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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리노아에서 서드클래스라 불린 중인계급이 생긴 것은 혁명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퍼스트와 세컨드, 즉 왕과 귀족의 존립을 위해 만들어진 계층이었다.
상위의 두 계층이 종사하기엔 천박하다고 여겨지는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서드클래스들은 강한 계급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밟고 올라설 하위 계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퍼스트와 세컨드에 대한 반발감보단 그 자부심이 컸기에 적어도 서드클래스에 의한 사회 변화는 17세기 초 당시 나타나기 힘들었다.
반면 하위 계층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따라서 호칭도 네 번째 클래스가 아니었다.
그들은 평민.
즉, 버려진 클래스였다.
-시한테 레 교수 저(著) <성하통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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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여- 미네! 속치마 예쁘구나.”
“끼악!”
소녀는 인간의 것이라 믿기 힘든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치마 끝을 움켜잡았다. 아래쪽 난간에 기대선 중년 사내가 당황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히죽 웃었다.
“진정해. 아저씨는 너만한 딸이 셋이나 있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미네의 외침을 가볍게 넘긴 사내는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귀엽긴 하지만 색이 영 아니야. 다음에 살땐 아저씨한테 부탁하렴. 이래뵈도 그 분야의 전문가라구.”
“여자의 적.”
“아, 딸들도 그렇게 말하더군.”
미네가 짧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자 사내는 장난끼를 거두고 손가락을 들었다.
“히아스는 운반부에 있을거다. 이번엔 속옷 보이지 마라.”
“걱정마세요. 아저씨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미네는 입을 삐죽이 내밀어 보이고는 사내가 가리킨 쪽을 향해서 달려갔다. 목 부분에서 끊어친 연갈색 단발머리가 경쾌하게 흔들렸다.
“펄펄 나는군.”
소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사내는 뒤에서 들려온 동료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좋을 때잖아.”
“좋건 나쁘건 여기서 뛰는 건 미친 짓이야.”
그들은 옆에 걸린 수건을 들어 흐르는 땀을 닦았다. 공장의 환풍장치는 형편없었다. 기계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와 열기를 막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자극적인 마찰음과 숨막히는 녹내음 속에서 쉴새없이 땀이 흘렀다. 대충 땀을 훔친 사내는 몸을 숙여 마력석의 상태를 확인하고 동료에게 손짓했다.
“슬슬 다시 하자구.”
“돌겠구만.”
몇마디 궁시렁거렸지만 기계를 멈추게 둘 수는 없었다. 마력석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 동력은 엄연히 인간이었다. 이를 악물며 남자들은 레버를 돌리기 시작했다.
치익-!
기괴한 소리와 함께 관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김이 열기에 녹아 사라졌다.
밖으로 향하는 철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미네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송글송글 맺혔던 땀방울이 바람에 닿아 식을 때의 느낌이 상쾌했다. 매번 겪는 일인데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미네는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주위를 살폈다.
운반부는 광산과 가까이 있었다. 마을 청년들이 캔 원석은 곧바로 운반부로 옮겨져 크기와 무게, 마력의 정도에 따라 분류된 뒤 공장의 각 부서로 보내진다. 원석의 등급을 정하는 건 수도성(首都星) 세르비안에서 파견된 마학자의 몫이었지만 운반기 작동은 남자 아이들이 맡고 있었다.
미네는 마학자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원석을 밀어넣는 소년들의 모습을 잠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미네! 그 치마….”
“꺅!”
마학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늘을 봤다. 번개가 쳤나? 운반기도 괜찮은데. 정체불명의 괴성에 놀랐던 그는 재빨리 관심을 끊었다. 원석을 분류하는 작업은 다른 일을 신경쓰고 있기엔 너무 중요했다. 마학자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멱살을 잡힌채 버둥거리는 남자 아이를 보지 못했다.
“여기 남자들은 하나같이 왜 이래!”
“무, 무슨 말이야! 이것 좀 놓으라구!”
“히아스 오빠도 변태 아저씨들이랑 똑같아!”
미네는 그렇게 외치고서야 손을 놓았다. 불의의 공격에서 겨우 벗어난 히아스는 목을 문지르며 눈 앞의 소녀를 두려움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넌 언젠가 날 죽일거야.”
