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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씨름도> 22명 남자 그림의 정체
- <씨름도>는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신선도 그림을 서민화와 태극화한 것 - - 일본어에서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는 '도우모(どうも)'의 기원은 선도성모 도모(度母-桃母) 여신에 감사한 것에서 유래했을 것 -
내가 시카고 한인축제에서 5년동안 외국인들과 코리안들을 위하여 영어와 한국말로 씨름 해설을 하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김홍도는 왜 그의 <씨름도>에서 남자들만 구경꾼들로 그렸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김홍도가 신선도를 여러 편 그린 것에 대하여 그의 민속화로서 서민들을 대변한 <씨름도>에 대입해 보았다.
씨름장에서 씨름하는 선수 두명이야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남자들의 경기였기 때문에 남자 선수들로 그린 것은 이해되지만, 씨름 구경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던 것이 전통 씨름판의 풍경이었는데 왜 김홍도는 그 구경꾼들로 남자들로만 그의 <씨름도>를 그렸을까?
1. 씨름장에서 신선들과 같은 삼매경에 빠진 구경꾼들에 대한 김홍도의 착상
이 의문에 대한 비밀은 그림 속의 남자들의 숫자 22명이란데서 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 22명이란 중앙에 부처 또는 신선을 중심으로 하여 21명의 도모(度母)들을 그린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에서 도합 22명이 되기 때문이다. 김홍도 <씨름도>의 22명의 숫자 뿐 아니라 중앙의 씨름 선수를 중심으로 둘러 선 구경꾼들은 '도모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라는 그림은 모(母)에서 보듯이 여성적인 그림인데 김홍도는 그것을 조선시대 유교시대의 남성으로 대신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수수께끼같은 인물로 자주 회자되어 왔다.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했다는 설도 있는 것도 그 하나다. 지금까지 김홍도(金弘道 1745년~ ?)의 씨름 그림은 단순히 민속화로만 규정되어 왔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남자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다시 말하자면 남자 "二十一度父(이십일도부) 또는 이십일도부(二十一度夫)로 읽어낸다.
김홍도는 신선도 그림을 그리고 또 그의 주된 그림인 서민들의 풍속화를 그리면서 신선들과 대조되는 서민들에 대하여 여러 만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결과 서민들의 <씨름도>에 22명의 사람을 그려넣어 신불사상을 바탕한 여신 중심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를 서민화하고 유교시대에 맞추어 남성화시킨 것이 그의 <씨름도>라고고 할 수 있다.
특히 성리학의 태극사상을 의식하여 <씨름도>의 중앙에 두 선수가 음양의 태극이 휘감는 자세를 취하고 주변 관람객들은 네 그룹으로 나뉘어 태극과 사괘(四卦)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김홍도의 씨름도.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신선도의 서민화 태극화로 볼 수 있다. 중앙의 음양 두 명의 씨름선수들을 태극으로 주변 구경꾼들을 네 그룹으로 나눈 것은 태극의 사회에 해당한다.
*21도모二十一度母咒輪 사람형상의 티벳 전통 기도문 글자로 만든 이십일도모상. 씨름판을 연상시킨다. 김홍도는 씨름도를 그리기 전 이 그림을 보았을까?
김홍도는 씨름장에서 구경꾼들이 전통 씨름 장면에 시선을 빼앗기고 집중하는 모습을 가히 신분을 넘어 "신선들의 삼매경"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하나하나 <씨름도>에 그려진 구경꾼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씨름 장면에 숨넘어가는 신선노름을 하는 모습들이 아닌가.
구경꾼 중에는 손가락이 반대로 '뒤집혀' 그려진 것이 있는 것도 '신선 삼매경'에 빠진 구경꾼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삼매경에 빠진 상태가 어느정도인가 하는 표현을 엿장수가 엿이 안팔려 씨름을 안보고 '먼 산'을 바라보아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엿장수도 씨름장의 전체적인 '신선도 삼매경'을 강조하는 모습에 속해 있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서민이나 천민의 신분을 가리겠는가 너도나도 신선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천하에 신선이 있다 한들 이보다 더 재미있고 평화로운 모습이 또 있겠는가 하는 그 '씨름 삼매경' 말이다. 갓을 벗어놓았건 초립을 벗어놓았건 같은 신선의 삼매경에 빠진 것이다.
