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명상 에세이】
숲의 법문을 산새 통역으로 듣다
― 참나무는 경전을, 소나무는 성불을,
느티나무는 화두를 이야기하네.
윤승원 수필가
깊은 숲길.
맨발 걷기 명상을 하다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진=필자, 2026.7.11. 07:30, 도솔산 두루봉 약수터에서)
==================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숲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린 것입니다.
그게 좋습니다. 시원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청량감을 줍니다.
▲ 필자의 동선(動禪) - 두루봉 숲길 명상(삽화=AI 화백)
===============
그런데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말을 합니다.
나무들끼리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일까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제가 산속에서 새들과는 오랜 세월 친구처럼 소통해왔거든요.
새들의 언어를 번역하고 해석해왔습니다.
그러니 나무들의 대화를 산새에게 알기 쉽게 통역을 부탁하고 싶은 겁니다.
마침, 예쁜 박새 한 마리가 참나무의 언어를 통역했습니다.
“이 숲에서 가장 키가 큰 참나무입니다. 저는 저 아래 사찰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염불 소리를 매일 듣다 보니 불교 경전에 밝습니다.”
이번엔 소나무의 언어를 번역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목탁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성불의 뜻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는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다고 박새가 통역합니다.
“저는 묵언 수행하시는 스님의 화두를 알아냈습니다.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 말하는 나무들 - 이들의 언어를 박새가 통역(삽화=AI 화백)
===============
나무들의 언어를 들어보니 제각기 개성이 뚜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의 흥미롭고 유익한 속삭임을 전하는 박새 통역사의 낭랑한 목소리.
산새들은 이렇게 제게 아주 좋은 친구들입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숲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늘 법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좌선(坐禪)’은 법당 또는 방안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이라면, 제가 숲길 맨발 걷기를 하면서 명상하는 것은 자연의 법문을 듣는 ‘동선(動禪) 수행’입니다.
오늘은 박새의 자상한 통역 덕분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 ♧ ♧
▣ 문학평론가 감상평
매우 흥미롭고 윤승원 수필가다운 발상입니다. 특히 ‘나무들의 언어를 산새가 통역한다’라는 설정은 현실과 상상을 자연스럽게 잇는 문학적 장치로, 독자에게 미소와 사색을 함께 안겨줍니다.
이 글은 불교의 좌선(坐禪)과 닮은 점이 분명 있습니다. 다만 완전히 같은 수행이라기보다, 숲을 삶의 선방으로 삼는 ‘동선(動禪)’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닮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좌선은 고요히 앉아 마음을 비우며 자연과 하나 되는 수행이고, 동선은 걸으면서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깨닫는 수행입니다.
윤 선생님의 글에서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숲을 답답하게 여기지 않고 “그게 좋습니다. 시원합니다.”라고 받아들이는 대목부터 이미 수행자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의 나무들입니다.
참나무는 경전을,
소나무는 성불을,
느티나무는 화두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실제 나무가 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 자연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듣는 과정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환상이라기보다 명상적 우화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은 자연관찰을 넘어 자연과 대화하는 ‘명상 에세이’의 성격을 띱니다.
윤승원 수필가께서 오랫동안 숲을 벗 삼아 써 오신 작품 세계와도 잘 이어지며, 불교적 사유와 문학적 상상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따뜻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것은 윤 선생님의 글에는 이미 하나의 ‘숲속 법문’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산새의 통역을 빌려 숲이 조용히 깨달음을 전해준다는 것. 작가의 마음이 조금 더 고요해졌기에, 비로소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의 주체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라는 점을 드러내어 글의 품격을 한층 높여줍니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에는 윤승원 수필가의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현실에서 출발해 상상으로 확장되는 구성(숲 → 나무의 대화 → 산새의 통역)
- 동화적 상상력과 수필적 진정성의 조화
- 불교적 사유를 무겁지 않게 자연 속 이야기로 풀어내는 필치
-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 겸손한 시선
독자들은 이 글을 읽고 “정말 나무가 말을 했을까?”를 묻기보다, “나도 숲에 가면 저런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수필의 힘입니다.
윤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니 한 가지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자연을 의인화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동화가 아닙니다. 숲속에서 이루어지는 걷기 명상을 독창적인 문학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명상수필입니다.
“숲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늘 법문을 하고 있었다. 다만 내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문장이 작품의 화두처럼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윤 선생님께서 꾸준히 써 오신 ‘도솔산 숲 명상’ 연작 가운데서도, 철학성과 문학성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