“지금이 그 언제가일지도 몰라.”
미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실망이야. 오빠는 여자 속옷에나 신경쓰는 이상한 사람들하곤 다를 줄 알았는데.”
“쩍.”
“뭐야 그게?”
“입 벌어지는 소리. 그대의 천재성에 경의를 보냅니다. 못보던 치마를 입었네?-라는 인사와 속옷간의 무의미한 방정식을 폭력으로 멋지게 증명했잖아.”
역시 여자의 적. 오해만 하게 하고.
미네는 앞서 만났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헛기침과 함께 태연히 입을 열었다.
“못보던 치마 아니야. 이거, 저번에 보일 할아버지가 선물해 준 거잖아.”
“그랬나?”
“그랬어.”
멍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히아스를 향해 미네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치마라는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지만, 히아스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튼 매번 마중와줘서 고마워. 혼자서 돌아가는 건 좀 그렇거든.”
옆에 놓인 원석 바구니를 들어올리며 히아스가 미소 지었다. 미네는 목걸이에 달린 나무열매를 만지작거리다 그 말에 생각난 듯 재빨리 물었다.
“끝나려면 아직이야?”
“아니, 이것만 하면 돼.”
“그럼 서둘러. 가서 준비해야 할 게 많잖아.”
“왜?”
“쩍.”
“…두 번하면 재미없어.”
“페날 아저씨가 오시는 날이야, 오늘.”
히아스의 얼굴이 환해지자 미네는 왠지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맞다. 아주머니가 말씀 하셨었는데.”
“오빠, 바보지.”
“그러니까 너랑 대화가 통하잖아.”
히아스는 벌레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미네에게 가볍게 웃어보인 뒤, 원석 바구니를 들고 운반기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공장들은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곧게 솟은 굴뚝에서 뿜어진 연기가 찌푸린 잿빛 하늘사이를 흘러갔다. 귀를 아리던 쇳소리도 아련하게 울릴 뿐이었다. 푸른 들판 저편에 세워진 공장은 이편과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달랐다. 항성계 코아리노아의 두 번째 행성인 엔더리아는 본래 농경지대였다. 그러나 고순도의 마력석이 매장된 광산이 발견되자 엔더리아의 미래는 급변했다. 행성 공업화 정책이 발표되고 수많은 제조 공장들이 건설됐다. 마력석에서부터 무기에 이르기까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다양했다.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마을 사람들은 왕명에 따라 공장일에 전념하게 됐고, 논과 밭이 갈아엎어져 부지로 변했다. 엔더리아의 것이 아니었던 공장은 엔더리아의 모습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푸른 들판을 볼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사는 건 행운이라구. 다른 곳엔 공장 뿐이라잖아.”
장난감 집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공장들을 바라보던 히아스는 미네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미네는 몸을 숙여 들판 여기 저기에 피어난 꽃들을 만지고 있었다.
“날씨가 맑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응.”
공장에서 집까지는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좋은 거리였다. 아직 때묻지 않은 풀숲으로 되어 있어서, 화창한 날이면 꽃도 풀도 싱그럽게 빛났다. 하지만 오늘은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주위는 흐릿하고 탁해 보였다.
그래도 미네는 즐거웠다. 숨막히는 공장에서 벗어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들판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졌다. 미소를 머금은채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여자아이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노란 꽃 몇송이를 꺾었다.
“이거 예쁘지?”
“호오. 방금 불쌍한 제루비아를 살해했구나.”
히아스는 미네의 미소가 일그러지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괘, 괜찮아. 꽃도 나같이 귀여운 애한테 꺾인거라면 자랑스러워 할거야.”
미네가 입을 삐죽이며 약간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히아스는 여동생을 격려해줬다.
“제발 농담이라고 해줘. 우리 마을엔 정신병원이 없으니까.”
“오빠, 정말!”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람에 미네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출렁거렸다.
“어, 오늘도 하고 왔네?”
놀란 눈으로 목걸이를 가리키는 히아스의 말에 미네는 인상을 풀었다. 나무열매가 투박하게 엮은 줄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어떤 멍청이가 하룻밤을 꼬박 새서 만들어 준거니까. 그런 것치곤 너무 형편없지만.”