<씨름도>에서 22명의 남자들만 그린 김홍도는 신선도 또는 운상신선도(雲上神仙圖)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왜 <씨름도>가 <神仙圖>인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그림에는 21명의 신선을 주변에 그리고 그들이 중앙에 모신 중심인물인 부처(또는 중심 성모)와 합하여 22명으로 되어 있다.
<씨름도>에는 중앙에 두 명의 선수가 음양태극처럼 중심을 잡고 있어 주변에 스무명이 배치된 것이다.
김홍도는 전통 선불도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그림을 서민화하고 남성화하면서 태극화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김홍도의 풍자성과 이미지 중첩성 등의 그의 독특한 예술성에서 특히 그렇게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김홍도의 <신선도> 그림을 보면 여자들을 포함하여 신선들이 각각의 자신의 하는 행동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씨름도>에서는 구경꾼들이 씨름하는 선수들의 용호상박 힘 겨루기의 홍샅바 청샅바의 음양의 기운에 다 함께 빠져들어 있는 단체적인 삼매경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묘한 모습을 전통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의 경지를 도입해 온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평범한 서민들이 신선들의 이미지와 연관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신선들의 세상을 평범한 서민들로 바꾼 이미지가 <씨름도>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풍자 그림의 대가인 김홍도 그림 가운데 '가장 서민스러운 그림'이 <씨름도>이면서 가장 '신선스러운 그림'이 <씨름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홍도의 신선도, 국보 139호
*김홍도의 운상신선도
김홍도의 씨름도의 씨름은 특히 음양 태극의 의미를 지닌다. 씨름장은 중앙의 두 씨름꾼의 음양(샅바도 청홍의 음양이다) 태극이라면 사방의 관중은 4괘의 태극을 상징한다.
그 무엇보다도 청샅바 홍샅바의 의미가 음양 태극을 구성하는 중심이라고 할 때 그 음양설의 우선적인 존재는 여성인 '음'을 앞세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21도모가 남성의 '21도부'로 바뀐 것이 김홍도의 씨름장이 되는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도>를 전통 '21도모((二十一度母)'의 영향으로 보는 필자의 이러한 해석은 김홍도 그림 해석에서 독특한 견해라고 자부한다.
* 티벳의 21도모 (二十一度母), 타라(度母)의 21가지 형태의 둔갑을 통하여 세상의 고통을 이긴다는 21 타라(Taras) 그림 타라 성모를 한자로 번역한 '度母'는 선도성모를 줄인 '도모(桃母)'와 그 음운상 의미상 같은 역사적 일치성을 가진다.
"度母"取义救度无量众生,急切有力。凡能忆念度母名号者,必得诸佛大加持力,能从种种的灾难恐惧中解脱,免除三有的痛苦,因度母之愿力,当世间越浊劣,则其救度之力越快速,摧灭魔军之力越强。度母是集诸佛菩萨事业、功德之本尊,在西藏及尼泊尔地区,累世以来有许多大修行者均修习此法得到共与不共的成就. http://q.sohu.com/forum/20/
2.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란 무엇인가
티벳의 경우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이십일다라보살(二十一多罗菩萨)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타라(Tara) 여신에게서 그 배경을 찾고자 한 배경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장경의 하나인 <圣救度佛母二十一种礼赞经>에서 이십일다라보살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救度佛母二十一种礼赞经>
救度速勇母 百秋朗月母 紫磨金色母 如来顶髻母 怛啰哞字母 释梵火天母 特啰胝发母 都哩大紧母 三宝严印母 威德欢悦母 守护众地母 顶冠月相母 如尽劫火母 手按大地母 安稳柔善母 普遍极喜母 都哩巴帝母 萨啰天海母 诸天集会母 日月广圆母 具三真实母
타라(度母)의 21가지 형태의 둔갑을 통하여 세상의 고통을 이긴다는 21 타라(Tara)가 이십일도모의 탱화라는 것이다. 타라 성모를 한자로 번역한 '度母'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줄인 '도모(桃母)'와 그 음운상 같은 역사적 일치성을 가진다. 복숭아는 그 이미지나 모양에서 여성적 상징을 가진다.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은 이러한 21도모에서 전이된 21다라보살에서 11면보살로 남아진 것이 아닐까.
