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실패
사사기 8:29-35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 대군을 물리친 가장 뛰어난 사사로, 많은 설교의 주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제목에 기드온하고 물음표를 3개나 붙였습니다. 기드온은 분명히 대단한 승리의 사사였지만, 다른 면에서는 실패자였습니다. 그의 실패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들은 왕권을 놓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기드온의 실패를 살펴보면서, 피할 것은 피하며, 죄를 이기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첫째, 감정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기드온이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지친 몸이지만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삿8:4) 300명의 군사들이 미디안 대군을 물리친 후에 패잔병들을 쫓아 숙곳이라는 곳에 당도합니다. 그곳에서 기드온은 먹을 것을 청하였지만, 숙곳 사람들은 냉정하게 거절을 합니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데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하면서 비아냥거리고 기드온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화가 난 기드온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합니다.
“내가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숙곳의 사람들을 들가시와 찔레로 살을 찔러버리겠다“(8:7)
기드온이 순간 분노조절 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그는 숙곳이라는 곳을 떠나 브누엘이란 곳에 가서 똑같이 청하였지만, 그곳에서도 거절을 당하고, ”내가 안전하게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 이 망대를 헐러 버리고 말겠다’고 분노가 폭발합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기드온은 결국 미디안 족속을 물리치고 돌아와서는 숙곳의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숙곳이나 브누엘은 이스라엘 동족이며, 한 피, 한 형제임에도 분노에 못이겨 잔인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그는 감정의 조절을 못하고 자기에게 서운하게 한 사람들에게 피의 복수를 했습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고프고 피곤해서입니다.
사람은 배고프고 피곤해지면 짜증스러워지고 판단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성공한 일본인 사업가는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말하길 “저는 11시부터 12시 사이, 그리고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는 바이어들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때가 가장 배고플 때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마음이 여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좋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죠. 분명히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올때에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배고픔은 더 나아가 인간의 욕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안전, 사랑, 명예, 권력 등등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원인은 약자를 얕봤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이라는 강한 지파가 따지고 들 때는 관대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말로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숙곳과 브누엘은 약한 지파였고, 그들에게는 “별것이 아닌 것들이 나를 이렇게 대우해, 까불고 있어”하면서 그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합니다. 약자에 가볍게 대하는 그는 분노했하며 살인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의 이같은 감정 조절의 실패는 자신의 형제 70명을 때려죽이는 아비멜렉이라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남의 이야기에는 너무나도 관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과 관련이 되면, 돌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자신의 요구나 욕구가 해결이 안될 때에, 약자를 관대히 여기는 마음이 없을 때에, 그밖에도 감정을 건드리는 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제법 큰 교회 목사가 차를 운전해 가는데 어떤 택시가 갑자기 새치기를 해 들어와 하마터면 사고가 날뻔 했습니다. 화가 치민 목사가 급히 뒤를 쫓아가서 신호대기 중인 그 택시를 세웠습니다. 달려가, "이 엉터리 같은 택시 기사! 사고나는 것 보려고 작정했소? 사고 날뻔 했잖아?" 하고 화를 버럭 내는데 그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화풀이를 하니 택시기사가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당황했습니다. "당신 교회 나가요?"하자 "저 목사님 교회의 집사입니다"라고 해서 창피당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WordPress.com에서 2012년 5월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윌리엄 P. 바커는 테네시의 한 교회가 발 씻는 일을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먼저 어느 발을 씻어야 할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발을 먼저 씻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해결될 수 없었고, 그래서 회중은 분열되었습니다. 지금은 LEFT FOOT BAPTIST CHURCH라고 쓰인 교회 간판이 있습니다.
신앙이 없어서 이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님이 안계셔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같은 일들은 신앙은 있으나, 성숙하지 못할 때에 일어나며, 무엇보다도 늘 교회를 향한 영적인 공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솝 우화 중 네 마리의 황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들판에 네 마리의 황소가 한가롭게 뛰놀고 있었다. 황소는 풀을 뜯을 때나 잠을 잘 때도 늘 함께 할 정도로 친했다. 위험이 닥치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그런데 사자 한 마리가 황소들을 호시탐탐 노렸으나 네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힘에 겨웠다. 어느날 사자는 약간 뒤쳐져 풀을 뜯는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다른 소들이 네 흉을 보더라.”
사자는 다른 소들에게도 차례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네 마리의 황소는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서로 세 친구가 자신을 왕따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황소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사자는 황소를 공격해 네번의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자는 황소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던져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불신의 씨앗'을 던진 후, 감정조절에 분노와 원망을 끌어내 무너뜨립니다.
즉 신앙은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즉 신앙은 감정의 표현과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보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써 감정 조절에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둘째, 탐심의 “물꼬”를 관리하라.
“물꼬”란 말은 농사 지을 때에 물이 가는 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흙으로 “물꼬”를 만들어 물길을 조절합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왔을 때에 “물꼬”가 잘못되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번 터진 물꼬는 자꾸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물꼬관리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죄란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죄중에서도 탐심의 물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쳐서 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떼어 가졌다”(21)
탐심이 기드온의 마음을 서서히 건드리고 있습니다.
기드온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 같아요. 나도 한 일이 있는데, 이 정도 쯤이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꼬가 트이더니, 죄의 가지가 쫙쫙 펼쳐져 나갔습니다.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24)
이때 모은 금이 “일천 칠백 세겔”, 즉 20kg 정도라고 합니다. 금 한돈이 3.75g이니,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의 물꼬, 특별히 탐심의 물꼬가 무너지니, 다른 죄악들이 등장합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30)
에봇은 왕을 상징하는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지 않던 시절에, 기드온은 마음으로 자신이 왕이라 생각하는 죄에 빠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첫째 아들을 낳자,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했습니다. 아비는 아버지를 말합니다. 멜렉은 왕을 말합니다. 결국 “아버지가 왕이다”
즉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그의 죄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하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29-31)
아마도 그의 가정에는 매일 같이 싸움이 끊이질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후대에 그의 집안은 몰락을 합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이복형제 70명을 바위 위해서 몰살을 시켜버리고, 자기가 왕이 버려고 온갖 간계한 행동을 하다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가 깨져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기드온의 실패는 결국 자신의 올무만이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엄청난 심판을 제공하였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사탄은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지만, 성령은 우리의 풍성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셨던 예수님은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탐욕에 찌든 권력자들에게는 강하셨지만, 병들고 가난하고, 갈급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치유하셨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왕이 되고 장군이 되어, 민족의 영웅이 되라는 유혹은 물리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우리는 오늘, 사탄의 계략과 탐심의 유혹과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러한 유혹과 도전은 날마다 끊임없이 오는데, 영적으로 준비되고, 성령님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지고 말 것이며, 죽는 것입니다.
벤츄라교회의 모든 성도가 이같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 진정한 축복의 증인이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