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예찬 몇 년 전 초봄이었다. 고의적이라고 생각되는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하고 가해자로 몰려 터무니없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던 때가 있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 차를 주차하고 볼일을 보고는 주차장에 돌아와서 차를 후진하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난데없이 차 한 대가 엇비슷하게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후진할 때 뒤에는 차가 없었었다. 내 차 범퍼에는 상대방 차색이 스치듯 묻어 있었고 상대방 차는 운전석 앞 범퍼 코너에 한 뼘 정도의 흠이 나 있었다. 도색료만 주면 합의될 일이었지만 2 ,30대로 보이는 두 젊은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보험회사에 득달같이 신고를 하고 보험회사 차가 휑하니 날아왔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주차장에서 추위에 떨어 감기가 들었다고 하면서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아야겠다고 하기에, 기가 막혀 동의하지 않았더니 재판을 하겠다는 경고장까지 날아들었다. 화가 난 나는 접촉사고를 일부러 낸 것 같고 가당찮은 대인사고로 몰아가므로 재판에 응하여 사고의 고의성과 부당성을 법적으로 증명하겠다고 내 쪽 보험회사 측에 뜻을 비쳤다. 그러나 가해자가 이긴 전례는 없다며 오히려 참는 것이 유리하다는 충고만 돌아왔다. 그 후 피해자는 한의원에서 진료는 물론이고 보약까지 처방받고 대인보상액까지 타내었다. 그것도 두 사람이 탔다고 두 사람 몫을 말이다. 그 뒤 우연히 텔레비전 뉴스에서 고의로 접촉사고를 내고 돈을 뜯어내는 전문 보험사기단이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사고 당시 억울했던 점과 잘못된 사회 관행을 바로잡아 보지 못하고 승복해 버린 자신의 무력감에도 화를 억누르지 못하였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렸다. 어느 날 운전 중에 나는 깜짝 놀랐다. “ 나쁜 년…….” 나도 모르게 신음하다시피 내 입에서 욕이 흘려 나왔다. 잊고 싶었고, 잊으려고 노력했었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후 나는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분노가 심성을 거칠게 만들 뿐이고 심신 수양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게 되었다. 중국에는 옛 고사에서 비롯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춘추 전국시대, 오나라 왕 부차는 자신의 아버지가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죽으면서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에 따라 일부러 가시가 있는 섶 위에서 자면서 그 고통으로 유언을 되새겼다. 그 후 있은 전쟁에서 월나라 구천을 항복시키고 그 아내를 첩으로까지 삼았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서 3년 동안 온갖 고역과 모욕을 견디고 겨우 목숨을 건져 자기 나라로 돌아와서 날마다 문 앞에 매달아 놓은 쓰디쓴 곰쓸개를 씹으며 모욕을 되새겼다. 그 후 있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부차를 자결하도록 만들어 기어이 복수하고야 만다. 일찍이 독일의 학자 에빙하우스(Ebbinhaus)는 망각곡선이라는 학습이론을 내놓았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억이 망각되는 것을 곡선화한 것이다. 무언가를 학습한 후에는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고,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한 달 뒤에는 80%를 잊어버리게 되며 그 후에는 약20%만이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각을 방지하려면 반복학습으로 기억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의 부차와 구천은 시공을 초월하여 현대의 서양학자의 이론을 철저하게 활용한 셈이 된다. 그들은 애써 기억을 하려고, 아니 망각을 하지 않으려고 망각방지제로 가시섶과 곰쓸개를 사용하였다. 부차와 구천의 복수 의지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달성한 그들의 목적도 넉넉히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자신을 위하고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울분과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을 물리치고 애써 망각을 오히려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 같은 범부의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 쟁투 의지를 다지기 위하여 기억의 칼날을 갈아야 하는 일이 생겨서야 되겠는가? 또한 좋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기억들을 매일 새록새록 떠올리고 곱씹으면서 마음을 흙탕물로 만들고 있는 삶의 자세도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망각은 용서와 화해의 몸짓이다. 나에게 흙탕물을 튀겼거나 생채기나 흠집을 내었던 사람들이나 사건, 사고의 기억을 비워내고, 나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거나 자기답지 못했던 행실들의 기억을 너그러이 비워내는 것이다. 