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지고...
아침부터 애 엄마는 노인네들 무료점심 준비를 간다며 허둥댔다. 아무튼 좋은 일이니 불만은 없다. 그런데 요즘들어 밤낮 없이 행사가 너무잦다.
특히 날굿은 밤에 차를 몰고 나갈때는 솔직히 마음이 불편하다. 운전도 서툰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자고? 나이 60넘어 70을 다가가는데, 공부니 뭐니 그 머리들 발전시켜 뭘 만들겠다는 심사들일까?
서둘러 나가더니 다시 되돌아 왔다. 장인께서 상태가 안좋으시다는 것이었다. 이참에 그동안 눌리고 있던 심보가 터져 격하게 한마디했다.
"집안 일이 우선이지? 망설일거 뭐있어? 가봐야지. 그런데 그 사모라는 사람들도 이럴때 나와서 봉사활동을 거드나?"
"다른 할일들이 많을건데?"
"기도로만 자신들이 종이라 하지말고, 누구처럼 섬김을 솔선 실천해서 종의 모범을 보여야 맞는거지. 종이 따로 정해져 있나?"
여기서 누구라는 말의 주인공은 내가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작은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섰다. 전철 안은 출근시간이 지나 60~70대 중늙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시간에 어디로들 가는걸까? 의문은 상대적일 것이다.
전철에서 내려 다음 차를 옮겨 타려고 기다렸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는지 강변 찬바람이 눈꺼풀을 흔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중국 동방규가 말했던 춘래불사춘은 봄날의 기후를 두고 말함이 아니라, 한나라 궁녀인 왕소군을 오랑캐의 나라로 떠나보낸 허전한 마음에 근거하였단다. 왕소군 또한 수백배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의 감각도 각박한 세태의 감정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왕소군은 중국의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의 한여인이다.
서시(西施)는 그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고(沈魚:침어), 왕소군(王昭君)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개 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落雁:낙안)고 했다.
초선(貂嬋)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고(閉月:폐월), 양귀비(楊貴妃)의 미모는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羞花:수화)고 했다.
과연 누구의 외모가 최고일까? 형상이 연상되는 양귀비는 약간 풍만하다고 하였고, 정작 내가 삼국지(연의)를 통하여 자주 접했던 인물초선은 동탁과 여포 사이 삼각관계(?)에 있었으니, 4대 미인 중 실제 인물은 아니라고 하였다.
바람불어 싫은 날, 미세 먼지가 먼산을 흐릿하게 덮었다. 그래도 다가오는 봄기운을 감출 순 없다. 시골 길가엔 개울의 물소리가 청량하고, 여기저기 마른 풀속에서 푸름이 머리를 내민다.
이맘때쯤 들녘에서 나물 캐는 여인네나 농사준비 밭갈이 하는 남정네들도 있음직한데, 정작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적한 곳에서 잠시 쉬며 먼산을 바라다 보았다. 왼쪽 공원묘지 너머 먼 뒷산이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영축산이고, 오른쪽 미세먼지 내려 앉은 쪽이 억새 만발한 천성산이다.
이곳 주변은 시야 가려진 곳에 공장들이 있고, 길가엔 식당이며 가게들이 있었으나 폐건물이 되었다. 시골 사람들의 거주지가 아파트라는 운집된 공간으로 옮겨간 탓이다.
시골 고수부지에서도 파크골프를 치고, 나처럼 정처없이 걷는 사람들도 있다. 겨우내 먹이할동을 하던 강가의 새들은 개체수가 줄었다. 그게 상당 수 철새였었나?
타고갈 전철역 주변엔 많은 중늙은이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그런 모습을 보면 삶의 의미가 퇴색되어진다.
참! 무료급식을 받는 사람들도 비교를 한다고들 했다. 어느쪽은 무슨 반찬이 잘나오고...기가 찰 노릇이다. 한끼 허기진 배채우면 그만인 것, 그게 그들에겐 유일한 꽃길의 선택일까? 지나친 온정주의도 병이다.
오래전에 지인이 다닌다는 무료급식소가 궁금하여 그곳을 갔었다. 식대 200원, 잔돈이 없어 1만원을 내고 밥을 먹었었다. 관리자가 눈치를 채었는지 호의는 좋은데, 그러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랬던 것인데 자존심 건드릴 행동을 하고만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가난한 것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골 거리에도 선거 냄새가 난다. 나는 요즘 누구든 국민 50%는 나쁜놈편이란 생각을 하고 산다. 옳은건 옳아야지. 먹고 살기 팍팍한 세상, 빈부격차로 밀려난 사람들, 그걸 알면서도 방관하고 헛소리만 떠들어대면 그게 나쁜놈이다.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군대조직 같은 직장의 환경에서 이상을 찾으려 애썼던 여인이다.
"학춤의 대가이신 분이 자주 입원을 했었는데 ㅎㅎㅎ, 세월속에 흘러가셨겠지요. 우리들도 그렇게 흘러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ㅎㅎㅎ"
몸이 피곤하면 생각이 줄어들거라 생각한 수행(?)길, 그러나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이 몰려든다. 나에게 수행은 아직도 멀은 것 같다.
첫댓글 (댓글1)
너무 듣고싶고 호기심 생기게 하는 일상
사람 냄새나는 소소한 이야기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있고 가고 오며 격는 일들이 바로 내 야기라는걸 알고나면 이런 수필이 제일 재밋고
또 나와 같은분 조금은 다르게 사는곳이 다르고 주변 환경이 조금 다를뿐
살아가는 방법이 모두 같구나 라며 재밌어 합니다
물론 글을 잘엮어내셔서 더 감동하구요
가끔씩 보여주시는
수필 재밋게 잘보고 있고
요즘 책값도 만만 찮은데 공짜로 볼수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자존심 상해서 어디구경가면 입장료 꼭 돈내고 갔었는데 민증 보여달라고해 주니까 할인해 주더군요
좋은것보다 씁쓸 했습니다
품격있는글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2)
해박하고 여유로운 삶
멋있습니다.
본받고 싶은 노후의 삶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