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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갈릭 목사님께서 연중론 비평 토론에 함께하신 뒤였습니다. 그동안 3 주 가까이 일ㅡDuct 제작 설치 일ㅡ 하나 없다가 일이 생겨 나그네로서 본업에 충실해야만 하는 저는 ‘연중론 비평 토론의 영겁회귀, 도돌이표 토론’을 예상하며 <나그네 길 떠납니다.>※)를 7월 21일 새벽에 {양무리 마을}에 올린 뒤 {양무리 마을}을 탈퇴했습니다. {양무리 마을}을 탈퇴하더라도 {Daum} 검색창에 {양무리 마을}에 올라온 최신 글 제목을 검색해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을 살펴볼 수 있음에도, 굳이 탈퇴까지 했던 까닭은 손성은 목사님과 토론을 하시는 갈릭 목사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 여유가 생겨 살펴본 {양무리 마을}에 연중론 비평과 관련된 제 글들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7월 26일에 {양무리 마을}에 다시 가입하면서 쓴 별명이 있습니다. ‘영겁회귀’였습니다.
영겁회귀······. 연중론을 자기 심장으로, 절대 진리로 여기시는 손성은 목사님에게 연중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어서 고집불통인 사람들”, 중생하지 못해 “우둔한 지성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자로서 손성은 목사님 관점에서는 ‘연중론 비평 토론 영겁회귀는 중생하지 못한 순중론자들 때문, 연중론을 인정하지 않는 이단 순중론자들 때문’입니다.
지난 6월 13일 ≪자신들이 반대를 위해 만들어 낸 해괴한 이론, “중생과 회심 사이 예비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기원과 출처를 입증해야 함.≫이라는 한국 교회 연중론 좌장 윤영상 목사님 주장······. 다시 또 ‘도돌이표 앞 부호’로 왔습니다.
윤영상 목사님 이 주장을 두고 ‘연중론을 반대하는 {개혁주의 마을} 형제들’이 입증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윤영상 목사님이 지난 6월 3일에 ≪“중생과 회심은 동시 사건이고 중생과 회심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는 청교도들 말≫이라는 서술로 이미 입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자신들이 반대를 위해 만들어 낸 해괴한 이론, “중생과 회심 사이 예비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기원과 출처를 입증해야 함.≫이라는 윤영상 목사님 주장, 좌충우돌 자중지란 주장을 보며 ‘어쩌면 저런 좌충우돌 자중지란 서술을 하실 수가 있을까? 정말로 미혹의 영이 윤영상 목사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됩니다. 즉, ‘좌충우돌 자중지란을 일삼으시는 한국 교회 연중론 목사님들 문제는 독해력이나 논리력 문제가 아닌 그분들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미혹의 영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됩니다.
≪“중생과 회심은 동시 사건이고 중생과 회심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는 청교도들 말≫이라고 서술해 놓으시고 ≪존 머레이: 순간적 원리만 채용≫??? ≪원인(중생)과 결과(회심) 사이가 사람에 따라 순간적이기도 하고 점진적이기도 하다는 전통 개혁주의 중생론: 바빙크, 벌코프, 후크마 등등≫???
전통······. ‘전통 개혁주의 중생론’ 원조를 알기 위해 연표를 적습니다.
* 청교도 개혁파 신학자들: 존 오웬(1616년~1683년) → 조나단 에드워즈(1703년~1758년) → 존 머레이(1898년~1975년)
* 유럽 대륙 화란 개혁파 신학자들: 아브라함 카이퍼(1837년~1920년) → 헤르만 바빙크(1854년~1921년) → 루이스 벌콥(1873년~1957년) → 안토니 후크마(1913년~1988년)
인터넷 {합동신학원} {사이버신학연구소} {개설강좌} {송인규 구원론} [제17강: 칭의, 성화] 동영상을 보면, 송인규 교수님께서는 ‘성화’를 설명하시면서 이 동영상 20분부터 25분 30초까지 ‘20세기 개혁신학 거목 존 머레이 목사님 위대한 업적’인 ‘Definitive sanctification, 확정(단회) 성화’에 대해 설명하십니다.1) “Definitive 성화가 한국에는 거의 소개가 안 돼 있어요.” 하시며 “제가 조직신학 책을 쓰면, 성화에 대해 혹시 쓴다면 Definitive sanctification 존 머레이 견해에 대해 좀 더 알기 쉽게 여러 가지 설명을 하겠어요.”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것(Definitive sanctification)은 Reformed(칼빈신학, 개혁신학) 다른 교리와 굉장히 잘 들어맞습니다. 특별히 이것은 신비적 연합, 칭의, 객관적 칭의, 이러한 Reformed 독특한 교리와 아주 연계성을 가져요.”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이고, 실천적이다.”고 정리하십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벌코프는 존 머레이 이전 사람이기도 하고 해서 Definitive sanctification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아요. (그의 {조직신학}) 여기서······. 존 머레이가 이제 언급했고, 후크마도 존 머레이 다음에 언급했고, 후크마도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하십니다.