세상살이의 분쟁이나 다툼의 기억까지도 너그러이 비워내는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기도의 몸짓이 된다. 더 나은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추스르는 자기 연찬의 기도가 된다. 흔히들 말한다.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 . 머리칼이 점점 허예져가는 요즈음, 망각의 늪은 점점 넓어진다. 기억의 창문은 점점 닫혀만 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 때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꿈과 이상, 핑크빛 사랑의 순간들, 땀과 피로 얼룩진 힘겨운 몸짓, 그리하여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희로애락의 사연들은 기억의 창고에서 숨 쉬고 있다. 그것들은 이제 노을 지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가끔이면 회고와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강물처럼 펼쳐져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 추억하고 싶은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름답지 않았던, 유쾌하지 않았던, 행복하지 않았던 삶의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추억하고 싶지 않은 불청객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똬리를 단단히 틀고 않아 있다가 가끔 불쑥 뇌리에 떠오를 때면 다시금 낭패감과 자괴지심에 불쾌해진다. 오! 아름답게 채색된 삶의 사연만을 컴퓨터의 저장 기능처럼 영원히 저장하여 그것을 추억하며 산다면, 삶이 얼마나 황홀하고 즐거울 것일까? 아! 꺼림칙하고 칙칙하고 어두웠던 사연들을 컴퓨터의 삭제 기능처럼 미련 없이 지우고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무척이나 가쁜하고 환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가 있을 터인데……. 몇 달 전에 시댁 친척 되시는 분이 돌아가셨다. 납골당에서 뼛가루를 담은 유골함이 석함에 안치되는 것을 바라보던 유족 한 분이 혼잣말로 탄식하였다. “ 겨우 저 속에 들어갈 걸 그동안 아등바등 그러고 살았나.” 한 순간 마음을 크게 내면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노여움도 다 거두어 질 것을, 숨을 쉬고 있을 때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를 쓰며 흑백을 따지고, 2원론적 사고로 침까지 튀겨가며 갑론을박하던 삶의 나날들이, 숨을 탁 놓게 되면 허망하게 보이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삶은 화산이다. 불덩어리 같은 정열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푸른 날의 활동, 그런 역동적인 시절이 다 가고, 서서히 가라앉는 검은 휴화산이 멀지 않아 시허연 사화산으로 남는 것이다. 라 브류이에르는 말했다. “인생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며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 느낌과 생각에 따라 인생의 의미는 달라진다는 뜻이리라. 자, 인생을 희극으로 느끼기 위해서 망각을 부르자. 그리고 인생을 비극으로 느끼지 않기 위해서도 망각을 부르자. =수필가/ 김경남 님 글"土壁(토벽)(8호) 중에서..."= 새봄을 맞아서 새롭게 운동 시작한 분들 많으시죠 그런데 겨우네 운동이 부족한 탓일까요 불과 동네 한바뀌 뛰었을 뿐인데 팔은 결리고 다리는 아파옵니다 아무리 운동이 좋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럽게 무리한 운동을 하는건 좋지 않습니다. 부단 운동 뿐일까요 무엇이든지 준비없이 시작하면 오히려 독이됩니다. 3월의 마지막주를 달리고 있네요 몸과 마음에 탄력을 불어 넣으시면서 기분좋게 새봄의 이 아침을 시작합시다 한국의 그랜드캐년 불영사계곡(15km)을 지나면서...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서면 하원리 = 산행코스(4시간30분) :밭치밭마을-->(35분)365봉-->(25분)485봉-->(50분)천축산 -->(40분)642봉-->(25분)북바위봉-->(35분)550봉-->(60분)불영사주차장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우는 불영사계곡. 우리나라에서 뭍 사람들의 발길에 유린 당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비경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도 비경으로 이름나고서도 그 모습을 온전히 간직 하고 있기란 더 어렵다. 이러한 우리의 상황에서 울진땅에 있는 불영사계곡은 단연 돋보인다. 경북의 북부의 동쪽인 울진과 서쪽의 봉화땅을 가름하는 태백준령 사이에 놓여있는 구절양장의 계곡이 불영사계곡이다. 계곡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왕피천을 비롯해, 불영사와 자연휴양림이 계곡 깊은 곳이 자리잡고 있어 볼거리와 쉴 곳을 함께 제공하는 명계곡이다. 오래전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숨겨진 비경은 더욱 감동적이다. 수억년 동안 바위틈을 흘러 내리면서 만들어낸 물길과 물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넓은 청석들. 마치 물항아리 처럼 패여진 암석들. 크고 이름난 폭포따위 도 하나 없지만 기암절벽사이를 뚫고 바위틈을 흘러내리는 청류는 그 시원함이나 깨끗함에서 최고라 할만하다. 