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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또는 꿀 같은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전 2월에는 그야말로 짧고도 굵게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바, 열심히 업무 안 하고 쉬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 첫 책 추천 준비했습니다.
도서명: 프로젝트 헤일메리
저자: 앤디 위어
* 이 도서는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를 통해 독서한 작품입니다.
덧붙여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도서관에는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 <마션>과 <아르테미스>, 그리고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데이지도서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밀리의 서재’에 이어 또 다른 독서 플랫폼을 개척했다. 물론 이것도 점역 팀장님 추천이었다.
‘윌라’는 오디오북 콘텐츠가 많다고 했다. 사실 오디오북은 잘 듣지 않았던 부류의 전자도서였다. 이유는 딱히 없다. 당시에는 택스트 전자도서나 데이지형 도서가 접근하기에 더 편했다.
좌우간 윌라 가입한 걸 기회 삼아 오디오북을 꾸준히 들어보기로 했다. 운동을 한다거나, 야식을 먹으며 독서하는 데 딱이라고 들어서 말이다.
뭘 읽을까 물색하던 중, 2021년에 나온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골랐다. SF 장르이다 보니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 내용 자체도 꽤나 재미있었다. 어쩐지, 나온 지 4년 됐는데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가 있었다.
절망적인 지구의 미래를 앞두고 쏘아 올린 희망 - 《프로젝트 헤일메리》
“이름도 기억 못하는 내가 인류의 희망이라니?”
소설의 제목인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라고 한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경기에서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이란다. 참고로 헤일메리는 작품 속 우주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구를 종말로부터 구하기 위한, 마지막 역전을 바라는 마음에 지어진 것.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몸이 아팠던 게 아닐까, 그래서 오래 침상 신세를 진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 와중 확신할 만한 건 그 자신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리고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중력이 평소보다 높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실험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과학자임을 깨닫는다. 원심불리기 안에 있나 의심하다가, 자신이 우주선에 승조원임을 깨닫기도 한다.
초반 그는 자신이 우주로 나와 있더라도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정황과 떠오른 기억으로 보건대, 그가 있는 은하는 태양계가 아니었다. 태양계에서 무려 10광년 이상 떨어진 ‘타우세티계’였다. 그가 보고 있는 항성은 태양이 아니라 ‘타우세티’이고 말이다.
그는 헤일메리호를 샅샅이 뒤진 끝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인류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자, 우주 한복판에서 죽을 예정인 과학자였다는 것을. 기억상실 비슷한 증상이 있는 자신이 인류의 희망이라니, 세상에!
그렇게 소설은 우주선 헤일메리호의 현재와 과거 지구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준비하는 과정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 그레이스 박사는 과학계에 몸담았던 인물이었다. 외계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중학교 교사로 아이들에게 과학 지식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머리가 얼떨떨해진 상태로 우주선 헤일메리호에 타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멸망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한 최후 최대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중국인 대장 야오와 러시아인 기술자 일류키나도 함께했다. 하지만 그들은 죽고 그레이스 박사 혼자만 남았다. 그 혼자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 그레이스는 혼자 이 우주에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우주에 왔을까? 어째서 자살이나 다름없는 임무에 왜 자원했을까? 헤일메리호를 타고 태양계도 아닌 머나먼 다른 항성계로 왜 와야 했을까? 지구가 대체 어떤 문제로, 무슨 위기에 봉착해 있기에?
“상처 입은 자아요? 이건 제 자아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 아이들 문제라고요!”
“아이 없으시잖아요.”
“아니, 있어요! 수십 명이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제 수업을 들으러 와요.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아이들 모두가 매드맥스식의 악몽 같은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네, 물 얘기는 제가 틀렸어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제 관심사는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못된 아스트로파지 녀석들 좀 주시겠어요!”
일상이 격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레이스가 지구 종말의 위기를 접하게 된 건 친구와의 평범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였다. 그는 학교 동기인 친구에게서 태양이 점점 식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태양이 식으면 지구는 머지않은 날에 빙하기를 마지하게 될 것이다. 자연 생태계 붕괴를 시작으로 인류의 생존은 불투명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냥 끝장나게 생겼다.
