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존 경 쟁 / 임 일 웅
지구상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무기로 무장한 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자연계의 변함없는 진리다. 인간이 모든 동물
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을 지배하게 된 것은 인간만이 불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생존경쟁에서 확고한 승리자가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생존경쟁에서도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좋은 무기를 갖고 생존경쟁을 벌려야하는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과 성품,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으로 얻어진 교양과 전문지식, 그리고 집안의 경제력 등이 모두 인간
각자의 무기로 사용되기 때문에 보다 유리한 상태로 생존경쟁에 임하려고
모든 인간들이 끊임없는 노력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창 친구로부터 TV 탤런트 전원주씨가 쓴
글을 전달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워낙 감동적이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표본이라고 생각되어 그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내가 다시 요약해서 여기에 인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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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훈육선생님한테
벌을 받고 있던 여학생 옆에 서 있다가 체구가 너무 작아 여학생으로 오인
받아 뺨을 맞은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교사직을 그만 두고 방송국에 취직이
되어 라디오 프로를 맡았을 때는 생김새와는 전혀 딴판인 내 목소리에
반한 청년들이 방송국을 찾아와 나를 직접 만나본 순간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도망을 간 사건이 있을 만큼 외모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보니 20년
가까운 세월을 ‘식모’ 역을 도맡는 천덕꾸러기 탤런트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살아왔다.
그 당시에는 몇 초 동안 방송되는 짧은 단역이라도 맡는 기회를 잡으려고
매일같이 방송국에 출근을 해서 연출자들한테 얼굴 도장을 찍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김성환씨와 함께 방송국에
들르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저기 봐. ‘식모’하고 ‘도둑놈’하고 또 왔네!"라고 하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좌절해서 포기하지 않은 채 절치부심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동네
시장이 문을 닫기 직전 시장 어디에선가 장사하고 번 돈을 세는 아주머니
한 분이 시장이 떠나갈 듯 유쾌한 웃음을 웃어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웃음을 듣는 순간, 그간의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저렇게 웃고 살자' 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집에서 거울을 앞에 놓고 웃는
연습을 했다. 아들이 "엄마 왜 그래, 웃지 마, 귀신 나올 것 같아." 라고
말할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재꼈더니 열흘 후에는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터질 정도로 숙달이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방송국에 들른 나는 순간적으로 "그래, 연출자들한테
약이나 올려주자." 라는 생각이 떠올라 대기실에 20명 정도의 연출자들이
모일 때를 기다려, 나는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가 갑작스럽게
"와하하하, 으하하하~~~" 라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어주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는데, "내 이 나이에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었다.
여러 연출자들이 혼비백산할 정도로 요란했던 그날의 웃음소리가 결국
연출가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방송국에서 새로 기획하고 있던 새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목소리 크고 웃음 잘 웃는 순박한 농촌
아주머니 역을 맡아 7년 이상 방영된 그 드라마에 고정 출연하면서 처절했던
방송국 내 생존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궁상맞은 극중 '식모'역에서도 벗어났지만,
그동안의 모진 설음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는 매일 방송 출연과 강연회, 또는 광고 촬영 등의 꽉 찬 스케줄에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하니 세상 어느 곳보다 외모가 가장 큰 무기인 방송
연예계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열악한 신체조건에도 불구
하고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운 그분만의 특성을 부각시켜 살벌한 생존경쟁
마당에서 화려한 승리자로 우뚝 선 전원주씨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내고
싶다.
* * * * * * *
지난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주민들의 관심을
끄는 두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 첫째는 1,400세대가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의 지하철역 출입구에 에스컬레이터가 개통된 것이고,
둘째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위치한 제법 큰 규모의 4층 상가빌딩 1층
동쪽 편 점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사람이 훨씬 좋은 장소인 남쪽 편
점포로 이전하였으나 6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였는데, 그곳에
다시 24시 편의점을 열었으나 그마져 실패하고 점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약국을 개설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상가 건물 1층 코너에는 이곳 아파트 단지 초창기부터 터줏대감처럼
확고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 약국이 버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과 10
보 쯤 떨어진 위치에 또 하나의 약국이 생긴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모두
놀라 쑤군거릴 정도의 제법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포함해서 그 주변 아파트와 단독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하철, 주민 센터, 의료기관(내과, 소아과, 치과),
금융기관(농협), 하나로 슈퍼마켓, 부동산 중개소 등을 이용할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그 상가 빌딩은 그만큼 효용가치가 높아
주민들의 관심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내가 이 동네 아파트로 옮겨온
1985년도부터 그곳에서 일어났던 흥망성쇠의 모습 몇 가지를 회상해
보겠다.
