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원전 방문기
여행은 누구에게나 참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속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나를 채워서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든 사람에게는 회춘제나 보약과도 같은 것이다. 5월 19일, 그런 사람 서른여덟(과우회 여직원 2명 포함)이 남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째 날
아침 8시 과기회관 출발. 차안에서 일정표와 방배정표, 전국지도, 원자력 홍보책자와 함께 뜨끈뜨끈한 백설기 떡이 나눠진다. 떡은 이상덕 회원이 떡집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이른 새벽에 직접 메고 왔다고 한다. 감사의 박수소리 터진다. 다음 기회에도 떡을 제공하겠다는 필자와의 귓속말을 혼자만 알고 있기가 뭣해 이곳에 공개한다.
수도권을 벗어난 버스도 신이 나는 모양이다. 속도감만으로도 속이 확 뚫리는 것 같다. 흔들리는 차창너머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서산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영광IC를 빠져나온 버스는 법성포 굴비마을을 지나 가마미(駕馬尾:마을 뒤쪽 금정산의 지형이 마치 멍에를 쓴 말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활어회센터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갯마을횟집에서 백합탕으로 점심식사. 펄펄 끓는 조개국물이 시원하다고 다들 한마디씩이다.
발전소 후문을 통과해 1시반 홍보관에 도착했다. 십 수년전 방문했을 때는 원자로뚜껑이 4개였는데 그사이 두 개가 늘었다. 발전소에서 발원하는 거미줄같이 얽힌 송전선도 전보다 훨씬 촘촘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과우회 회원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자막이 일행을 반긴다. 김영삼 지역협력처장의 환영사, 10분짜리 영상물 시청, 전시물 관람에 이어 6호기 내부로 들어갔다. 터빈전망실과 주제어실, 사용후연료저장조를 둘러봤다. 저장조 한쪽켠에 설치된 IAEA 모니터링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한다고 한다. ‘영광’은 처음이라는 방문객이 이외로 많았다. 그래서인지 귀담아듣는 모습이 퍽 진지해보였다. 연간 방문객 10만 명. 이날도 4팀이 방문한단다. “영광”선창에 “굴비”를 외치며 기념촬영 한 컷하고 3시 10분 'Enery Farm'이라 적힌 정문을 뒤로했다.
수협 법성위판장에 들렀다. 굴비 쇼핑시간이 주어졌으나 살림꾼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이쇼핑으로 그쳐 ‘영광굴비산업특구’ 환영 플래카드가 왠지 초라해 보였다.
오후 4시반 고창 도솔산 선운사에 도착해 1시간 정도 경내를 돌아봤다. 천연기념물인 동백나무숲과 송악도 보고 미당 서정주 詩碑도 둘러본다.
절 입구는 온통 풍천장어집이다. 40년 전통이라는 해주가든에서 장어구이 식사를 하고 서둘러 숙소인 백양관광호텔로 향했다. 식사장에서 김기형 고문의 “우리의 과학기술을 거목으로 가꾼 여러분들이야말로 여생을 즐길 자격이 있다”는 덕담에 이어 모두들 특별히 제공된 복분자주로 “백살까지 살자”고 외쳤다.
7시에 식당을 출발한 버스는 高潭고속국도를 경유해 50분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3.8km에 이르는 문수산터널도 초행길 필자에게는 구경거리였고, 이어 전개되는 長城湖를 끼고 달리는 초저녁 가로수길도 퍽 운치있어 보였다.
우리 일행이 묵은 3,4층 20개 객실 가운데 대부분 방은 일찍 소등되었으나 유독 두 군데 방에서는 소리가 요란하다. 408호실과 417호실이다. 가만 가만 귀 기울였더니 ‘완고’니 ‘피박’이니 하는 많이 듣던 용어들이다. 동양화 섞는 소리도 기계음 같아 숙달된 꾼들임을 왕초보도 알 것 같더라. 417호실에서는 장어 집에서 꼬불쳐온 소주 세병에 때마침 제공된 모 씨의 육포를 안주로 술판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1시 좀 넘게까지 그랬다니 장어 탓인가 아님 산딸기 술 탓인가?
둘째 날
새벽 6시 반, 대여섯 명이 백양사를 향해 호텔을 나섰다. 몸에 감기는 새벽 공기의 상큼한 감촉을 느끼며 걷고 있는 일행 저만치서 연로회원 몇 분이 나타나셨다. 벌써 절 입구까지 다녀오는 길이란다. 참 부지런도 하시지. 로비에 한 대있는 컴퓨터는 컴도사 몇 분이 점령해 나 같은 중늙은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저렇게 걷고 저렇게 두드리는 저분들에게 어찌 치매가 찾아오겠는가.