그와 비슷한 무렵 우주에서는 기이한 적외선 패턴인 ‘페트로바선’이 관측되고 화제로 떠오른다. 태양의 열이 식어가는 것, 기이한 적외선 패턴, 이 둘은 연관이 있는 것일까?
다음날 그레이스 앞에 인류를 위한 범국가적 대책위원회의 총괄 스트라트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쓴 독특한 논문을 근거로 태양에서 채집한 미지의 외계 생명체를 연구해줄 것을 제안한다. 물론 그레이스는 거절했다. 그는 일개 중학교 과학 교사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미 해당 계획은 전 지구적인 협력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고, 스트라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참여를 거절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이미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그레이스 박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태양에서 수집한 웬 생명체 샘플을 탐구하게 된다. 그는 언제 툴툴댔었냐는 듯 꽤나 성실하고, 아주 신나게, 퍽 열심히 연구한다. 듣보잡 우주 생물에게 ‘아스트로파지’라는 종족명을 지어주고, 마치 말썽쟁이 학생들을 대하는 것처럼 자기 몫의 샘플 아스트로파지 3마리에게 이름도 지어주면서 말이다.
주인공의 기본적인 성격의 베이스가 참 낙천적이다. 좌우간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그는 아스트로파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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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스트로파지는 단체포에 가까운 외계 생명체로, 기온은 항상 섭씨 94도를 유지하며 태양에서 금성까지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왕복한다. 그 과정에서 기이한 적외선 패턴 페트로바선이 발생하는 것이다.
2.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에서 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금성으로 이동해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번식한다. 그리고 모세포와 딸세포가 다시 태양으로 돌아가 열 에너지를 얻는다.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 무한 리필(?)이 된다.
3. 태양의 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아스트로파지를 어떻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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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가 알아낸 아스트로파지의 생해주기를 통해 지구인들은 대책을 세운다. 그러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서 10광년 이상 떨어진 타우세티계의 태양과 같은 항성 타우세티는 태양과 달리 아스트로파지의 감염되지 않았음을 밝혀낸다. 지구의 태양을 살릴 해결의 실마리는 타우세티계의 항성 타우세티에 있다.
인류는 범지구적으로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우주로 사람들을 보내 아스트로파지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우주선의 승조원은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해결책만을 프로그래밍된 소형 우주선을 이용해 지구로 보낸 후 우주에서 홀로 죽을 운명이었다.
그레이스는 초반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참여하는 걸 내키지 않아 한다. 죽으러 가는 길임이 뻔한데, 누가 우주로 출장을 가고 싶겠는가.
더구나 그는 한낱 중학교 교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아이들을 애정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는 아스트로파지가 가져올 지구의 참혹한 미래가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의 아이들이 겪어야 할 미래가 말이다.
과학계에 몸 담았다지만 지금은 중학교 과학 선생님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그레이스는 어찌저찌 타우세티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드넓은 우주에서 해결책 찾기에 몰두한다. 동료도 없이 혼자일 뿐이지만, 자신의 기억도 온전하지 않지만, 그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분투한다.
그런데 잠깐, 우주선 계기판에 무언가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기억을 되찾고 인류를 구하기도 바쁜데 갑자기 외계인의 등장이라니? 과연 그는 지구 구하기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죽을 수 있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 - 평범한 선량함이 두 인류를 구하다!
“전쟁, 기근, 질병, 사망. 아스트로파지는 말 그대로 종말입니다. 헤일메리호는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예요. 나는 헤일메리호의 성공 확률을 눈곱만큼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희생할 거예요.”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는 낙천적이다. 그리고 조금 소심하다. 겁쟁이이기도 하다. 천성이 밟고 아이들을 애정하며 연구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시민이다.
요컨대 혁명가나 리더, 영웅보다는 ‘어영부영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요’ 하는 타입이라는 뜻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다.
실제로 소설 중반부쯤에서 그레이스가 모든 기억을 되찾는데, 그 끝에 드러나는 진실이 하나 있다. 그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꽤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건 맞다. 그러나 실제 승조원으로 탑승하는 역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우주선에 있는가?