ㅡ왜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께서는 ‘존 머레이 목사님 Definitive sanctification 진리 확립’에 감동을 받으셨을까요? 왜 현대 개혁신학자들께서는 ‘순간 단회 중생 시 Definitive(단회, 확정, 결정, 즉각) sanctification(성화)’ 진리를 ‘20세기 개혁신학 보물’로 여기실까요? 이를 알려면, 인터넷 {합동신학원} {사이버신학연구소} {개설강좌} {송인규 구원론} [제18강: 성화] 동영상 18분부터 28분까지만 들으셔도 됩니다.ㅡ
‘존 머레이 목사님 Definitive sanctification 진리 확립’에 감동을 받으신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께서는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 가정假定중생론’을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순간 단회 중생 시 확정(단회) 성화를 뜻하는 요한 사도의 구절들’을 검으로 삼아 단칼에 베어 내십니다.
《“중생이 회개와 믿음으로 연결되기 전에 여러 해 동안 중생이 한 사람 속에서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바 있다. ···(중략)··· 그러나 이 가능성은 우리가 방금 살펴본 요한의 구절들에 의해 받아들일 수 없다.》 →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 168쪽.
“중생이 회개와 믿음으로 연결되기 전에 여러 해 동안 중생이 한 사람 속에서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 주장······. 또한 “이 생명은 범죄할 수 없고 죽을 수 없고, 살아 활동하고 자라나며, 때가 되면 믿음과 회개의 행위 가운데 자신을 드러낸다.”는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 주장······. 이 두 주장 공통점은 ‘중생과 회심을 동시 사건으로 보셨던 청교도 신학자들’과 다르게 ‘중생과 회심 사이에 시간 간격을 두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루이스 벌콥 {조직신학}은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을 변주(Variation)한 책임’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에서 펴낸 ‘루이스 벌콥 {조직신학}’ 721쪽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개혁신학 준비 은혜’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과 똑같이 ‘순간 단회 중생 시 단회 성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신 윤영상 목사님, 윤영상 목사님이 ‘연중론의 목숨’을 거시는 문장입니다. 배경색은 제가 칠합니다.
≪새 생명은 종종 유아들이 복음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게 되기 전에 이들 마음속에 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복음이 설교되는 곳에서만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새 생명이 생성되게 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부르심은 항상 존재한다. 복음의 집행 하에 사는 사람들 경우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 전, 즉 효과적인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복음의 집행 하에 사는 사람들 경우”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언약의 자손 경우’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 전, 즉 효과적인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는 문장에서 우리는 당연히 ‘말 못하는 젖먹이는 하나님을 찬미할 수 없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 가정중생론’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리고 “언약의 자손 경우 어릴 때 중생하면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지능, 언어 능력이 자란 뒤에 회심한다.”는 화란 개혁파 신학자들 이론에 대해 우리는 ‘성숙한 언어로 사유가 가능한 어른들 지혜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일에서 은혜의 방도가 아니다. 즉, 언어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이든지 성숙한 어른이든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일은 오직 중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달려 있다.’는 게 {성경}의 증거임과 ‘20세기 개혁신학 보물로서 순간 단회 중생 시 단회 성화 진리’를 생각하며 故 존 머레이 목사님과 똑같이 “결코 아니다!” 하면 됩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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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동신학원} {사이버신학연구소} {개설강좌} {송인규 구원론} 강의를 모두 들으신 라마드 목사님께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뒤에 전화로 간단히 들은 이야기였습니다만, 어제 {합동신학원} {사이버신학연구소}에서 이 강의를 찾아 실제로 송인규 교수님 육성으로 들으니,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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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DQH/1159
나그네 길 떠납니다.
새삶(사계) 2012.07.21. 03:42 / 조회 89
중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네가 거듭나도록 노력해라.’ 하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 최낙재 {소요리문답 강해 제1권} 566쪽. ***
‘{영혼의 의사}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현실입니다.
“중생(회심) 상담”은 알미니안 용어라는 것은 현실입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갈릭 목사님께서 잘 밝혀 주시기를
높이 되신 주님ㅡ“나는 나이다.”ㅡ께 기도드리며,
오늘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성 삼위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미,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나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나인 내가 너희에게 나를 보내셨다.’ 하라.”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Soli Deo Glolia!!!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하시어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신의 오른쪽에 앉히시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시대뿐 아니라
오는 시대에 일컫는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며,
또한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은 충만이다.
[에베소서 1장 20절~23절]
하나님의 지식을 대적해 높아진 것을 모두 파괴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한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
Soli Deo Glolia!!!
댓글 4
···(댓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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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퍼 가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