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운드 유영춘의 한국 그룹사운드 백서(4)
-한국 그룹사운드의 원조 키보이스(Key Boys)
4탄으로 ‘한국 그룹사운드의 원조 키보이스(Key Boys)’ 이야기를 나눈다. (글쓴이 주)
영사운드의 보컬 유영춘
“안치행 선배와 김홍탁 선배를 만난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다. 미 8군 무대에서 나를 이끌고 음악적 가치를 만들어 준 이가 안치행 선배라면, 라이브무대의 멋과 본 모습을 만들어 준 이가 김홍탁 선배다. 나는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두 거물과 작업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행복하다.” -유영춘 채록
리드기타의 전설 김홍탁이 히파이브(He5)에 참여한 뒤 연주에 많은 변화를 한다. 김홍탁과 원조 그룹사운드로 여겨지는 키보이스(Key Boys)의 이야기를 풀어 본다.
히파이즈와 히식스(유영춘 제공)
-김홍탁은 누구인가
김홍탁은 한국 록밴드 초창기 핵심 인물이다. 1944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 3때 이미 밴드를 결성해 부천 기지촌의 미군 클럽에서 데뷔했고, 그곳의 하우스 밴드에서 연주를 하다가 미8군 오디션을 거친, 그야말로 정석의 코스를 밟았다. 1963년 미8군에서 만난 윤항기(드럼)와 5인조 밴드 <키보이스>를 결성했다.
이때, 한국 록의 신(神) 신중현도 이즈음 미8군 무대가 시들해지자 악단의 규모를 줄여 1963년 4인조 밴드 <애드포>를 탄생시켰다. 김홍탁과 신중현 쌍두마차가 1960년대 한국 록을 이끌고 그룹사운드 대중화에 선봉장에 섰다.
김홍탁과 조용남(히파이브 시절. 유영춘 제공))
김홍탁은 1972년 홀연히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이스트 웨스트(East West)>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활동했다. 1986년 영구 귀국하여 레코드 기획제작사인 <사운드 엔터프라이즈>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1996년부터 <서울 재즈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했었다.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 김홍탁 키보이스에서 히파이브로 히파이브에서 히식스로
그는 1964년 키보이스 정식 데뷔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결성 당시 멤버는 차중락(보컬), 차도균(베이스 기타), 윤항기(드럼), 김홍탁(기타), 옥성빈(키보드)이고 통칭 ‘1기 키보이스’라고 불린다.
이들이 1964년도에 발매한 <한국의 비틀스 Key Boys>는 <애드훠>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한국 록 음반의 효시로 꼽힌다.
1967년 키보이스가 해산된 뒤 1968년 조용남(기타)의 추천으로 한웅(키보드), 유영춘(보컬), 김용호(드럼)와 함께 록 음악 밴드 히파이브 등으로 활동했다. 히파이브는 1970년 해체되기 전까지 '초원', '꿈꾸는 사랑', '헤이 쥬드'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누렸다. 이후 히파이브의 후신인 <히식스>를 구성한다.
김홍탁의 전성기 연주 모습(유영춘 제공)
1969년에는 원년 멤버가 모두 탈퇴하고 장영(베이스), 박명수(기타), 조영조(기타)를 주축으로 재편된다. 통칭 ‘2기 키보이스’라고 부르고 6인조 혹은 7인조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원년 멤버 가운데 차중락과 차도균은 솔로 가수로, 윤항기와 김홍탁은 각각 <키브라더스>와 <히파이브>와 <히식스>의 리더로 활약했다.
“김홍탁은 2년 선배이다. 지금도 한 달에 몇 번씩 만나다. 히파이브가 팝송 번안곡이나 외부 작곡가 곡을 위주였다면, 히식스는 김홍탁 자작곡 중심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20대보다 열정이 넘친다.”- 유영춘 채록
히식스의 오비스캐빈 공연보습(유영춘 제공)
히식스의 멤버는 조용남·유상윤·권용남·이영덕·김용중이며, 1970년 1집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초원의 사랑'이다. 이 앨범은 장안의 화제곡이 됐다. 히식스는 1970년 제2회 플레이보이컵 보컬 그룹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를 누르고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후 김용중 대신 명지대 3학년이었던 보컬 최헌을 데려온다. 최헌 영입 이후 '물새의 노래'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1972년 김홍탁은 미국으로 떠났다. 이때, 정훈희의 오빠 정희택을 영입해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2011년 재결합 공연을 하기도 했다.
키보이스 1기 앨범
-한국 그룹사운드의 원조 키보이스(Key Boys)
우리나라 그룹사운드의 원조는 키보이스로 봐야 한다. 애드 훠, 코끼리 브라더스와 더불어 한국 록의 효시로 간주하고 있다. 이들 그룹은 미8군 소속 무대에서 활동했다.
키보이스는 차중락(보컬), 차도균(베이스), 김홍탁(리드기타), 옥성빈(건반), 윤항기(드럼) 5인조로 구성했다. 이들을 키보이스 1기로 부른다. 초기에 미8군 무대를 통해 주로 활동했다. 1965년 작곡가 김영광의 곡을 받아 첫 앨범을 발매한다. ‘정든배’가 대표곡이다.
키보이스 1기 앨범
키보이스가 활동할 때는 반주를 먼저 녹음하고 가수가 노래를 불러 얹어 녹음을 완성하던 때였다. 하지만 키보이스는 반주음악의 템포와 필링을 함께 표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드문 동시녹음을 시도했다. 대중들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키보이스는 1959년 7월, 김영광이 작사·작곡한 ‘정든배(원곡: 정든배는 떠나가네)’로 데뷔했다. 1964년 김희갑이 작사·작곡한 ‘바닷가의 추억,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히트되면서 이들의 존재를 알렸다.
키보이스 2기와 3기의 앨범
1965년 불후의 명곡 ‘해변으로 가요’를 발표하므로 한국 록과 그룹사운드의 대중화에 큰 몫을 했다. 이 곡은 재일교포인 이철이 작사/작곡을 했으며, 차중락이 보컬을 맡았다.
1967년 차도균, 차중락 등이 "가이스 앤 덜스"를 만들면서 그 조직이 흔들리자, 장영, 박명수, 조영조, 한웅 등이 제2의 키보이스로 활동했다. 이후 히식스는 4기까지 활동을 했다.
환갑을 넘긴 이들은 1995년 파파스밴드를 구성한다. '히식스'출신의 유상윤(건반,색소폰,보컬), 조용남(베이스,보컬), 김용중(리듬기타,보컬)과 '위대한 탄생'출신의 김석규(리드기타,보컬), 변성용(건반,보컬), 이건태(드러머,보컬)로 구성했다.
파파스밴드 ((사)대중음악문화진흥협회 제공)
출처 : 구리남양주 시민의소리(http://www.gnsimins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