그건 소설 보면 나오니 적지 않겠다. 그 대목이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라서.
어쨌든 우여곡절의 과정을 통해 그레이스는 지적 외계 생명체, 일명 외계인 로키와 조우하게 된다.
로키는 에리드 행성에서 온 에리드인이며, 에리드 역시 아스트로파지 때문에 지구와 같은 종말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로키 역시 그레이스처럼 우주선에 유일한 승조원이었다.
둘은 서로를 인식하며 서투른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주를 사이에 두고 물건을 주고받는 식으로, 나중에는 터널로 우주선을 연결한 후 그 중간의 에어로크에서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러다 과학에 능숙한 지구의 그레이스와 기술에 능숙한 에리드의 로키는 타우세티에서 협력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외로운 둘은 넓디넓은 우주에서 협력자 그 이상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다른 유사성.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밝히건대, SF 장르 독서 경험이 그리 다채롭거나 다양하지는 않다. 어떤 작품을 놓고 이 책보다 낫네, 저 책과 비교해서는 어떤 부분이 미흡하네 하고 평가할 만한 깜냥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작가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큰 울림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단언한다.
중력이나 질소 및 산소 밀도, 적외선 같은 우주과학적인 요소를 글 요소요소에 잘 녹여내어 SF 장르 특유의 맛을 살린 점도 물론 놀랍긴 했다. 이런 과학 지식을 글에 배치하고도 설명문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지루하지조차 않다니. 그야말로 탁월한 균형 감각이다.
뭐, 사실 감탄한 건 감탄한 거고, 작가가 녹여낸 과학 지식이 지루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그 과학 지식 알 것 같냐고 물으면,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잘 설명해 놓아서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지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니겠는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작가 앤디 위어는 십대 때부터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하며 업계에서 ‘천재’로 통했다고 한다. 어쩐지! 공기 역학이라든가, 그 뭐더라, 오일러 공식이었나? 아무튼 소설 군데군데 깨알처럼 박아둔 ‘과학’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한편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소수의 영웅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저 선의를 품은, 혹은 책임감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따름이다. 해답을 찾기 위한 우주선 제작에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나라가 국가나 이념 등에 상관없이 한자리에 모여 계획을 세우는 장면을 보면, 어떤 관점에서는 우주에 나가 외계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욱 판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는 소설처럼은 안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작품 내에서도 추진력이 독보적인 스트라트 같은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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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모든 요소보다 더 큰 울림을 줬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주인공 특유의 성정 혹은 특성이었다. 이른바 가슴을 찌릿하게 만드는 ‘애정’ 말이다.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던 어느 순간에 분명 ‘찌릿함’을 느꼈을 것이다.
글쎄, 모르겠다. 그때가 언제일까?
어쩌면 그레이스가 아이들을 위해 지구를 구하겠다 선언했을 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망막한 우주에서 로키와 그레이스가 처음으로 의사소통에 성공했을 때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로키가 위기에 처한 그레이스를 위해 자신의 암모니아 공기를 벗어나 산소에 기꺼이 노출되었을 때라든가, 그레이스가 로키를 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장면에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소설 끝에서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다시 몇 광년을 달려 그 우주 한복판으로 돌아가는 것, 온통 까맣고 적막뿐인 우주 공간에서 로키를 찾았을 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열거한 것 중, 특히 첫 번째와 뒤에서 두 번째, 마지막 장면이 찌릿했다.
이 뭉클하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울컥 찌릿해지는 감정은 모호한 면이 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그것이 평범한 한 인간의 아주 작은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그레이스의 애정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심지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스트로파지에게조차 그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름 또는 별칭을 붙여준다는 건 그 바탕에 애정을 깔고 시작하는 거니까.
그러나 그레이스 또한 한 인간이었다. 짜증스러움에 내몰리기도 했고, 낙담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장벽을 마주하기도 했다. 또 그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결국 그 모든 것을 애정으로 대했다.
