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휼이 대소를 죽인 뒤에 현도와 낙랑을 병합하여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으뜸이 되었다. 그가 죽으니 호를 대무신왕(大武神王)이라 하였다.
후한(後漢) 건무(建武) 25년(AD49년, 고구려 모본왕 2년)에 낙랑 영토를 정벌하여 빼앗고 살수(薩水)까지 이르렀다.
해우(解憂)가 즉위하였으나 무도(無道)하였으므로 국인(國人)들이 그를 배반하였으며, 끝내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고 유리의 손자 궁(宮)이 즉위하였다.
궁이 즉위한 지 66년 동안에 현량(賢良)들을 임용하니 나라는 다스려지고 군대는 튼튼하여졌다.
왕의 아우인 수성(遂成)이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이제 나는 늙었다.' 하고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수성이 왕위를 뺏으려 한다는 평판을 근절시켰다.
수성이 즉위하여 전왕의 아들을 죽이므로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수성을 시해(弑害)하고 왕의 아우 백고(伯固)를 맞아들이니 그의 나이 77세였다.
수성의 아들 추안(雛安)이 도망하여 산중에 숨어 있다가 왕에게 나아가 죄를 청함으로 왕이 양국군(讓國君)으로 봉하였다.
출처: <미수기언> 권47 속집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hjang3&logNo=22081420597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trackingCode=external
<고구려본기>에는 모본왕2년 AD49년, 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 정벌 기사만 나와 있으나,
<미수기언>에는 낙랑군 정벌 기사가 남아 있네요.
이에 앞서, 2년 전(AD47년)에는 고구려 잠지락부가 낙랑군에 투항하는 사건이 있었죠.
삼국사기 기록:
"민중왕 4년(AD47년) 겨울 10월, 잠우락부(蠶友落部)의 대가(大家) 대승(戴升) 등 1만여 가(家)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후한서 기록:
"건무 23년(AD47년), 구려(句驪) 잠지락(蠶支落)의 대가 대승 등이 만여 구(口)를 이끌고 낙랑군에 와서 내속(內屬)했다."
1가구당 4.5명이므로, <고구려본기> 1만 가구(4만5천명)보다는 <후한서> 1만명이 맞다고 생각되구요.
AD45년, AD47년에는 홍수와 가뭄이 심해서, 흉년이 들어서, 낙랑군으로 귀속한 것이죠.
백제본기 多婁王(다루왕) 11년.
十一年 秋 穀不成 禁百姓私釀酒 冬十月 王巡撫東西兩部 貧不能自存者 給穀人二石
11년(AD38년, 戊戌)==> 다루왕 11년(AD47년) 9년 편차.
가을, 곡식이 잘 익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사사로이 술빚는 것을 금하였다. 겨울 10월, 동부(東部)·서부(西部)의 두 부(部)를 순행하며 위무하고, 가난해서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에게 곡식을 한 사람당 二石(2석)을 주었다.
*9년 기년 이동하여, AD47년, 백제 흉년 발생.
그리고, 평안북도에서 뽕재배, 누에치기로 유명한 곳이 '영변(寧邊)' 지역이라고 합니다. (박천군, 녕변군, 개천시가 뽕, 누에로 유명)
AD37년, 최리 낙랑국(현재 자강도 지역) 정벌 이후에, 고구려는 평안북도 지역에다가 '잠지락부'를 설치했나 봐요.
블로그에서.. '페이지에서 찾기'를 이용해야, 미수기언 원문을 볼 수 있어요.
첫댓글 잠지락부 위치에 대해서는 박창화선생의 <고구려사략> 대무신왕 22년(AD49) 기록에 보면, 장군 우도. 오의 등을 보내 잠지락하의 대승을 토벌하고 진격하여서 적성(부신 인근)과 잠지를 빼앗았으며 자몽왕들인 만리사고와 섭득 등을 이끌고서 네 길로 나누어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공략한 기사가 나오는 데, 이는 한서, 삼국지 등에 공인된 내용입니다. 즉, 잠지락부는 부신 등 자몽을 거쳐 연5군이 있는 하북땅에 가는 길이거나 하북땅임을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국사기>에는 연5군 하북땅 공략기사만 나오나 잠지락부는 역시 <사략>과 중국 25 정사를 보더라도 대동강 유역은 근거가 없고 자몽땅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엔지니어이지만 제가 담기양 등 중국이 하는 짓, 즉 동북공정 등에 열받아 고구려를 연구하다 티스토리(eom508.tistory.com) 3-2. 고구려 피침기중 산상왕때 고구려 강역에 올려 놓은 글인 데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고구려사략 원문을 체크해 보죠.
자몽 땅일수도 있겠네요~
국로추사에도 혹시 나와 있을지 모르겠군요~
@라디오 국로추사라는 일제시대에 편찬된 책이 있군요. 언뜻 찾아보니, 삼국사기 정도만 실린 것 같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심 엄용식 모본왕 2년, 49년 북평, 어양 공격에 참가한 장수는 麻樂, 乙布라고.. 제가 메모해 놨네요. 아마 출처가 <본기신편열전>인 것 같습니다.
잠시 체크를 해보니, <고구려사초> 간지가 오류가 나있고, 난리네요.
좀 더 확인해 봐야겠네요.
<고구려사략>과 <고구려사초>는 내용이 약간 차이가 날거에요.
<사략>에는 대무신왕 22년(AD49)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을 공략한 장수가 우도,오의라고 나오는 군요. 모본왕 2년(AD49) 기사는 삼국사기인 데, 저는 못믿겠습니다. 워낙 틀리고 엉터리 기사들이 많아서요...
고구려사략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낭패를 봐요.
본기신편열전이 1순위이고요.
고구려사략은 2순위이랍니다~