호텔 한식당에서 사골우거지국으로 식사를 마치고 호텔 지하 1층 백양홀에서 李庚鎭 교수(조선대 원자력공학과)의 “에너지/환경/핵/원자력” 강의를 1시간 동안 들었다. 에너지자원과 환경을 생각할 때 원자력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이다. 강의가 끝나고 박승덕 과우회 회장의 에너지위기와 환경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다.
10시 20분 古佛叢林 白羊寺로 향했다. 총림이란 많은 승려가 모여 수행하는 사찰을 의미한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와 함께 한국 5대 총림의 하나로 한국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절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白巖寺였고, 1034년 淨土寺로 개칭되었다가 조선 선조 때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며 절을 하였는데 깨어보니 암자 아래 흰 양이 죽어 있었고, 그때부터 白羊寺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모두들 가람 바로 앞에 있는 雙溪樓에 올라 작은 호수에 비친 거목의 그림자에 흠뻑 빠져보기도 한다. 대웅전 너머로 우뚝 솟은 白鶴峯의 모습, 비자나무와 아름드리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길, 나란히 하는 약수계곡. 가을에 와서 보면 참말로 기가 막힐 것 같다. 일행이 절 구경하는 사이 발빠른 健脚 몇분은 藥師庵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11시 반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세분이 행방불명이다. 1km나 내려와 있었다. 주차장 깊숙이 주차된 버스를 발견못하고 버스를 찾아 무작정 가다보니 그렇게 됐단다.
버스는 추령재 구빗길을 돌고돌아 12시경 내장사 입구의 한일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버스에서 보니 온통 ‘원조 전주식당’ 아니면 ‘원조산채정식’집이다.
1986년에 오픈한 한일관은 주인이 산채정식(Wild Edible Greens Dish)부문 대한명인으로 알려져 있어 손님이 많다고 한다. 이날 상에 오른 반찬은 취나물, 보리냉이, 싸랑부리, 불미나리,머위,씀바귀,우엉,도라지,뽕잎나물,죽순,돈나물,더덕 등에 버섯탕과 뚝배기불고기, 송이전골 해서 23가지로 모두들 흡족해하는 표정들이다. 식당을 나서는데 “싱싱한 무공해 산나물에 내장산의 절경과 주인의 정성이 어우러졌으니 어찌 맛이 없겠느냐”는 주인장 작사 후렴이 있었다.
정각 1시에 한일관을 출발해 정읍 IC에서 호남고속국도에 접어든 버스는 수지정류장과 양재역을 거쳐 오후 4시반 최종목적지 강남역에 도착, 해산했다.
고속국도를 9번이나 갈아타며 모두 700km를 달린 이번 여행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에 희망의 에너지 원자력’이 있음을 다시한번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친교의 시간이 따로 없었음이 아쉬었지만 ‘老鶴들의 신나는 1박2일’이었다고 의미를 두고 싶다.
자리 마련해준 과우회와 원자력문화재단, 그리고 재단 차세대교육실 박상구팀장과 대원관광 버스기사께도 감사드린다.
참가자(가나다 순, 敬稱略)
강양원, 곽종철, 권갑택, 권영완, 권혁진, 김균조, 김기형, 김대석, 김병기, 김석권, 김수부, 김재관, 김창진, 김홍석, 류우식, 민수홍, 민태식, 박승덕, 박흥일, 서은석, 신일호, 신종오,유범식, 이문주, 이봉재, 이상덕, 이수웅, 이영열, 이응찬, 이종옥, 장상권, 정재홍, 조운희, 최응태, 최희승, 홍창업, 과우회(이경미,정기순)
첫댓글 流麗한 文體로 즐거운 여행의 모든 것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 올리셨군요. 읽어가며 다시 한번 회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단체여행시에는 필히 동행하시어 기행문을 남겨주실것을 부탁올립니다.
역시 언론인 출신은 문체부터 다르군요. 현장을 직접 구경한 듯 싶습니다. 훌륭한 여행기를 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모범적인 기행문 감사합니다. 역시 한문은 틀림없고.....^^
멋진 기행문 잘읽었음니다. 수고하셨음니다.
역시 언론인 출신다운 멋진 탐방기를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탐방여행을 두탕하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섬세한 관찰력이 덧보이는 수려한 글이었습니다.
기행문 재미있게 음미하면서 잘 읽었읍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