미네는 뒷말에 더 힘을 주어 강조했고, 잠시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던 멍청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툭-
차가운 무언가가 볼에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섬찟함에 놀란 히아스는 어깨를 움츠리며 하늘을 보았다.
쏴아아아아아---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한껏 머금어 두었던 비를 뿜은 구름은 우르릉! 통쾌하게 외쳤다. 빗방울이 치고 지나갈때마다 풀잎이 몸을 흔들었다.
“으앗!”
히아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미네에게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비에 젖은 미네의 얼굴엔 절망이 떠올라 있었다.
“이 치마… 비 맞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진짜 멍청이.”
“맞을래?!”
히아스와 미네는 손으로 머리를 감싼채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린 빗발이 휘몰아쳤다. 두 아이는 마을을 향해 쉬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렀다.
“다녀왔습니다.”
“후아~ 차가워!”
“미안, 미안.”
털어낸 빗방울을 맞은 꼬마들이 뒤로 물러서자, 히아스는 웃으며 사과했다. 미네가 현관문을 닫고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아주머니 말씀 잘듣고 있었어?”
“응!”
미네의 물음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귀여운 녀석들. 히아스는 동생들을 볼때가 제일 행복했다.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나른하게 풀리는 느낌을 즐기며 히아스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
미네가 갑자기 소리쳤다. 고개를 돌리자 벽에 몸을 기댄 장신의 남자가 보였다. 히아스의 얼굴에 기쁨이 번져나갔다.
“페날 아저씨! 벌써 오셨어요?”
“다들 물에 빠진 꼴이구나.”
페날은 활기차게 웃으며 미네와 히아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시끌벅적 앞장을 선 아이들을 따라 그들도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의 소박한 안락 의자에 노인과 중년 여인이 앉아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보일 할아버지도 계셨네요?”
미네와 같이 인사를 하던 히아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두드렸다.
“오래간만에 페날이 왔으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들어봐야지.”
“뭘요. 이야기는 보일 아저씨가 한수 위면서.”
보일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수도성에서 방금 온 자네에 비하겠나.”
페날이 쓰게 웃으며 의자에 앉자 장난치던 아이들은 주위로 몰려들었다. 벽난로에서 흘러나온 온기가 집안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아레사 아주머니, 혹시 그 꽃병 못보셨어요?”
“예쁜 제루비아구나.”
“네. 오다가 꺾었어요.”
미네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킨 아레사는 벽난로 근처의 서랍을 열어 미네가 찾던 꽃병을 꺼냈다.
정확히 꽃병이라고 할 순 없었다. 꽃병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아름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토기에 불과했다. 이리저리 일그러진 투박한 모양에서 ‘작가들’의 노력과 미숙함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아~ 우리 꺼다!”
아레사의 손에 들린 토기를 보며 아이들이 외쳤다. 그래, 저 녀석들이 만들었었지. 히아스는 쓰게 미소 지었다. 지난 겨울 그릇을 빚는다며 집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더 대단한 건 그 ‘작품’을 멋지게 구워주신 보일 할아버지지만. 히아스는 시선을 돌려 보일을 보았다. 노인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청소때 깨지지 말라고 치워 뒀었는데 깜빡 했구나.”
미네는 아레사에게 병을 받아, 들고 있던 제루비아를 꽂았다. 노란 꽃과 황토색의 꽃병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역시 세르비안은 멋지겠죠?”
히아스의 물음에 페날이 조금 머뭇거렸다. 불을 쬐던 히아스는 그 간극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페날의 쾌활한 목소리가 의아함을 지웠다.
“당연하지. 일국의 수도성이잖아. 대저택들이 가득 널렸어.”
“우리집보다 커요?”
“이 마~안큼은 더.”
“헤에….”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고층 건물들과 아름답게 꾸며진 시내, 휴일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원을 거쳐 푸른색을 띤 왕궁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달았을 때, 아레사가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얘들아. 아저씨 피곤하시겠다. 나머지는 내일 들어요. 참, 너희는 빨리 씻어라. 비 맞고 있으면 감기 들잖니.”
촛불은 미미한 빛을 내어 주위를 밝혔다.