‘아이들을 저대로 둘 수 없어’ 또는 ‘ 과연 로키는 괜찮을까’라며 깊게 공감하며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 이건 인류를 위한 일이야’ 혹은 스트라트가 예견했던 대로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하며 체념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위는 애정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광의의 의미에서 본다면 인류에 대한,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협의적으로 보았을 때는 로키, 지구의 아이들, 그리고 야오와 일류키나 등 지인에 대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레이스의 애정이 옮았는지, 소설 속 등장인물에, 그것도 인간 아닌 외계 생명체에게 어느새 애정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기준에서 생김새가 묘하게 ‘바 선생’을 연상시키는 외견의 친구에게 이런 애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리고 바로 그 ‘애정’이, 평범하고도 작은 ‘선의’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이 사소한 마음이 두 인류를 구하는 길을 찾아내는 대서사시를 보노라면,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이론이나 수식이나 설명을 1퍼센트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자고로 애정이란,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미리 밝히건대,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꽤나 호흡이 긴 작품이다. 끝없이 위기가 닥치고 이를 해결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그 스케일은 장대하다.
뿐인가, 위기의 규모가 무려 지구 종말, 인류의 멸망이다. 헐, 대마왕 등장해서 이 세계를 접수하겠다 하는 식의 컨셉 요즘은 판타지 소설에서도 안 써먹는데.
그러나 독자가 그 방대함과 심각성에 질려 책을 놓지 않는 건, 소설 전체에 깔린 어딘가 미묘하게 낙관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 미묘한 낙관론의 집합체이자 백미가 바로, 작은 선의 하나로 어쩌다 보니 두 인류를 구하게 된 그레이스이고 말이다.
이 소설의 주요 키워드는 SF도, 과학도, 외계인도 아니다. 스캐일 큰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작은 선의, 평범한 애정에 대한 서사시이다. 밤하늘 별만큼 많고, 아득하게 흩뿌려진, 누구나 조금쯤 가지고 있는, 그 마음 한자락.
때문에 읽는 내내 유쾌했고, 책이 종료되는 순간 따뜻했다. 이 소설을 아직 읽기 전이라면, 웬만하면 오디오북 콘텐츠로 독서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게 더 들을 맛이 있더라.
PS.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소위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으로 통하는 작품 중 마지막 책이다.
첫 번째로 나온 책은 <마션>으로, 화성을 무대로 하는 로빈슨 크로소 이야기이다. 탐사 목적으로 다른 대원들과 함께 화성에 왔으나, 불의의 사고로 홀로 고립되게 된 마크.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식물학과 엔지니어 지식을 살려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등 생존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한편 마크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 미국우주항공국 나사는 그를 구출하기 위한 전 세계급 인력과 재력을 동원하는데...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였던가?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인류애적 SF.
두 번째는 <아르테미스>로, 달의 건설된 인류 최초의 행성 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SF 느와르물이다. 주인공은 가난한 포터 재즈. 그녀는 합법적인 배달 말고도 불법적인 밀수도 한다. 그런데 두둑한 보수에 혹해 받은 의뢰가 꼬이고 꼬여서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 전복 위기에까지 이르는데... 뭔가, 임기응변 같지만 나름 철저한 계획을 세우며 움직이는 포터 재즈의 일확천금 같은 달 도시 구하기 프로젝트.
이 세 작품 중 1순위는 당연 《프로젝트 헤일메리》이다. 그러나 다른 두 작품도 읽는 재미가 있으니, 관심 있으면 일독을 권하겠다.
참고로 나는 다 읽었다. <마션>은 윌라 오디오북으로, <아르테미스>는 밀리의 서재 전자책으로.
역시 독립된 작품이지만 약간 시리즈물 비슷한 건 완간됐을 때 싹 몰아서 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야기 궁금한데, 책이 없어요 하는 상황을 안 겪는다.
첫댓글 이념과 전쟁 중인 작금의 시대에 인류애를 위한 순수함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넓게 바라보고 공동의 운명체임을 인식한다면 갈등의 골은 그저 공기속의 이산화탄소에 불과한것을.
먼 미래를 보며 상호 존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후대에 비춰지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