와 고려 송나라의기록을 검토해 보니 고려가 요나라가 망할때 송나라에 보낸 서신에 요나라는 우리의 형제라고 했고 송은 대요라고 칭하며 요나라에 굽실댔다. 송은 고려가 조공한 물품의 몇배를 고려에 보상했으니 이에 대신들이 고려에서 조공을 받지 말자고 건의하는 기록도 있다. 즉 사실상 송이 고려에 진상한 관계였던 것이다. 즉 요와 고려는 형제국으로 같은 황제국이며 송은
요에게는 굽실대고 고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금나라가 건국되기전 여진의 상국노릇했던 고려는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킬때 요나라에 구원군을 파병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후 금나라가 송나라를 신하국으로 만들자 그제서야 고려가 금을 형으로 대접해 준 것이다.원나라에는 속국이자 부마국으로 전락했지만 공민왕때 독립했으며 주원장 장사성 등의 지방군벌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다. 조선건국후 명과 조선은 서로 적대하고 의심하는 관계였으며 태조이성계는 금나라의 부활을 원하는 여진족과 문신의 대표세력인 정도전을 앞세워 사실상 명나라침공을 준비했다. 실록에는 태조가 명나라침공을 명령하고 정도전이 침공준비
를 완료한 다음 갑자기 태조가 병으로 쓰러지고 왕자의 난으로 명나라정벌계획이 좌절되었다고 쓰여있다. 주원장은 조선군의 침공준비소식을 듣고 고려왕 이성계가 20만대군으로 쳐들어오면 어떻게 막을거냐고 신하들에게 다그쳤고 짓던 궁궐도 취소시키고 방어준비를 했다. 임진왜란으로 도움을 받기전까지 조선과 명은 그냥 이웃나라로 무역을 하는 관계였을 뿐이다.오히려 명이 조선이 침공할까봐 두려워했다. 임진왜란초기 명나라 북경주민들은 조선이 왜와 손잡고 고구려의 옜땅을 수복하러 온다는 소문이 퍼져 피난준비를 하기 바빴다고한다. 명이 조선을 도았으니 어쩔수없이 고마움에 사대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청나라등장후 끊어졌다.
조선말기 조선이 청의 속국이었던 것은 그들의 지도만 바도 알수 있다. 청은 조선땅을 구분없이 자신들의 나라지도에 그렸다.조선의 땅인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준 것도 조선이 청에 속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신라가 처음 당에 굽실대긴 했으나 당의 지배층은 선비족즉 우리의 형제민족이요 짱개가 아니었으며 고려가 원에 속해있었으나 원은 우리의 형제민족이며 조선이 청에 속해있었으나 역시 청나라는 우리의 형제 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다. 오로지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도왔기 때문에 사대를 했던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비난할수 만은 없다. 내 조상의 역사를 한낱 짱개의 속국으로 말하는 짱개와 일부 국사학자들이 정말 싫다
그러게여...위 중화학자의 논리는 모순이 많습니다.
중원의 변방이..오지인 덕택(?)에...중원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오리지널 중원문화를 잘 보존할 수 있다면...
중원의 변방였던 카자흐스탄, 몽골,태국,인도등이 구한말가지 상투틀고 한복입고 세배하고 다녔어야 한단 논린데...
유독 한반도만 중원의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단 점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고로, 상식적으로 보자면...중원의 핵 패자 민족&문명들이 근세에 대부분 한반도 주변으로 몰렸기에...
또는 한반도와 현 만주가..어쩜 중원문명의 원조기에 그렇다라고 봄이 더 객관적일가합니다.
현 만주 집안. 한반도는 태고적 문명의 시발점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인류가 인도에서 시원하였다는 데 그건 과학적이고 제 생각엔 거시기한 뭐.... 암튼 우리가 사는 이 땅 이 곳은 무언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감춰진 무언가가.... 이상 저의 공상....
유명조선(有明朝鮮)의 의미는 '유씨'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씨'조선과 좀 다르죠... 많이 다른가요?... 즉, 본 카페를 통해서 대륙에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조선제국이 바로 '유씨'조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유(씨)조선>'유조선'= 유(기름)을 수송하는 배
만약 유명조선과 유청조선이 존재한다면, 현재의 남북한은 '북(유)조선'과 '남(유)조선'으로 불러야 하겠죠... 즉, '유조선'이 2개가 됩니다.. 기름을 가득 싣고 있고 서로 충돌을 하려 전속력으로 돌진하는데... 가만히 보니 누구 있네요... 어쩌죠?... 충동하기 직전인데.... '그자/녀'는 거기서 무었을 하는 것일까요?... 정체가 무엇일까요?..."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Sc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