이십일도모는 때로 이십제천(二十诸天) 또는 이십사제천존형(二十四诸天尊形)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天이 복수일 때는 여신을 의미하는 것은 서양의 gods가 여신으로 번역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여성적인 天과 母의 이십일도모상을 김홍도는 그의 <씨름도>에서 '서민 신선들'로 착안한 것이다. 이 얼마나 해학적이면서도 심오한 예술적인 착안인가. 그야말로 김홍도의 <씨름도>는 스물 두명의 신선들이 저마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신들의 경지에 심취해 있는 풍경인 것이다.
이십제천 또는 이십사제천에서 제천(诸天)이란 그리이스의 판테온의 만신전의 만신과 같은 많은 신들을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동양적인 신선들의 기본이 이십일도모였으며 거기에서 나중에 불교에서 천불상 만불상으로 변이된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시조 박혁거세 어머니 해척지모(赫居王之海尺之母)의 선도성모 해척지모를 중심으로 20도모들이 둘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십일도모들을 불교의 부처가 굴복시켰다 하여 부처를 중심으로 21도모가 둘러 서 있는 모습의 이십일도무 그림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티벳에서는 신선도의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와 二十诸天(이십제천) 또는 천법이십일제신(天法二十一财神)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북경 법해사 벽화 이십제천 法海寺壁画二十诸天东壁:帝释天 多闻天 广目天 菩提树神 辩才天 月宫天 散脂大将 金刚密迹 炎摩罗天 http://www.fohua.net/onews1.asp?id=316
*북경 法海寺 壁画 二十诸天 法海寺二十诸天壁画西壁 大梵天 持国天 增长天 大自在天 吉祥天 日宫天 摩利支天 地天 韦驮天 娑竭罗龙天
인도의 타라(Tara) 여신을 티벳불교에서 번역된 것이 도모(度母)였다. 도모(度母)와 신라시조 신화에서 박혁거세 어머니로 나타나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는 같은 명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도모(度母)가 불교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라면 '도모(桃母)'는 신라의 풍류 도가적인 의미를 강조한 표현일 뿐 서로 같은 '도모'인 것이다.
도모(桃母) 즉 선도성모(仙桃聖母)의 '桃'는 '어머니 타라(Tara Mother) 즉 도모(度母)를 보다 화랑의 仙道 음운에 연결시킨 결과가 '도모(桃母)'가 된 것이며 그것을 높이 칭하여 선도성모(仙桃聖母)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모에는 백도모(白度母와 녹도모(绿度母)가 있다. 흰 태양의 여신을 상징하여 흰 색으로 칠한 선도성모상을 보면 선도성모는 백도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녹도모는 그에 비하여 바다의 미역과 연관한 고래해신에 연결된 도모로 해석할 수 있겠다.
*白度母와 绿度母 Green Tara & White Tara "度母"取义救度无量众生,急切有力。凡能忆念度母名号者,必得诸佛大加持力,能从种种的灾难恐惧中解脱,免除三有的痛苦,因度母之愿力,当世间越浊劣,则其救度之力越快速,摧灭魔军之力越强。度母是集诸佛菩萨事业、功德之本尊,在西藏及尼泊尔地区,累世以来有许多大修行者均修习此法得到共与不共的成就. http://q.sohu.com/forum/20/topic/2123832
*녹도모(绿度母 Green Tara) 녹도모는 미역을 따던 해녀들의 고래토템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도모(度母)에는 백도모 녹도모가 더 유행했지만, 오색 도모는 각각의 권능의 특징을 지닌다.
홍도모는 세속의 욕심을 어떻게 긍휼과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가르친다. 청도모(Ekakati)는 티벳의 4대 불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닝마파의 수호신으로서 정신적 깨달음을 가져오고 행운을 발생시키며 모든 장애물을 헤쳐나가도록 하는데에 있어서 모질고 강인한 여성적 에너지를 표출해낸다.
As Red Tārā she teaches discriminating awareness about created phenomena, and how to turn raw desire into compassion and love. As Blue Tārā (Ekajati) she becomes a protector in the Nyingma lineage, who expresses a ferocious, wrathful, female energy whose invocation destroys all Dharmic obstacles and engenders good luck and swift spiritual awakening.
