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시편42:1-5)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우리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느냐?" 이는 단순히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낙심 중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신앙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낙심때문에 불안증, 불면증, 조울증, 우울증 등이 생깁니다. 이걸 우리가 그냥 방치하거나 내버려 둘 경우에는 우리의 신앙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 문제를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다루지 못함으로 불신자와 같이 반응하는 것이지요.
오늘이 시편 기자가 이 시 (시42:1-5)를 기록한 배경을 유치해 본다면 굉장히 이게 마음이 지금 어려워진 상태요. 본인이 마음이 지금 너무 힘들어서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서 갈급하게 뛰어 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되었는지를 짐작을 하면 누군가에게 크게 배신당하였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42편 5절에서 중요한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이 낙심하고 불안해 할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볼 수 있지요
1. 자기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누가 내게 하는 말, 누가 내게 가르쳐주는 정보, 즉 밖으로부터 돌아온 메시지를 주로 다루게 됩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메시지를 우리는 수용하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합니다. 그 메시지는 대부분 우리를 낙담시키고 실망시키거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던져주는 메시지를 무한정 받을 것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한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오늘 시편기자는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영혼아 내 영혼아 너 어쩌자고 금심하냐 ’하고 내가 내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지 말고 내가 나 자신에게 말 걸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시편42편 붙어 있는 43편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낙심되는 일을 만났습니까?내 마음이 툭 떨어지는 상태라면 그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어찌하여 낙심하며”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어찌하여 네가 숙이느냐”라는 뜻입니다. 슬픔의 무게 때문에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심히 우울하고 슬픈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풀이 죽은 상태입니다. “고개 숙인 남자”란 말이 있습니다. 마치 “고개 숙인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안하여”란 말의 뜻은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거나 가라앉는 바다의 파도를 묘사(시46:3)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낙심케 하는 상황 속에 빠져들고 말고, 젖어 들고, 말고, 그냥 그 메시지를 반복해서 본인이 다시한번 되뇌이고 되새기는 질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던지면 그 말을 하루 종일묵상하고 다녀요. 그냥 무시하고 살아도 되는데 하루 종일 그 메시지를 묵상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렁에서 건져 나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그런 걸 덥썩 잡아 가지고 그걸 하루 종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그런 메시지가 왔을 때 내가 다시 내게 명령해야 한다는 거예요 ‘너 왜그러냐 왜 너 지금 그런 상황에 주저 앉아 있니?’ 여러분 이게 우리가 신앙이 주는 우리의 능력이에요. 이런 예로 볼 수 있는 독백이 시편 121편에도 있는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인은 본인이 본인에게 지금 예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지극한 낙심 절망과 상심가운데 빠졌어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때 그는 눈을 들어서 향해서 내 도움이 어디서 올 건데 , 응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거야, 하나님께서는 나를 실족하게 하지 않으실 거야, 이걸 지금 계속해서 이렇게 애기해주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졸지도 않아,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곁에 있어도 졸겠지만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아, 이런 얘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낙심되는 상황을 만들어도 먼저 그 사람의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기 시작하기보다는 낙심을 당한 상심을 당한 내 자신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왜 그렇게 낙심해하고 불안해하는가 자신과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망을 두었거나 자신에게 그런 몹쓸 메시지를 던져 준 사람에게 소망을 두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별거 아닌 것에 나를 너무 소심하게 과소평가했거나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잘못된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하는게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는 내가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너무 의존적으로 변한거예요. 누군가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고나면 낙심이 커집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한테 내가 어떤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그런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져 줄 때 너무너무 낙심이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난 하나님의 자녀야 너 뭔데 ’하고 때로는 꾸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냉정이 들다 보고 시편 기자는 너한테 소망을 두지 마 그 사람한테 소망을 두지마 하나님한테 소망을 두어 이런 해답을 찾아 낸거예요.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스스로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이 말은 단순히 희망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바라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약속과 성품에 기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항상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다윗을 골리앗으로부터 지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도우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게 신앙의 본질이에요.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대개 하나님께 소망이 없기에 낙심하며 불안합니다.
나한테 소망을 두거나 이웃 사람들한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이게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베풀어주셨는지를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그분께 소망을 두게 되고 비로소 그럴 때에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전히 낙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찬송을 선택한 것입니다. 찬송은 믿음의 고백이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미리 기대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정말 건강한 신앙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런 상황이 어떻게 파도처럼 올지라도 우리는 그 메시지에 함몰되거나 침몰되거나 익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존 웨슬레와 함께 영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휫필드 목사님에게는 낙심하고 좌절할 때에 힘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헌팅턴 여사였습니다. 한번은 휫필드목사님이 절망적인 어조로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헌팅턴여사는 “잃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왜 그런 것에 감사해야 합니까?” 그 때 여사는 “주님은 잃은 자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혹시 무엇인가를 잃었습니까? 잃은 것 때문에 낙심하지 마세요. 잃은 것을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낙심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내 영혼아,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의 도우심과 구원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낙심과 불안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찬송하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