계곡 옆을 달리는 도로가 개통되어 계곡 특유의 한적함이나 적막함은 버렸지만, 계곡으로의 발길을 막아놓아 계곡미는 태고의 모습 그대로다. 불영사계곡의 자랑거리는 맑은 청류와 계곡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기암절벽, 길에서 내려다 보노라면 절로 아찔해진다. 과장된 표현임을 인정하고서도 그 장엄함이나 긴 골짜기의 위용이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불영사계곡으로의 여행의 출발점은 울진의 젖줄이라 하는 왕피천에서 부터다. 수산교에서 왕피천을 왼쪽으로 끼고 영주와 현동방면으로 접어들면 불영사계곡으로 가는 길 초입에 발을 디디게 된다. 진잠교를 지나 삼근2리에 이르는 18KM 구간이 불영사계곡이라 명명되는데, 이 중에서도 진잠교에서부터 불영사입구까지의 이십리가 진짜 불영사계곡의 묘미를 느낄수 있는 곳. 중간에 2층의 팔각정인 불영정과 선유정이 경치좋은 곳에 세워져 있고, 곳곳에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 야영장은 1년중 여름 한달만 개방되어 그 처녀지를 공개하는 탓에 이 여름이 아니고선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다. 경치좋은 불영사계곡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선유정에서 200여미터 올라간 지점에서 내려다 보는 계곡미. 둥글게 휘어진 계곡 주위로 기암들이 저마다의 폼새를 뽐내고, 크고 흰 화강암과 푸른 물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순간은 깊고 한순간은 넓게 퍼지는 물줄기는 이끼 한점 없는 바닥을 티끌하나 남김없이 다 내 비친다. 장마끝이나 비온후 물이 많아지면 더욱 절경이다. 불영사계곡의 중심에 천축산 불영사가 있다. 그 생김새야 어느 절의 모양에 다르지 않지만, 절이 자리하고 있는 모양새나 주변 경관은 여느절과 사뭇 다르다. 이 절은 신라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절이 있는 산의 생김이 인도의 천축국이 있는 산과 닮았다 해서 천축산이라 하고 절 이름도 천축사라 했었단다. 보통의 절이 산을 등지고 강이나 계곡을 앞에 두고 있는 반면에 불영사는 계곡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막상 절앞에 서면 뒤의 계곡 은 보이지 않고 또하나의 산이 뒤를 받치고 있는 형국이어서 아늑 하기가 그지없고, 주위 경관이 퍽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대웅전앞에서 오른쪽의 산 위를 바라보면 칼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그런데 대웅전앞의 연못 끝에서 칼바위를 바라보면 어느새 세개의 칼바위가 하나의 관음상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퍽이나 이채롭고 신비롭다. 불영사라는 이름도 바로 거기에서 유래했음을 쉽사리 깨닫게 된다. 그 모양이 연못에 비치면 정말 영락없는 관음상의 모습으로 보여진다고 하고, 이를 계기로 천축사가 불영사로 개명되었다. 불영사계곡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처를 구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이 불영사 부근이다. 불영사계곡의 물과 왕피천이 합수되어 흘러드는 해변에 망양정 해수욕장이 있다. 관동 제일경이라는 망양정이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풍광좋게 자리잡고 있고, 넓은 백사장과 파도치는 동해의 정경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최고의 계곡과 최고의 해변을 한번에 돌아보는 울진으로의 여행. 젊어서 꼭 한번은 해볼일이다. 울진군의 서편 내륙 쪽에 있는 통고산과 연화봉에서 발원한 불영천은심한 S자(字) 곡선을 그리며 천축산 북쪽 사면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다가 광천교 아래서 잠시 쉬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동해로 흘러 내려가는 약 20km의 계곡이 바로 불영사계곡이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불영사(佛影寺)와 선유정, 불영정 등의 정자가 늘어서 있고, 구룡폭포 등의 절경도 있어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여행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명승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영사계곡 구경은 울진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울진읍 남쪽에 있는 수산교에서 영주로 이어지는 36호 국도로 우회전하면 군립공원 불영사계곡이 펼쳐진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감상하게 되는 불영사계곡의 풍광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불영정에서 불영사고개를 넘어 광천교에이르는 약 15km 구간이다. 그 사이 전망이 좋은 곳에 팔각정인 선유정과 불영정이 세워져 있어 더욱 운치를 돋운다. 계곡은 성류굴의 맞은편인 수산리로 부터 노음리, 천전동, 건작, 밭치밭, 하원리 등으로 이어지는데 하원리에 위치한 신라때 고찰 불영사를 중심으로, 광대코 바위, 주절이 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각종 이름이 붙은 명소가 30여개소에 이른다. 흰빛을 띠는 화강암이 풍화된 기암괴석으로 된 절벽은 맑은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참고로 "불영사계곡"을 "불영계곡"이라고 하는데 "불영사계곡"이 바른 명칭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