신라의 선도성모의 정체성은 불교와 유교의 천년 역사 동안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약화되어 있다. 나는 타라 성모(Tara Mother)를 티벳불교에서 도모(度母)로 번역한 티벳인들의 이해를 통하여 신라시대의 선도성모의 성격과 그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티벳 불교에는 도모 즉 타라가 21가지의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21도모들이 각각의 색갈을 따로 가지며 에너지도 각각 21 가지로 다르다고 믿어 왔다. 타라(Tara) 성모의 둔갑된 각 형태들은 그녀의 가호를 기원하는 자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베푸는 여성적인 권능을 행사한다.
Within Tibetan Buddhism, she has 21 major forms in all, each tied to a certain color and energy. And each offers some feminine attribute, of ultimate benefit to the spiritual aspirant who asks for her assistance.
티벳 글자로 만든 이십일도모가 기도하는 원형인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을 보면 사람의 모습들로 마치 김홍도 <씨름도>의 씨름 구경꾼들로 보인다. 나는 김홍도가 티벳의 이와같은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을 보고 씨름도를 구상했다고 생가한다.
중앙의 글자는 이십일도모주륜(二十一度母咒輪) 그림에 따라 바깥의 글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구경꾼들 중에도 씨름선수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신선들은 모두 신선으로서 모두 선수이며 모두 구경꾼인 것이다. 극서이 우리 민속 씨름이다.
*21도모二十一度母咒輪 사람형상의 티벳 전통 기도문 글자로 만든 이십일도모상. 씨름판을 연상시킨다. 김홍도는 씨름도를 그리기 전 이 그림을 보았을까?
*김홍도의 씨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1도모 (二十一度母.
도모(度母)는 티벳 여신으로서 인도의 타라성모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티벳 자체의 토착적인 전통 대지의 여신이며 태양의 여신이기도 했다. 티벳에서 도모(度母)는 6-7세기에 그 숭배가 크게 일어났다.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 일반적인 도모는 붉은 색 승복을 입힌다. 숭실대 박물관의 '성모상'이라는 것은 붉은 토기로 만들어진 것은 그런 붉은 승복의 도모상일 것이다.
타라(Tara) 성모는 티벳과 중국에서 때로는 베이징 올림픽의 마스코트의 하나로 등장하기도 했던 "星星"으로 불렀는데 별신을 의미한다. 불교 등의 다른 종교의 압제로 태양신이라 하지 못하여 별신으로 대신 부른 결과가 아닐까? 여신숭배가 남성지배자들에게 밀려나면서 태양의 여신 숭배는 북두칠성 숭배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의 종교인 정화수에 물을 떠서 기원하는 것은 별이 그 정화수 사발 물에 비치어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상의 둥근 원들은 그런 '사발'의 의미가 있다.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 '도모(度母)'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서 각 가정의 새벽별 숭배인 정화수 신앙의 대상으로 전이되어 내려온 것라 할 수 있다. 무속에서는 지리산 선도성모를 전국 모든 무당들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도 이러한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의 중심에 선도성모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제주도 전통 무속에서 5백 자식의 중심에 선도성모(仙桃聖母)와 같은 설문대 할망이란 바로 이십일도모의 구조의 확대라 할 수 있으며, 바리데기 오구굿에서 그대로 도모(度母)의 전통이 남아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의 선도성모는 고려시대에서도 남아 있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東神聖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東神聖母'와 함께 '仙桃聖母' 이름 그 자체가 고려시대 때까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도 경주의 서술산에 선도성모 또는 서술성모의 이름으로 성모사(聖母祠)까지 존재했으며 한 때 유지하지 못하다가 지난 70년대 성모사를 복원하여 두고 있을 정도이다.