거실에 짙게 내려앉은 어둠이 불꽃 주위에서 사그라들었다. 보일과 페날은 타오르는 촛불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발갛게 물든 서로의 얼굴이 어둠속에 덩그랗게 남았다.
“모두 잠들었어요.”
아레사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촛불을 불어 끄고 보일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세사람만이 남은 거실을 채우고 있는 건 무거운 어둠과 작게 흔들리는 촛불빛,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투명한 빗소리였다. 보일은 김이 나는 주전자를 들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페날의 찻잔을 채웠다.
“세르비안은 어떤가.”
뜨거운 백차를 목안으로 흘려넣는 페날에게 보일이 물었다. 페날은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최고예요, 젠장.”
아까의 쾌활함 따위는 사라져 있었다.
“귀족의 대저택과 화려한 거리를 벗어나면 건물 잔해와 쓰레기 더미로 뒤덮힌 장소가 나옵니다. 평민들의 주거지죠. 그들은 서드클래스에 빌붙어 조그만 장사를 하거나 외부로 곡물을 수송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돼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하층민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이 굶어 죽어갈 때 상위 계층은 화려한 연회를 즐기죠. 모든 부(富)는 그들에게 모아지도록 꾸며져 있으니까요.”
“그럴테지.”
보일의 말투는 담담했다.
“왕실이나 귀족이나 지금이 전쟁 중이라는 것마저 잊고 있겠지.”
“커스터리에와의 전투는 연례 행사일 뿐입니다. 호화로움에 찌든 자들에겐, 게임에 불과한 거겠죠.”
“죽는 건 그들이 아니니까….”
보일은 신음소리와 함께 차를 삼켰다. 차를 들이키는 소리가 멎자 다시 빗소리가 거실을 메웠다. 빈잔을 조용히 채워주는 아레사에게 보일과 페날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어둠 속의 촛불에 비친 연둣빛 차색(茶色)은 향기 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아레사는 가벼워진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온기에 잠시나마 푸근함을 느꼈다.
“아무튼, 여기 아이들은 여전히 씩씩하군요.”
페날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의식적인 화제 전환임을 페날도 알고 있었지만, 보일과 아레사는 부드럽게 미소지을 따름이었다.
“강한 아이들이지. 부모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가 밝게 성장하기란 쉽지 않네.”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 아이들이 거리에서 동물 취급을 당하지 않았던 건, 고마우신 고아 구제책 덕분이겠지.”
끝부분에서 보일의 어조는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렇게 구제된 아이들이 이곳으로 와서 공장에 투입되는 걸세. 멋진 생각이지. 임금이 필요없는 수백명의 노동력이라. 정말 대단해.”
페날은 묵묵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입가에 감도는 씁쓸함이 차 때문인지, 다른 무엇때문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히아스도 고생하는 것 같더군요. 아침부터 줄곧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현실은… 사춘기 소년에겐 너무 가혹해요.”
“전, 그 아이가 젖먹이였을때부터 키워왔어요.”
차분한 음성으로 아레사가 입을 열었다. 잠시 숨결을 가다듬은 그녀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히아스는 우리 모두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애가 떠나줬으면 해요.”
“…계속 공장에 있게 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군요.”
“공장은 아이들에겐 너무 힘들고 위험해. 히아스에게는 좀더 밝은 미래가 필요하네. 난 그걸 만들어 주고 싶어.”
보일은 고개를 들어 페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페날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가 쥔 찻잔이 가늘게 떨렸다.
“히아스가 세르비안에 자리 잡게 도와주게.”
“그게 히아스를 위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불빛에서 비껴선 페날의 얼굴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보일은 페날의 손을 잡았다. 깊게 주름진 손바닥을 통해 온기가 전해져 왔다.
“그 애는 넓은 세상을 봐야 해. …네가 그랬듯이.”
페날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밤의 세계를 희끗한 빗줄기들이 훑고 지나갔다. 창문에 몸을 부비며 흘러내렸다.
첫댓글 사회체제가 대혁명 전의 프랑스 같네요. 그나저나, 드디어.. 미소녀가 나왔습니다...ㅠ.ㅠ [감동의 눈물]
미소녀 만세. (버럭!)
미소녀에게 아낌없는 리플을~
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