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다낭의 미각
다낭의 초현대식 시청사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로 떠나는 여행길, 바로 다낭이다. 2월초 다녀온 남부지방에 이어 이어진 중부 지방 다낭, 올해 유난히 긴 5월 황금의 연휴기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해외여행 길 2등으로 자리매김 하였다는 다낭, 나는 연휴보다는 이른 4월26일 출발하였다. 5월 초에 가까운 날일수록 가격은 치솟았고 그쯤 여행객에 치여 푸대접에 바가지가 기승을 부릴 것만 같았다. 날짜를 더 당기려 하여도 문제가 있다. 베트남은 1달 이내 재방문을 하면 비자승인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여행객들에게 해외여행은 즐거운 경험인 동시에 부담 또한 만만하지 않다. 달콤한 연휴엔 긴 비행시간이 걱정되며 관광명소를 돌아다니는데 버스에 앉아있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다낭이 이번 연휴기간 당당이 2등을 견지한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본다. 다낭은 그런 부담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곳이다. 짧은 시간에 여행지의 문화를 체험해보고 휴식을 즐기고 싶은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인 곳으로 다낭만한 곳은 흔치 않다. 비행시간도 짧고 관광명소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아 가볍게 다녀오기 좋다. 게다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아 알차게 여행할 수 있을 터. 짧은 휴가라도 다낭이라면 괜찮다, 아니 충분하다.
알다시피 다낭 인근에는 17세기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 호이안(Hoi An)이 있다. 다낭(Da Nang)에서 남쪽으로 약 30에 ㎞위치한 고대의 항구도시 호이안은 17세기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복고적인 외관이 멋스러운 도시다. 베트남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하노이와 호치민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 시민들이나 베트남을 잘 아는 여행자들은 한 결같이 최고의 여행지로 호이안을 꼽는다. 다른 대도시처럼 아오자이를 휘날리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물결도 없고, 줄지어 세워진 빌딩도 없지만 호이안은 깨끗하게 잘 정돈된 시가지에 옛 모습을 잘 보전한 매력적인 도시다. 참파(占婆)왕국 때부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포르투갈, 프랑스 등 서방 국가의 상인들이 빈번히 드나들면서 19세기 무렵까지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인 동서 무역의 요충지로 번영을 누렸던 호이안은 16~17세기에는 일본인들의 이주가 많아지며 일본인 마을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중국과 일본 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풍흥의 집은 과거 19세기 중엽에 풍흥이라는 무역상이 자신의 상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검은 갈색 빛의 목조건물로 중후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 8대째 후손이 살고 있다. 지금은 토산품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호이안 구시가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투본강을 따라 호이안의 풍광을 즐기며, 목공예마을과 도자기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목공예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목각 제품들을 전 지역으로 판매 하고 있다. 도자기 마을도 투본강에서 나오는 흙토를 이용해 여러가지 도자기 제품을 만들어 전 지역으로 판매하고 있다. 두 마을은 관광지로써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외국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산으로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져 있으며 오행산으로도 마블 마운틴 불리는 곳도 다낭과 호이안 중간 쯤 있다. 주변에는 각종 석상 조각들을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마블 마운틴을 올라가면 멋진 동굴과 불상 그리고 탁 트인 다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낭에서 위로 버스로 3시간 쯤 향하면 비무장 지대에 못 미쳐 후에란 역사적인 곳을 만난다. 곳에는 응우옌왕조의 왕궁 뿐 아니라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 중의 하나인 티엔 무 파고다도 있다. 곳은 가장 순수한 불교도의 수도생활을 대표한다. 파고다 건물은 높이 21미터의 불탑으로 8각 모양의 7층으로 이뤄졌다. 1844년 티에우 트리(Thieu Tri)왕에 의해 건축된 티엔무 파고다는 비록 19세기 때 건물이 지어졌지만, 1600년대 종교 중심으로 티엔무는 시작되었다. 건축 당시에는 7층 각 층마다 금동불상을 안치해놓았는데, 지금은 도난당했다. 파고다의 뒷부분에 수도승과 수녀들을 위해 건물을 만들었다. 전쟁 중에는 불교도들의 항거의 중심이 되었고 티엔무파고다는 앞서 소개한 바(22. 고딘 디엠과 티우 대통령)와 같이 사이공에서 희생되었던 반체제 수도승 쿠앙 둑(Quang Duc)의 본거지였으며 훗날 그는 저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티엔무에서 정치 시위를 제한하므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약해진 지금은 파고다의 제정 지원을 위해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만나는 왕릉들, 대표적인 곳인 고딕양식과 인도양식의 조화로 이루어진 카이 딘 왕릉은 만달린, 말, 실물크기의 코끼리 등의 조각상등이 있다. 왕릉은 11년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건물의 규모와 웅장함이 건축기간을 증명하고 있다. 이들 건물들은 로맨틱, 고딕양식과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인도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꽃병이나 도기류의 깨진 조각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방법으로 장식하였다.