<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제7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隋喜佛事)'편에는 선도성모의 명칭과 그 일화가 전해져 온다. 다만 불교적으로 포교적 의도를 가진 의미로 일연이 신라 시조모인 선도성모가 불교를 옹호한다는 선전의 의미로 사용된 면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혜라는 비구니가 선도성모의 현몽에 따라 선도성모를 모신 신사(神祠)로 가서 성모상 밑에서 발견한 황금으로 불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 이전 신라인들의 전통 신선풍류도의 여신이었던 선도성모가 결국 불교를 지원했다는 윤색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도성모가 불교나 그 뒷 시대에 의하여 윤색 왜곡되었다 해도 우리는 '仙桃聖母'의 '도모(桃母)'의 의미를 티벳의 '도모(度母)'를 통하여 그 배경을 추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타라(Tara) 성모가 티벳의 전통 성모에 습합되어 '도모(度母)'로 표현되면서 일본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3.일본어 '도우모'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에 대한 감사에서 유래
나는 일본인들이 감사의 말 표현에서 '도우모'라는 말의 기원에서 대해서 흥미를 느낀다. 그 뜻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직도 불분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혹여 도우모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どうも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의 '도우모'가 신라의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 도모(桃母)에 감사의 의미로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냥 줄여서 '도우모!'라고만 해도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그 원뜻은 선도성모 여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신에 대한 표현이 일상용어로 바뀐 영어의 'Oh! My God'과 유사한 의미로 말이다.
일본의 생활 용어들 중에는 그 어원이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이 아주 많은 것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말을 다른 한자로 윤색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일본말의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가 혹여 '도모(桃母)' 또는 '도모(度母)'에서 비롯되었다는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일본의 전통 종교에서 가장 감사해야 하는 신이 그들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선도성모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仙桃聖母)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여신이 선도성모라는 것은 선도성모가 태영의 여신을 의미하는 동쪽의 여신 東神聖母'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테라스(天照)의 '아마'란 일본인들이 '어' 발음이 되지 않아 '어마마마'의 '어마'를 '아마'로 표현하여 '아마테라스'가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준말인 도모(桃母)에 감사하는 '도모'에서 일본인들에게 '도우모 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의 '도우모'가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의 도모 즉 '타라'와 관련하여 일본인들이 우리의 삼국시대에 대한 존숭한 말에이 또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의 타라(Tara)를 일본 불교에서 표현할 때는 '타라니 보사츠(陀羅薩陀)로 표현한다. 때로 우리나라에서 '타라(Tara)' 여신을 다라관음(多羅觀音)으로도 표기한다.
만다라의 한자는 '曼陀羅' 또는 '曼茶羅'로 쓴다. 진언을 의미하는 만트라(Mantra, 眞言)도 만다라와 유사한 뜻인데 이러한 '다라'에 대한 불교적 용어들은 불교 이전의 타라(Tara) 성모의 음운 '타라'에 연계성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백제를 일본인들이 '쿠다라'로 부르는 것을 '큰 나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구다라'의 어원은 필자의 생각으로 도모(度母 Tara) 즉 '큰 다라(tara)'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왜국의 '큰 어머니'가 백제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한다.
<日本書記>에 나타나는 '오다라(意多郞)'와 '구다라(百濟)의 표현은 각각 작은 나라의 의미와 큰 나라의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오다라'와 '구다라'의 의미는 타라(Tara) 여신 주변의 다섯 아이들과 아홉 아이들의 차이는 아닐까?
일본이 백제보다 작은 나라라는 의미가 일본인들이 백제를 존칭하여 부르는 '구다라'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관련한 일본어에서 한자 표기는 발음기호도 아니며 원뜻과는 전혀 다른 한자로 표현할 때가 많다. '오다라'와 '구다라'는 글자 그대로 '다섯 타라 = 오다라'와 '아홉 타라 = 구다라'라는 해석이 필자의 해석이다.
일본어에서 맏아들을 '타로(太郞)'라고 하는데(둘째는 치로, 셋째는 사부로), 신라시대 화랑의 랑(郞)에서 일본인들은 '로'로 발음한다. 화랑은 본래 여성인 원화를 의미했기 때문에 타로 성모의 아들들의 숫자가 다섯이 새겨지는 급이면 '오다라(五 多郞)' 아홉이 새겨지면 구다라(九多郞)로 표현했을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일본어의 숫자 발음의 강력성 때문에 숫자 표기는 바뀌어 意多郞(오다라)로 표현하면서 발음은 그대로 우리민족의 발음 그대로 '오다라'로 남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구다라의 경우도 백제의 '百'은 구궁수(九宮數)의 최고수인 아홉과 같은 많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백제(百濟)의 '百'을 '九'로 표현했던 것에서 타라(Tara) 성모에 대한 주변 아홉 얼굴의 의미로 그렇게 '구다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타라'는 우리말은 '딸'과 음운이 연결된다.
