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 강이숙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만덕전에 다다랐다. 웅장하고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정문 바로 앞에는 오월의 신록을 함박 머금은 산과 내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삶에 지친 영혼을 정화시키고 안식을 찾고 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 같았다. ‘꼭 한번은 다녀가야 할 곳’이라는 문화해설사의 얘기가 가슴에 파고 든다.
자원봉사활동으로 맺은 인연 한 분이 있었다. <블루아트>라는 예술단을 창단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보육원과 노인요양원에서 위안 연주를 해주는 봉사단 단장이었다. 음악에 열정이 대단한 분이어서 공직에 있을 때부터 틈틈이 재능기부를 해 왔다. 은퇴를 하고는 온전히 몸을 담아 정열을 쏟아 붓고 있었다. 내가 몸담아 일하고 있는 웅촌 <따뜻한 집>에 다녀간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80여명이나 되는 단원들을 이끌고 연주장비와 소품들을 가득 싣고 관광버스 두 대를 동원해서 방문을 왔다.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모든 단원들이 하루 종일 점심까지 걸러 가며 성심성의껏 어른들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즐거운 연주로 위안잔치를 베풀고 가서 무척 인상에 남았다. 그 고마운 열정에 감사표시를 하고 싶어 단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비록 자원봉사자들로 구성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활동비가 적잖이 들어가기 때문에 뜻있는 독지가들을 물색 중이라고 했다. 우선은 십시일반 각자의 사재를 갹출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보태기로 했다. 바로 정기 후원자로 등록을 마치고 얼마 안가 연락이 왔다. 식사 한 끼 하고 싶다고 했다. 달갑게 먹지 않는 모습에 의아해 하자 뜻밖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심 놀랐다. 나는 속으로 예술을 하시는 분이니 음악으로 자연 치유가 될 수 있겠지 믿으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주 활동을 쉬는 여름 겨울 두 차례 직지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명상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해 준다고 했다. 종교를 떠나 산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꼭 참여하라고 적극 권했다. 어딘지 모르게 근엄한 인품이 그것으로 단련된 것 같아 나는 상당한 호기심에 이끌렸다. 사실 그때까지도 템플스테이가 뭣인지 몰랐다. 절이라고 하면 그저 사월초파일에 등이나 켜고 놀러 다니며 관람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단장님은 많은 절을 두루 거쳤지만 직지사 프로그램이 제일 좋더라고 권유를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곳이라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처음 시작한 곳은 고향 가까이에 낯익은 곳인 비구니들만 있는 문경 대승사에서였다. 사람의 숨소리마저 끊긴 한 겨울 산사, 무거운 적막 속에 새소리 바람소리만이 지친 영혼 속에 스며들었다.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진작 몰랐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발가벗고 씻어내는 느낌이랄까? 말 할 수 없는 청량함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쉼 호흡 한 번 가다듬지 못하고 내달러 온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5박6일간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는 날이었다.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아니 아주 집을 잊었다고 하는 게 옳았다.
이상 세계를 벗어난 게 낯설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초라한 몸뚱이는 세월이라는 수레바퀴에 매정하게 얹혀졌다. 이대로 묵묵히 굴러 가겠지…… 맥없이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듬해 오월을 맞으며 우리 요양원에 어버이날 행사가 있었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블루아트 예술단을 초청했다. 그런데 부단장이 단원들을 이끌고 왔다. 단장님 안부를 물었더니 병이 위중해 절에 머무르고 계신지 벌써 6개월째라고 했다. 지난겨울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이후 내려오질 못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조만간에 시간 내서 찾아뵙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꼭 직지사로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강을 잃은 후 20년을 직지사에 드나들면서 요양과 더불어 마음공부를 한 것이었다. 어쩌면 더 빨리 세상과의 연을 끊었을지도 모를 운명을 삶과 마음에 대한 탐구를 통해 행복명상으로 병을 치유하고 거기서 얻은 기운으로 남은 생을 남을 위한 봉사로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것이었다. 단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지사 여름정기 템플스테이 신청을 마치고 달려갔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하고 대웅전에 위패만 망연히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뜻을 같이 하는 우리 35명이 함께 한 정기 문학 기행이었다.
제1코스로 직지사를 답사했다. 경내를 한 시간 가까이 둘러보면서 문화해설사는 다른 곳은 그저 대충대충 해설하였는데 왜 유독 템플스테이 장소인 만덕전에 와서는 “꼭”,“꼭” 이라고 강조까지 해가며 혼신의 해설을 하였을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방비로 흐트러진 내가 거기 있었다. 근엄하게 꾸짖는 메아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일상을 벗어나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만덕전 앞을 흐르는 내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첫댓글 방랑이가 문학에는 잼뱅이지만 목련이 글을 이~래 보면 글이 참 아름다워보여.
물론 글을 써서 남들한테 보일라면 미사여구도 쓰고 무슨소린지도 모르는 문학용어로 간을 섞지만
목련이 글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다만, 주제가 맨날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무거운 느낌이여~
물론 요즈음처럼 팍팍한 세상에 찢고 까불고 나만 행복하다는 글을 올린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거의가 다 세드엔딩이여~
문학이 예술이라면 펙트에 충실함도 중요하지만 픽션도 가미해서 엷은 희망도 줘야지.
봉화로 시집간 친구도 살려내고, 단장님도 병마와 싸워서 이겼어야지.
이건 뭐 맨날 술 생각 나는 글만 쓰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