다낭 대성당
나는 이번 여행의 본거지격인 다낭에 여장을 풀고 두루두루 살펴보기로 했다. 다낭지도를 보면 다낭의 중심 중에 중심은 단연 다낭대성당이다. 이 건물은 1923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중세 건물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다낭 대성당으로서 1923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중세 건물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연분홍빛 외관과 70m 높이의 첨탑으로 탑 꼭대기에는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있는데, 이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수탉 교회로도 불린다. 성당 뜰에는 성모마리아 상이 있으며 아름다운 성당으로 인해 사진 촬영 명소로도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인천공항으로부터 5시간가량 날아간 다낭, 2017년 4월26일 오후 1시45분. 공항에서 다낭시내까지는 아주 짧은 거리였다. 외곽으로 돌아 신시가지에 위치한 ‘하다나 브띠끄’라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낭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바다인 줄 알았는데 강이었다. 다낭 해변 안쪽으로 친근한 이름의 '한강Song Han'이 흐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총 5개가 있는데 그중 '다낭 한강에 위치한 "한강다리, 용다리, 쩐티리 다리를 중심해서 도시를 파악하면 아주 편하다. 숙소는 구시가지 강 건너 다리로 보자면 용다리(2009~2013)와 한강(한강다리는 1998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2000년도에 완공됐다) 다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신시가지는 용다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불을 뿜는 용다리를 만든 것은 베트남이 처음이라고 한다. 실제 용다리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9시에 불쇼 물쇼를 볼 수 있다. 쩐티리 다리 (2010~2013)는 그 옆에 아시아 파크와 썬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낭은 2009년에 개통한 베트남 최장 현수교인 투안프억(thuan phuoc)다리까지 하여 다리들로 유명한 도시라고 말할 수 있으며 각 다리는 각자의 매력과 풍격을 가지고 있어, 사진을 찍기에 경치가 낭만적인 곳이고 도시파악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현재 다낭은 1백 만 명이 넘는 인구로 하노이 껀터 호치민 하이퐁과 더불어 5개 중앙 직할시 중 한 곳으로 다리 준공날짜에서 보듯 폐전장의 폐허를 말끔히 씻고 날로 번창하고 있다. 그들이 다낭을 개방을 하고 소문을 낸 것이 몇 해 전이 아닌 것이 이만하면 국제도시로 손색이 없다 싶은 시점으로 다리 준공시점에 맞춘 것이 아니겠는가 싶고 그들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또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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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의 다리들
다낭이란 이름은 참족어로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민망왕은 칙령을 통해 다낭을 중부에서 가장 큰 상업 항구로 공인했다. 알다시피 다낭은 1858년 프랑스 점령기에는 안남 왕국 내 프랑스 직할 식민구역이었고,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미군이 다낭항으로 상륙했다. 한국의 청룡부대 장병들도 이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렸다. 그만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다낭은 서쪽으로 쯔엉선 산맥을 경계로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쪽으로 트어티엔후에, 남쪽으로 광남성과 접해 있다. 동남아 여러 도시보다 개발이 덜 되어 원시 그대로의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낭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150㎞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다.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해변과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해변은 다낭시내에서 약 20㎞ 떨어진 미케 해변. 고급 리조트가 즐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더불어 다낭은 고대문명이 형성된 지역이기도 하다. 싸후인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궁전, 탑, 사원, 성곽 등 1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긴 역사의 흔적들이 참 박물관에 남겨져 있다. 이곳의 기원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 족 거주자가 세운 참파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에는 참 족의 거점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곳, 사실 내가 다낭을 찾는 사실 큰 의미는 어느 도시보다 다낭은 우리 형제 선배들의 청춘이 지나온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쟁, 라이따이한, 베트콩, 자전거, 아오자이…. 물론 이 글 또한 역사 기행 한 단면으로 펼쳐지기는 하지만 실상 내가 다낭에서 마주한 것은 전혀 색다른 자연적인 느낌의 것들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바람, 구름, 그리고 시간이 머물고 있었다. 베트남의 중부도시 다낭은 느리게, 하지만 선명하게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었다. 일상에 젖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하루를 사는 것 같은. 바람을 느끼고 구름을 올려다보고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내 시간을 선물 받고 있다는 행복, 모처럼 활기찬 의욕이란 감정을 나는 다낭에서 만끽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어떤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 도시의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간 시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높고 아름다운 건물 그 자체보다 건물의 서쪽 벽면에 얼굴처럼 붉게 비추인 오후 다섯 시의 따가운 햇살을 더 사랑하는 것. 아니면 어느 저녁, 숙소로 돌아가며 올려다본 하늘의 푸른 별, 다 떨어진 신발을 무기로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던 꼬마 아이, 꼰 시장 노파의 질긴 생명력, 끝없이 젖고 또 마르던 미케 해변의 모래들, 멀리서 들리는 이국어의 함성들. 그렇게 스쳐 지나간 그 도시의 어떤 순간들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고 왠지는 모르지만 이는 곧 나의 생기가 되고 의욕 넘치는 생동감으로 나를 또 감싸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마음의 풍경이다.
장소와 시간이 연인인 듯 서로 껴안은 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한 순간. 그 찰나의 찬란함이 적금처럼 모여 쌓인 여행의 잔고들. 그 기억을 우리는 풍경이라 부르고, 쉽게 사랑에 빠져든다. 바랄 것이 더 있을까 5월의 한낱 다낭의 밝은 햇살을. 해변의 선 베드, 노천카페의 앉은뱅이 의자, 고도의 담벼락. 쉴 틈 없는 오토바이 행렬, 귓전을 떨치는 여인들의 코맹맹이 소리들까지 그곳이 어디든 소음 속에서도 나는 비스듬히 기대 나른해지곤 했다. 그렇게 그곳에 나는 빠져 있었고 곳을 돌아설 쯤 나는 한결 차분해졌다. 아마도 이는 5박6일간 무던히 그들의 숨결을 긴 호흡으로 받아들이고 탐닉하며 또한 순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올 두 번 째 베트남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