지금은 '딸'이란 그저 여아 정도의 의미이지만, 본래는 남성 지배자를 '천자(天子)'라고 표현한 것만큼 '딸'은 "땅의 딸" 즉 '따랑(太郞)'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의 맏아들 따로-타로(太郞)은 본래 '맏딸' 즉 남성의'천자(天子)'에 해당하는 지녀(地女의 뜻이 '따랑 - 따로 - 딸'의 의미로 생각된다.
하늘천 따지 라고 할 때 '땅'은 '따'로 발음된다. 아사달처럼 달(達)로 표현되는 '땅'의 의미의 '따'이기도 하다. '따'와 '나라'를 합치면 '따라 - 타라(Tara)' 여신이 된다.
백제를 '구다라'로 부른 것은 말하자면 왜국이 백제를 그들의 '큰 어머니'나라의 의미로 '구다라'로 표현하면서 그들 나라는 성모와 그 다섯 딸들의 나라로 '오다라(다섯 딸)'로 백제는 아홉 딸들의 나라 즉 '구다라(구딸)'로 표현했을 수 있는 것이다.
타라(Tara) 성모가 티벳에서 '度母'로 번역되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어떻게 발음했을까?
나는 그 발음은 '따모'였다고 생각한다. '타라'를 '딸'로 보며 그것이 접두어가 될 때는 '따(땅)'로 되어 어머니 모(母)자를 붙여 '따모'가 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도성모(仙桃聖母)에서 선(仙)과 성(聖)이 지위적 존칭을 형용하는 것이라 할 때 도모(桃母)만이 본 명칭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는 선도적 복숭아(桃)를 썼지만, 그 뜻은 '딸 - 땅'의 의미로서 '따 어머니' 즉 '따모'로 발음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따모(桃母 - 度母)'는 대지지모(大地之母)의 우리말인 것이다.
이러한 타라 성모에 대하여 표현된 도모(度母)의 상은 도모상(度母像)이라하고, 불교에서는 때로 도불모(度佛母)라고도 하여 그 '불상'을 도불모상(度佛母像)이라고 표현한다. 때로 도모(度母)의 이미지를 없애려 존성불모상(尊胜佛母像)이라고 변형시켜 표현하거나 길상천모상(吉祥天母像)으로도 표현한다. 땅이 없어지고 불(佛)과 천(天)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따모'의 딸 '따랑'에서 '딸'에 남아 있다.
딸의 의미가 유래된 땅(따)은 바다와 함께 해신들의 다신적인 바다의 여신상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다라니경의 다라니(陀羅尼)는 그래서 따라(陀羅)에 비구니 여성을 뜻하는 니(尼)가 붙어 '딸'의 불교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십일도모 중심에 부처상을 그리면서 여신상으로서 '보살'이라고 하고 물에서 솟은 연꽃을 그리면서 바다를 그린다. 그것은 바다에서 솟은 고래에서 변이된 종교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 미역이미지의 신선의 옷을 포함한 바다 고래 해신 '해척지모'를 중심한 21도모들이 묘사되어 있다. 불교문화에서 천불상 만불상의 배경은 이러한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에서 그 기본 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다.그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해척지모(海尺之母)의 고래토템 즉 용왕신앙에서 기원한 것을 불교적으로 제어 통합시킨 의미로 그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검색에서 '이십일도모'라고 입력하여 검색하면 정보가 전무하다. 그러나 '二十一度母'로 입력하면 다양한 자료들이 나오는 것은 중국과 일본에는 불교 이전 문화들과 함께 포함된 이십일도모 자료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십일도모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쓴 한국사람은 필자 외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최고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다라니경의 '陀羅尼'란 말은 타라(Tara) 여신에서 비구니의 니(尼)가 붙은 여신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의보륜왕다라니(如意寶輪王陀羅尼)> 그림을 보면 이십일도모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의보륜왕다라니(如意寶輪王陀羅尼)