그 상가 1층에 있는 여러 개의 점포 중 가장 좋은 위치인 건물 코너에는
담배 가게를 겸하고 있는 약국이 아파트 단지 초창기부터 성업 중이고,
부동산 중개업소 4개가 주인이 거의 바뀌지 않은 상태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으나 몇 개의 점포는 식당, 빵집, 편의점, 피자가게, 치킨센터 등이
입점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주인도 바뀌고 업종도 바뀌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해 왔다. 2층에도 치과, 소아과, 내과 등의 의료기관과 사진관이
입점해 있었지만, 원래 있던 소아과와 내과, 치과는 의사들이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떠나버렸고, 사진관은 디지털 카메라와 웨딩숍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 아예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재미있는 것은 그 건물 2층에 새로 개설된 내과와 소아과 의원이다.
약 5년 전 쯤 상가 2층에 이비인후과를 겸한 내과의원이 개설되었는데,
처음에는 갑자기 감기에 걸리거나 속이 거북할 때나 우리 식구들이 종종
이용하다가 고혈압 환자인 아내는 몇 년 전부터 그곳에서 고정적으로 모든
진료를 받고 있다. 지방의 모 의과대학 출신의사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사업수완과 환자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해서 오전에 진료를 받으려면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일 정도로 환자가 줄을 선다. 반면에 출입구가
거의 붙어 있는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소아과 의원에는 간판에 서울 소재
명문대 이름을 넣었지만 환자가 도무지 찾지 않는 극단적인 편중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 동네 주민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상가 1층의 오래된 약국도 대운을 만나 하루아침에 2층 내과에서 발급
받은 약 처방전을 들고 약을 지으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이 되면서 주인
약사 외에 젊은 여자 약사, 컴퓨터 아가씨, 그리고 초창기부터 근무하던
남자 판매사원, 이렇게 네 사람이 감당해야 될 정도로 대박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 역시 그 약국을 여러 차례 이용해 왔는데, “저 약국이
2층 내과 덕분에 하루아침에 대박 났네!” 라고 웃으면서 그 앞을
지나다녔다.
지난 2월 중순 경, 아내가 혈압 약 처방을 받으러 2층 내과에 다녀온 후,
참 기막힌 일도 다 있다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료를
마치는 순간 의사가 아내한테 내과 바로 옆에 약국이 새로 생겼으니
그곳에서 약을 지으라는 부탁을 해서 내과 현관을 열고 나가 살펴보니
구석진 곳에 약국이 보이더란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서 약을 지으면서
물어보아 1월 중순에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마도 그 의사가 아래층 약사한테 많이 서운한
일이 있었거나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인 게지.’
라는 내용의 말을 둘이서 주고받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약국 앞을 지나칠 때마다 약국 안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약을 짓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고 20년 이상을 근무해온 남자
판매원은 해고를 당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상가 1층에 새로
생긴 약국은 개업 준비를 거의 다 끝낸 것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개업을 못하고 문을 굳게 닫은 채 벌써 여러 날을 허송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2층 내과의사와 1층 약사가
크게 다투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내과와 연고가 있는 약사가 약국을
열도록 한 것 같다는 소문이었다. 요즘 약국 간에 거리제한이 없어져서
바로 코앞에 새로운 약국이 개설되더라도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겠지만,
조그마한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를 서로 빼앗겠다고 같은 상가빌딩에 세
개의 약국이 난립해서 무한경쟁에 돌입하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해 보여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는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주위에서 많은 경우를 겪어 보니, 좋은 가정에서
자라고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또는 운이 좋아서 장사나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판단력을 갖춘 상태에서 좋은
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친절이 온몸에 녹아 있는 사람들만이
성공을 거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앞에서 예를 든 제과점을 운영하던
주인 부부가 웃는 모습은 도무지 볼 수 없고 늘 성난 듯 굳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들한테 외면을 당하는데, 업종을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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