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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궁궁통1
“나의 죄,
나의 연악함을
드러내는 거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박제일 뿐이다.”
오래전에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들교회는
휘문고 체육관을 빌려
예배를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는 강당에서 자신의 치부를 먼저 드러내고 회개한다. 이런 까닭에 그의 설교는 교인들을 회개와 십자가로 안내한다. 중앙포토
개신교단에서 보기 드문
여성 목회자이면서도
그의 설교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보나?”
김 목사의 답은
이랬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이 늘어났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학교를 노크했습니다.
공간을 빌리려고 했습니다.
다들 “노(NO)”라며
거절했습니다.
미션스쿨조차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미션스쿨도 아닌
휘문고에서
주일에 학교 식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사람이 더 늘어나자
체육관으로 공간을 옮겼습니다.
우리들교회의 교인들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목욕탕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고서,
서로 때를 밀어주는 거다.
그럴 때 시원해진다.
가출 직전,
부도 직전,
이혼 직전,
자살 직전의 사람들이
그렇게 치유가 되는 거다.”
궁금하더군요.
목회자인 김 목사는
그렇게
목욕탕에 선 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지
말입니다.
#궁궁통2
다시 물었습니다.
“발가벗고서
목욕탕에 서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는 일이,
그게 과연 쉽겠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에서 만난 십자가상.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찾아내고, 짊어지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백성호 기자
김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론이다.
사람들은 다들
치부를 감춘다.
교회에서는 더욱 숨기려 한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에서는
서슴없이 공개적으로
털어놓는다.”
“예를 들면
어떤 걸 털어놓나?”
“나는 불륜을 저질렀다,
정말 남편을 증오했다,
나는 문제아였다 등등.
몇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숨기고 싶은 치부가 있다.
그걸 드러내고
고백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김 목사는 그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생활이
시작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얼굴을 아는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는
좀 더 점잖게,
좀 더 교양 있게,
좀 더 우아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어찌 보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게
쉬운 일일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김 목사는
그 비결을
털어놓았습니다.
“맞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부터 고백했다.
결혼한 후에
이혼도 수없이 생각했고,
죽으려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으나,
속으로는
멍이 들어서
엉망이었다.”
김양재 목사는 목회 초기에 서울 휘문고에서 공간을 빌려 사용했다. 지금은 경기도 판교에 우리들교회가 있다. 중앙포토
잠시 하늘을 쳐다보던
김 목사는
답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37세 때
급성 간암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
강단에 서서
교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교인들 반응은 어땠나?”
“목사가 죄를 고백하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더라.
아, 우리와 똑같구나!
사람들이 위로를 받더라.
그러고선
자신들 이야기도
다들 오픈을 하더라.”
#궁궁통3
김 목사는
자신의 치부를 오픈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 대부흥 때도
그랬습니다.
“평양 대부흥도 그랬다.
길선주 장로가
사람들 앞에서
먼저 고백했다.
친구의 돈을 훔쳤다고 말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죄를 고백하며
대부흥이 일어났다.
무슨 뜻인가.
나의 죄,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드러내는 거다.”
김 목사는
그 과정이 없는 신앙은
그저
박제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요즘 목회자들 사이에
농담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교할 때
‘고난’ 이야기를 하면
교인이 반으로 줄고,
‘죄’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김 목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자신의 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고난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
둘 중 하나만
취할 수는 없다.
왜 그렇겠나.
십자가와 부활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
어떻게
부활의 영광이 있겠나.
그래서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
#궁궁통4
김 목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힘겹게 학교를 졸업했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시댁은 부유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런데
유교적 전통이 너무 강했다.
5년 동안 조선 시대식
시집살이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집살이였나?”
“피아노도 못 치고,
책도 못 읽고,
걸레질만 했다.
집 밖에도 거의 못 나갔다.
시장도 가정부가 갔다.
도무지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았다.
착하게 사는데
왜 이리 힘이 들까.
죽고 싶었다.
이혼을 각오하고
가출도 했다.
그러다
성경을 보면서 깨달았다.”
예수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예수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진 채 걸어갔던 길이다. 백성호 기자
저는
깨달음의 내용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가 없다.’
이 말을 듣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까
겉으로는 모범생인
내가 바로
그 바리새인이더라.
내가
돈과 성공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고,
결혼도 했더라.
그걸 깨달았다.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교만하구나.
내 속에 사랑이 하나도 없구나.
겉으로 순종했지만
인정받기 위해서
순종했을 뿐이구나.
그걸 처절하게 깨우쳤다.
지금 내 삶이,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의 결과물임을 깨닫고
눈물의 회개가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습니다.
“주입식 신앙을 통해선
삶의 암초를
해결하지 못한다.
스스로
성경을 묵상하며
길어 올린 깨우침을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자립 신앙의 힘을 기르면
삶의 암초를 넘어가고,
암초를 다스리는 힘을
얻게 된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