동남아의 불교에서 불교 이전의 신상들이 남아 있고 일본에서도 신라의 神國의 道를 이어받은 신도(神道)의 영향으로 여러 여신상들이 남아 있는 반면에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불교 이전 신상들이 거의 사라진 것은 중국의 사대주의 문화의 이면에 우리민족의 해신신앙 특히 고래토템을 중심한 무속전통을 죽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유교는 '부자유친'으로 상징되는 남성중심의 지배구조를 강조한 문화다. 음양신선도는 모계유친의 음을 앞세우는 여신숭배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십일도모(二十一度母)는 여신숭배 구조를 가지는 것에서 김홍도는 유교적으로 남성화시킨 것이 그의 <씨름도>로 표현한 것이다. 이십일도모는 말하자면 '딸이 한 첩(20)'만큼 많다는 딸부자 여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21도모신상(二十一度母)은 결국 용궁(龍宮) 즉 고래궁인 경궁(鯨宮)의 고래여신 용녀신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런 바다의 여신들의 신선도를 김홍도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에 맞추어 남성화시켰을 것이고 서민화 의미를 담고자 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암수 고래 두 마리가 엉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의 음과 양이 땅을 의미하는 모래판에서 청샅바(음)와 홍샅바(양)가 서로 엉켜 승자와 패자 즉 '자웅'을 가리는 것인데 그 자웅을 가린다고 할 때의 자웅(雌雄)이 암컷과 수컷을 가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암컷 자(雌)를 앞세워 자웅(雌雄)을 가린다고 하는 것이 흥미로운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처럼 씨름판을 매년 이틀씩 거대 씨름판에서 수백 경기를 한 오년쯤 보면서 일천 번쯤 경기를 중계 해설하다보면 씨름장의 모든 세밀한 기운에서 음양신선도의 자웅(雌雄)을 가리는 그 자웅(雌雄)의 의미가 청샅바 홍샅바를 넘어 주변의 구경꾼들이 이십일도모에서 오백도모 천도모 만도모에 이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일본어에서 친구를 '도모타치'라고 하는데 우리말 '동무'에서 '도모'가 유래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21도모들은 저마다 '동무'가 아니었겠는가. 이십일도모 중심의 신상에 대해서는 동무가 '도우모'가 되어 감사의 말로 도모끼리는 서로 '동무'가 되어 '도모타치'의 '도모'가 되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도>에서 구경꾼들을 보면 모두가 '동무 신선들'처럼 보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김홍도는 씨름판에서 신선들을 보았으며 결국 그는 '씨름판의 신선도'를 그린 것이다.
남자들만 씨름하는 <씨름도>에서 20명의 구경꾼과 두명의 선수가 음양으로 태극 위치에서 씨름하는 구도로 그린 것은 김홍도시대의 남성적 성리학적 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불도의 귀족적인 신선도에서 서민적인 사람들로 대치한 면도 가지고 있는 그림이 김홍도의 <씨름도>를 그린 것은 그가 신선도를 그리면서 그와같은 서민들의 풍속화에 재해석하고자 하는 구상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씨름도>를 그리면서 중앙의 두 명의 씨름선수들을 음양의 태극으로 주변 구경꾼들을 네 그룹으로 나눈 것은 태극(太極)과 그 사괘(四卦)로서 김홍도시대의 유교문화의 성리학을 배경한 서민들의 풍속에 맞춘 새로운 '신선도'를 그리고자 의도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태극(태극(太極)이 무엇인가? 큰 딸고 큰 '아딸'(아들 - 딸에서 유래한 부속어 의미)이 서로 자웅을 가리는 것이다. 본래는 딸이 이기는 것이 음양 태극의 본래의 의미가 아니었겠는가 말이다. (04/30/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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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레몬고양이 | 약간 무리인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해석이네요. 그런데 내용에 반복이 많고 문장이 산만하여 해석의 참신함을 반감시키는 것 같습니다. 21도모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부분은 접고 펼치게 한다던가 다른 링크로 연결시키고 씨름도의 구성과 21도모의 유사점을 좀더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훨씬 쉽게 전달될 것 같습니다. 05/03 14:44 03 | |||
오두방정 | 레몬고양이님 안녕하세요. 이 글은 비교적 짧은 글인데.. 어쩌죠.. 제 글 스타일을 보시려면 <오두칼럼> 국가기념일 된 '새마을운동의 날 - 4월 22일'의 역사적 의미(5)을 보신 후에 축약 버젼인 <경축> Happy National Saemaul Day! 살기좋은 새마을 되세요~! ♬ ☆...을 다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